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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ngtake Dec 15. 2022

언니의 책받침

나에겐 나보다 15분 먼저 태어난 쌍둥이 언니가 있다. 나보다 키가 조금 크고, 나보다 조금 덜 예쁘다고 나는 생각한다. 우린 학교를 같이 다녔다. 학교뿐 아니라 같은 집에도 살았다. 언니와 나는 같은 모양에 분홍색, 하늘색 엘레쎄 가방을 메고 학교를 오갔다. 중학교 때 아침이 참 싫었다. 늘 전날 잠을 이기지 못해 공부하지 않은 나를 탓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그런 나를 데리고 나는 씻고 학교 갈 준비를 했다. 학교를 가는 길이 멀고 길었다. 무엇보다 내리쬐는 햇빛이 참으로 싫었다. 언니는 내가 구겨진 얼굴을 하고 짜증을 내면 분홍색 엘레쎄 가방에서 책받침을 꺼내어 나에게 달려드는 햇빛을 가려주었다. 이쪽으로 저쪽으로 내 왼편에 서서 내 얼굴에 햇빛이 비치는지를 살피며 각도를 바꿔가며 햇빛을 가려주었다. 나는 그런 언니의 손을 꼭 잡고 조금은 참을만하다는 표시를 해주면서 학교까지 꾸역꾸역 걸어갔다.    

  

나는 학교에서 어느 친구보다 언니가 제일 좋았다. 언니와 학교를 같이 갔고, 언니를 기다려 집에 같이 왔다. 배가 아프면 언니를 찾아갔고 언니는 조퇴하는 나를 집까지 바래다주었다. 사춘기를 겪어가는 친구들이 집에 가면 전화를 하라고 가르쳐 주기도 했고, 옷은 친구와 사러 가는 거라고 알려주기도 했지만 나는 아무것도 친구들과 하지 않았다. 소풍을 가서도 나는 언니를 찾았고 언니의 친구들과 어울려 밥을 먹었다. 가끔 언니를 찾지 못해 허탈한 발걸음으로 돌아오기도 했지만 언니를 거의 만날 수 있었다. 언니의 친구들도 나를 친구라기보다는 친구의 동생을 대하듯 했던 것 같다.      


신학기가 되면 우르르 친구들이 나에게 몰려들었지만 학기가 끝날 때쯤이면 아무도 없었다. 어떤 무리에 속해서 사춘기 동료로서 해야 하는 역할들을 나는 잘 몰랐고, 하지 않았다. 나를 일방적으로 많이 좋아해 주면서, 그런 나의 무심함을 견디며, 가르치려는 의지를 가진 몇몇 친구들이 지금까지 남았다. 같은 반에 단짝이 없다는 것이 불편할 때가 있었다. 학교 운동장에 나가서 줄을 설 때 미적미적 어색함이 있었다는 것, 반을 옮겨 수업을 들을 때 나를 챙겨주는 사람이 없다는 게 부끄러울 때가 있었지만 그럭저럭 견딜 만했다. 한편으로는 끈끈한 관계를 맺은 친구들에 대한 부러움, 부러움의 관계를 갖지 못하는 나를 바라보는 측은한 내가 있었다.      


나는 요즘도 아주 문득 언니가 책받침으로 해를 가려주던 아침이 생각난다. 내 마음을 설명하기 위해 입조차 떼기 싫었을 때, 교실 냄새나는 교복을 그대로 입고 학교로 향하는 길이 너무나 싫었을 때, 그런 하루가 이제 시작이라고 알리는 쨍쨍한 햇볕에 눈길 한번 주고 싶지 않아 땅만 보고 걷고 있었을 때 언니는 책받침으로 해를 가려주었다. 내게 이유를 묻지도 않았고, 같이 학교 다니면서 너만 왜 유난이냐고 탓하지도 않았다.  

    

얼마 전 8세 아들 깨복이 학교를 다녀오는 길 평소와 다르게 짜증을 낸다. 발을 툴툴거리고 입은 삐죽하다. 그 옆에 서있는 나를 보며 언니가 생각났다. 나는 울기 직전 표정의 깨복에게 이유를 묻기보다 다른 걸 해주고 싶었다. 가방을 뒤져 다행히 사탕 하나를 찾았다. 깨복에게 짠-하고 주니 울기 시작하려던 얼굴이 반짝반짝 웃는다. 진짜 지금 먹어도 되냐고 묻는다. 밥 먹기 전에 엄마가 손수 주는 사탕에 감동한 표정이 그대로다. 깨복 손을 잡고 집으로 향하며 언니가 가려주던 책받침을 생각하며 웃음이 난다. 마음이 좋아진 깨복이 “오늘 너무 피곤했어.”라고 조곤조곤 말한다. 깨복의 손을 꼭 쥐어주고 마주 보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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