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sion
<수요미학회>에서는 멤버들에게 매주 미션이 주어집니다.
이번 주 미션은 사진, 동영상, 그림... 등 아무 기호나 보고 그것을 분석해서 적어 올리는 것입니다.
(미션 마감: 매주 화요일)
저 역시 1주일 내내 어떤 기호를 분석할까 엄청 고민했습니다.
그러다가 어제 우연히 엄청난 걸 보고야 말았습니다.
그것은!!! 600초 후에 공개합니다.
<광고타임>
기호학 어려우시다고요?
<수요미학회>에서는 그 어려운 관념에 대한 진리에 좀 더 도달하기 우해 '창의적인 끝말잇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번 주 주제가 '기호'였고 그것을 눈에 보이는 구체적인 단어와 연결 지어 푸는 게임입니다.
한번 같이 가볼까요?
주제어: 기호
기호는 마약이다
마약은 하나의 기호이다. 기호식품이라고도 하지 ㅋㅋㅋ
이 조그만 기호를 섭취했다고 치자. 마약을 하면 점점 온몸이 예민해지고 약효과가 온몸에 번져 마약의 힘이 나를 초월한다고 한다. 기호도 마찬가지이다. 별거 아닌 기호와 아무 생각 없이 마주했다가 나 자신과 의미 작용을 하는 과정에서 점점 나를 초월하고 그것이 나를 지배할 수도 있는 것이다. 기호는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
기호는 약사이다
우리 회사 앞 약국에 라틴계 여자를 닮은 약사가 있는데 굉장히 매력적이다. 한 번은 A4에 손가락이 베어 반창고를 사러 갔다가 그녀를 보고 반해버렸다. 하지만 그녀를 또 보려고 약국을 가지는 않았다. 왠지 그건 반칙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약국 앞을 지나갈 때마다 창문을 통해 그녀를 훔쳐보았고 아련한 마음에 젖어들었다. 그때마다 마치 남미 여행을 하는 기분이 들었다. 기호란 그렇게 아련하고 매력적인 것이다. 내가 그것을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주변에서 맴돌고 나도 기호 주변에서 맴돌 뿐이다. 나와 그 기호는 완전히 하나가 될 수 없는 것이다.
기호는 사자이다
사자 하면 보통 갈기가 화려한 수사자를 생각한다. 수사자가 용맹하게 사냥을 해서 가족을 먹여 살리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사냥을 하는 것은 암사자일 뿐 수사자는 암사자가 사냥해온 음식을 먹고 잠만 잔다.(물론 외부 세력이 오면 수사자가 지켜주지만) 우린 진실보다 자신이 믿고 싶은 것을 믿는 경향이 있다. 즉 '기의'란 진실과 별개의 나만의 착각일 수 있는 것이다. 기호란 자기만의 판타지이다.
기호는 자물쇠이다
내가 어떤 기호를 접하고 그것의 의미를 깨달을 때, 마치 자물쇠가 열리듯 닫힌 세계 하나가 열린다. 사람과 사람 사이 소통할 때도 서로의 도움으로 자물쇠가 열리기도 하다. 기호는 내가 깨닫기 전에는 잠겨있는 자물쇠이지만 내가 인식하고 깨닫는 순간 열리는 것이다.
기호는 쇠고랑이다
모든 기호는 따로따로 홀로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마치 기호들 서로가 쇠고랑으로 연결되어 있듯이...
그래서 연상작용을 통해 이 기호에서 저 기호로 옮겨갈 수 있는 것이다. 마치 우리의 끝말잇기처럼.
<광고 끝>
자 본편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럼 기호와 관련해서 벌어진 엄청난 사건을 정리해볼게요.
퇴근을 하고 집에 가는 지하철에서 왠지 마음이 시렸습니다. 아마 제 가도 가을을 타나 봅니다.
세상에 혼자가 된 기분이랄까... 갑자기 영화 '만추'가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한때 미치도록 사랑했던 그녀...'탕웨이'양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영화 만추와 그녀를 추억하며 폰으로 유튜브에서 만추 MV를 찾아 보았습니다.
아하... 나도 모르게 주르르 흘러나오는 눈물을 옆사람이 볼까 봐 빨리 닦았습니다.
그리고 종착역에서 내려 힘 빠진 다리로 터벅터벅 계단을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이럴 수가!
역 출구 앞에서 파는 BIG ISSUE 책자 표지가 '탕웨이'가 아니겠습니까?
전 저도 모르게 그 자리에 멈춰서 표지 탕웨이 얼굴을 손으로 쓰다듬었습니다.
갑자기 책을 파시는 노숙자분이 책을 집어 저에게 내밀며 "5000원입니다!"하며 내밀었습니다.
한 번도 BIG ISSUE를 산 적이 없었는데 얼떨결에 사고 말았죠.
집에 돌아와 책비닐을 뜯으려 보니까 뒷면에 뭔가가 있더군요.
살펴보니까 그것은 판매하시는 분이 정성스럽게(?) 손글씨로 쓴 편지 같은 것이었습니다.
일단 비닐을 뜯고 그것을 꺼내보았습니다.
2장 4면으로 된 편지...
그것은 책을 사는 분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수필 같은 내용이었습니다. 전 저도 모른 '기의작용'이 벌어져 혹시 지하철에서 받은 쪽지..."어려서 저는 부모님을 잃고 고야원에서 자랐습니다..." 뭐 그런 내용이 아닐까? 마지막 페이지에는 '후원계좌'같은 것이 있는 게 아닐까 생각되어... 읽지 않고 그냥 구겨서 쓰레기통에 버리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처음 네 문장을 보니 좀 신기하더라고요.
(원본의 글씨가 삐뚤삐뚤하고 문법도 안 맞는 것이 많아 판독하기 어려우실 거 같아 제가 다시 적어보겠습니다.)
- 열한 번째 이야기-
안녕하세요 홍대 2번 빅판입니다. (아마도 빅이슈를 파는 사람을 '빅판'이라 부르나 봅니다.) 잘 지내셨는지요?
노숙인이 노숙인을 바라보는 시선은 어떤 심정일까요?
이번 호에는 절친하게 지냈었던 한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제가 사십을 바라보는 삼십 대 후반 때 즈음 만났던 사람으로 기억합니다.
OO형을 알게 된 건 인력 사무실에서다.
나는 인력 사무실 다닌지는 꽤 오래 되었지만, OO형은 새벽 인력 시장에 나온지 얼마 안 된 현장 일에 서툰 초보자였다.
인력 시장에서는 초보자나 경력자나 다 같은 일당으로 계산하기에 어찌 보면 평등한 곳이라고도 생각 들어 기분이 불쾌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인력 사무실을 찾아오는 초보자들은 자신의 거주지가 확실하지만, 경험자들은 홈리스로 많이들 지내는 것이 참으로 이상도 하다고 생각했었다.
나도 당연하듯이 피시방에서 쪽잠으로 생활하는 중이었다.
OO형과 나는 같은 형장 일을 세 번 정도 다니면서 친해졌으며 나이는 나보다 12년이 많은 형님이셨다.
새벽 여섯 시가 넘어가면 인력 사무실 소장이 분주하게 일 나갈 현장을 사람들에게 지정해 주곤 했었다.
"거기 임씨와 이씨 오늘 상수도 공사하는 현장에 일곱 시까지 가세요." 하면서 약도와 현장 번화 번호를 적어주었다.
하루 일이라도 마음에 맞는 사람과 일하는 것은 즐거움이라 우리는 서로를 쳐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일 마치고 저녁식사를 같이 하면서 형님은 내가 사는 곳을 궁금해했다.
" 임씨 집은 어디야? "
" 그냥 피시방에서 눈 좀 붙였다가 새벽에 일 나옵니다. "
" 그래? 내가 원룸에서 적적하게 지내는데 자네가 같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어떤가? "
" 그럴까요? 그럼 방세는 제가 반이라도 부담해서 내도록 하겠습니다. "
그 이후 우리는 같이 지내면서 인력 사무실도 같이 다니는 사이가 되었으며 형님의 사생활도 서서히 알 수 있었다.
직업군인으로 지내셨고 부인과 별거한지 얼마 안 되었으며, 다니던 직장생활도 적응 안 돼서 임시로 인력 사무실을 다니고 있다는 것 알게 되었다. 그리고 형님도 꽤 오랫동안 홈리스로 살아가는 나에 대해 조금은 이해를 해주셨다.
시간은 생각보다 더 빠르다. 어느 덧 동거하기 시작한지가 5개월이 넘어갔다. 그리고 어느 때부터 형님과 나는 서로에게 의지하려는 게으른 모습으로 변해가면서 서로의 단점을 많이 보여주기 시작했다.
내가 보는 형님의 모습은 온유하며 성격은 서글서글했다. 그러나 과거이 기억으로 사는 사람인 듯 느낄 때가 많았으며 술로 과거를 잊으려고 많이 애를 쓰기도 하셨다. 너무 알코올에 의존하면서 삶을 살아가려는 모습으로 보였다.
갑자기 '수원'이라는 도시로 떠나고 싶어 졌다. 이제 우리의 불안정했던 동거 생활도 막을 내릴 때가 온 것이었다.
" 형님 삶이 괴롭더라도 원룸은 꼭 간직하세요. 노숙인으로 살아보니 집이 없으면 그날부터 들개가 됩디다."
일 년 정도 흐른 후 우연히 성남 모란 시장 근처에서 형님을 만났다. 몰골이 초라해 보이고 행색이 남루하며 기운이 없는 상태라 마음이 쓰였다.
" 오랜만입니다. 어떻게 지내세요? "
" 어? 임씨구나. 난 많이 안 좋아졌네."
" 원룸은 잘 간수하고 있는 거죠? "
" 아니 나도 자네와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네. 생각한 만큼은 힘들거나 절망적이진 않구먼... 허허허. "
" 그래요? 흐흐흐. "
마주 보고 공허한 웃음을 보내고 나서는 우리는 근처 편의점 밖에 놓인 테이블에 앉아 술을 먹다가 쓰러졌다.
(새벽 추위가 우릴 다시 살려내겠지 하며)
수석과 난을 좋아했고 서예에 능통한 형님이 보고 싶어 지는군요.
옛사람들이 그리워지는 11월입니다. 잡지 구입 감사드리며 지인들과 좋은 추억 만드세요.
홍대 입구 2번 출구 빅 이슈 판매요
- 끝-
마지막 장에는 필자가 직접 그린 그림으로 채워져 있었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짝짝짝 박수를 치며 갈채를 보냈다.
이 문체와 서사구조 스타일은 마치 일본의 근대문학의 거장 작가 '나쓰메 소세키'와 매우 흡사했다. (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도련님', '마음' 외 다수 저자)
이 노숙인의 필력은 나보다 훨씬 뛰어났다.
난 이 A4 두 장 앞에 무릎을 꿇었다.
지금까지의 나의 소설은 너무도 꾸며낸 이야기들 이어서 진정성이 없었다. 그러나 이처럼 진짜 경험만큼 진실하고 진지한 작품이 어디 있을까? 그래 인간의 경험은 신이 쓴 최고의 소설이었다.
그리고 놀라운 건 이 작품에 나오는 OO형님의 이야기가 내가 아는 사람과 너무도 흡사했다. 그분은 내게 한학과 서예를 가르치시는 싸부님이었다.
싸부님은 직업군인 출신인 그는 어릴 적에 서당에서 공부하신 분으로 한학과 서예와 동양화에 능통하셨다. 대우기업에 임원이셨던 그는 큰 사기 사건에 휘말리고 재산을 탕진하시고 이혼을 당하셨다. 이후 3년간 노숙자 생활을 하신 것으로 들었다. 지금은 술을 잘 안 드시지만 한때 굉장히 많이 마셨었다고 들은 기억이 떠올랐다. 얼마 전에도 먹태를 안주로 나와 맥주를 먹고 싶다며 연락하신 적이 있었다.
싸부님과 나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싸부님께 여쭤보려 문자를 보내려 했다가 이내 그만두었다. 혹시 아니면 괜스레 싸부님 기분만 상할게 뻔하다.
그런데 다음 날인 오늘 갑자기 싸부님께 뜬금없이 문자가 왔다. 난 이건 인연이다! 싶어 싸부님께 문자를 보냈다. (싸부님은 탕웨이를 좋아하신다.)
문자를 보는데 갑자기 'TV는 사랑을 싣고' 배경음악이 귓가에 퍼져왔다.
이후 싸부님과 긴 대화를 나눴는데 언젠가 다시 만날 거라며 내게 안부를 전해주라고 하셨다.
그리고 글을 쓰신 분이 눈 한쪽이 안 보인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글이 비뚤비뚤했던 거구나! 하며 난 무릎을 탁 쳤다.
이 경험을 통해 든 생각은...
신은 분명히 존재하고
인연은 분명히 존재하고
너와 내가 만난 것은 '기적'이 아닐까
그래 우리 인간은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기호이다.
그래서 사람을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된다.
빅이슈를 파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그냥 불쌍한 '노숙인'이라 단정 지었던 나의 기의에 반성하게 되었다.
싸부님을 볼 때마다 고집쟁이 꼰대 노인이라고 단정 지었던 나의 기의에 반성하게 되었다.
인간은 모두 자기만의 이야기와, 자기만의 시선과, 자기만의 놀라운 잠재력 들이 담겨져 있는... 아름다운 기호이다.
사람을 겉모습과 직업, 거주공간, 국적 등의 단편적인 정보로 함부로 판단하는 문화에서 도망쳐야 한다.
그래서 한 사람 한 사람 만날 때마다 우린 설레어야 한다. 그리고 아무것도 단정 지어서는 안된다.
그래서 사람이라는 기호와 기호가 함께 있는 것 만으로도 정말 경이롭고 아름다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