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공통주제 <정체성> ㅣ 송승희
나는 목표를 세우고 계획을 실천하면서 희열을 느낀다. 지금은 현실의 나를 잘 알고 있으니 목표나 계획 또한 현실에 내가 잘 실천하는 쪽으로 정하니까 지키는데 큰 어려움이 없다. 그래서 평소 작은 성취감을 많이 느끼고 사는 것 같다.
작가 프로필 ㅣ 송승희
중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제 필살기라면 무한 긍정 마인드와 시원스러운 웃음이라고나 할까요~
정체성이란 사전적 의미로 변하지 않는 존재의 본질을 깨닫는 성질이라고 한다.
나는 여기서 깨닫는다라는 말에 마음이 동한다. 다시 말해 자신의 본질을 자각하는 것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다른 무엇보다 자신에 대해서 알아가고 자각하는 과정이 삶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무엇인가 자각과 깨달음의 과정을 얻기 위해서는 삶에서 새롭거나 충격적인 사건들에 의해서 얻어지는 게 아닌가 싶다.
나의 기억을 더듬어 보자면 내 동생이 태어난 날이 가장 오랜 기억이다.
그 전까지의 나의 삶에 대한 기억은 전혀 없다. 뭐가 뭔지도 모를 세상에 던져진 상태였다고 할까?
아마도 나는 내 동생이 태어나면서부터 나는 이제 언니나 누나가 될 또 다른 나를 인식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날의 기억은 단편적이다. 내가 있는 곳은 어느 건물 안의 현관이다. 나는 현관에 걸터앉아 있다.
낯선 사람들이 간혹 보이지만 나는 물어볼 엄두도 내지 못하고 그냥 앉아있다. 약간의 불안감과 약간의 설레임을 갖고 곧 다가올 소식을 기다리고 있다. 보이지는 않지만 안쪽 방안에는 엄마가 있다. 엄마의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엄마의 소리가 간혹 들린다. 정확하게 어떤 소리인지는 모르겠다. 그렇게 혼자서 기다리는 시간 나는 처음으로 이 상황에 대해 많은 관찰과 생각을 하고 있다.
잠시 후 아빠가 보인다. 아빠는 나에게 엄마에 대해서 물었지만 나는 대답을 하지 못했던 것 같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이때 내 나이가 생후 28개월 우리나라 나이로는 3살 때
내가 이런 기억을 갖고 있다는 것은 나 스스로 참 신기하게 생각된다.
그래서 내 기억이 맞는지도 궁금했다. 그래서 부모님께 내 기억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 장소와 상황이 들어맞았다.
내 기억이 틀리거나 상상에 의한 것이 아니라니 더 신기하다.
나는 내 동생이 태어난 그 순간부터 나라는 존재에 대해 더욱 뚜렷하게 인식하게 되었던 것 같다.
내가 아닌 동생을 통해서 말이다.
어린 나이지만 나는 동생이 좋았다. 동생을 샘내거나 시기하지 않았다. 동생이 달라는 것은 다 주고 동생이 원하는 대로 해 주었다.
지금도 기억나는데 내가 하도 특히 먹을 것을 동생한테 빼앗기니까(엄마가 보기에) 엄마는 특단의 조치?를 취하셨다.
항상 뭐든지 똑같이 나누어 주셨다. 그날도 여러 종류 이 과자를 두 접시에 나누어 주셨다. 그런데 동생은 자신의 접시와 내 접시를 이리저리 살피더니 "언니 바꾸자"라고 한다. 나는 "그래" 하고 바꾸어 주었다. 그런데 동생이 금새 "언니 다시 바꾸자" "그래" 나는 또다시 바꾸어 주었다. 근데 아무래도 아닌가 보다. 동생이"언니, 언니 과자가 더 많은 것 같아" "ㅋㅋ많은 거 먹어"
뭔가 석연치 않았지만 동생은 두 접시 중 하나를 고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각자의 접시의 과자를 먹는데 동생은 빠른 속도로 과자를 해 치웠고 나의 접시에는 과자가 반이상 남아있었다. 동생은 "언니 하나만" 나는 과자를 하나 집어서 "자"하고 동생을 주었다. 과자 하나를 금새 먹어버리고는 또 "언니 하나만" ㅋㅋ 나는 그런 동생이 밉거나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남은 과자를 거의 동생에게 주었다.
내가 동생에게 잘해주니까 동생은 항상 나를 졸졸 따라다녔다. 내 친구들과 놀 때도 동생은 언니 언니 하면서 같이 놀았다. 그렇게 잘 놀다가 어느 날 내 친구 중 한 명이 "동생 좀 그만 데리고 다녀"라고 했다. 그런 반응이 새롭고 충격적인 경험이 되어 나의 머리를 혼라스럽게 했다. 그런 혼란스러운 상황이 되면 이러한 상황에 대해 생각하고 지난 일에 대해 돌아보게 되면서 나와 동생과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나는 어떠했는지 왜 내가 이런 이야기를 듣게 된 건지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물론 그 당시 5-6세 정도였던 나는 깊이 있는 관계에 대해 생각하지는 못했지만 친구랑 놀 때 동생을 데리고 오지 말아야 하나에 대해 갈등하게 되었다.
그래서 한 번은 동생을 데리고 가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동생은 나와 2살 차이가 나니까 그때 나이가 3-4세 정도였겠지. 하여간 그날은 동생을 데리고 가지 않기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동생보다 빠르게 움직였다. 친구들과 골목에서 놀고 있었는데 동생을 두고 친구들이랑 다른 곳으로 갔다. 동생이 언니를 부르면서 '같이 가'를 외쳤다. 그때 나는 뒤돌아보면서 동생을 멀리서 보게 되었다. 지금도 그때의 동생의 모습이 아련하다. 울상을 하고 나를 부르는 동생이 안쓰러웠다. 2살의 나이차이지만 동생은 나의 내 친구들의 걸음을 따라오지 못했다. 좀 미안했다. "집에 가있어. 금방 갈게" 동생은 울음을 터뜨렸다. 마음은 동생을 데리고 가고 싶은데 친구들이 빨리 가자고 재촉했다. 지금 생각해보지 못된 것들 이란 생각이 드는데 그때는 그런 생각을 못했던 것 같다.
그다음엔 어떻게 됐는지 기억이 안 난다.
그렇게 골목에서 친구들과 놀 때는 참 좋았다. 나를 크게 힘들게 하는 것들이 없었으니까.
근데 나는 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많이 아프고 힘들었다. 나는 초등학교 1학년 내내 하루 종일 학교와 집을 왔다 갔다 반복했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나는 학교에만 가면 배가 아프고 기운이 없고 그랬다. 그래서 책상에 엎드려 있으면 담임선생님이 양호실에 가라고 했다 양호실에 가면 선생님이 어디 아프냐고 묻는데 배가 아프고 머리도 아프고 뭐 그렇다고 하면 꽤병이라고 다시 교실로 돌려보냈다. 다시 교실에서 시름시름 거리고 있으면 담임선생님은 집에 가라고 했다. 책가방을 메고 학교 교문을 나와서 집으로 오는 길에는 학교에서와는 달리 편안하고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느낀다. 집 근처까지 왔는데 강아지가 밖에 나와있었다. 나는 강아지를 보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다가 가게에 가려고 나온 엄마와 마주쳤다. 엄마는 나를 보고 적잖이 놀라셨을 텐데 크게 내색은 안 하셨다. "어디가 아프니" "학교에서 배가 아팠는데 지금은 괜찮아" "그럼 다시 학교에 가야지" "응" 나는 다시 학교로 갔다. 뭐 이런 식이었다. 하여간 1학년 1학기는 거의 학교를 갔다가 집에 오는 일이 많았다. 나중에 들었는데 울 엄마가 나 때문에 1학년 담임선생님한테 촌치라는 것을 줬다고 한다. 내 출석상황이 엉망이라 잘 봐달라 뭐 그런.. 그래서 였을까 1학년 1학기 결석일수가 1주일을 넘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힘들게 학교라는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나는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잘하는지 골목에서 친구들과 노는 동안은 알지 못했다. 그때는 그냥 천진난만하게 친구들과 놀았었다. 줄래잡기,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고무줄놀이, 공기놀이, 소꼽놀이, 가위바위보하며 계단오르기, 딱히 어떤 놀이를 하지 않고도 골목에 나와 있는 것 만으로 즐거웠는데 그렇게 자유롭게 놀다가 학교라는 정해진 공간에서 짜여진 뭔가를 해야 한다는 것이 나에게는 새롭고 충격적인 경험이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나는 딱딱한 사회환경에 민감하고 힘들어하는가 보다. 지금도 그런 면이 없지 않으니까
그렇게 힘들게 시작했지만 학교를 그만 다닐 수 있는 가능성은 0%
감히 학교를 안 다니고 싶다거나 안 다니겠다거나 말할 생각조차 못했다. 당연히 학교를 다녀야 하는데 나는 너무 힘들다는 거다.
그렇다면 계속 이렇게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다. 1학년 우리 반에 나는 친구가 없었다. 맨날 왔다 갔다 하는데 친구가 있을 리가...
그나마 내짝 지금도 이름이 기억나는데 김영준. 영준이가 그나마 잠깐씩 나를 챙겨주었다.
맨날 왔다 갔다 하니까 수업을 제대로 들었을 리 없는데 어느 날 학교에 가니까 국어 시험을 본다는 거다.
책가방을 책상 사이에 올리고 시험지를 받았다. 알맞은 낱말 비슷한 말 반대말 어려운 받침 써넣기 같은 문제들이었다.
뭐 학교 들어가기 전에 일일 공부를 하고 한글도 거의 떼고 들어가서 그런지 문제가 어렵지는 않았는데 딱 한 문제 알 것 같은데 생각이 안나는 문제가 있었다. 나는 있는지식 없는 지식 총동원했다. 근데 알듯 말듯 알쏭달쏭 정답은 떠오르지 않았다. 이런....
내가 혼자 씩씩거리고 고민하고 있는데 영준이가 내 팔을 툭툭 쳤다.
그러면서 시험지를 살짝 내쪽으로 밀며 보여줬다. 아하!!
그 문제는 다름이 아니라 '좋다'에서 조 밑에 받침을 쓰는 문제였는데 그 받침이 도저히 내 머리로는 생각나지 않았다.
난 고맙기도 하고 선생님한테 혼날까 봐 무섭기도 하고 그랬다.
소심하고 힘든 내 학교 생활에서 친구라는 존재가 필요하구나를 느끼게 해 준 경험이었다.
그 이후로 부터는 학교에서 우리 반 아이들에 대해 관찰하기 시작했다. 좋은 친구를 사귀고 싶은 마음이 들었으니까.
그렇게 친구를 사귀어야겠다는 마음이 학교에서 배가 아프지 않고 조금씩 학교 생활에 적응하기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