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공통주제 <봄> ㅣ 이정민
전 건망증이 심해서 병적으로 기록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오전 10시반에서 11시까지 무엇을 했는지, 점심은 무엇을 먹었는지, 물은 몇 잔을 마셨는지...흘러간 시간 속에서 사라질지 모르는 감정들까지도 세세하게 기록하고 싶어요
작가 프로필 ㅣ 이정민
직장인. 성격이 무척이나 쾌활한데 힘든 내면을 보호하기 위한 과장일지도 모름.
봄은 나에게 시각적인 계절이다. 전 계절인 겨울과 비교했을 때 겨울의 초입에서 단풍이 떨어지는 모습은 겨울의 시작이 아니라 가을의 끝을 보여주는 것 같고, 겨울은 그 낮은 온도가 피부로 분명하게 전해져오는 촉각적인 계절인 것 같다. 겨울 길거리를 걸어가다 바람이라도 휭 불라치면 나는 분명히 옷을 입고 있는데, 발가벗고 냉탕에 들어가서 발을 동동 구르는 기분이다. 강제적으로 옷이 벗겨지는 것 같은 겨울의 온도 변화는 누군가를 탓할 수 없는 불쾌감이다.
봄은 전형적인 색감의 계절이지만, 움직임의 계절이기도 하다. 여전히 추운 것 같은데, 새 잎과 꽃이 피면서 꽃가루가 날린다. 봄나물들이 돋고 이제는 봄나물 뜯으러 가지 않는 세상이지만 봄처녀 마음도 동 동 뜬다. 덩달아 미세먼지들도 난다. 이번 봄에 미세먼지 경보가 떴던 날이 있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그 날 엄마를 만나러 갔는데 엄마랑 이야기하다가 하도 큼큼- 거려서 엄마가 무고한 내 직장의 업무강도에 대해 걱정을 했었다.
또 다른 피해자 D양 이야기가 떠오른다. 건너 건너 들었던 이야기라 선천적인 요인도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도시로 일하러 가서 한참 맘고생을 하고, 그 맘고생을 밤늦게 야식을 먹거나 콜라를 달고 사는 등 먹을 것들로 풀었던 터라 몸이 많이 망가져 고향으로 왔더랬다. 청운의 꿈을 안고 서울로 일하러 갔다가 먼지 알러지만 가지고 왔고 그나마 벌었던 돈들도 병원에 다 갖다 주었다고 했다. 이리 저리하여 여자애가 30평 아파트에 혼자 사는데 알러지 때문에 청소를 매일하고 하루에 세 번씩 샤워를 하는데 외출하면 안 씻고는 피부가 못 견딘다고 했다.
떠다니는 것들 하면 세균, 곰팡이도 빼놓을 수 없다. 혼자서 살다 보면 언제 해서 냉장고에 넣어놨었는지 가물가물한 음식을 데워먹을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우리 집 공기에 떠다니다가 이 음식에 정착한 세균들이 그 염도에 적응했을까 못했을까, 소금을 등장인물로 만들고 음식을 배경으로 하여 소금과 세균이 싸우는 장면을 상상해보는데 그 결과를 내가 통보받지는 못하니까 냄새를 맡아보거나 냄새 단계를 통과하면 맛을 본다.
하지만 나는 나의 후각을 불신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중학생 때로 되돌아간다. 중학생 때는 매일 학교에서 우유를 줬는데 수요일만 색깔우유를 주었다. 초코우유, 딸기우유, 바나나우유 등이었다. 하루는 며칠 지난 초코우유가 좀 미심쩍었지만 혹시나 해서 냄새를 맡았더니 초코냄새가 솔솔 났었다. 안심하고 입으로 콸콸 쏟아 넣었는데 웬걸, 물컹했다. 우유가 물컹한, 아주 불쾌한 경험이었다.
나의 후각을 불신하지만 맛을 본다고 해서 뾰족한 수가 있는 것이 아니므로 내가 가진 감각기관을 총동원해서 아주, 나쁘지 않다 싶을 때는 그냥 데워먹는다. 아까 등장했던 소금 옆에 열도 등장인물로 만들어서 세균을 다 죽이는 장면이 지나간다. 고온으로 가열하면 단백질이 변형되지만 세균이나 곰팡이가 만들어내는 독소 중에 열로도 파괴되지 않는 것들도 있다는 생각은 머리 속에서 지우려고 한다. 그래도 단백질이지, 뭐 하면서 내가 만들었던 음식보다 좀 끈적끈적한 것 같지만, 그래도 그럭저럭 한 끼를 때운다.
하루는 끓여서 먹었지만 내일 아침에 배가 아플 것 같은 끼니를 다행히 무사히 지나가고 나의 감각적인 안전 불감증에 대해서 엄마한테 물어봤다.
“엄마 나는 상한 음식을 잘 모르겠어요. “
“응 그건 아마 내가 너 어릴 때부터 상한 음식을 먹이면서 키워서 그럴거야.”
“히에엑? 애한테 그런 걸 먹이면 어떡해요!”
“응 살림하다보면 밥이 쉴랑말랑 할 때 버리기 아까우니까 그건 엄마가 먹고 너희들은 새 밥을 해서 주는데 그래도 조금씩 떼서 너희 먹였지.”
“잉?”
“몸도 자꾸 적을 줘서 싸워버릇 해야 튼튼하게 잘 싸우지.”
엄마가 상한 음식을 일부러 나한테 줬었다는 이야기가 재밌어서 친구들한테 이야기를 했었다. 그랬더니 친구 중에 과일 알레르기로 고생하는 친구가 아이는 그렇게 키워야 하는 것 같다고 했다. 친구 어머니는 친구를 키울 때 모래 한 톨이라도 먹을까봐 놀이터도 안 보냈었고 그래서 지금 자기가 알러지가 심한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그래서 어머니께서 혹시 손자, 손녀를 키우게 된다면 놀이터에서 뒹굴도록 하다가 친구 오기 전에만 친구가 걱정하지 않도록 씻겨 놓을 거라고 하셨다고 했다.
부모님 마음에 아이 인생에서 슬픈 일, 괴로운 일이 없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모든 부모들이 열심히 돈을 벌고 심지어 어떤 분들은 나쁜 일까지 하시지만, 사람인생이 정말 평생 온실 속 난초일 수 있을까. 부모님이 힘이 세고 평생 온실을 잘 만들어줘서 부모님이 살아계시는 동안은 가능하다고 해도 부모님보다 아이가 먼저 죽지 않는 한 아이도 스스로 세상에 맞서야하는 시간이 올 것이다. 평생 돌봐줄 수 없는 것이 너무 자명하고, 한 번도 싸워본 일이 없는 아이에게 세상이 가혹할 것이 뻔하다면, 아이에게 차근차근 연습시킬 필요가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