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소하다

WPI 검사

시시콜콜한 이야기 ㅣ 이정민

by 한공기
스크린샷 2016-02-03 오후 2.30.52.png 대구아가씨
전 건망증이 심해서 병적으로 기록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오전 10시반에서 11시까지 무엇을 했는지, 점심은 무엇을 먹었는지, 물은 몇 잔을 마셨는지...흘러간 시간 속에서 사라질지 모르는 감정들까지도 세세하게 기록하고 싶어요


작가 프로필 ㅣ 이정민
직장인. 성격이 무척이나 쾌활한데 힘든 내면을 보호하기 위한 과장일지도 모름.




WPI 검사를 했다. 황심소 팟캐스트를 들어오다가 문득 궁금해져서 검사를 해봤다. 그래프가 M자 형이 나오는 사람들이 세상에 적응하기 힘들어 하지만 좋은 사람들이라고 그래서 나도 M자가 나올 줄 알았는데 W자가 나왔다.. 충격.. 흔히 사는 데로 사는 사람들(팟캐스트에서는 이런 사람들을 좀비라고 칭한다.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약한 사람들, 지금의 한국 사회에 잘 적응해서 살아가지만 이상적인 국가에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 기회에 따라 자신의 이익에 따라 생각하고 움직이는 꺼삐딴리들)이 W자가 나온다고 그랬는데 .. (W의 첫 번째 꼭지인 리얼리스트가 높으면서 현실파악을 잘하고 두 번째 꼭지인 휴머니스트가 높으면서 사람들과 잘 지내고 세 번째 꼭지인 에이전트가 높으면서 일도 그런 대로 잘해내는)


일단 내 WPI 결과의 제목은 휴머니스트에 관계 성향이다. 자기평가 5개, 타인평가 5개 범주 중에서 가장 높게 나온 것이 관계이다. 관계, 트러스트, 메뉴얼, 셀프(자아), 컬쳐(문화즐기기) 중에서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관계라는 뜻이다. 이건 사실이다. 나는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 생각을 철학적으로 어떻게 정의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혼자로서 나는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별로 궁금하지도 않다. 항상 사람들이랑 함께 있고 싶다는 것이 아니다. 이 점에서 나는 내가 사교적이지만 내향적이라고 생각했다. 외향/내향의 뜻은 자신의 에너지가 어디서 나오는지에 대한 것이고 나와 관계하는 것이 꼭 사람이 아니어도 되기 때문이다. 최근에 분양받은 지렁이들*이라든지 요즘 집을 꾸미려고 조립하고 페인트칠했던 공간박스, 짬짬이 읽는 책들까지.


어디선가 들은 말이지만 나를 관계의 집합으로 정의한다. 내가 어떤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사람과 함께 있는 내 모습도 나의 일부분이기 때문에 그 사람과 온전히 행복하게 있으려고 한다. 예로, 최근에 직장에서 기독교신자인 사수와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복이라는 이야기를 하다가, 사수가 '저희는 은혜라고 이야기하죠, ㅎㅎ'라고 말을 해서 (나는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그럼 주임님을 만난 걸로 저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것 같습니다'라고 했는데, 사수가 깜짝 놀라면서 감동하였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남자친구한테 했다가,(그 역시 기독교인데) 그렇게까지 말해야하냐는 핀잔을 들었다.


보기에 따라 비굴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래서 내가 좀비였..) 옛날에 '5가지 사랑의 언어'라는 책을 읽었는데, (이 책 역시도 기독교인이 쓴 책이었다. 나 빼고 세상 사람들은 다 기독교인인가..) 그 책의 골자가 부부 사이에 사랑을 표현하는 5가지 종류의 언어가 있는데 (인정하는 말, 함께하는 시간, 선물, 봉사, 스킨쉽) 서로의 언어가 다르다면 상대방의 언어로 표현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책을 나는 내 방식대로 상당히 감명 깊게 읽었고, 그 후부터 타인을 만날 때 그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호감을 표하는 언어는 어떤 것일까 생각하게 되었다.


관계 다음으로 높은 것이 휴머니스트이다. 리얼리스트, 휴머니스트, 에이전트 세 개가 높으면 W가 완성되는데 나는 휴머니스트와 에이전트가 높은 편이지만 그나마 리얼리스트가 낮아서 먹고 사는 데 도움이 안 된다고 세상 사람들이 입을 댈지도 모르지만 여기서 글을 쓰고 있는 것 같다. 리얼리스트보다는 아이디얼리스트가 높은데, 이 예로는 또 지렁이를 들 수 있다. 이번에 지렁이를 산 나의 명목은 '음식물쓰레기를 줄이겠다.'이지만 사실 현실적으로 생각한다면 이번에 지렁이를 산 돈이면 이 지렁이들이 다 죽을 때까지 음식물쓰레기 값을 내고도 남을 테지만, 그래도, 나는 지렁이를 샀고 1인 가구 생태계를 만들 생각이다. (ㅋㅋ 좀 웃어봅니다 설국열차인줄)


리얼과 비교해서 아이디얼 성향이 높은 것의 또 하나의 예로는 작년에 자전거를 구입한 것이다. 자전거를 구입한 첫 번째 명목은 대중교통 대신 이용하겠다는 것이었다. 당시 약 10만 원 정도 주고 구매했는데, 한 달 버스비가 1100*2*5*4=44000원로 치면 2달 정도 타면 내 생각이 실현되는 것인데 한 달 정도 탔을 때 출근길에 펑크가 났다. 신천 주위 자전거 길에 들어서고 난 후라 그날은 자전거를 끌고 걸어서 출근하였다. 5000원 주고 펑크 난 것을 때웠다. 다음에는 흐린 날이었는데 인도로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행인의 우산이 내 자전거 바퀴에 가로로 끼어서 앞으로 꼬꾸라졌다. 속도가 빠르지 않아서 크게 다치지는 않았는데, 엄청 놀랐었다. 그 때 수리비도 한참 들었다. 그리고 바퀴 등이 소모품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두 번째 명목으로 갖다 붙인 것이 운동이 된다는 것이었다. 사실 자전거 타는 것은 좋은 하체 운동이고 사람 몸에 있는 근육 중 가장 큰 근육이 허벅지 근육이라 발달시키기 노력대비 효과가 좋은 근육인데 한 달 정도 출퇴근하다가 그만둬서 효과를 보지는 못했다. 요즘도 자전거로 출퇴근하지만 편도로 5분길이라서 운동이라기보다는 그냥 잠깐 안장에 엉덩이를 걸치고 오는 기분이다. (자전거 이야기는 아이디얼 성향 이야기하다가 내가 멍청하다는 이야기로 끝나는 것 같다..)


자기평가그래프와 타인평가그래프의 모양이 좀 일치해야 힘든 일 없이 행복하게 산다는 데 나는 매우 반대이다. 셀프가 높아서인지 별로 힘들다는 느낌은 안 드는데 이제부터 내가 힘든 건지 잘 관찰해봐야겠다. 근데 메뉴얼이 0이라서 왠지 힘든 상태여도 힘들다고 생각 못하고 아무 생각 없을 것 같기도 하다. 생각지 못한 결과이지만, 무슨 뜻인지 생각하려고 여러 번 보다보니 거울 속 내 눈코입처럼 정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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