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의 소리를 들어라
낭독회 첫 책을 정하는 일과 낭독회에 관련된 포스터를 만드는 일이 남았다. 첫 책은 청소년 권장도서이면서 현재까지도 도서 검색 순위 상위권에 머무는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정하기로 했다. 낭독회 회원을 모으는 포스터도 만들어 보았다.
사람들은 대부분 묻는다. 집에서 혼자 책을 읽으면 되지 굳이 모여서 책을 함께 읽을 필요가 있을까?
그래서 '낭독의 의미'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해줄 필요가 있었다. 낭독회 회원을 모으는 공지 게시판에 자세한 설명을 적어 보았다.
최근 지대넓얕 방송 주제가 '독서'여서 무척 반가웠습니다.
특히 방송에서 '낭독'에 대해 언급한 부분을 주의 깊게 들었습니다.
낭독을 '마치 주문을 외우듯이... 했었다' 란 말에 정말 공감했습니다.
저도 낭독회에 온 사람들에게 항상 '낭독은 예배 같은 것이다.'라고 말했으니까요.
낭독?
대부분 사람들은 '묵독'을 하느라 낭독이 생소할 것입니다.
저 역시 초등학교 때 수업시간에 한 이후로 해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1년 전부터 낭독회에 참여하면서 낭독의 엄청난~비밀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낭독을 얘기하기 전 우선 '언어'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인간에게 언어는 단순히 의사소통 수단만이 아닙니다.
언어가 없었다면 문명은 지금처럼 절대 진화할 수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인간에게 언어는 '사유체계'입니다.
예를 들어 제가 원시인인데 우연히 옆 부족 여인을 만났고 그녀에게 첫눈에 반했다고 칩시다.
도대체 무슨 일인지 제 심장이 콩딱콩딱 뛰고 그녀를 다시 만나고 싶고 그녀와 소통하고 싶어 밤잠을 설칩니다.
이런 상태의 저를 지금의 우린 쉽게 단정할 수 있죠.
음 사랑에 빠졌군!
음 반했군!
음 그리워하고 있군!
하지만 당시에는 이런 언어가 없었기에... 전 제 기묘한 이 감정에 대해 주술적으로 해석할 수도 있고 제가 독버섯을 먹어 병이 들었나 생각할 수 있고... 하여튼 많이 방황하겠죠.
'언어화'는 착상의 과정입니다.
예를 들어 머릿속에 맴도는 무언가, 심장 속에 맴도는 무언가를... 언어로 표현해놓지 않으면 착상이 안된 것이고 그것은 금세 흩어져버리고 말죠.
시를 쓰는 것도... 인간을 통과하고 있는 아주 미묘한 영혼의 속삭임을 언어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또 생각-언어 전후관계가 일방적인 것이 아닌 언어가 있어서 생각이 발전할 수도 있는 쌍방의 관계에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에게는 '언어'가 무지 중요하고 어릴 적부터 언어교육을 어떻게 하느냐 어떤 언어 습관을 가지냐에 따라 그 사람의 지성, 인성, 운명이 모두 좌우되게 됩니다.
성경에서 창세기가 '하나님은 말씀과 함께 계시다. 하나님은 말씀이다'로 시작하는 것도 언어가 인류의 시작과 끝에 맞물려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럼 이제 '소리 내어 읽는다'는 것의 의미는...채 사장님이 언급했던 것처럼, '문자'는 음악의 악보와 같은데 그것을 말할 때 (연주될 때) 의미를 찾는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처음 '낭독회'에 참석했을 때 선배님들에게 낭독의 장점이 뭐냐 물었더니 흔히 해주시는 말씀이...
" 낭독을 하면 문자가 입체적으로 살아난다."였습니다.
전 그 의미가 뭔지 몰랐는데 오랫동안 하면서 그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다시 음악에 비유하자면
악보 > 연주자의 연주 > 소리
의 과정을 거치는데
음악전공자들은 연주를 하지 않고 악보만 보고서도 그 음악을 상상할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실제 연주로 '발현'되고 그것을 다시 듣는 흡수과정을 거치면서 하나의 순환이 일어나는데
그것은 2차원 > 3차원 > 4차원의 과정을 거칩니다.
특별히 4차원까지 언급하는 것은 우리가 음악을 단순히 소리로만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음악이 내 영혼과 소통하며 마음에 울림을 주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 하나를 집고 넘어가자면... 그것은 '연주자'입니다.
예를 들어 내게 '전자악기'가 있는데 쇼팽의 야상곡을 컴퓨터신호를 이용해 자동 연주하게 했다고 칩시다.
그 음악을 듣고 느끼는 감동이... 실제 콘서트장에서 피아노 연주자가 연주한 음악을 들을 때와 과연 같을까요?
분명 아닐 것입니다. 즉 하나의 기호가 인간을 통해 발현되는 과정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한 감동... 그것을 '입체적으로 살아난다'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낭독도 마찬가지입니다. 책을 읽는 사람의 음성, 억양, 목소리의 떨림, 숨... 모든 것이 책 위의 문자에 어떤 에너지를 실어줍니다.
그리고 그 에너지를 느낄 때 묵독과 전혀 다른 새로운 경험...
전 연주나 낭독에서 발현되는 에너지를 인간의 '영적 에너지'라 부릅니다.
낭독할 때 어떤 책을 읽느냐에 따라 그 에너지 파장 크기가 다른 편인데
확실히 과학, 경제 도서를 읽을 때보다 시, 소설, 희곡 등 문학작품을 읽을 때 그 에너지가 크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드디어 <데미안> 낭독회 첫날, 13명의 인원이 모였다.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아가면서 함께 읽는데 모두 어찌나 잘 읽는지 특히 대사를 낭독할 때 감정을 섞어주어서 생경함을 느꼈다. (라디오 드라마 듣는 줄 착각할 정도로)
<데미안> 낭독회에는 심장이 쫄깃할 정도로 강한 에너지 순환이 느껴졌다. 너무 귀한 시간이라 '후기'를 남기기로 했다.
그림: 마음탐정
'두 세계'는 저자가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고하며 이야기의 시작을 여는 부분입니다.
어린 시절 소년이었던 자신에게는 두 세계가 있었는데 하나는 빛의 세계요 다른 하나는 어둠의 세계이다.
빛의 세계는 기독교 집안의 가족들(아버지, 어머니, 누나들) 안에 있었고 어둠의 세계는 하인들, 거리 부랑자들 등등 집 밖의 내가 모르는 미지의 세계이다.
그런 이분법적 사고관을 가지며 안전한 세계 속에서 살고 있던 소년 싱클레어는 친구들과 어울리다가 불량 청소년 크로머를 만나죠.
마마보이 찌질이 싱클레어는 괜히 센척하려고 크로머와 친구들 앞에서 자기가 과수원에서 과일을 훔쳤다고 거짓말을 합니다.
그리고 크로머는 싱클레어를 협박합니다. 과수원 주인에게 일러바치겠다고...
이때부터 천국 같던 싱클레어의 삶에 지옥의 어둠이 침투합니다.
크로머는 싱클레어 삥도 뜯고, 뜀뛰기 같은 기합도 주고 심지어 누나를 소개하여달라고 까지 합니다.
싱클레어는 크로머의 노예상태가 되어 버리죠.
싱클레어는 크로머에게 바칠 상납금을 얻기 위해 부모님의 돈을 몰래 훔치기도 합니다. 싱클레어가 최초로 범죄를 실천하는 것이죠.
이제 싱클레어는 스스로 더럽혀졌다고 생각하고 가족들을 대할 때도 죄책감과 수치심을 느끼며 피합니다.
그리고 절망의 상태에 빠져서 구원을 간절히 바랍니다.
데미안의 첫 챕터 '두 세계'는 특히 남성 독자들을 엄청 몰입하게 만듭니다.
누구나 대부분 동네 양아치형들에게 삥을 뜯긴 경험이 있기 때문이죠. 물론 낭독회 오신 분들 중 삥을 뜯은 쪽도 있었을 것입니다.
우린 어릴 적 자신이 상정했던 두 세계 (빛의 세계와 어둠의 세계, 선과 악)가 있었는지...
언제 그 경계가 파괴되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어떤 분은 중학교 때 서울에 올라오면서 처음으로 깡패를 만났을 때 있다고 했습니다. 시골 산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그분은 그때까지 '깡패'라는 존재에 대해 인식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살던 동네가 매우 낙후되어 깡패가 많았는데 매일같이 다른 패거리들에게 돈을 빼앗겼다고 합니다. 그랬던 자신은 학교에서 불량한 친구들과 함께 놀며 그 공포에서 벗어났다고 합니다. 이제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들이 없어지고 오히려 친구들과 범죄에 가담합니다. 지하철 레일을 같이 훔치다가 역무원에게 걸려 도망쳤던 기억을 떠올리며 그때 무척 재밌었고 친구들과 함께여서 죄책감이 안 들었다고 하네요.
또 어떤 여성 분은 서울에 혼자 살며 사회 생활을 할 때 무척 무서웠다고 합니다. 밤마다 매일 울 정도로 고통스러운 나날들을 보내다가 어느 순간 조금씩 무뎌지고 자신도 성장하고 있음을 느꼈다고 합니다.
제 경우에는 요, 중학교 때 밤에 방문을 걸어 잠그고 헤드폰을 끼고 야동을 보는데 아버지가 제 방에 찾아와 노크를 하시며 "안 자느냐?" 묻더라고요. 그래서 잘게요... 하고 뭔가 이상해 헤드폰을 빼봤더니 세상에 스피커에서 소리가 서라운드로 온 집안에 퍼지고 있더라고요. 알고 보니 헤드폰 잭이 반즈음만 꽂혀있어서 헤드폰과 스피커 양쪽으로 나오고 있었던 거죠. 참고로 저의 형제는 누나와 여동생인데 그 날 이후로 온 가족의 저를 보는 시선이... 경멸에 찬 눈빛같이 느껴졌습니다. 그때 진짜 진짜 진짜 무서웠어요. 처음으로 가출을 생각했죠.
이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어릴 적 우리가 빛으로 인식했던 세계가 <선과 악>의 개념보다는 그냥 <안정과 불안>의 기준으로 나뉘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안정을 느낀 세계는 천국이었고
불안을 느낀 세계는 지옥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린 어릴 적부터 세뇌를 당한 것 같습니다. 그것은 국가적으로 가족적으로 학교적으로 종교적으로 <선과 악>의 구분을 대신해준 것입니다.
저 역시 어릴 적에 나쁘다고 인식한 것들을 열거하면... 북한, 공산당, 빨갱이, 데모, 헤픈 여자, 흑인, 러시아, 중국, 노숙자, 히피, 술, 담배, 지방대 등등
세상에 너무 많아서 열거할 수가 없네요. 웃긴 것 그 당시 제가 나쁘다고 인식하는 그 모든 것에 대해 단 0.0001 프로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참가자 중 어떤 분은 크로머 같은 친구들이 많았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가난했고 폭력적인 부모님 밑에서 자랐으며 소외되었다고... 그런 말을 들으니 크로머가 불쌍하게 느껴졌습니다. 누구나 크로머의 삶를 알게 되면 크로머를 악한 이로만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린 지금 상정하는 자신만의 <선과 악>에 대해 나눠봤습니다.
크리스천인 전 하나님에 가까운 것은 선, 먼 것은 악이라고 말했고
어떤 분은 내가 즐기고 만족할 수 있는 것(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에서)이 선, 내가 불편하고 싫어하는 것이 악이라 말했고
어떤 분은 타인에게 행복을 주는 것이 선, 타인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 악...
어떤 분은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 선, 세상을 파괴하는 것이 악...
정말 헷갈렸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일까?
기존에 우리가 가지고 있던 일반적 선악 개념이 파괴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어릴 적 천진난만하게 했던 행동들이 떠올랐습니다.
잠자리, 개구리를 죽였던 기억.
아파트 고층에서 밑에 지나가는 사람들을 향해 침을 뱉었던 기억(최근 초등학생이 벽돌을 떨어뜨려 사람이 죽은 사건이 떠오르며 섬찟함을 느껐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편의점에서 껌을 훔쳤던 기억
중학교 때 여자반 애들이 체육복 갈아입는 것을 문틈으로 몰래 훔쳐본 기억...
어릴 적엔 내가 한 행동이 나쁘다는 것을 전혀 몰랐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었습니다.
그런데 전혀 몰랐다는 것은 사실일까요?
가만히 되짚어보니 전 그때 매우 불안함을 느꼈고 수치심도 느꼈습니다.
신기합니다.
그동안 제가 인식했던 악은 제 외부의 환경에 있었던 것인데
제 안엔 이미 작은 악마가 숨어있었습니다.
신기합니다.
전 제가 어릴 적에 한 행동에 대해 이성적으로는 잘못했다고 못 느꼈는데 마음으로는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지대넓얕 '죄와 벌'편 내용이 생각납니다.
전쟁 때 잔혹한 살인을 저질렀던 자들이 처음부터 무자비했던 것이 아니라 권위자의 학습과 세뇌를 통해 그렇게 할 수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그 후 끊임없이 자신을 합리화시켰던 사실.
<데미안>에서 가장 처음에 나오는 문구는 이것입니다.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고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그리고 이후 이런 문구가 펼쳐진다.
일찍이 그 어떤 사람도 완전히 자기 자신이 되어본 적은 없었다. 그럼에도 누구나 자기 자신이 되려고 노력한다. 어떤 사람은 모호하게 어떤 삶은 보다 투명하게, 누구나 그 나름대로 힘껏 노력한다. 누구든 출생의 잔재, 시원의 점액과 알껍질을 임종까지 지니고 간다. 더러는 결코 사람이 되지 못한 채, 개구리에 그치고 말며, 도마뱀에, 개미에 그치고 만다. 그리고 더러는 위는 사람이고 아래는 물고기인 채로 남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모두가 인간이 되라고 기원하며 자연이 던진 돌인 것이다. 그리고 사람은 모두 유래가 같다. 어머니들이 같다. 우리 모두는 같은 협곡에서 나온다. 똑같은 심연으로부터 비롯된 시도이며 투척이지만 각자가 자기 나름의 목표를 샹하여 노력한다. 우리가 서로를 이해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의미를 해석할 수 있는 건 누구나 자기 자신뿐이다.
예전에 어딘가 <데미안> 평론을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독일인인 헤르만 헤세는 1차 대전 이후 심한 멘붕에 빠졌다. 왜 사람들은 자신의 중심을 잃고 쉽게 휩쓸렸을까?
<데미안>은 1차 대전 이후에 완성된 소설이지만 헤세는 2차 대전 이후에도 반전을 주장했고 정부를 비판했다.
참고로 독일은 개신교 국가이다.
아마도 <데미안> 전체를 아우르는 키워드는 '자의식'이 아닐까 합니다.
헤세는 우리가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더 잘 듣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닦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전 다시 생각해 봅니다.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일까
<데미안>을 읽은 후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선은 내 양심에 거리낌이 없는 것
악은 내 양심에 거리낌이 있는 것
전 인간의 내면에는 누구나 '양심'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흐리멍덩할 수도 있고 자신의 합리화를 위해 없다고 믿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너무 투명해서 양심이 자신의 삶에 나침반이 될 수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뒤풀이 때 나누었던 것을 공개하고자 합니다.
우린 '내면의 목소리'란 주제로 창의적인 끝말잇기를 했습니다.
창의적인 끝말잇기란 관념어를 눈에 보이는 단어를 통해 우리만의 정의를 내리는 작업입니다.
내면의 목소리란 ( )이다.
- 내면의 목소리란 양꼬치이다
내가 처음 양꼬치를 먹은 것은 몽골 여행을 갔을 때이다. 양을 내 눈앞에서 잡아가지고 직접 구워서 주었는데 정말 토할 만큼 비렸다. 아직도 기억난다. 양의 목에서 새빨간 피가 철철 흐르던 모습, 가죽이 벗겨지고 드러난 근육들... 뼈가 보였고 혈관까지 보였다. 하지만 지금은 정말 양꼬치를 즐겨 먹는다. 점점 무뎌지면서 그 맛의 풍미에 중독되고 있다. 내면의 목소리도 마찬가지 아닐까? 그것을 처음 마주할 때는 무척 두렵다. 마치 생고기를 처음 먹는 경험처럼 싱싱하고 동물적인 자신의 욕망을 마주해야 하고 자신의 악한 면을 마주해야 하고 또 그 이면에 아름다운 모습들을 발견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모든 것이 생날이라는 것이다. 그것들을 만나고 요리하고 즐기다 보면 내면의 목소리에 습관적으로 중독될 것이다.
- 내면의 목소리란 치과이다
치과 가는 것은 무척 두렵다. 생각만 해도 몸서리 쳐진다. 그리고 부끄럽다.
나의 속을 누군가가 들여다보는 것이 무척이나 부끄럽다.
하지만 썩은 이를 그대로 방치하면 더 큰 공사를 치러야 한다. 돈도 많이 든다.
그래서 그때그때마다 치료해줘야 한다.
내면의 목소리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무시한 나의 내면은 언젠가 곪고 썩는다.
그때그때마다 헤아려주고 치유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필요한 것은 오직 용기뿐!!! 돈도 안 든다.^^
- 내면의 목소리란 과일이다
과일은 그 종류가 다양하다.
어떤 것은 떫기도 하고 어떤 것은 시기도 하고 어떤 것을 달기도 하다.
내면의 목소리도 다양하다.
독하고 냄새나는 것일 수도 있고
향긋하고 달콤한 것일 수도 있다
그 모든 것들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신이 좋아하는 달콤한 것만 받아들이면 안된다.
모든 것을 덤덤이 받아들일 때 그래야 진짜 성숙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 내면의 목소리란 일기이다
난생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일기를 써본 적은 군대 시절이다.
그 일기를 지금 펴보면 그때 내가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그날 내가 몇 대를 맞았는지 일일이 알 수 있다.
신기하게도 지난 일기를 읽을 때 그때 느꼈던 공포와 서러움이 다시 치밀어 오른다.
마치 그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내면이 목소리도 똑같이 시간을 초월하는 것 같다.
지난 시간이라도 그 순간에 집중하면 그때 그 감정이 돼 살아난다. (이는 김도인님께서 명상 말씀해주실 때도 언급한 적이 있음)
내면의 목소리는 언제나 날 기다려주고 있다.
시간이 지났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더 이상 도망치지 말고 귀 기울여 보자
아주 옛날 아팠던 내가 있었다면 그 시절로 돌아가 나를 위로해주자.
아주 옛날 잘못했었던 일이 있었다면 그 시절로 돌아가 반성하고 속죄하다
- 내면의 목소리란 기린이다
어린 시절 동물원에서 봤던 기린이 떠올라...
동물원에 가는 것은 매우 특별한 경험이었지.
난 그 커다란 기린의 목을 보며 감탄을 했고 도대체 목뼈가 몇 개일까 궁금해했어.
근데 그거 알아?
기린의 목뼈는 사람이랑 똑같이 일곱 개란다.
모든 동물의 목뼈는 똑같이 일곱 개야. 목이 길던지 짧던지 말이야.
내면의 목소리도 마찬가지야.
세상에 내면의 목소리가 없는 사람이 어딨어...
히틀러도, 이승만도, 박정희도, 전두환도, 이명박도, 박근혜도 다 내면의 목소리가 있지...
사이코 패스 잔혹한 살인마도 분명히 있지...
모두 똑같은 사람이니까...
각자 자신만의 내적 갈등이 있겠지...
- 내면의 목소리란 린스이다
굳이 린스를 사용하지 않는다.
샴푸면 충분하다.
하지만 린스를 쓰면 머리에서 윤기도 나고 머릿결이 찰랑해진다.
내면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일상을 살아갈 수 있다.
굳이 듣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면
보다 아름다움 사람이 될 수 있다.
다른 사람이 나를 평가할 때
참 그 사람 향기로운 사람이야... 아님 사람결이 참 좋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