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소하다

상은아 잘했어

3월 공통주제 <정체성> ㅣ 이상은

by 한공기
스크린샷 2016-04-04 오후 1.38.04.jpg 사업가
갑자기 얻는 깨달음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그 깨달음을 유지시키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느낍니다.

작가 프로필 ㅣ 이상은

Keyword: 연극, 여행, 춤, 다이어리, 팟캐스트




항상 칭찬만 해서 ‘선배님 피드백은 영양가가 없어요’라고 내가 독설까지 한 태일 선배를 연극에 초대했다. 선배의 칭찬이 생각보다 약해서, ‘더 하실 말씀 없나?’하며 내가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닌가! 술자리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태일 선배가 내 목소리의 음색과 표현력을 칭찬했다는 말을 듣고 뿌듯했다. 연기 못하는 줄 알면서도 지금까지 나를 버티게 한 힘이 칭찬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무뚝뚝하고 주관이 뚜렷한 성격인데, 연기를 취미로 하면서 내가 조금이나마 변한 것이다.


나에게 연기는 일종의 극기 훈련이다. 상상력, 관찰력 등 다양한 능력을 키울 수 있을 것이라고 막연히 기대 때문에 아마추어 극단에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선천적으로 끼가 없어서 못할 줄 알았지만, 연기는 내 단점의 총합이었다. 발음, 사투리 때문에 화술도 안 좋고, 움직이는 것도 막대기 같다.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듣지 않는 성격이기도 하다. 하지만, ‘연기를 잘 하면 이 세상의 모든 일을 잘할 수 있어!’하는 심정으로 참으면서 해나가다 공연을 진정 즐기게 되었다.


너무 못하는 것 같아서 첫 공연 때는 아무도 초대하지 않았고, 두 번째부터 친한 사람들 몇 명만 초대하고 있다. ‘저 의상이랑 분장 잘 어울리죠?’하며 홍보사진만 자랑하며, 오겠다는 사람들도 막았다. 사실 더 많이 초대하고 싶어도 내 연기에 실망해 다음에 진짜 잘 하게 되었을 때 안 올까 봐 못했다. 그 몇 안 되는 지인들이 와서 ‘무대에 섰다는 것만으로도 멋지다’,’ 너한테 이런 모습이 있다니 놀랐다’고 칭찬했다. 공연 횟수가 늘어가면서 ‘전보다 훨씬 잘 하는데’라는 말을 듣는다. 그 말이 좋으면서도 ‘정말 잘 했다’는 칭찬을 듣겠다는 오기까지 생겼다. 쫑파티 때 나눠먹으라고 지인이 와인 3병과 안주를 가져왔을 때 단원들이 놀라는 모습을 보며 ‘나도 이런 친구가 있어요’하는 우쭐한 마음이 생기기도 하였다. 작년 가을 공연 때 배우로서 출연하지 않고 극장 입구에서 안내 업무를 하는데 어떤 여자 분이 ‘이번에는 출연하지 않으시나 봐요?’하고 아는 척을 했다. 부끄러우면서도 배우로서 나를 알아봐준 관객이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참 묘했다


하긴, 칭찬 덕분에 야학 자원봉사도 5년 넘게 하고 있다. 일주일에 한 번씩 가서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50대 이상 어머님들에게 한국사를 가르친다. 사정이 생겼는데 대체교사까지 못 구해 결강이 되면, 시말서를 써서 교무실과 교실에 붙여야 할 만큼 책임감을 필요로 하는 곳이다. 겹치는 일들을 포기해야 하는 게 아깝고, 한 주쯤은 쉬었으면 좋겠는데, 매주 목요일 저녁 수업을 꼬박꼬박 하러 간다. 어쩌다가 보게 된 학생들의 설문조사지에서 만족스러운 수업에서 내 이름을 드문드문 발견했을 때, 내가 마치 명강사가 된 것처럼 즐거웠다. 불만족스러운 수업에도 내 이름이 보였는데 그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수업 전후나 학교 행사에서 어머님들이 수업에 대해 직접 만족감을 표시하거나 나를 잘 챙겨주실 때, 선생님으로서 내 권위와 자존감이 높아진다는 것을 느낀다. 이런 맛에 꾸준히 자원봉사를 하는 것 같다.


생각해보니 나는 칭찬받는 것을 많이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국민학교 1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사소한 일에 대해 ‘참 잘했어요’ 도장이 찍힌 동그란 색종이를 주셨다. 친구를 잘 도와주고, 선생님의 질문에 손을 번쩍번쩍 들어서 그 동그라미를 열심히 모았다. 집에 가져와 오늘은 내가 무슨 일로 이걸 받았는지 자랑을 하면, 엄마는 포도가 그려진 종이에 ‘오늘의 색종이’를 붙여주면서 ‘우리 딸 최고’라고 말했다. 도장이 찍힌 포도송이를 다 완성해가면 선생님은 공책을 주셨는데, 1학년 1학기에 3권을 받았다. 집에 공책이 많이 있으면서도 열심히 모아 우리 반에서 제일 많이 받은 아이가 되었다.


이렇게 칭찬받기를 좋아하던 아이는 어른이 되어 칭찬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무뚝뚝한 성격이 되어버렸다. 30대 후반의 나는 칭찬을 들으면 ‘아니에요’ 등 거절의 말이 저절로 나오거나 아무 반응도 보이지지 않는다. 쑥스러워하면서 얌전히 웃는 것은 칭찬한 사람을 덜 무안하게 하는 그나마 괜찮은 반응이다. 한국인들이 칭찬받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고 하지만, 객관적으로 나는 좀 심하다. 욕심이 많아 성과에 대한 목표가 높아서, 내 자신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혼자 일을 해 타인과 이야기할 기회도 적기도 하다. 어렸을 때 아빠가 정치와 육성회장에 돈을 쓸데없이 낭비한 것에 대한 반감으로, 내 인생에 명예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과 성향이 달라도, 내 주관을 중시했기 때문에 타인의 시선에 민감하지 않은 줄 알았다.


오랫동안 칭찬의 효과를 느끼지 못하며 살았고, 직선적인 성격이라 다른 사람에게 칭찬을 한 적도 드물다. 친구 현아가 딸 주원이 사진을 보여줬을 때 ‘완전 너네 시어머니 닮아서 골격이 우람하고 목이 짧다. 너 닮았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말했다. 친구는 ‘그러니까 말이다’라며 안타까워했다. 7년 전 그때를 생각하니 ‘내가 왜 그랬을까?’하는 마음에 헛웃음이 나온다. 이제 친구가 자기 딸 자랑을 하면 맞장구를 쳐주고, 외모를 칭찬하지 못하더라도 그림솜씨, 운동신경 같은 다른 좋은 점을 이야기해줘야겠다. 페이스북에 지인들이 올리는 자기 자식들 사진에 대해, 눈팅만 하지 말고, ‘좋아요’ 버튼이라도 눌러줘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내가 솔직한 성격이기도 하고, 도움이 되는 조언들이라면서 주변 사람들이 크게 마음 상해하는 일이 없었다. 하지만 내가 칭찬의 효과에 대해 직접 경험하면서 타인의 감정에 대해 좀 더 생각하고, 밖으로 그 마음을 표현해야 한다는 것을 느끼게 된 것이다. 더 나아가 자기 자랑을 많이 하는 사람들에 대해 좀 더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 사람들은 밖으로 떠들 뿐이다. 나 역시 겉으로 표현하지 않고,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것은 똑같지 않은가? 명예를 중시해서 자기 실속을 못 차렸던 우리 아빠, 끊임없이 주목받고 싶어 하는 정치인들 그리고 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에 대해서 좀 더 너그러워진 것이다.


무엇보다 나 자신에 대해 관대해진 것이 기쁘다. 다이어리에 세웠던 계획들을 보며 ‘이것밖에 안 했어’라며 자신을 항상 다그쳤었는데, ‘그래도 많이 했다. 전보다 실천력이 늘었군’이라고 만족할 때도 있게 되었다. 잠자기 전에 하루를 돌아보는데, 거울을 보면서 ‘상은아, 잘 했어’하는 마음으로 씨익 웃어준다. 욕심 많은 내가 이렇게 스스로 칭찬하는 지경에 올랐다니!

여전히 난 무뚝뚝하고, 시크하다는 소리를 듣는다. 그래도 연기를 하면서 국민학교 1학년 색종이를 받을 때처럼 조금이나마 해맑게 웃게 되었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칭찬한 사람을 덜 무안하게 만들고 다른 사람들을 칭찬할 줄 알고, 스스로 칭찬하며 삶에 만족하는 더 멋진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언젠가 연기는 그만두고 추억으로 남게 된다. 하지만, 연기를 통해 얻게 된 칭찬에 대한 교훈은 내 삶 속에서 계속 실천되고 점점 더 커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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