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소하다

정체성에 대한 소소한 사색

3월 공통주제 <정체성> ㅣ 해원

by 한공기
스크린샷 2016-04-01 오후 2.14.40.png 지구여행자


작가 프로필 ㅣ 해원

현재 요가원에서 일하면서 요가를 배우고 있고, 주말에는 종종 커피숍에서 일하고 있어요.

요가로 신체를 단련하고, 글쓰기를 통해 정신을 단련해서 초인이 되고자 합니다. (...)

필살기는 음... '머뭇거림...'입니다. -_-




아침 8시. 이곳은 사당에서 강남으로 가는 지하철 2호선의 열차 한 칸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손바닥 한 장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을 만큼 붐빈다. 나는 이 공간을 꽉 채운 사람들을 본다. 전혀 모르는 타인들.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같은 시간과 공간에서 일센티미터도 안 되는 거리를 두고 모였다. 우리는 이 순간 누구보다 가까이 있다. 하지만 서로를 인식하지 못한다. 각자의 세계에서 서로가 배경일뿐.

나는 오늘 인간의 정체성을 생각하고 있다.

대도시의 생활이 그러하다. 인류 역사상 가장 좁은 공간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모여 복잡한 시스템을 이루어 살지만, 우리는 어느 때보다 혼자다. 타인이 누군지 모르고 내가 누군지 모른다.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나는 이런 사람'이라고 조금 특별하게 규정되고 싶어 한다. 자기소개를 하면 무엇을 먼저 말하는가? 이름, 나이, 직업, 소속이 나인가. 타고난 나의 외모, 성격과 성향이 나인가. 내가 선택했다고 믿는 신념, 경험, 취향, 기호가 나인가. 때때로 이조차 의문스럽다. 이미 만들어진 취향과 기호 중 보기 좋은 것을 택해서 '난 이걸 좋아하는 사람이야'라고 어설픈 흉내를 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바빠서 곤혹스러울지언정 우리는 할 일과 소속이 있을 때 안정감을 느낀다. 그것이 사회적 존재로서 나를 규정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속과 할 일에서 일체감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이것이 나인데 이것이 내가 아닌 이 비극은 우리에게 공허함을 준다. 공허의 근원은 진실로 자연한 나를 모르기 때문이 아닐런지. 그래서 우리는 정체성에 집착한다. 끊임없이 나는 이런 사람이라고 증명하려 발버둥 치면서도 사실은 내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자기 자신이 누구인가를 어린아이처럼 알고 싶어 한다. 문제는 이 답을 찾아가는 여정에 눈에 보이게 드러난 명확함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두렵고, 그래서 회피한다. 슬프게도 우린 아스팔트 도로와 고층 빌딩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보는 눈을 잃어버린 시대에 살고 있으니까.

정체성에 대한 사색은 이런 시대적 모순을 극복하려는 시도이다. 정체성 발견의 시작은 처절한 자기 인식이다. 방법은 하나씩 벗겨보는 것이다. 나를 둘러싼 모든 껍질을 벗기는 것이다. 모든 사회적 관계, 관계가 부과한 역할이나 기대. 누군가의 아들이나 딸, 누구의 부모, 남편이거나 아내, 혹은 연인. 조직에서 주어진 직함, 직업, 전공, 나이, 취미, 취향, 집, 차, 돈. 모두 버린다. 나의 맨살이 드러날 때까지, 더 이상 아무것도 뺄 수 없을 때까지. 내가 가진 것, 소중한 것, 나라고 생각했던 것을 모두 벗겨보아도, 그래도 나는 '존재한다'. 이 육신과 정신은 존재한다. 아무리 벗겨도 벗겨지지 않는 나는 누구인가?


심오한 질문이다. 나의 생각은 이러하다. 우리는 모두 무엇인가를 지향하는 의지이다. 그것은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이다. 삶을 통해서 이루고 지키고 싶은 것이다. 뜻대로 되지 않더라도 끝까지 반항하며 해보려는 것이고 끝내 놓치지 못하는 것이다. 나의 전부를 바쳐서 헌신할 수 있는 것이다. 신과 대면했을 때 이것이 나라고 꺼내 보여줄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있는 한 나는 살아있다. 그것이 나의 첫 번째 정체성이다.


이것을 품고 현실에서 내가 말하고 행동할 때, 나의 두 번째 정체성이 발현된다. 두 번째 정체성은 관계 속 정체성이다. 이 단계에서 아까 해체한 껍질을 다시 줍게 된다. 이는 내가 관계한 타인과 사회와 동식물과 자연과 우주에 말과 행동으로 행사한 영향력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맺힌 내 심상의 총합이다. 각 심상의 비중은 '대상이 당신을 생각하는 만큼'이다. 나의 정체성은 내가 맺은 관계의 깊이와 수만큼 신경세포처럼 뻗어나간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 자신의 정체성의 씨앗을 뿌린다.

8시 10분. 사색이 끝나고 강남역에 도착했다. 나는 이제 다른 한 무더기의 사람들과 함께 출구를 향해 같은 방향으로 걷고 있다. 현대 사회, 도시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산다. 우리는 각자 다르면서 비슷하게 살고 있다. 군중 속에서 우리는 자주 길을 잃는다. 길을 되찾기 위한 방법은 내 정체성을 확인하는 것, 그리고 누군가의 정체성을 확인해주는 것이다. 이것이 인간이 모여 사는 이유이다. 보잘 것 없어 보이는 내 정체성도 위대하다. 우리 하나하나의 정체성이 모여서 세계를 이루기 때문이다. 내 정체성을 살리는 일이 곧 세계를 살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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