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여행자 ㅣ 해원
작가 프로필 ㅣ 해원
현재 요가원에서 일하면서 요가를 배우고 있고, 주말에는 종종 커피숍에서 일하고 있어요.
요가로 신체를 단련하고, 글쓰기를 통해 정신을 단련해서 초인이 되고자 합니다. (...)
필살기는 음... '머뭇거림...'입니다. -_-
지난 주에 사전 투표를 했다. 현재 주민등록상 기준지로 등록된 지역구는 경상도의 한 소도시다. 투표 용지엔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 후보 하나, 무소속 하나. 단출하게 셋 뿐이었다. 소위 텃밭이라 불리는, 특정 정당 후보자가 불보듯 뻔하게 당선이 예견되는 지역구였다. 그래도 나는 표를 행사함으로써 내 의사를 표현한다. 정당투표라면 내 표가 의미가 있을지도 몰랐다.
나는 현실 정치를 잘 모른다. 매체에서 주워들은 소식과 내가 지금껏 현실을 살며 느끼고 쌓아온 경험을 발판 삼아 사안을 판단할 뿐이다. 그조차도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하기 곤혹스러워지곤 한다. 멀리서 보면 비난하기 쉬운 사실도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이 심정적으로 이해가 되기 때문이다. 수많은 이해관계와 복잡한 규정과 보이지 않는 불문율, 수면 위로 드러난 사건과 드러나지 않은 사건, 물밑 커뮤니케이션… 그 안에서 벌어지는 웃지 못할 인간사가 머리 속에 스쳐 지나간다. 인간적으로는 이해가 된다. 누구라도 더 잘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일이 잘 안되면 비판하긴 쉽지만 대안은 내기가 어렵다. 한편 상식을 벗어난 촌극도 많다. 어찌 이런 사람이 정치를 하고 있단 말인가. 연일 막장드라마처럼 쏟아지는 정치 뉴스와 거기에 조미료를 쳐서 가십거리처럼 보도하는 매체에 현기증이 난다. 지하철역 앞에서 길거리에 돈을 뿌리는 듯한 유치찬란하고 시끌벅적한 선거 운동을 보노라면, 그리고 그런 홍보 활동이 아직도 먹힌다는 기막힌 현실을 상기하면, 나처럼 한적한 곳에서 조용히 살고 싶은 영혼은 현실 정치를 멀리 하고 지적·미적 욕구나 충족시키며 은둔하고픈 유혹을 느끼기 마련이다.
하지만 내가 정치를 놓을 수 없는 이유는, 현재 살고 있는 사회체제 내에서 내가 느끼는 이상과 현실의 격차를 실질적으로 바꿀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나는 기성의 길에서 빠져나와 자신의 삶을 개척한 많은 사례를 보았다. 개인 삶의 구원이라고 해야할까. 세계일주를 하고, 책을 쓰고, 창업을 하고, 현실의 장애를 극복하고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 성과를 냈던 사람들의 용기에 찬탄을 보낸다. 그들의 선택과 노력을 존경한다. 동경심을 품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에게 어딘지 모를 찝찝함을 계속 느껴왔던 이유는 그들이 말하는 성공의 역설에 중요한 결핍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목소리는 자기 개인의 성공에서 끝난다. 그들이 하는 일은 주로 멘토가 되어서 자신의 인생에서 자신이 했던 방법의 성공 노하우를 전수해주는 것에 그친다. "용기내서 시도해라, 나도 여러분과 다를 바 없었다, 하면 된다." 그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어쩌면 아주 중요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개인적인 차원의 일이다.
내가 살며 느껴왔던 세계의 부조리함, 내가 실현하고픈 이상과 어딘가 어긋남, 추구하는 가치와 그것을 따라주지 못하는 현실의 간극. 그것이 내 삶에서 고통을 만든다. 이것을 개인적인 차원에서 극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여기까지는 반쪽이다. 나머지 반은, 그 고통을 만들어냈던 기저, 내 삶이 뿌리내리고 있는 이 환경과 사회. 내 삶에 중력처럼 영향을 미치지만 실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하고 막연한 배경에 조명을 비추어 공론화시키고 타인들과 함께 헤쳐 나가는 것이다. 이것을 정치적으로는 '연대'라고 하던가? 이 일은 개인적 구원보다 훨씬 어렵고 희생을 요하는 일이다. 당장 나에게 이익을 주지 않는다. 처음 제시했던 이상은 현실 속에서 수없이 조정을 거쳐야 하고, 시작하면 언제 끝날지 기약이 없다. 이것은 여러 사람이 눈을 감고 허공에 손을 뻗어 더듬거리며 재료를 찾아 성을 건설하는 일이다. 과정은 수없이 삐걱거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인식한 문제를 어떻게든 극복해보려고 하는 시도, 조금이라도 더 나은 세계ㅡ절대적 관점에서는 설사 그렇지 않다 할지라도ㅡ를 위해서 무엇인가 하고 있는 움직임 자체는 결코 져버려서는 안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발견한 이 끊임없이 현재의 불완전성을 극복하고자 하는 투쟁의 정신은, 한 개별 인간의 실존 차원에서나 인류 역사와 사회적인 차원에서나, 인간이 살아있는 이유, 우리가 자살하지 않고 살아야 하는 이유, 인간이 자유로운 존재로서 거듭나기 위한 역동성, 그 본질과 맞닿아있는 어떤 정신이기 때문이다.
그 정신을 실제 삶에서 사회적 차원으로 실천하는 방법이란, 현재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각 개인들이 능동적인 주체가 되어서 현실 정치에 어떤 식으로든 참여하는 것이다. 내 인생에서 마주했던 문제에 대하여 '공적인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나와 같은 고통을 겪고 있거나 겪을 사람들을 구원할 수도 있는 가능성이다. 설사 그렇지 못하더라도, 내 시야에서 소득 없이 비극으로 끝난다하더라도, 앞서 말한 이유와 같이 그 과정 자체로서 인간적 의의가 있음을 나는 믿는다.
비루한 내가 현실 정치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작해야 할 수 있는 것은 투표나 소액의 기부금이고 관심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 명 한 명의 관심이 밖으로 '표현'되고 모이면 힘이 생긴다. 당연히, 한 번에 크게 바뀌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 힘이 생길 가능성을 늘 염두에 두고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 앞장 서서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는 리더가 되지는 못하더라도, 누군가 나서 주도하고 그 변혁의 힘에 탄력이 붙었을 때, 언제든 뒤에서 강하게 서포트해줄 정도의 눈치는 늘 깨어 있어야 한다.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있는 주체, 이 시대의 가장 약자이자 가장 강한 잠재력을 지닌 '군중'이기 때문이다. 군중이 움직일 때 역사가 움직인다. 현대에는 그 흔한 페이스북 라이크 하나, 트윗글 공유 하나, 당신의 댓글 한 줄이 어쩌면 생각보다 소중할지도 모른다. 문제인식에 대한 당신의 정치적 의사표현이, 당신의 공적 행사 참여가 생각보다 의미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여론을 바꾸고 세상을 바꿀지도 모르는 일이다. 밖에 나가서 정치와 종교 얘기는 하지 말라고 했던가? 내 생각은 그 반대다. 우리 모두 정치적 의사표현을 해야 한다. 늘 주제넘을까 싶어 정치적 발언을 망설여온 내가, 나름대로 투표가 어쩌고 정치가 어쩌고 한 줄 쓰고 있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