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소하다

선생님께

책과 나누는 대화 ㅣ 임나무

by 한공기
스크린샷 2016-01-22 오후 1.57.50.png 책 먹는 여자
매일 500 페이지를 읽습니다. 제가 글을 쓴다면 '카프카'처럼 쓰고 싶어요. 카프카를 읽으면 약간 푸르스름한 흑백영화를 보는 기분이 듭니다.


작가 프로필 ㅣ 임나무

취미가 독서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엄청난 독서광.

자신이 읽은 책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보려 한다.




선생님, 잘 지내시지요?

책을 읽다가 문득, 아니 오직 선생님 생각만 가득히 나서 몇 자 적어봅니다.

알베르 카뮈가 고교 시절 스승이었던 장 그르니에와 30년간 주고 받은 편지 책이었어요.

읽는 동안 선생님과 그 교사가 겹치고, 제자가 받았던 은혜가 겹치더라고요.

제가 선생님께 드려야 할 이야기들을 그들의 편지에서 자꾸만 보게 되니

뒤늦게 죄책감과 아쉬움이 쌓여갑니다.


카뮈가 그르니에를 만났던 해와 똑같이 제가 선생님을 만난 것도 고등학교 마지막 해였죠.

선생님이 담임을 맡게 되셨다는 말을 듣던 순간이 아직 생생합니다.

제 인생에 처음으로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것'을 가진 느낌이었거든요.

낯선 행운이었습니다.


십대에도 우울하고 반항적이고 어두웠던지라,

아마 선생님이나 반 아이들 그 어느 누구도 제 안의 환희를 눈치채지 못했을 거예요.

어쩌면 화가 난 것처럼 보였을 수도 있겠지요.

어쩌면 선생님께 가르침을 받던 그 해 내내 말입니다.

그래서 이 뒤늦은 저의 부채의식의 고백이 선생님께 의아스러울 수도 있을 것 같네요.

"네가 나에게 뭘 빚졌단 말이냐?"라고 물으실지도...


물론 대학을 빚졌지요.

알제리 촌놈이었던 카뮈에게나, 사는 아파트 이름만으로도 빈민 인증이었던 저에게나,

대학은 빈곤과 무지로부터 탈출하는 유일한 길이었을텐데

카뮈는 그르니에에게, 저는 선생님께 신분상승의 사다리를 얻은 셈입니다.

그러나 그게 전부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카뮈는 그르니에에게 작가로서의 삶을 빚졌지요.

그르니에가 건네준 책들을 읽고 자신이 갈 길을 찾았고,

그르니에의 글을 흉내내어 쓰며 작가로서의 첫 발을 내딛었고,

문학에 소질이 있는지 자신하지 못하는 두려움을 그르니에에게 토로하며

확인과 격려를 구했습니다.


제가 선생님께 진 빚은 무엇이라고 말하면 좋을까요.

아마도 삶을 살아가는 방법, 그것이 아니었을까요?

고 3이 익숙해지던 5월 스승의 날 즈음이었던 것 같아요.

서른 두 살의 인기남이셨던 선생님은,

그 해에도 어김없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선물과 편지를 받으셨었죠.

"어떤 선물이 제일 맘에 드세요?"

뭔가 설레는 듯, 질투하는 듯한 여고생들의 질문에

선생님은 뜬금없이 선생님의 옛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집안의 가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성냥공장에서 일하던 시절의 자괴감,

군 제대 후의 입시준비, 장학금 없이는 유지할 수 없었던 대학시절,

치열했던 공부와 더 치열했던 데모, 경찰에 붙잡혀 학교에 통보된 후 취소된 장학금을

덤덤하게 말씀하셨죠.

도대체 왜 그 이야기를 하시는지 알지 못했던 아이들에게 선생님은,

"그 때 나를 구해주신 스승님이 계셨어."라고 하셨습니다.

사정을 어떻게 알게 되신 교수님 한 분이 그 학기 등록금을 대신 내주셨다고 했지요.

교사가 되고 나서 등록금을 갚으러 찾아갔을 때,

'나 말고 너의 제자들에게 갚으라'며 받지 않으셨다고...

"스승의 날이 되면 나는 그저... 그 교수님 생각이 나..."

그 말씀을 끝으로 선생님은 다시 칠판에 적어놓은 문제를 향해 뒤돌아서셨죠.

저희는 고 3이었고, 그 이야기는 어쩌면 아이들의 잡념을 털어내기 위한 짧은 잡담이었을 테지요.

그러나 제게는, 1년 동안 선생님이 저희에게 어떻게 그 빚을 갚으시는지,

무엇을 희생하시는지를 보게 하는 복선이었어요.


그리고 어찌된 일인지 그 빚은 저에게 옮아와 있습니다.

나도 다른 누군가에게 갚아야 한다는 의무감과 기꺼이 그렇게 살고 싶다는 열망은,

궁극적으로 저의 신앙이자 태도가 되어버렸습니다.

혹여라도 선생님이 제 삶에 과도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에 부담을 느끼신다면,

그건 선생님의 책임이 아니라고 말씀드려야겠습니다.

그르니에도 카뮈의 삶에 깊이 개입하고 영향을 주겠노라 작정한 것은 아니었을 거예요.

오히려 카뮈가 영향을 받기로 결심했다는 편이 맞을 것입니다.

아버지가 없는 그에게 스승은, 본질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방식을 '말해주는' 교사가 아니었어요.

카뮈는 필시 그르니에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말로 가르친 것을 듣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의 모든 소소한 말과 행동, 심지어 보이지 않는 것들까지 전인적으로 흡수했겠지요.

실존으로서의 삶을 '보여주는' 아버지를 갈구했었으니까요.


부모로부터 물질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물려받을 수 있는 유산이 없었던 저도

스스로를 '최초의 인간'이라고 불렀던 카뮈와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제게도 누군가의 삶을 그대로 카피할 만한 존재가 필요했고,

선생님은 저에게 실존으로서 닮고 싶은 분이었어요.

어두운 집과 고향을 떠나 저 바깥 세상으로 건너갔을 때,

그것을 덧입고 살아갈 수 있도록 말이예요.


선생님처럼 살아보려고 많이 노력했었답니다.

어느 순간 스승을 훌쩍 넘어서버린 카뮈와는 달리,

전 여전히 선생님의 발자취 속에 맴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언젠가 선생님을 뵙게 되면,

제가 어설프게 선생님 흉내를 내보았던 이야기를 들려드릴 수 있겠지요.

소심한 제가 그때 얼마나 떨었었는지 들으시면 아마 웃으실 꺼예요.

선생님, 그 날을 기다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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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알베르 카뮈와 그의 스승이었던 장 그르니에가 30년간 주고 받은 우정의 기록이다.
시간순으로 되어있다보니, 두 사람 사이의 관계 변화가 조금씩 감지된다.
처음엔 카뮈가 그르니에에게, 자신에게 문재(文才)가 있느냐 물으며 불안한 마음을 의지하지만,
나중에는 그르니에가 카뮈에게, 이집트에 방문해 강연 한 번 해달라고 여러 차례 간청하기도 한다.
카뮈가 문학적으로 아버지와도 같았던 그르니에의 그늘을 점차 벗어나는 것도 느껴진다.
그러나 그들의 우정은 그러한 세월의 흐름 속에서도 변함없이 이어졌는데,
영원할 것 같았던 교신은 1960년 1월 1일에 보낸 그르니에의 편지로 느닷없이 끝난다.
카뮈는 그 편지를 받지 못했고, 그르니에는 제자의 답신 대신 부고를 받아야만 했다.
이 부조리하기 짝이 없는 결말에 그저 망연자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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