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학이란 무엇인가?
모임이 있는 수요일 아니 화요일 저녁부터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리고 처음 <수요미학회> 공지를 올릴 때 순간을 떠올렸다. 만약 단 한 사람도 안모이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공지글을 써놓고 '확인'버튼을 누를까 말까 한참을 고민했었다.
<수요미학회>는 단순한 개인적 경험에서 출발한 모임이기 때문에 나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 파악할 수 없었다. 예술대학을 졸업하고 관련 업계에 오래 있었다. 그리고 도저히 먹고살기 힘들어 결국 외도를 하고 전공과는 전혀 상관없는 직종에서 일하게 되었다. 가끔 대학 동기들과 연락을 하거나 모임에 나가면 실업자나 아르바이트로 근근이 버티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이 생각나서일까 회사에서는 연봉이 안 올라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궂은 일도 도맡아했다. 하지만 늘 가슴 한 구석이 허전했다. 퇴근과 출근 사이를 메우는 TV 시청 , 팟캐스트 듣기, 책 읽기 정도로 만족할 수 없었다. 침대에 누워 잠들기 전에 상상의 나래를 펼치곤 했다. 뉴욕의 메트로폴리탄과 모마 뮤지엄에 갔을 때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와 미래 여행을 하는 것처럼 느꼈던 순간들, 홍콩의 인디펜던트 아트 센터에서 머물렀던 기억 그리고 그 직원들과의 여행, 여름방학 때 놀러 간 일본에서 맨홀 뚜껑, 택배자동차, 교회, 편의점 등 일상에서 체험한 디자인 천국... 생각해보니 난 각 나라의 공공시설물(학생회관, 주민센터, 도서관 등) 안에서 하릴없이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머물며 공간에 스며있는 예술적 기운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 공간 안에 있다는 것만으로 무한한 행복을 느꼈던 즐거움... 난 한국에서 좀처럼 찾을 수 없었다. 나중에 안 사실은 그것이 '미학'이란 개념이 있는 나라와 없는 나라의 차이 때문이었다.
내게 한국사회는 거대한 '이마트'이다. 상품 코너가 나눠져 있고 하던지 말던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길에 머물면 뒤에서 호통을 치며 카트로 민다. 고르던지 비키던지! 그래 경제활동을 하지 않으면 낙오자로 전락하는 곳. 그래서 살기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닌 일을 하기 위해 사는 곳. 그래서 마음의 여유 따위는 사치인 곳. 집 밖을 나오면 모든 것에 돈이 든다. 돈이 없으면 어디 한 군데 진득하게 머물며 삶을 즐길 수 있는 곳이 별로 없다. (실제 이마트는 '시식코너'도 있지만 현실에서는 공짜란 없다.)
급격한 근대화 과정에서 '아름다움'에 대한 고민과 철학도 없이 발전한 나라이기에 예술은 일상이 아닌 '상품'으로만 전락했고 돈을 지불하지 않으면 '아름다움'을 즐길 수 없다. 또 그 전략적 상품들은 본질을 잃어버려 당장 돈이 되는 단순한 말초적 쾌락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일주일에 단 한 번이라도... 순수한 아름다움을 찾는 여정을 떠나기로 했다.
마침 수요일 저녁이 한가하여 퇴근 후 영화관이나 공연장을 찾았다. 멀티플렉스보다 예술영화 전용관을... 대극장 공연보다는 소극장 공연이나 독주회를...
나만의 <수요미학회>는 어쩌면 일종의 개인적 투쟁이었다. 고도 자본주의 사회가 만드는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한 투쟁. 하지만 극장이나 공연장에서 나와 홀로 쓸쓸히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너무도 싸늘했다. 누군가와 차라도 마시며 그날 감상했던 작품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다. 가끔 나의 친구 토마스와 비비(현재 토마스와 비비는 수요미학회 회원이다.)가 미학 여행의 동반자가 되어 주었지만 더 많은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토마스는 '번개'를 하자고 제안했다. 공연은 각자 보고 끝나면 공연장 앞에 약속된 카페에 모여 감상을 나누는 모임... 하지만 난 그보다 '미학에 대한 이해'에 대해 공통분모를 갖게 되는 스터디 모임이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고정 멤버들끼리 얼마든지 함께 작품들을 즐길 수 있으니까. 그리고 멤버들이 함께 진화하고 발전했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아름다움'은 모든 인간 안에 깃들어 있지만 마치 채굴되지 않은 보석들처럼... 발견해주지 않으면 영원히 사장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을 서로 도와주며 함께 발굴하는 멤버들을 모으고 싶었다.
멤버들을 모으기 전에 먼저 텍스트를 정했다.
대학시절 미학수업을 받았지만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는데, 졸업 후 예술학교 입시학원에서 강사로 일할 때 진중권의 <미학 오디세이>를 강의교재로 쓰면서 미학에 눈을 뜨게 되었다. 물론 <미학 오디세이>라는 한 권의 책에 미학의 모든 것이 집결되어 있지는 않지만 길잡이 역할로는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한다. 난 <미학 오디세이>를 통해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도 이해하게 되었고, 움베르트 에코의 미의 역사/추의 역사도 이해하게 되었고, 서양철학사도 이해하게 되었다. (지대넓얕에 나오는 철학이야기를 막힘없이 술술 따라가게 된 것도 미학 오디세이 덕분이었다.)
결국 모든 것은 '믿음'에서 시작되었다.
'정의'란 욕망 > 합리적인 생각 > 행동의 과정에서 나온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정의구현'이란 이 세 가지 단계를 관통하는 '믿음(신념)'에서 가능해진다고 생각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아름다움'에 대해 조금이라도 한 발짝 다가갈 수 있다면... 이 모험은 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감사하게도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메일로 <지원신청서>를 보내주었다.
<지원신청서>에는 '자기소개서'와 '미학을 공부하고 싶은 이유'를 쓰는 란이 있었는데 솔직하고 진정성 있는... 의지가 담긴 글에 감동을 받고 말았다.
메일을 확인하며 눈에서 물이 흐르지 않았지만 온 몸이 통으로 징~하고 울고 있었다.
8명의 회원이 모였고 우린 10월 14일 역사적인 날, 첫 모임을 했다. 우연일까 필연일까? 1기 회원들이 모두 아름다웠다. (외모나 성격 분위기 소통능력 모든 것의 총합으로...)
마치 오래전부터 알던 고향 친구들 같았다. 서로가 아무리 못난 짓을 해도 다 받아줄 수 있는 그런 사이...
무엇도 그들을 갈라놓을 수 없는 그런 사이...
단톡방에 '저녁시간이라 배고플 거 같으니 각자 먹을 것을 가져오되 제발 많이 가져오지 말고 빵 한 봉지 or 과자 한 봉지 딱 자기 먹을 것만 가져오삼'이라는 뉘앙스의 문자를 남겼건만 각 사람마다 전체가 먹을 분량을 가져와 충분히 먹고도 상당히 많이 남았다. 이건 현대판 오병이어의 기적인가...
(다음엔 진짜 딱 1인 분량 한 가지만 가져오세요. 편의점에서 파는 보름달, 땅콩샌드 그런 수준... 비비님은 초코파이 하나 사 온다고 함, 전 빅파이 하나)
미학 오디세이 스타트
첫날이라 '오리엔테이션' 개념이어서 '글머리 - '별밭을 우러르며' 만 함께 읽었다.
이 서문은 '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처음과 끝의 대답이 되어 주었고 정말 많은 담론들이 쏟아져 나왔다.
밤하늘을 보며 경외감을 갖은 적이 있는가?
지금 서울 하늘에서는 총총히 박혀있는 별을 볼 수 없지만, 모두 각자 하늘에 가득한 별을 본 경험이 있다고 말했다.
누군 너무도 아름다웠다고 했고, 누군 심지어 무섭기까지 했다고 했다.
아마도 과거의 우리 조상들은 그것을 매일 밤 보았고, 우리가 사는 세계가 지구라는 별 안에만 한정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것이다.
실제로 난 어릴 적에 천자문을 공부하며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하늘천 따지 검을 현 누를황... 난 왜 하늘천 따지 푸를 청 누를황이 아닌지 궁금했다. 하늘은 푸른데 말이야... 하고
하늘을 푸르다고 인식하는 것과 검다고 인식하는 것 사이에는 엄청난 갭이 존재함을 이제야 깨달았다.
하늘을 검다고 인식하는 것은 우주를 인식하는 것이다.
조상들은 별에다 그들만의 상상력으로 별자리 이름을 붙여주었다.
솔직히 난 지금도 왜 저 별이 물병자리인지 쌍둥이자리인지 모르겠다. (몇 개의 점의 조합이 전혀 그것을 연상시키지 않는다.)
어쨌든 그런 과정들이 우리가 사는 세계가 공간과 시간의 어떤 질서 안에 놓여 있다는 것을 깨닫게끔 하였다.
피타고라스와 피타고라스 학파들은 그런 우주의 질서 체계를 발견하고 그것을 수학적으로 정리했다.
심지어 음악까지도 수학적 질서 안에 존재한다. (현의 길이를 3분의 2로 하면 음이 5도 올라가고, 2분의 1로 하면 정확히 한 옥타브가 올라간다.)
그들은 과학자이자 철학자이자 종교인이자 예술가였다.
고로 '수' 란 시공간의 구획을 나누는 GRID(모눈종이)이다.
난 그때 '프렉탈'과 '아라베스크'가 생각이 났다.
프랙털
작은 구조가 전체 구조와 비슷한 형태로 끝없이 되풀이되는 구조
부분과 전체가 똑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는 자기 유사성 개념을 기하학적으로 푼 구조를 말한다. 프랙털은 단순한 구조가 끊임없이 반복되면서 복잡하고 묘한 전체 구조를 만드는 것으로, 즉 ‘자기 유사성(self-similarity)’과 ‘순환성(recursiveness)’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자연계의 리아스식 해안선, 동물 혈관 분포형태, 나뭇가지 모양, 창문에 성에가 자라는 모습, 산맥의 모습도 모두 프랙털이며, 우주의 모든 것이 결국은 프랙털 구조로 되어 있다.
아라베스크
아랍에서 만든 장식 무늬로 '아라비아풍'이라는 뜻을 가진다. 벽면이나 공예품, 서책 등에서 볼 수 있으며 식물의 줄기와 잎을 도안화하여 만든 독특한 무늬다. 소아시아에서 활동했던 그리스 공예가들에게서 유래되었으나 우상을 숭배하지 않는 이슬람교의 특성상 신의 형상을 만들지 않는 대신 신을 찬미하는 의미로 매우 정교하고 정형화된 양식을 만들게 된 것이다. 이것은 이슬람 장식 문화 전통에서 빠지지 않는 요소가 된다. 문자와 식물, 기하학적인 무늬가 배합되어 독특하고 환상적인 분위기를 낸다.
고로 '수' 란 시공간의 구획을 나누는 GRID(모눈종이)이다.
한때 '프렉탈'을 처음 알았을 때 너무 신기해서 오랫동안 '프렉탈'에 과한 서적을 모으고 '프렉탈'만 연구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후 신을 간접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만들어졌다던 '아라베스크' 문양을 보았을 때도 경외감이 느껴졌다.
신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신의 논리와 질서가 우주에 펼쳐있다고 느낀 것이다.
'프렉탈'은 자연에 깃든 신의 질서이고 '아라베스크'는 프렉탈의 원리를 인간이 응용해서 표현한 것이라고 본다. 발레 동작 '아라베스크' 에도 인간의 몸으로 만든 조형적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다.
모임에 함께했던 토마스 군은 자기가 대학 때 미학수업 들었던 내용을 말해주었다.
" 수업 전체는 정말 기억나지 않지만 이거 하나만은 또렷이 기억해요. 미학의 본질이 결국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라 배웠어요."
난 정말 그 말에 공감했다.
우린 이런 거대한 우주적 질서 안에서 만들어져 있기에 모든 것이 내 안에 이미 포함되어 있다.
내가 정의하는 '아름다움'이란 인간이 창조한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숨어있는 것을 발견하는 과정이라고 본다.
난 이미 아름다운 존재이고
내 삶이 그것을 증명해가는 과정이다.
실제로 우리는 어릴 적부터 아름다운 광경이나 아름다운 음악을 들었을 때 본능적으로 감동을 한다.
배워서 감동하는 것이 아니라 나도 모르게 감동하는 것이다.
즉 미와 추를 구별하는 바로미터는 모두가 이미 갖고 태어나는 것이다.
그 아름다움(감동의 이유)을 찾거나 내가 아름다워지려면 혹은 타인을 감동시키려면 아름다움의 본질을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래서 누구나 미학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럼 아름다움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난 그것이 신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신의 본질...
그래서 아름다움에 대한 동경과 집착은 신에게 다가가는 과정 아닐까 생각한다.
우린 단순히 아름다움이 내제 되어 있는 세계에 살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향유하고 그것을 재창조할 수 있다.
그래, 인간이 동물과 다른 이유는 아름다움을 인지하고 창조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학은 예술영역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다. 철학, 종교, 정신분석학, 과학 등등
인간이 인지하는 모든 영역이 미학에 속한다.
난 그것을 깨달았을 때 여기 모인 우리가 무슨 비밀 종교집단처럼 느껴졌다.
마치 피타고라스 학파처럼... 세상의 비밀을 밝혀내야 할 사명을 가지고 있는 숙명을 타고난 사람
다음에 모일 때 수도사 복장으로 모이면 좋겠다고 했다가 매몰차게 거절당했다.
시간이 모자라 글머리만 읽고 끝내야만 했지만, 정말 엄청난 것들을 다시 새롭게 깨달았다.
마지막으로 우린 '미학'이란 주제로 창의적인 끝말잇기를 했다.
수요미학회 하이라이트
원래 마지막 시간에는 하나의 작품에 대해 각자의 감상을 발표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그림이나 사진을 보고, 시를 읽고, 음악을 감상하고... 각자의 느낌을 나누는 것이다.
하지만 이 날은 첫날인 만큼 미학에 관해 우리만의 정의를 해보기로 했다.
그래서 창의적인 끝말잇기를 했다.
창의적인 끝말잇기란... 눈에 보이지 않는 관념어를 눈에 보이는 사물로 설명하면서 그 의미를 새삼스럽게 깨닫는 놀이이다.
첫 번째 제시어를 우리가 먹고 있던 '뻥튀기'로 정했다.
- 미학은 뻥튀기이다.
뻥튀기는 하나의 쌀알이 '뻥'하고 튀겨지며 만들어진다.
우주가 빅뱅으로 탄생한 것처럼 우주에 깃든 아름다움도 아름다움의 본질(신 혹은 이데아)에서부터 뻗어져 나왔다.
그래서 우리가 접하는 모든 아름다운 것들이 결국 하나로 통한다고 본다.
뻥튀기의 모체가 쌀알이듯이 말이다.
- 미학은 기차이다.
기차 하면 떠오르는 것이 김광석의 노래 '이등병의 편지'이다.
김광석의 노래의 미학은 자기의 경험에서 나오는 실존적 울림이 밑 바탕되어 있다.
이는 우리가 추구하는 아름다움이 우리 안에 이미 있다는 것을 뜻한다고 본다.
그래서 미학을 공부할 때 항상 내 내면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미학은 차력이다.
진정 감동을 주는 작품은 예술가의 고통스러운 창작과정을 통해 나왔다.
차력이란 고통의 극한을 통과하는 것이다.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것은 자기 희생이 따른다.
그래서 예술가의 자기와의 치열한 투쟁을 경험한 작품들로부터 경외심을 느낀다.
(크리스천인 나는 이 부분에서 신도 세상을 만들 때 치열한 투쟁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그리스도가 그것을 증명하는 것 아닐까?)
- 미학은 역관이다.
역관(통역관)은 매개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아름다움의 본질은 한눈에 알아보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과정을 거친다.
일종의 해석이라 할 수 있을까?
그래 과정, 수단이 필요하다.
창작자는 과정을 거쳐서 수용자에게 전달하고
수용자는 분석을 통해 본질(메시지)을 깨닫는다.
메시지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기에 느낌으로 와 닿고
사람마다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
이런 과정이 의미 있는 것은 수용자가 수동적으로 미학을 접하는 것이 아닌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과정을 통해 만나는 것이다.
- 미학은 관리실이다
관리실이란 무언가를 모아놓고 관리하는 곳이다.
미학의 재료들은 온 우주 도처에 깔려있는 모든 것이고 그 모든 것이 우리의 인식 속에서 관리되어야 할 존재들이다.
이 말은 즉 세상 모든 것 중 아름다움을 논할 때 소외될 것이 하나도 없다는 뜻이다.
우리가 상정한 '아름다움의 기준'에서 벗어난 것들이 없는지 그 범위를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
(실제로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미의 범주가 너무나 협소하다. 인위적으로 미의 기준을 상정하고 그것을 표준으로 삼는다. 젊음에 대한 집착이나 과도한 성형현상도 그것에 해당한다고 본다.)
- 미학은 실타래이다.
실타래에서 실이 풀어지듯이
미학이란 아름다움의 본질에서 풀려나오는 과정을 일컫는다.
미학의 초점은 그 과정에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과정 없는 결과는 없다. 우린 결과에 집착하기보다 과정의 소중함을 깨닫고 그 과정을 즐길 줄 알 때 진정한 작품을 완성할 수 있지 않을까?
- 미학은 레몬이다 (래로 시작하는 단어가 딱히 안 떠올라 레로 함)
예전에 여자친구와 동거하던 시절, 그녀의 냉장고 안이 레몬으로 꽉 차있었던 적이 있었다. 원래 레몬을 먹어본 경험이 별로 없다가 그 시기에 엄청 레몬을 먹었다. 시큼하고 짜릿한 그 맛에 중독되었고 난 어느새 '레몬중독자'가 되었다. 그런데 얼마 후 레몬이 떨어지자 그녀는 냉장고를 포도로 가득 채웠다.
난 무척 당황했다. 난 레몬이 먹고 싶은데 포도만 있는 것이다.
미학은 일종의 '중독'이 아닐까 한다. '중독'이란 맛 들인 순간 거부할 수 없는 상태이다. 즉 내가 주인이 아니라 어느새 레몬이 나의 주인이 되었다.
난 레몬의 일부이자 노예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레몬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레몬이 나를 선택한 것 아닐까?
즉 내가 아름다움(미학)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움(미학)이 나를 선택한 것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