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MISSION

by 한공기

<수요 미학회>에서는 매주 회원들에게 미션이 주어진다.

2시간이라는 스터디 모임은 너무나 짧아서 늘 아쉬움을 뒤로 하고 우린 헤어져야만 했다. 대신 일주일간 미션을 완수하면서 미션도 모임의 일부라며 안도하고 있다.


첫 미션의 과제를 받고 난 무척 놀랐다. 모든 회원들의 수준이 너무 뛰어나 각자 의미 있는 고민을 한 흔적이 여실히 느껴졌다.


멤버들의 미션 내용을 공개하는 것에 대해 허락을 맡았다.





김광석의 미학

효를


이런 류의 글은 참 오랜만에 쓰는 것 같네요. 부끄럽습니다ㅠㅠ.

요즘은 김광석의 '나무'에 빠져있어요.

열두 시 지났으니, 화요일이네요. 다들 내일 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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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 그 아름다움에 대하여


"제가 이 노래 나오고 제가 꼭 불러야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왜냐면, 저는 평생 이등병이거든요. (웃음) 6개월 다녀왔습니다. 뭐, 남들은 다들 잘 갔다 오고 그러는데, 왜 저만 못가나 싶기도....... 하지는 않았어요. 왜냐면, 큰 형님이 군대에서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그래서 제가 혜택을 받게 됐는데. 음, 늘 이 노래 부르기 전에. 음, 부르고 이러면은, 제가 국민학교 5학년 때 큰 형님이 군엘 가셨는데, 어....... 훈련소에서 누런 봉투에 입고 갔던 옷, 싸가지고 집으로 보내주더군요. 음 그걸 보시고 우시던 어머니 생각도 나고 그럽니다........ 갑자기 형 얘기하니까, 좀, 그러네요. 숨 한 번 쉬고 할게요."


목소리가 더 좋은 가수도 있다. 가창력이 더 뛰어난 가수도 많다. 멋진 기교와 화려한 퍼포먼스를 펼치는 가수들도 아주 많이 있다. 그럼에도 가수 김광석의 감성과 그가 주는 감동을 모방할 수 있는 가수는 그리 많지 않다. 김광석의 노래는 우리에게 남다른 감동을 선사한다. 혹자는 “그가 내 마음을 읽었다.”라고 평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그의 노래가 남다른 감동을 선사하는 이유는 그의 노래가 그의 일생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목소리가 아닌 가슴으로 노래할 수밖에 없다. 그의 노래에는 꾸며내지 않은 담백하고 솔직한 그의 감성이 담겨 있다.

그리고 그 감성은 뭇 사람들의 공감을 끌어내기에 충분했다. 그의 노래는 그의 일상이고, 그의 독백은 곧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사랑했지만’ 멀리서 지켜만 보는 지질한 사랑을 한 적이 있다. 그러다가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억지로 그 사람을 잊어보려 노력하기도 했었다. 그럼에도 잊히지 않는 ‘그날들’을 추억하고, ‘거리에서’ 홀로 고독을 씹어보기도 한다. 언제는 ‘바람이 불어오는 곳’으로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그 곳에서 잊히지 않는 그녀를 향해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쓴다’. 그리고 그 편지는 영원히 ‘부치지 않은 편지’로 우리 가슴속에 영원히 남는다. 그는 이렇게 지극히 평범한 그의 이야기를,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를 솔직하고 덤덤하게, 하지만 누구보다 진솔하고 애틋하게 전달한다. 그의 노래는 그의 이야기가 되고, 우리의 이야기가 되고, 어느새 내 이야기가 된다.


그렇게 때문에 그는 화려한 가수이기 보다는, 오랜 친구 같다. 그의 노래는 멋진 음악이기 보다는 술자리에 앉은 벗의 독백과 같다. 옆집에 사는 친근한 아저씨처럼, 전화 한 통이면 언제나 달려오는 술자리의 오랜 벗처럼, 그의 노래는 그렇게 우리들의 가슴에 자리 잡는다.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 속 북한군 병사는 이런 대사를 남겼다. “광석이는 왜 그리 일찍 죽었다니? 야, 우리 광석이를 위해서 딱 한 잔만 하자우.”


잔인한 어느 겨울 날, 그는 홀로 꽃잎처럼 흘러 흘러 어디론가 가버렸다. 그는 그렇게 가버렸지만, 화려하지도 뛰어나지도 않은 내 일상이 계속되는 한, 난 그의 노래를 영영 떠나보내진 못할 것 같다.




멈춤의 미학

토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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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알았다. 사무실 뒤편 골목에서는 내가 모르는 '카페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여긴 사당역 근처로 한창 카페 전쟁이 치열한 역삼동이나 선릉역의 오피스가와는 다르다.

강남 쪽이 격전지의 전장이라고 한다면, 사당은... 음... 보급기지랄까.. 어쨌든 다르다.

해서, 당연히 그리 커피숍이 많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한동안 대로변에 있는 비싸지 비싼 엔제리너스를 다녔건만.

알고 보니 여기도 나름 격전지였던 셈이다.


뒤늦게 뒷골목의 상황을 알고 매일 점심 후에 각 카페를 돌아보는 것이 요즘의 런치 일상이 되었다.

가끔은 회사 법카로, 가끔은 가위 바위 보로 이 카페 저 카페를 둘러보며 알게 된 사실이 몇 가지 있다.

약 500미터? 정도의 직선도로를 두고 좌우로 카페가 10개 가까이 있는데, 모두가 핫 아메리카노(2000원)/

아이스 아메리카노(2500원)의 가격에서 정정당당한 맛 겨루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몇 가게는 커피가 아닌 디저트 카페 혹은 주스전문 카페 등으로 차별화를 두고 있긴 하다.

(가장 괴상했던 가게는 떡볶이와 팥빙수의 조합의 메뉴를 내놓고 있는 가게였다...)


같은 가격에서 손님을 다른 가게보다 더 모으기 위해서는 가격 이외의 다른 장점이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원리.

분위기를 장점으로 내세우는 가게도 있고, 한잔 공짜로 주는 스티커의 개수를 파격적으로 줄인(7번에 한잔 무료) 콘셉트도

있는가 하면, 무식하게 많이 주는 곳도 있다.

여기까지는 대충 가게의 입장이다.


내가 하려고 하는 시답지 않은 이야기는 고객의 입장에서이다.

사실 2,500원짜리 아이스커피에서 우리는 많은 걸 바라지 않는다. 거기서 어디 원두를 쓰고 어떤 로스팅을 하고 들먹이는

손님은 없을 것이다. 아마도.

우리 사무실 사람은 건장한 남자 4명이기에 아무 망설임 없이 무식하게 많이 주는 곳을 결국 애용하게 되었다.

이것이... 네 남자의 사무실 커피 미학이다.

고민하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 많이 주니깐. 오래 마실수 있으니깐,

물리적인 양과 시간적인 양을 보장해주는 것이 일반적인 미덕이 아닌가 싶다.

우리는 밥집에 가도 이렇게 말하곤 하지 않는가?

" 이모 좀 많이 주세요~". "아줌마 빨리 나오는 걸로!"


하지만, 잠깐 멈춰서 생각을 해보자.

2,500원이라는 동일한 가격이라는 것이 오히려 함정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저렴한 가격이라 맛의 차이가 크게 없다고 하더라도. 가격이 같다라는 점이 우리로 하여금,

모든 카페의 커피를 모두 동일한 것으로 취급하게 된 거 아닐까?

그런 상황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의 선택 기준은 '더 많이' '더 빨리' 가 될 수밖에 없다.


뭔가 많이 보고 익숙한 시추에이션이다.

대한민국스럽다고나 할까.

여기서 위기의식을 느낀 한 카페가 가격을 2,000원으로 낮추게 되면 이번엔 '더 싼' 쪽으로 몰릴 게 뻔하다.

이런 식으로 우리가 알든 모르든 오피스가 뒷골목의 영세한 카페들의 전쟁은 계속될 것이다.


이러한 내 판단기준과는 상관없는 '더 많이'와 '더 빨리'의 지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잠시 멈추어야 한다.

멈추고 내 책상 위에 있는 2,500원짜리 아이스커피를 바라보자.


말하자면,

오늘 오후 1시에 산 무식하게 큰 아이스커피의 1/5은 다 마시지도 못한 채, 얼음이 녹으며 유명을 달리했고, 통상적인

아이스 커피가 그렇듯 보리차로 환생하였다.

결국,

내게는 너무 무식하게 많은 양이라는 것이다. 그걸 보리차로 환생한 커피를 보며 내 어리석음을 반성한다.

이제 내 선택 기준은 달라질 수 있다. 나는 앞으로 내게 적당한 양의 커피를 찾을 것이고, 양보다는 다른 가치를 우선시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잠시 멈추고 나만의 가치 기준을 찾는 것.

그래야 모든 사람들이 절벽을 향해 경쟁하며 달려 나아갈 때, 멈출 수 있는 지혜를 가질 수 있을 것만 같다, 는 교훈을

2,500을 통해 깨달아 보았다.


- 끝 -







실수의 미학

낮과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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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시 중 ' K...'라는 시가 있어요.

K는 '~에게'라는 의미의 전치사입니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그 누군가에게 고백하듯 편지처럼 쓴 시예요.

그래서 이 제목을 직역하자면 '... 에게, 누군가에게, 누구에게'라고 해야 되지 않을까 싶어요.


그런데 한국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이 시의 제목을 'K에게'라고 번역했어요.

처음에 옮긴 이가 전치사를 아마 어떤 이의 이름을 딴 이니셜이라고

잘못 이해하는 통에 이와 같은 제목으로 번역된 것 같습니다.


그런데요, 이 'K에게'라는 제목이 뭔가 더 낭만적으로 느껴지지 않나요?

그냥 누구라고 하는 것보다, 혹은 단어도 없이 '...'으로 남겨놓는 것보다

K라고 이름 지어 놓으니 더 궁금해지고 이 시인이 시를 바친 대상이 더 구체적으로 그려지는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이더라고요. 애초에 독자들의 이런 반응을 노리고 번역한 거였다면 소름이겠지만...


저는 실수가 '틀림'이고, 나쁜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실수는 분명 나를 주눅 들게 하고 자주 내고 싶지 않은 일이지만

실수를 하면서 어떤 때는 전에 보지 못했던 무언가를 볼 때도 있고요,

또 어떤 때는 그 무언가가 원래의 진리라고 믿었던 것보다도 더 가치 있는 경우도 있죠.


정답은 하나지만, 오답은 여러 가지잖아요.

실수는 항상 새로울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것 같습니다.


정형화된 어떤 틀을 깨고 우연하게 또 다른 아름다움과 마주하는 것

그게 실수가 가진 아름다움은 아닐까요.





심장의 미학

조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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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은 아름답다.

오랫동안 담배를 피워서 괴롭혀도 심장은 불만 없이 쉬지 않고 일한다.

고마워 심장아~

심장에게 고마움의 인사를 한다.

연체동물처럼 침대에서 미끄러지는 모습을 보고도 왜 저렇게 살까?라고 하지 않았다.

부지런히 그리고 또 묵묵히 일하는 심장이 아름답다.

고마워 심장아~

심장에게 토닥토닥 위로해준다.

내가 놀고 싶을 때 놀 수 있게 해 준 것도 심장 덕분이다.

나는 놀고 너는 일하고 고마워 심장아~

심장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늦었지만 심장과 대화를 해서 마음이 편안해진 것 같다.

고마워 심장아~

심장은 솔메이트다. 자주 만나서 배우고 싶은 스승이다. 성스러운 느낌이다.

고마워 심장아~

잠을 잘 때에도 편하게 잘 수 있도록 열심히 뛰어줘서 고마워 심장아~

심장에게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

세월호가 빠졌을 때 멈출 것 같았던 심장아 ㅠ

멈추지 않고 뛰어줘서 고마워~

수십 년 동안 열심히 뛰었으니 좀 쉬어~라고 말해주지 못하는 ㅠ

이제라도 심장에게 고맙게 생각해야지~

사랑한다 심장아~




집의 미학

냉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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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난 여행을 아주 좋아한다.
첫 해외여행을 시작한 2012년 이래로 7개 국가를 다녀왔고, 제주도는 꼬박꼬박 1년에 두 번씩은 챙겨 다녀온다.
그렇게 좋아하는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늘 처음 하는 생각은 '역시 집이 최고야'다.

2. 지금 한국을 강타하고 있는 '요리'열풍이 지나면
무엇이 올까?
난 그것이 무엇이든 '집'에 관한 것이리라 예상한다.
인테리어, DIY, 친환경 자재, 공간 활용 등
점점 각박해지는 저 바깥의 험한 세상을 피해 몸을 숨길
내 보금자리를 더욱 아름답고 편안하게 가꾸어나가는 일에
사람들은 집중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3. 내가 알고 있는 사람 중 마음에 화가 쌓여 있거나, 불안감이 심하거나, 예민한 사람들 대부분의 공통점은 집에 불만족한다는 것이다.
가족 간의 불화, 내 집이 아니니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 집에 얽힌 안 좋은 기억 등이 그 원인이 된다.
섣부른 일반화일지도 모르지만, 내가 아는 한은 그렇다.
몸과 마음의 안식을 얻어야 하는 집에 마음을 붙이지 못하는 그들은 늘 쉴 곳이 없는 듯 지쳐 보였다.

4. 내가 온전히 나일 수 있는 곳.
김칫국물이 스며든 티를 입고, 입에 묻을 걱정 없이 맘껏 짜장면을 먹을 수 있으며, 종일 누워서 TV를 봐도 눈치 보이지 않는 이 세상 유일한 곳이 있다면 나의 집일 것이다.

가족, 편안함, 따뜻함, 아늑함, 안정, 여유 그리고 자유.
'집'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감정들 모두가 내게는 미학이다.






오스카 와일드의 미학

다이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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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쉽사리 입을 뗄 수 없는 나는 내가 아름답다고 느꼈던 것에 대하여 분석해 보는 것을 시작으로 하기로 했다. 내가 아름답다고 느꼈던 것 중의 하나는 오스카 와일드의 문학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의 저서는 <별에서 온 아이>라는 단편집(펭귄클래식에서 나온 편집본으로 <행복한 왕자>와 <석류나무 집> 두 권을 묶은 것이다)으로 이 책에 실린 단편들을 기준으로 해서 분석해보려고 한다.

-이타심

행복한 왕자는 가난한 이들을 위해 자신의 몸을 떼어주고(행복한 왕자), 거인은 자신의 정원을 아이들을 위해 내어주며(자기만 아는 거인), 나이팅게일은 소년의 사랑을 이뤄주기 위해서 심장을 바친다(나이팅게일과 장미꽃). 이타심은 어떻게 보면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더 흔하지 않고 흥미로운 일이 된다.

-비극성

와일드의 작품에서 두드러지는 비극성은 어떤 이가 이타심을 발휘했을 때 그것을 통해 직접적으로 이득을 얻는 이가 이타심을 발휘한 이의 선행에 대해서 모른다는 것에 있다. 요즘 흔히들 하는 말로 ‘헌신하다 헌신짝 된 꼴’ 인 것이다. 이타심이라는 것이 이해될 수 있는 범위는 남에게 배품을 통해 자신에게 이익이 돌아온다는 것일 터인데 그것이 이뤄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작중 인물들은 상대를 원망하거나 사실을 알리려 하지 않는다. 이것이 순수하고 숭고한 이미지로 비치는 것은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부담이 없는 까닭이다. 이해관계를 따르는 일은 아름다움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그것은 너무나 당연하기 때문이다.

-유한에서 무한으로

그저 비극적이기만 한 작품은 감동을 이끌어내기 힘들다. 사람에게 있어 최고의 비극은 역시 죽음일 것이다. 와일드의 작품에서 이 비극을 겪고도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은 그것이 한계에서 다다라 멈춘 것이 아니라 무한한 세계로 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것 같았던 이타심을 발휘하는 행위를 가장 숭고한 존재(신)가 인정하고 영원의 세계로 이끄는 것은 이야기를 접하는 우리에게도 많은 위안을 주는 광경이다. 죽음이라는 한계를 향해 달려가는 입장에서 그것은 계속해서 상기하고 싶은 이야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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