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희동에서 책을 읽다

프롤로그

by 한공기

<도피성 낭독회>가 열린 계기는 아는 지인이 연희동에 카페를 차리며 벌어진 일이다. 사실 연희동은 내게 매우 생소한 동네이다. 전두환 대통령 생가가 있는 부자동네라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곳에 갈 일은 일체 없었다. (평생 없을거라고 생각했음)


3달전 오토바이 사고가 났다.

내가 살고있는 홍대 근처에서 불법 유턴하는 차와 충돌했고 난 보험으로 오토바이를 고쳐야했다. 탄지 10년 즈음 된 야마하 스쿠터라 일반 오토바이 수리점에서는 수리하기 애매했다.(부품이 국내에 없음) 그래서 넋을 놓은 채 바람이 부는대로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어떤 인연인지 연희동까지 가게 되었고 그곳에 있는 수리점에 오토바이를 맡기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호주에 일하러 갔던 친한 형으로부터 갑작스런 연락이 왔다. 한국에 왔다며 만나자는 것이다. 2년만인가? 우린 홍대 앞에서 만나 밥을 먹었다. 밥을 먹던 도중 형은 우리가 서로 알고 있는 지인 '요셉'이가 연희동에 카페를 차렸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리고 마침 우리가 만난 날이 카페 오픈일이란다. 그래서 둘은 밥을 먹고 연희동으로 가기로 했다. (사실 무척 피곤해 집에 가서 쉬려했지만 어쩌다보니 연희동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에서 내렸을 때 아주 낯익은 풍경이 눈에 보였다. 그곳은 다름 아닌 오토바이 수리점 골목이었다. 난 내가 오토바이 수리를 맡겼다는 사실이 불현 듯 생각나 수리점을 찾아갔다. 그런데 웬걸 사장님이 이미 수리를 마치고 내가 오길 기다렸다고 한다. (연락 좀 해주시지 ㅜㅜ)


나의 애마를 타고 우리 두 사람은 카페에 찾아갔다. 카페를 가는동안 걱정이 앞섰다. 나도 3년 정도 호프집을 경영한 경험이 있는데 매해 적자를 면하기 힘들었다. 원래 장사라는 것이 실패할 확률이 70%라 하니 하기보다 안 하는 것을 추천하곤 했다. 게다가 흔하디 흔한 카페라니...요셉형제의 고생길이 훤히 보였다.


그.런.데...카페를 도착하자마자 난 나도 모르게 Oh my God! 을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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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그동안 내가 보았던, 흔하디 흔한 카페가 아니었다.


디자인쪽 일을 하고 있는 나의 식견으로 Total Design의 집결체라고나 할까...Total Design이란 공간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이 하나의 컨셉 안에서 완성됨을 의미한다. 국내에서 Total Design을 하는 디자이너는 그리 많지 않다. 왜냐면 Total Design은 요소 하나하나를 유기적으로 연결시키는 작업이기에 매우 전문적인 영역이기 때문이다.

국내 디자인의 역사는 매우 짧고 '우후죽순 비빔밥적인 결합'으로 만들어진 것들이 대부분이라 유럽의 고급스러운 Total Design을 기대하기 어렵다. 한국 사람은 무조건 이쁘면 그만인 매우 표피적인 짧은 인식 안에만 머물고 있다. 즉 '사물의 깊이'를 볼 줄 모른다.


난 정말 오랜만에 본 카페 사장 요셉형제를 보자마자 인사도 안하고 물었다.


야 여기 인테리어 누가 디자인한거야? 디자이너 소개시켜주라!


놀라운 건 디자이너가 따로 없다는 것이다. 그와 그의 아내가 7개월간 직접 디자인하고 인부를 시켜 시공했다고 하니 또 한번의 Oh my God!(아까보다 더 크게)을 외쳤다.


형 맞아요, 다 하나님이 디자인 하신거예요.


크리스찬이자 신학교를 나온 전도사 요셉형제는 하나님이 하나하나 인도해주셨다며 모든 공을 신에게 돌렸다. 난 그말을 믿지 않을 수 없었다. 전문가인 나로서도 상상 이상인데 그저 신학을 공부했을 뿐인 요셉과 그의 아내가 이런 디자인을 완성했다는 것은 기적이 아닐 수 없다.


더군다나 그는 이 카페를 문화, 인문학, 공연, 전시 등의 키워드로 운영하고 싶다고 했다. 애초에 커피를 많이 팔아 돈을 벌기위한 생각으로 만들지 않았다는 그의 말이 신뢰가 가는 것이 <카페 도피성> 곳곳에는 그만한 여유가 느껴졌다.


널찍한 자리배치와 아메리카노 리필, 카페 주인의 시선이 닿지 않은 다양한 공간들(1층방, 지하방, 야외 테라스) 하루종일 카페에서 죽치고 있어도 무방할 만큼 아늑한 기분이 들었다. 실제로 연희동에 사는 작가들이 많이 와 야외에 있는 캠핑 의자에서 멍때리곤 한다고 들었다.


생각해보니 이런 여유로운 공간을 어디선가 본거 같다. 유럽영화에서 본 듯 하다... 영국식 티룸이라고 해야하나?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박물관 내부같은 ... 클래식하며 격조있는 곳. 그곳에 있는 것 만으로도 이미 예술을 온 몸으로 경험하는 기분이 들었다. 도피성 카페는 그 자체로 예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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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이름이 정말 특이한데 '도피성'이 무슨 뜻이야?


나의 질문에 요셉은 친절하게 대답해주었다.


" 도피성은 성경 구약에 나오는 곳인데요, 우발적인 사건에 휘말려 살인을 저지른 자들이 보복성 살인을 당하지 않고 공정한 재판을 받기 위해 보호되는 곳이예요."


낯선 공간에 걸맞는 낯선 이름이었다.

이 안락하고 따듯한 분위기의 공간은 정말 도시에서 찾기힘든 것 같았다. 집에서 나오면 어디든 편하게 머물며 쉴 곳이 별로 없다. 분위기 좋은 카페라도 발견하면 몰리는 사람들 때문에 북적거리고, 오래 있다보면 주인이 눈치 주거나, 커피가 떨어지면 또 시켜야 한다. 모든 것이 자본주의의 원리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카페의 목적은 돈을 버는 것이고 나의 목적은 걱정없이 쉬는 것인데 두 욕망이 충돌하게 되것이다.


난 '카페 도피성'이 어릴 적 숨바꼭질 할 때 찾아다녔던 비밀스런 구멍같이 느껴졌다. 술래가 날 찾을 수 못할만큼,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구멍을 발견했을 때의 희열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어른이 된 지금도 난 그 그런 구멍을 간절히 원하나 보다. 얼마전에는 전쟁이 벌어진 꿈을 꾼적이 있는데 무장을 한 군인들이 민간인을 막 사살하는 것이었다. 도망친 나는 난 아주 비밀스러운 구멍을 발견하고 그곳에 숨어 생명을 건졌다.


잠에서 깬 후 난 종일 나의 불안을 스스로 분석해 보았다. 아마도 내가 살고있는 이 세상이 위협적으로 느껴진 것 같았다. 그래 태어난 이후 나의 불안은 멈추지 않았어. 닭장같은 독서실에 갇혀 기계처럼 공부만했던 유년기, 오직 스펙을 쌓기위해 받쳤던 대학시절, 대학을 졸업하면 자유해질 주 알았지만 돈에 대한 걱정을 한 순간도 멈춘 적이 없었다. 그런 나에게 한줄기 빛처럼 다가온 희망이 있었으니 그건 다름아닌 '책'이었다.


인문학에 문외했던 나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전까지 난 '사람'이 무엇인지 인식하지 못했고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위해 살아야하는지 생각해본적도 없었다. 그래 오직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는 강박만 가졌고 그것을 위해서는 무엇이라도 다 할 기세였다. 책을 읽은 후 인간의 마음은 영원하고 나는 그 존재 자체로 매우 소중한 가치가 있음을 느꼈다. 누구에게도 비교될 필요도 없고 난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다.


그런 멈춤과 쉼의 공간이 바로 책 안에 있었다. 마치 책 속에 내가 찾았던 그 구멍이 있었던 것이다.


만약 그것을 누군가와 함께 나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그 조그만 나만의 구멍이 점점 커질 것이고 우리의 구멍은 어쩌면 우리를 둘러싼 커다란 세계가 될지 모른다. 그런 말도 안되는 상상을 하다가 '낭독모임'을 생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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