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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리 May 15. 2020

삿대질해주셔서감사합니다

추억을남겨줘서고마워


초등학생들과 함께했던 어린이 캠프에 참여했던 적이 있다. 나는 30여 명의 아이들의 기록을 사진으로 남기는 사진사로 참여했다. 방학을 맞아 들떠있는 아이들의 모습은 사진으로 담기에 충분히 자연스러웠다. 특별한 포즈를 취해달라고 말할 필요도 없었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담았다. 그리고 정말 감사하게도 캠프 마지막 날 아이들에게 선물을 하나 받았다. 간사 선생님들께서 여름이라는 계절에 맞게 하얀 여백이 가득한 부채를 준비해 주셨고, 이 부채에는 나에게 전하고 싶은 아이들의 짤막한 속마음이 적혀있었다.

글은 말과 조금 다르다. 글은 보통 서로 얼굴을 직접 마주하지 않은 채 쓴다. 특히 대상이 전해진 편지와 같은 글은 쓰기 전에 그 대상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을 하는 시간을 가지게 된다. 같은 맥락으로 직접 눈을 마주치며 말하기 부끄러운 말들은 글로서 담백하게 전달할 수도 있다. 부채를 가득 채운 글들이 대개 그랬다. ‘사진 찍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물고기 잡는 거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실제로 전하기에는 낯부끄러운 말들로 감사인사를 전했다. 어쩌면 내가 한 게 사진 찍는 것 밖에 없었으니 그것에 대해 감사인사를 전하는 것이 당연한 거 같기도 하다. 나도 어릴 적에 그랬던 거 같으니깐.

그중에 눈에 띄는 글이 하나 있었다. ‘삿대질해주셔서감사합니다.’ 빨간색으로 적혀 있어서 더 눈에 띄기도 했지만 아무튼 ‘삿대질’, 나는 이 단어를 보고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시작이 되었는지는 자세히 기억이 나지 않는데 아이와 함께 서로를 삿대질을 하면서 놀았다. 그 친구가 처음에 나에게 삿대질을 했는데 나도 덩달아 삿대질을 하니 까르르하며 재밌어했다. 이후로 그 친구를 마주칠 때마다 삿대질을 했고 우리는 3일간 서로 삿대질을 하면서 놀았다.

그 친구에게 삿대질은 어떤 의미였을까? 그리고 부채에 적힌 삿대질은 어떤 의미였을까? 자세히 어떤 의미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악의가 담긴 행동은 아니었다. 그리고 확실한 것은 아이가 나에게 한 삿대질에 똑같이 삿대질로 반응한 것이, 그 아이에 대한 공감으로 다가갔다는 거다. 결국 그 친구는 ‘삿대질해주셔서감사합니다.’와 같은 속마음을 글로 남겨주었다. 그리고 나는 속으로 ‘추억을남겨줘서고마워’ 라며 지금에 와서야 답을 남겨본다.

이런 공감에 대한 문제. 항상 머릿속에서 맴도는 고민 중에 하나다. 상대방을 공감하고 지피지기의 자세로 생각하려 하지만 가끔 다른 욕심들 때문에 외려, ‘지기지피’를 해버리곤 한다. 아이들은 순수하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만 맞추면 되지만 지금의 내 주변은 그렇지 않다. 한 번 더 생각해보면 아이들을 대하는 것도 그 순간이 아닌 앞을 바라본다면 더욱 복잡해지는 것 같다. 삿대질은 보통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기 때문에 삿대질이라는 행동에 대한 교육이 필요한 것처럼.

쓰다 보니 삿대질로 시작해서 결국 또다시 삿대질로 끝나는 분위기다. 나름 기분 좋은 삿대질이었던 거 같다.



‘삿대질해줘서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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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을남겨줘서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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