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공통주제 <정체성> ㅣ 변효선
대학교 들어가서부터 뭔가 마음이 뒤틀릴 때마다 아무거나 닥치는 대로 비판하는 건조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정치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야구에도 같이 빠지기 시작했는데, 뭔가 정치와 야구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같은 사안을 보고서도 같은 편이냐, 아니냐에 따라 시선이 확연히 달라진다. 수비방해냐, 진루방해냐를 두고 전혀 의미 없는 싸움을 시작한다. 그것도 목숨 걸고. 연고지에 따라 팀이 갈린다는 측면도 많이 닮아있다.
작가 프로필 ㅣ 변효선
올해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다. 정치에 관심이 많아 정치부 기자를 하고싶다.
1995년 개봉한 극장판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는 인공지능, 사이보그, 네트워크를 소재로 한 영화다. 이 영화는 일명 전뇌화, 전자두뇌를 옮겨 심는 기술을 확보한 미래 시대에 벌어질 일 들을 그려내며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리고 2016년, 명령을 단순히 실행하는 디바이스 세계를 지나 스스로 생각하는 인공지능(AI)이 개발되면서 이 영화를 단순 허구로만 볼 수 없게 됐다. 실제로 미국 국방성 고등 연구원 DARPA가 뇌와 기계를 연결하는 인터페이스(BMI)를 구상하는 발표를 내면서 영화가 현실로 성큼 다가오고 있다. 임플란트 시술을 통해 뇌를 심어 인간과 컴퓨터가 서로 정보를 주고받는 것을 골자로 하는 이 기술은 철 지난 영화 ‘공각기동대’와 현실의 경계를 허문다.
이런 인공지능(AI)이 위협적인 이유는 인간과 기계의 구분이 불명확해지면서 인간 본연의 아이덴티티를 해친다는 것이다. ‘공각기동대’처럼 인간의 두뇌가 기계화되면, 인간의 정체성은 과연 무엇일까. 사실 굳이 인간의 몸을 기계화시키지 않더라도, 알파고와 같은 ‘인간처럼 사고하는 기계’의 등장은 인류 본연의 정체성을 뒤흔든다. ‘코기토에르고줌(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을 외치던 데카르트를 비롯해, 대부분의 서양 철학자들은 인간과 동물을 구분 짓는, 인간만의 정체성을 스스로 사고하는 ‘이성’에서 찾는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처럼 사고하는, 혹은 인간보다 더 똑똑한 기계의 등장은 인간과 기계의 경계선을 뒤흔들면서 인간만의 ‘정체성’을 앗아간다.
그러나 보다 큰 문제점은 인공지능(AI)이 위협하는 인간 정체성은 철학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사고 차원보다 직접적이고 실질적인 정체성의 파괴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바로 일자리 침투다. 인공지능(AI)과의 밥그릇 싸움에서 인간은 패배할 수밖에 없다. 방직기가 개발되고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일자리에서 쫓겨난 것과 같은 원리다. 그러나 AI의 일자리 침투는 전보다 더 광범위하다. AI는 단순 업무뿐만 아니라 전문직, 심지어 직관과 창의성을 요구하는 직업까지 성역 없이 전방위적으로 가리지 않고 깊숙이 침투한다. 인간 의사보다 실력이 월등하다는 왓슨이 그러하고, 추상화를 그리는 딥 드립이 그렇다. 물론 일각에서는 AI가 인간을 노동에서 해방시키고 오히려 인류를 행복하게 만들 것이라는 낙관도 있다. 오판이다. 노동과 직업은 인간에게 단순히 생계유지 수단이 아니다. 자기효능감과 성취감을 불러일으키고, 자아 정체성을 확인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마르크스는 노동을 인간의 본질적 속성으로 봤다. 노동이 곧 인간의 아이덴티티란 소리다. 그렇기 때문에 인공지능으로 인해 일자리를 빼앗긴 인간은 곧 정체성을 빼앗기는 것이나 다름없다. 성공적인 사회생활을 마치고 은퇴한 장년층이 ‘정체성’과 생활 속 혼란으로 우울증에 빠지게 되는 경우는 ‘노동 없는 인간 사회’가 결코 환상 속의 에덴동산이 아님을 잘 보여준다.
정체성은 인간의 본질이요, 존재 가치의 확인이다. 인공지능의 등장은 형이상학적으로나 형이하학적으로나 인간의 정체성을 뒤흔든다는 측면에서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국의 반응으로 나타난 AI 포비아 현상은 무지나, 기우가 아니라 인간 본연의 아이덴티티를 위협하는 대상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감에 가깝다. 이 공포감은 지금까지 우리 인류가 얼마나 인간만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에 소홀했는지를 증명하기도 한다. 앞으로 인공지능의 발달이 인류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지는 인간의 선택에 달려있다. 기계와는 견줄 수 없을 정도로 특별한 인간만의 아이덴티티를 찾는다면 인공지능 시대는 유토피아가, 그렇지 못하면 우리의 미래는 디스토피아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