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구건조증 걸린 미소녀가 본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ㅣ 변효선
대학교 들어가서부터 뭔가 마음이 뒤틀릴 때마다 아무거나 닥치는 대로 비판하는 건조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정치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야구에도 같이 빠지기 시작했는데, 뭔가 정치와 야구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같은 사안을 보고서도 같은 편이냐, 아니냐에 따라 시선이 확연히 달라진다. 수비방해냐, 진루방해냐를 두고 전혀 의미 없는 싸움을 시작한다. 그것도 목숨 걸고. 연고지에 따라 팀이 갈린다는 측면도 많이 닮아있다.
작가 프로필 ㅣ 변효선
올해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다. 정치에 관심이 많아 정치부 기자를 하고싶다.
<연산군 일기>에 기록되어 있기를 “배우 공길이 논어를 외워 ‘임금이 임금답지 않고 신하가 신하답지 않으니 비록 곡식이 있은들 어찌 먹을 수 있으랴” 하였다.
예부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장 자유롭게 권력자에 직언을 할 수 있던 자가 바로 광대다. 셰익스피어 문학 작품 <리어왕>의 광대는 왕을 상대로 직설적인 언어를 쏟아 붓는다. 심지어 “금관을 줘 버린 것은 그대 골통 속에 지혜가 없어서이지.”라고 왕을 조롱하기도 한다. 어디 서양뿐이던가. 조선의 남사당패는 탐관오리와 양반들의 부도덕성을 풍자와 해학으로 질펀하고 흥겹게 비판했다.
얼마 전, 연예인 김제동이 정치적 표현을 했다가 보수 단체 회원들에게 뭇매를 맞았다. 보수단체 회원들은 그를 몰아세우며 퇴출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 사건을 보고 있자니, 옛날 광대들의 시원했던 정치 풍자가 떠오른다. 물론 작금의 ‘연예인’이란 직업의 사회적 위치는 이전과 사뭇 다르다. 그러나 연예인의 ‘전신’격인 광대가 맡았던 역할을 생각해보면, 연예인의 사회참여가 얼마나 당위적 행위인지를 엿볼 수 있다.
또한 현대로 넘어오면서 연예인은 이전의 광대와는 다르게 ‘신분 집단’이 아닌 ‘직업’의 일종이 되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연예인이기 이전에 ‘사회구성원’이게 된다. 사회 구성원의 사회 참여를 그 누가 무슨 이유로 막을 수 있을까. 그 이전에, 특정 직업을 이유로 누군가를 '사회 참여'에서 배제시키는 것이 민주주의 사회에서 가당키나 할까.
이 뿐만이 아니다. 요즘은 운동선수,아나운서,정치인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방송활동을 하면서 직업의 경계가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제 연예인과 비연예인을 더 이상 칼로 자르듯 명확히 구분할 수 없게 되었다. 정치인이자 방송인(예능인)인 강용석 등장은 우리가 더 이상 연예인이란 이유로 그들의 사회참여를 막을 수 없음을 시사한다.
연예인의 사회참여를 반대하는 이들은 대부분 ‘연예인들의 영향력’을 문제 삼는다. 그러나 오히려 그들이 가진 영향력은 긍정적 효과를 불러일으키는 경우가 많았다. 2008년 일어난 태안 기름 유출 사태는 많은 연예인들이 봉사활동에 참여하면서 ‘홍보효과’를 톡톡히 보았다. 연예인들의 활발한 사회참여는 도외시 되거나 묻힐 수 있던 여러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물론 일각에서는 유명인에 대한 ‘선동’을 우려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들의 영향력이 필연적으로 ‘선동’을 불러일으키지는 않는다. 클래퍼(Klapper)는 <매스커뮤니케이션 효과>에서 ‘선별효과 이론’을 통해 매스미디어의 효과가 획일적이거나 강력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 말인 즉 대중은 매스미디어의 메시지를 무비판적이고 무차별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능동적이고 선택적으로 수용한다는 것이다.
나는 오히려 '연예인'들이 더이상 '광대'같지 않아서 답답하다. 사랑 타령하면서 엉덩이나 흔들어대는 연예인들 말고, “왕이 왕 같지 않으니 쌀이 쌀 같지 않다”라고 말하던 공길이 그립다. “개잘 량 ‘양’자에 개다리소반 ‘반’자 쓰는 양반이 나오신단 말이오.”하며 권력자에 정면으로 도전하던 말뚝이가 그립다. 답답한 현실 속에서 뭇 백성들의 한을 명량하게 풀어주던 진짜 광대들이 무척이나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