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호학
얼마 전 아는 지인의 페이스북에 이런 포스트가 올라왔다.
그리고 그 밑에는... 그린라이트이다, 착각이다... 많은 댓글이 줄지어 올라오며 의견이 분분했다.
-뚜껑을 안 덮어 주었다면 의도적인 것이다...
-원래 라테아트를 해주면 뚜껑을 안 덮어주는 것이 맞다...
-왜 누구 맘대로 처음 보는 손님에게 라테아트를 해주느냐...
-이걸 확인하려면 다른 사람을 시켜 라테를 한 번 더 주문해봐야 알 수 있다...
등등 등
과연 여러분의 생각은?
나도 댓글을 달았다.
'기호학을 공부하면 좋을 거 같아요...'
나의 뜬금없는 댓글에 그녀는 '좋아요'를 눌러주지 않았다. 아마도 "시답지 않게 뭔 소리야?"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진심이었다. '기호학'을 알면 답을 알 수 있다.
난 반드시 초등학교 교육과정에서 기호학을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나의 이런 의견에 '기호학' 하면 그거 너무 어렵지 않아요? 묻는 분이 있었다. 그는 기호학자인 움베르토 에코가 쓴 책들이 너무 어렵다고 말했다. 사실 움베르토 에코의 책은 그리 어려운 책이 아니다. 기호학을 안다면... 또 신화나 미학, 미술사 또한 어렵지 않다. 기호학만 안다면... 우리가 아는 수많은 전문 분야들의 진입 장벽이 어려운 것은 기호학을 몰라서 그런 거다.
우리가 스터디하는 진중권의 <미학 오디세이>도 마찬가지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1권을 사놓고 몇 장 읽어보다가 던져버렸다고 말한다. 이해가 간다.
내가 기호학을 공부하게 된 계기는 열불이 나서다.
대학 때 미학 수업 시간에 가장 처음 읽어야 했던 책이 '황금가지' '신화의 힘' '이미지와 상징' 그리고 칼 융의 저서들이었다.
몇 번을 읽어도 드는 생각은... 도대체 뭔 소리인가!!!
열불이 나서 책을 던져버렸다.
결국 과제도 제대로 못하고 시험도 망치고 말았다.
다음 해 재수강을 할까 말까 고민하던 차에 우연히 들른 중고서점에서 김경용 저자의 '기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발견했다. 너무나 생소해서 호기심으로 펼쳐봤다가 난 '아!'하는 탄성을 질렀다.
내가 이 책을 작년에 읽었더라면...
결국 그 책을 구입해서 읽었고 난 재수강한 미학 수업에서 A+ 점수를 얻게 되었다.
<수요미학회> 첫 시간에는 '미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스터디를 했다.
그리고 두 번째 시간에는 다음 진도를 빼기보다 책에 없는 '기호학'에 대해 공부해 보았다.
기호학으로 첫 단추를 꿰지 않으면 분명 우리의 여정이 산으로 갈게 뻔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미학이나 미술사를 어려워하고 '신화'에 대해 잘못 이해하는 것은 기호학을 몰라서이다.
우리 회원들에게도 질문해보았다.
Q. 신화란 뭘까요?
- 전설 같은 거 아닐까요?
- 스토리텔링의 기본? 요즈음 신화를 기본으로 한 콘텐츠가 많이 나오잖아요. 영화 '토르'도 그렇고... 신화를 알면 돈을 벌지 않을까요?
- 지배층이 피지배층을 다스리기 위해 만든 프레임 같은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대넓얕 방송에서도 깡선생님이 그렇게 말했어요.
- 미신 아니에요?
- 그리스 신화 전집을 읽어봤는데 허무 맹랑하더라고요. 동양신화를 봐도 그렇고... 그런데 신기한 것은 다른 지역에서 발생한 신화들 중에 비슷한 유형이 많은 거 같아요.
난 이런 인식들이 위험하다고 말했다. 이런 인식은 우리가 유명한 미술작품을 마주할 때도 똑같이 적용된다.
Q. 이 그림이 뭐죠?
- 모나리자요(일제히)
Q. 이 그림에 대해 아무거나 말해보세요
- 레오나르도 다빈치 작품입니다.
- 눈썹이 없어요
- 모나리자의 눈은 그림을 보는 사람이 어떤 위치에 있건 따라다녀요.
- 미소가 유명하죠
- 가치가 너무 높아서 가격을 메길 수 없다고 들었어요. 굳이 메기자면 40조 원 정도 된데요.
- 루브르 박물관을 간 적이 있는데 그림 앞에 사람이 너무 많아 결국 제대로 못 봤습니다 ㅜㅜ
- 채사장이 그러는데 배경이 외계행성이래요.
난 우리가 이런 대화에 머물 수밖에 없는 것이 '기호학'을 못 배워서라고 말했다.
그렇다. 불편하고 기분 나쁘겠지만 우린 대부분 '못 배운 사람들'이다.
자 그럼... 라테아트가 그린 라이트인지, 모나리자에 관해서도 후기 마지막에 다시 설명하겠다.
이제 '기호학'을 배워보자.
1. 개념
기호학이란 뭘까?
난 <수요미학회> 회원을 모집할 때 -당신을 천재로 만들어드립니다-라고 광고를 했다.
물론 낚시성 과대광고이다.
하지만 반은 진심이다.
기호학을 알게 되면 매트릭스에서 네오가 주변을 1,0,1,0...으로 보며 진실을 깨닫듯 '각성'하게 된다.
그런 각성 상태에서 미학을 공부하는 것과 각성하지 않은 상태에서 미학을 공부하는 것은 전혀 다른 길로 연결되는 것이다.
그래서 기호학은 '매트릭스의 빨간약' 같은 것이다.
당신이 이 약을 먹는 순간 세상은 분명 지금까지 인식했던 것과 달라 보일 것이다.
아니 세상은 그대로이다. 변한 건 당신 자신일 것이다.
당신이 네오처럼 '더 원'이 되는 순간이 찾아오는 것이다.
당신은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무엇을 봤는가?
빛? 병원 천장? 엄마? 아빠? 수술도구?
물론 기억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강렬한 인상이 아직도 남아있는 것이 있을 것이다.
'기호'란 별게 아니다.
우리의 감각 (시각, 후각, 미각, 청각, 촉각) 그리고 보이지 않는 식스센스로 느낄 수 있는 모든 것들이다.
우린 태어나자마자 '기호'를 만난다.
그리고 끊임없이 그 '기호'와 소통한다.
거리의 신호등을 보며 길을 건너고 하늘에 뜬 별들을 바라보며 가슴이 젖기도 하다.
또 꿈에서 만나기도 한다. 돼지꿈이나 똥꿈을 꾸면 복권을 산다.
우리의 삶은 기호의 세계에 있다.
그래서 기호란 우리의 '체험적 시공간' 전체라고도 할 수 있고 우리의 경험 그 자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기호망' 속에 갇혀 살고 있다가 말할 수 있다.
그럼 나를 중심으로 세계라는 커다란 원을 그려보자.
인간에게는 그 세계가 '철학'이다. 내가 인식하던 못하던 인류가 그동안 쌓아온 거대한 관념...(물론 그것은 계속 확장되고 있다)
그럼 내 밖에 '철학'이라는 거대한 원이 있다면 그 중심에 있는 내 안에는 '심리학'이 있다.
그리고 '철학'과 '심리학' 사이를 메꾸는 원의 공간 전체가 '기호학'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기호는 끊임없이 그 안에서 창조되고 나와 의미 작용으로 맺어진다.
예를 들어 내가 비즈니스 파트너로 어떤 이성을 만났다고 치자.
우린 처음 본 순간 명함을 주고받고 악수를 했다.
자주 만나며 정이 들었고 같이 영화를 보거나 술을 마시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식사를 마친 후 우린 헤어지고 난 혼자 버스를 타러 가는데 갑자기 그 사람이 뒤쫓아 오더니 옆에서 걸으며 내 손을 잡는다.
"오늘 날씨가 너무 춥네요. 집까지 바래다 드릴게요"
이 손잡음(기호)는 뭘까?
-날씨가 추우니까 호의로 잡아준 것일까?
-이미 악수했던 사이니까 별게 아닐까?
만약 당신이 위의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면... 소심해서도 내성적 이어서도 지질해서도 가 아니라 '기호학'에 대해 무지해서이다.
방금 벌어진 현상은 상대방이 기호를 '창조' 한 것이고 동시에 내가 '의미 작용'을 한 것이다.
그리고 '기호'에는 관습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그래 내가 그 관습에 대해 무지하다고 치자.
그 후 상대방(여자라고 가정)이 나에게 밸런타인 데이 때 초콜릿을 선물한다.
나는 그때도 "아 전 초콜릿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가?
만약 그랬다면 나라는 사람은 정말 '눈치가 없는' 사람이다.
그렇다.
우린 '관습적 기호'에 대해 무지한 사람에게 '눈치 없다'라는 표현을 쓴다.
실제 어린아이들은 '관습적 기호'에 무지하다. 그래서 부모에게 여러 가지 교육을 받는다.
'빨간 불에는 건너면 안된다.' 라던지 '파란불에 건너는데 건널 때 손을 들고 건너라.'라던지...
하지만 세상의 모든 관습적 기호를 부모가 다 가르쳐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른임에도 눈치가 없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 대부분은 '기호'에 무지하다.
남들이 자기 때문에 불편해하고 그것에 대해 간접적으로 끊임없이 신호줌에도 무시한다.
이런 사람들 대부분은 자기의 감정에만 집중하는 상태에 머물러있다.
흔히 '고립된 존재'라고 말하기도 한다.
실제 아이들 심리에서 벌어지는 기호의 의미 작용에는 '좋다, 나쁘다' 단 두 가지뿐이 없다.
그런데 어른으로 성장해서도 그 두 가지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아직 성장하지 않았다고도 볼 수 있다. (유아적 상태에 머물러 있음)
위에서 기호는 개인의 '심리'와 인류를 아우르는 거대한 '철학' 사이를 연결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자신의 '심리'에만 집착하는 사람은 자신을 둘러싼 기호를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기호는 '문화'라고도 할 수 있다.
기호는 '기표'와 '기의'로 이루어져 있다.
예로 영희가 철수에게 밸런타인데이 때 초콜릿을 선물했다고 치자.
여기서 초콜릿은 단순 제과류의 의미가 아니라 '사랑'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럼 초콜릿이 '기표'이고 사랑이 '기의'인 것이다.
그리고 영희와 철수 사이에 벌어지는 커뮤니케이션 과정을 '의미 작용'이라고 부른다.
'기호학'에서는 인간이 완벽하게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즉 영희가 인식하는 초콜릿과 철수가 인식하는 초콜릿은 절대 동일할 수가 없다.
영희는 밤새도록 이 초콜릿을 직접 만들었다고 치자... 그럼 이 초콜릿에 담긴 영희의 경험적 의미가 발생한다.
하지만 철수는 영희의 수제 초콜릿의 의미를 영희만큼 절대 알 수 없다. 철수가 영희 머릿속으로 들어가거나 철수가 영희가 되지 않는 한... 그래서 우리는 " 커뮤니케이션에 '성공'했다"라고 감히 말할 수 없다고 한다. 그저 '의미 공유'를 했다... 정도로 만족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즉 의사는 완벽하게 소통될 수 없다. '의사소통' 이란 것이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2. 언어의 중요성
언어는 기호이다.
인류의 문명은 언어와 함께 진화하였다.
언어가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도 원시상태에 머물러 있었을 것이다.
원초적 욕망에서 한 발자국도 진보하지 못하고 새로운 개념을 창조하지도 못할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이나 눈에 보이는 사물들이 '언어화' 될 때 우린 그것을 발판으로 딛고 또 진보하곤 했다.
그렇게 언어도 확장되었고 문명도 확장되었다.
그럼 다시 위의 제시한 '심리'- '철학'을 다시 상기시키자.
그 안에 있는 사람을 '나'가 아닌 '인류'로 본다면
심리와 무의식 상태에만 머물러 있는 인류는 원시상태라 볼 수 있다.
그리고 무수한 기호를 통해 합리적 이성이 발달되며 철학의 바깥선에 맞닿아 있게 된 사람을 문명인이라 볼 수 있다.
언어가 다른 나라마다 문화가 다른 이유에도 근본적으로 언어(기호)의 차이 때문이라고 한다.
즉 한국말을 하는 사람은 한국 사람답게 인식하게 되고 일본말을 하는 사람은 일본 사람답게 인식한다.
물론 한국말도 하고 일본말도 하는 사람이 있다. 실제로 그들에게 물어보면 두개 국어를 하면 마치 자신이 두개의 뇌가 있는 느낌이라고 한다. 한국 말을 할 때는 한국적인 뇌가 되고, 일본 말을 하면 일본적인 뇌가 되는 기분이라고 한다. (이것에 대해 지대넓얕 방송에서도 토론한 적이 있다)
그래서 내가 어떤 기호를 쓰느냐에 따라 내 자체가 내 삶이 바뀐다.
그만큼 '기호'가 중요한 것이다.
이 부분에서 특히 내가 걱정하는 것 중 하나가 요즘 청소년들은 욕과 비속어, 비언어가 일상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말뿐 아니라 글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책을 잘 읽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자신이 스스로 난독증이 있다고 착각할 정도로) 완전한 한 문장을 제대로 작성하지도 못한다. 영어를 처음 배울 때처럼 I am a boy, you are a girl 그런 식으로 한글을 다시 기초부터 배워야 할 지경이다.
모든 언어학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얘기하는 것은 언어가 생각의 체계와 같이 가고, 말을 하고 글을 쓰는 만큼만 내가 생각할 수 있다고 한다. 즉 내가 말도 잘 못하고 글도 잘 못쓴다면 난 주체적인 생각을 하지 못하는 상태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나'를 찾으려고 애쓴다. 그리고 내가 누구인지 끊임없이 확인하려 한다. 그런데 자신을 확인하는 방법이 자신의 취향이 뭔지에 머물러있곤 한다. 예로 SNS를 도배하는 수많은 '음식 사진' '여행사진' '내가 산 물건 사진'등으로 아이덴티를 상정하려 한다. 즉 내 취향의 기호들을 열거하며 '이게 나예요'라고 말한다.
하지만 진정한 존재성은 '내가 어떠한 기호와 어떻게 의미 작용을 하는지...'를 풀어낼 때만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즉 당신이 어떤 음식을 먹었다면 그 음식에 대한 주관적인 평가를 서술한다던지 어느 곳에 여행을 갔다면 그 여행지에서 느낀점을 서술한다던지... 그렇게 내가 만난 기호가 내게 어떤 의미 작용이 일어나고 있는가 풀어내는 것. 그 상태가 '존재'이다.
3. 기호학의 활용
다시 기호학의 범주로 돌아가자.
모든 것이 기호망 속에 존재하기에 모든 학문이 기호학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예술, 건축, 과학, 공학, 군사학, 정치학, 의학, 동물학, 사회학, 광고학, 천문학, 심리학, 인류학, 법학, 종교학, 철학 등등 등
그런 전문적인 것들에 대해 잘 모른다면 우리의 일상을 살펴보자.
누구나 일상에서 가장 많이 활용하는 '기호학'에는 패션이 있다.
내가 입는 옷이 하나의 기호가 되고 내 주변의 사람들은 나의 패션을 보며 본능적으로 '의미 작용'을 한다.
내게 호감을 느낄 수도 있고 비호감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패션은 나의 개성 표현방법임과 동시에 권력이자 무기이기도 하다.
패션에 대해서 좀 더 얘기하자면...
개인적으로 패션 쇼핑몰 사이트를 디자인 한적이 있다. 완성도 있는 디자인을 위해 스타일리스트와 협력을 했다.
그 기간 동안 내가 깨달은 사실은 나를 비롯한 대다수의 한국 남자들이 '패션의 기호'에 대해 무지하다는 것이다.
특히 30대 이상의 남자들을 보면... 어릴 적에는 엄마가 사준 옷을 입었고, 학교 다닐 때는 교복을, 군대에서는 군복을, 직장인이 되면 양복을.. 그러다 보니 주체적인 패션 감각이 퇴화될 수밖에 없었다. 물론 GQ나 멘스논노 같은 잡지를 보며 요즘 패션의 경향을 분석하고 신상품이 뭔지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런 식으로 접근하면 어떤 한계 이상 발전하지 못한다.
내가 뭔 소리하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 사이트를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 http://www.thesartorialist.com/ )
스타일리스트와 작업하며 패션에 대한 나의 무지는 엄청난 충격이었고 난 패션잡지, 패션 블로그, 패션몰을 섭렵했다. 하지만 '이런 옷을 입으면 당신이 멋쟁이가 될 수 있다!' 정도로만 좁혀지어 매우 수동적인 감각만 익히게 되었다. 주체적인 패션감각을 키우고 싶은 난 결국 그녀의 발 밑에 무릎 꿇었다.
"도대체 뭐부터 시작해야 될지 모르겠어요. 살려주세요 ㅜㅜ."
그녀는 내게 말했다.
"사실 진작부터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디자이너님은 지금 패션이라는 거대한 미라미드에서 매트 밑에만 있으시잖아요. 한 번 맨 위로 올라가 보세요."
"맨 위요?"
" 네 패션을 아이템으로 접근하지 마시고 기호로 접근해보세요."
그녀의 말에 나의 패션에 대한 인식은 '코페르니쿠스의 전환'처럼 가히 혁명적이었다.
지금 대한민국 남자들이 입는 옷은 서양식 옷이고 난 서양 복식에 관해서 알아야 했다. 도대체 어떤 옷이 있는지 또 범주가 어떻게 나뉘는지... 그 옷에 관한 문화적 의미, 역사적 의미... 게다가 핏에 대한 개념, 컬러에 대한 개념, 천의 종류, 패턴의 종류, 관리법과 세탁법까지...
정확히 1년이 걸렸다. 그리고 이런 디자인이 포함된 사이트가 탄생했다.
정말로 남성 패션의 범주는 의외로 간단했다. 대부분 이 패션팔레트 속에 포함되어 있었고 옷과 옷(기호와 기호)이 동떨어져 있지 않고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옷을 잘 입고 싶은가?
1년간 패션을 연구한 사람으로서 해줄 수 있는 말은.. 패션을 기호로 접근하세요...
그리고 패션의 완성은 '몸' 이더군요...ㅜㅜ
일단 돈이 있으면 이 옷 저 옷 사 입지 말고 (어차피 사놓고 안 입는 옷이 많아진다) 그 돈을 아껴 운동에 투자하세요.
(개인적으로 헬스장보다 발레, 요가 추천합니다.)
그럼 패션 말고 또 어디에 활용할 수 있을까?
기호학을 영어로 하면
semiotics이지만 우리에게 적절하게 의미 작용이 되는 단어는 communicaton이라고 한다.
즉 기호학은 일상의 모든 소통수단으로 사용되는 것이다.
기호는 image(이미지) metaphor(은유) metonym(환유) narrative(이야기) myth(신화) ideology(이데올로기)등 모든 범주에 존재한다.
여기서 잠깐 myth(신화)를 언급해보겠다.
신화는 지금처럼 수많은 기호가 있기 전의 '원시상태'에서 만들어졌다.
신화의 시대 >>> 기호의 발전 >>> 문명
이라 볼 수 있다.
즉 신화란 태고적의 '원시적 충동' , '인류의 무의식'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원시시대 사람들을 그들의 문화를 '미개'하다고만 판단한다면 우린 '인류의 무의식'에 도달할 수 없다.
정신분석학에서도 한 사람의 정신을 분석할 때도 그 사람의 유아기, 성장기까지 살펴보고 현재까지의 인과관계를 따진다.
어린아이는 무뇌의 백지상태가 아니라 인간의 원시적 본능으로 충만한 상태에 놓여있다.
인류가 수많은 기호의 발전과 함께 합리적인 이성으로 여기까지 왔지만 지금 우리는 완전하지 않으며 많은 부작용을 겪고 있다.
모더니즘을 거쳐서 포스트 모더니즘을 거쳐서 탈문명을 주장하고 있는 요즈음 우린 다시 원시로 회기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신화'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이런 맥락에 있는 것이다.
할리우드에서도 신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들이 쏟아져 나오는 이유도 스토리텔링(서사)의 발전의 역사를 살펴볼 때
서사의 시대 > 탈서사의 시대 > 개인(캐릭터)의 시대 > 신화의 시대
로 이어가면서 다시 회기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문명화의 부작용'에 대한 담론들을 살펴보면 요즈음 사람들이 점점 '야수성'을 잃어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금의 우리는 한 사람의 존재로서 생명력을 가지고 있기보다 작은 어항 속에 있는 금붕어처럼 시들해지며 점점 죽어가고 있다.
전문용어로 '찌질이'가 되어간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지질한 남자의 반대말은 뭘까? 난 그것이 '나쁜 남자'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기호는 적적하지 않다.
실제로 Bad라는 개념보다 brutal, nature에 가깝기 때문이다.
차라리 '야수남 혹은 '마초남'이라 부르는 것이 옳다고 본다.
계속 '나쁜 남자'라고 명칭 하면 괜스레 '지질한 남자'들의 변명거리만 늘어놓게 된다.
남자들이여 '신화의 세계'로 원시로 돌아가자!
참고로 '신화'를 알려면 '그리스 신화'부터 읽기보다 위에 제시한 도서 - 황금가지(제임스 프레이저), 신화의 힘(캠벨) 이미지와 상징(미르치아 엘리아데)-부터 읽는 것이 좋다. 책의 내용은 원시문명과 기호들을 분석해서 '왜 그것들이 존재했는가?' '그것이 우리와 어떤 연관이 있는가?' 따지는 것이다. 신화를 분석하다 보면 '종교의 원리'라던지 '카타르시스의 원리' '사랑의 개념'등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예로 원시인들의 종교의식을 보면... 하나의 부족이 자신들의 신이라고 상정한 젊고 건장한 청년을 제단에서 토막 내어 부족 사람들이 나눠먹으며 축제를 벌인다. 이것이 카니발(축제)의 기원인데 기승전결이 있는 극작품을 보며 느끼는 '카타르시스(절정)의 기원'이기도 하고, '사랑' 개념의 기원이기도 하고.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과도 연관이 있다.
또 남성들에게 매우 불편한 이야기를 신화와 연관 지어해보겠다.
삼촌 팬들은 어린 여자 아이돌을 좋아한다.
여자 아이돌이 무대 위에서 야한 옷을 입고 섹시한 춤을 추는 것을 볼 때 전율과 환희를 느낀다.
(이 작용의 기제는 남자 아이돌과 누나 팬들 사이에서도 똑같이 발생한다)
그럼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질까... 무엇이 나의 무의식을 건드리는 걸까?
이런 질문에 대부분 사람들은 젊은 사람을 좋아하고 야한 것을 좋아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니까..라고만 판단한다.
하지만 신화적으로 분석하면 매우 불편한 진실을 알 수 있다.
원시시대 때는 '인신공의'가 일반적이었다. (인신공의: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것)
예를 들어 비가 안와 오랫동안 가뭄이 심하다...
그럼 우리가 믿고 있는 신에게 제사를 지내야 한다.
그럼 제단에 뭔가를 바쳐야 한다.
그때 제물이 되었던 사람들이 젊은 남자나 여자였다. 심지어 어린아이도 있었다.
제물로 바쳐진 사람을 불태우기도 하고 낭떠러지에 떨어뜨리기도 하고 바다에 집어넣어 수장하기도 했지만
잔인하게 토막 내어 부족들이 살과 피를 나눠 먹기도 했다.
또 젊은 여자 제물들은 죽임을 당하기 전 부족 남자들에게 집단 강간을 당하기 까지 했다.
이런 '의식의 기호'에는 몇몇 대상이 포함되어 있다.
1. 신 (가상의 존재)
2. 제물 (아이, 젊은 남자, 젊은 처녀)
3. 부족
하나의 의식에 세 존재가 서로 엮여서 의미 작용을 만든다.
재밌는 건 지금 이 세 가지 존재 중, 당신이 어떤 존재에다가 자신을 동일시시키느냐에 따라 '의미 작용'이 달라진다.
먼저 3이라면...
일단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존재한다. 신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의식을 통해 가뭄이 끝나리라는 기대감. 그리고 제물로 바쳐진 사람에 대한 죄책감. 하지만 '집단의식'이라는 것에 기대어 죄책감을 조금씩 상쇄시키며 자신의 행동에 대해 합리화시킨다. (이 문제는 미국의 철학자 라인홀드 니버의 저서 '도덕적인 개인과 비도덕적인 사회'에 자세히 분석되어 있다. 인간이 개인으로서는 양심을 가지고 도덕적일 수 있지만 집단이 되면 비도덕적으로 변한다는 내용)
자 제단에 바쳐질 젊은 여인이 끌려온다. 당신은 다른 사람과 함께 환호성을 지를 것이다. 이 의식 자체가 축제의 분위기에서 이루어진다. 그리고 공식적인 절차로 그 젊은 여자를 다른 남자들과 강간한다. 그 여자는 마을에서 제일 예쁜 여자였고 내가 짝사랑했던 여자였기에 그녀를 강간할 때 복잡 미묘한 기분이 들지만 내 안의 양심을 내 안의 욕망이 집어 삼키고 나의 눈빛은 악마의 눈빛으로 변하고 난 그녀를 거칠게 강간한다. 그리고 그녀가 제단에서 불태워질 때 나의 죄의식도 같이 소멸된다.
두 번째 1이라면...
당신은 신이다. 그리고 당신을 위해 아주 젊은 여자가 제물로 바쳐진다. 그녀는 이제 당신의 소유물이고 그녀는 당신의 노예가 된다.
자 여기서 멈춰보자. 재미있는 건... 1과 3에서 벌어지는 의미 작용이 비슷해진다. 즉 당신이 3의 입장이건... 1의 입장이건 결국 같게 되는 것이다. 즉 만약 우리가 악마를 숭배하며 이런 의식을 행한다면... 난 악마가 되기도 하고 악마를 숭배하는 자가 되기도 하는데 두 끝은 '이기적인 쾌락'에 도달하는 것이다.
그럼 이제 당신이 제물이라고 해보자.(2번의 경우)
당신이 여자라면 마을 사람들을 위해 집단 강간을 당하고
당신이 남자라면 마을 사람들을 위해 토막살인을 당한다.
나의 개인적 존재성은 갈기갈기 분해되고 난 모두를 위해 소멸되고 만다.
처음엔 두렵기도 했지만 난 선택받았고 나의 죽음은 마을을 위해서 행해지는 것이다.
그 마을 사람들 중에는 나의 가족과 내가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내가 나의 '희생'을 받아들이자 난 나도 모르게 숭고해진다.
족장님은 내가 '빛의 세계'로 건너가는 것이며 죽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부활한다고 말했다.
난 그것을 믿는다.
내가 지금 느끼는 이 숭고한 감정이 뭔지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 난생처음 느껴보는 뜨거운 마음이 가슴속에서 불탄다.
자 당신이 2번이라고 생각할 때 어떤 기분이 드는가?
2번의 존재가 느끼는 그 감정...
바로 그것이 '카타르시스'이고 바로 그것이 '사랑'이다.
(요즈음 사람들은 '사랑'이라는 기표를 '많이 좋아하는 것'이라는 기의로 잘못 '의미 작용'을 하곤 한다.)
우리가 극영화를 볼 때 몰입하는 것은 2의 존재 주인공이다.
극에서 주인공은 기승전결의 절정 부분에서 극한의 고통을 통과하며 분해되고 해체된다.
그리고 알을 깨고 새로운 존재로 다시 태어난다.
즉 '극'이란 신화적인 원리로 작동하는 것이다.
다시 아이돌로 돌아와...
다시 묻고 싶다.
뮤직뱅크를 보며 혹시 당신은 3이 된 것이 아니었을까? 아니 1이 된 것은 아니었을까?
난 음악프로그램의 '신화성'과 그것을 보는 동안 발생하는 '의미 작용'에 대해서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다.
이 신화는 너무도 막강해서 아이돌은 더욱더 벗으려고 하고 야한 춤을 추려하고 우린 열광하고 마는 것이다.
물론 숭고한 음악 프로그램도 있었다.
내가 제일 감동했던 프로그램은 '나는 가수다'였는데
제물로 바쳐진 가수들이 희생을 하며 자신을 뛰어넘는 모습을 보며 경이로움을 느끼기 까지 했다.
그 순간은 그 가수의 의지가 자신을 초월하여 자기가 아닌 또 다른 자신으로 태어나는 경험이기도 했다.
그 프로그램을 보는 동안 벌어진 '의미 작용'은 분명 뮤직뱅크와 달랐다.
개인적으로 뮤직뱅크는 '악마를 숭배하는 의식'으로 느껴진다면 나는 가수다는 신에 대한 예배나 미사같이 느껴졌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진정한 예술작품과 수용자로서의 의미 작용은 후자에 속한다.
4. 궁극의 성찰
이제 마지막 챕터이다.
만약 당신이 도중에 멈추지 않고 여기까지 따라왔다면 당신은 행운아이다.
중요한 것은 항상 마지막에 나오니까...
당신이 길을 걷다가 매우 예쁜 장미꽃을 발견했다고 치자.
당신은 꽃을 보고 냄새를 맡고 꽃잎을 어루만져며 당신만의 의미 작용을 한다.
재미있는 것은 장미꽃의 본질이 내가 어떤 의미 작용을 하든지에 상관없이 스스로 존재하고 있다.
하지만 적어도 나한테 갖는 의미는... 나의 의미 작용을 통해... 만들어진다.
즉 기의는 마음속에 일어나는 정신적, 추상적 개념이다.
그럼 나누어보자
장미꽃과 나 사이에 벌어지는 현상을...
(존재)
장미꽃 > 시각, 후각, 촉각 < 나는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존재) (기호) (나의 의미 작용과 내가 상정한 장미꽃의 기의)
자 이런 현상은 일상이고 우리 머리를 복잡하게 하지 않는다. 그냥 즐기면 된다.
다시 위의 라테아트로 얘기해보자.
카페 알바생 , 라테아트 , 나를 분석해보면
카페 알바생 > 카페라떼 < 나
(존재) (기표) (의미 작용)
나는 의미 작용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즉 라테아트의 기의는 도대체 무엇인가!!!
알바생이 내게 고백하기 전에는 그것을 도저히 알 수 없는 것이다.
즉 우리는 어떤 기표를 만날 때 끊없이 내 머릿속 주관적 세계에서 무의식으로 기의를 찾는다.
즉 기표+기의 = 기호화 과정을 겪는 것이다.
만약 내가 이 라테아트를 받고 자리로 돌아와 한 시간 있다가 자리를 뜨었냐고 치자.
카페 알바가 테이블을 치우기 위해 내 자리로 온다.
그런데 카페라테가 한 모금도 마시지 않은 채로 그대로 있다.
헉!!!
카페 알바생은 머리가 복잡해진다.
이건 또 무슨 의미?
그럼 정리해보자. 이제 우린 객관적으로 빠져 제 3자가 되어보자.
카페 알바 > 카페라떼 < 여학생
(존재) (기표) (존재)
두 인물은 카페라떼라는 기표를 사이에 두고 각자 끊임없이 머릿속에서 기의를 찾는다.
여기서 질문
이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1. 카페라떼 (기표)
2. 알바가 찾는 기의
3. 여학생이 찾는 기의
정답을 말해줄 수 없다. 나도 모른다.
어쨌든 팩트는
카페 알바-카페라떼
카페 라테 - 여학생
둘 다 모두 기호를 체험한 것이다.
이 관계도는
예술가 - 창작물 - 관객
똑같이 적용된다. (실제 라테아트는 알바생의 창작물이었음)
그리고 앞으로 읽을 <미학 오디세이>에 나오는 모든 과정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것이다.
예술가의 기의와 나의 기의는 보이지 않은 채
눈에 보이는 것은 오직 기표(작품들) 뿐이다.
기표를 보며 끊임없이 기의를 추론하는 과정이 바로 '기호학'이다.
우리의 교육과정을 추억해보면 과연 그런 기호화 과정이 있었던가?
미술수업에서나 음악수업에서나 문학수업에서
난 충분히 고민하며 기의를 찾은 적이 있던가
아님 그 기표에 상정된 답을 외우기 바쁘지 않았던가?
물론 그것은 우리의 잘못이 아니었다. 우린 잘못된 교육제도의 희생자일 뿐이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빨간약을 먹고 다시 태어나면 된다. 네오처럼...
참고로 보충설명을 해주자면
기표는 반드시 꼭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예로 동양화에서 여백 부분도 기표일 수 있고 의미가 있다. 음악에서 중간의 휴지기도 기표이다.
화가 난 여인의 침묵도 기표로 존재한다.
즉 '있다'와 '없다' 사이의 끊임없는 변증법적 합성 과정 자체가 모두 기호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친절하게 후려쳐서 정리해주면
기호 = 기표 + 기의
기호는 나의 의미 작용을 통해 기표가 내 마음속에 자리 잡아 인식하는 것.
예> 카페라떼 - 기표 + 알바가 나를 좋아한다- 기의 = 기호
즉 내게 의미 없는 기표는 그냥 기표에 불과하지만 내가 의미부여를 할 때 그것이 기호가 된다.
최근 개봉한 영화 포스터가 있다.
외국 영화 두 작품의 공통점을 뽑자면 칸영화제에서 수상한 작품들이고 포스터도 하나의 예술작품처럼 느껴진다. 그 포스터(기표)를 보며 내 마음에서 기의가 발생하며 나만의 의미 작용을 통한 기호로 받아들여진다.
솔직히 대한민국이란 나라의 대중문화에서 갈수록 이런 경험을 하기 힘들어진다.
량첸살인기 포스터를 보면 여느 다른 한국영화 포스터처럼 배우들 사진만 쫙 깐다. 심지어 인물들 속에는 살인범으로 나온 배우까지 맥락에도 안 맞게 함께하고 있다. 그나마 뭔가 연출한 느낌이 있어서 봐줄만하지... 대부분 포스터들은 배우들의 정면 사진으로 대체한다. 예능프로들을 봐도 내가 판단할 기의 들을 자막이 대체해준다. 내게 도대체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
우리가 이런 문화 속에 살고 있기 때문에 기호화 경험이 부족해지고 그로 인해 자율적이고 주체적인 사고 과정을 갖지 못한다.
남들이 해석해 놓은 것이 자기 생각 인냥 착각하고 머리를 아예 꺼놓은 채 수많은 정보만 들입다 쑤셔 넣는다.
얼마 전 서촌에 있는 앵두꽃이란 전통술집을 간 적이 있었다.
그곳은 특이하게 플라스틱 바가지에 물을 넣어서 손잡이가 달린 플라스틱 표주박을 인원수대로 함께 준다. 플라스틱 바가지 속 물에는 커피 원두 몇 개 정도가 둥둥 떠 있다. 서촌의 예스러운 느낌, 복고정인 풍경과 매우 잘 어울리는 예술작품처럼 느껴졌고정수기 물이지만 약수물처럼 시원하게 느꼈다. 또 체하지 말라고 물에 동동 띄어놓은 원두에 주인장의 디테일한 인정을 느끼며 감동까지 했다. 그런데 옆자리에 누군가 버럭 지르는 소리가 들렸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젊은 여자 두 명이 주인장에게 화를 내며 소리쳤다.
" 지금 이 물을 먹으라는 거예요? 교양 없이 바가지에 물을 떠 오다니 절 뭘로 보는 거예요? 기분 나빠서 여기서 못 먹겠네."
두 손님은 자리를 박차고 가게를 나갔다. 참 예쁘게 생긴 처녀였는데 안타까웠다. 내가 좀만 용기가 있다면 쫓아가서
'저 기호학을 배워보시면 어떨는지요? 제가 공짜로 가르쳐줄 수 있는데...'
말하고 싶었다.
기호에 대해 무지하면 '맥락' 파악이 안된다.
'맥락'파악을 못하는 사람은 사기를 잘 당한다.
사유의 과정이 유아처럼 나에게 '좋다' '싫다'라고 머물러 있다 보니 멀리 보지 못하고 눈앞의 기표에 대해 만족, 불만족으로 단정 지어 버리다.
그들은 정치인들과 기업인들(광고주들)에게 쉽게 속아 넘어가고 만다.
그래서 지금 우리나라가 이모양 이 꼴이 아닐까 개인적으로 생각해본다.
우리가 기호학을 알아야 하는 것은 천재가 되고 싶어서가 아니라... 바보가 되지 않기 위해서인 것 같다.
기호학 수업은 여기서 마친다.
재미있게 보셨다면 이제 모나리자 그림을 다시 보기 바란다.
그리고 당신만의 의미 작용으로 그 기의를 댓글로 적어주길 바란다.
아 참!
알바생의 라테아트의 의미 정답이 뭔지 말해준다고 했었지?
내 대답은...
제발 그걸 다른 사람한테 묻지 마시길.
그것은 본인만이 잘 안다.
알바생과 눈을 마주치고 알바생과 얘기를 나누며 교감하지 않았던가?
그 모든 것이 기호이고 그것을 아는 사람은 오직 본인뿐이다.
그것이 바로 '맥락'이라는 것이다.
3자는 절대 '맥락'을 알 수 없다.
당신이 이미 답을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