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소하다

봄아 와줘서 고마워

4월 공통주제 <봄> ㅣ 재키

by 한공기
스크린샷 2016-02-11 오후 4.24.55.png 직업 유랑자


1997년 pc통신이 한창 흥하던 시절 저는 대학 1학년이었습니다. 그때 저의 방제는 <음악/영화/책 이야기하실 분 오세요~~(1/10)>였습니다. 채팅방에 찾아온 사람들과 진지하고 순수한 대화를 많이 나눴고 그때 알게 된 사람과 지금까지 연락하고 지내기도 합니다.


작가 프로필 ㅣ 재키

대학 졸업 후 영화감독이 되려고 충무로 영화판에 뛰어들어 가진 고생을 다했다.

영화판을 떠난 후 수많은 직종에서 일했다. 나의 직장 유랑 경험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





봄이란 놈은 슬며시 와서 잠시 머뭇거리다 떠나버린다.

나는 추위를 유독 심하게 타는 체질이다. 군대에서 겨울에 얼어죽을 뻔한 일을 겪은 후 추위에 대한 공포심마저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그래서 겨울 내내 시시때때로 봄을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봄이 왔다.


인생 대부분의 시간에서 힘든시간이 행복한 시간보다 더 길듯 겨울은 따뜻했던 날들 보다 더 길고 버티기 힘들다. 그러나 그 막강한 추위로 무장한 겨울도 시간 앞에서는 굴복하고 만다. 시간이 흐르면 겨울은 힘을 잃고 봄에게 자리를 스리슬쩍 내준다. 그런데 이 봄이란 녀석은 그렇게 기다린 사람의 마음도 몰라주고 쭈뼛쭈뼛 거리며 확실히 와서 눌러 앉은건지 잠시 왔다 다시 갈건지 머뭇거리고 있다. 차가운 온도로 확실히 자신의 존재감을 표현하는 겨울과 달리 봄은 수줍게 미소지으며 다가오지만 쉽게 자신을 표현하진 않는다. 봄이 온 것 같이 잠시 따스한 기온을 내뿜다가도 또 어느 날 저녁은 그렇게 쌀쌀할 수가 없다. 밀당을 하자는건지 수줍음을 타는건지 모르겠지만 봄 이 녀석은 알다가도 모를 녀석인 것 같다. 근데 그래도 이 녀석의 매력을 인정 할 수 밖에 없는 점이 있다. 그 녀석이 기분 좋은 날이면 그렇게 화려한 햇살과 맑은 기운을 내뿜을 수가 없다. 그런 날이면 애간장 태우는 봄의 성격 탓에 잔뜩 불만에 쌓여 있던 풀과 나무들도 활짝 꽃을 피워버리고 만다. 아무래도 봄이 왔다는 것을 알리는 것은 봄이라는 녀석 자체라기 보다 풀과 나무들이 참다참다 피워버리는 그 '꽃'들 때문인것 같다. 겨우내 바싹 말라 있던 나뭇가지에서 푸른 기운이 돋고 저마다 색색깔 꽃을 피우는 모습을 볼 때면 절로 시선이 가고 마침내 탄성이 흘러 나온다. 봄의 기운이 확실히 느껴지는 따스한 아침에 길을 나설땐 확실히 천국은 따로 존재 하는것이 아니라 시시때때로 우리에게 다가온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하지만 저마다 뽐내며 색색깔을 자랑하던 꽃들도 봄비 녀석이 불현듯 내려버리면 모두 우두둑 떨어지고 만다. 그렇게 봄은 자신의 존재감을 꽃 친구와 봄비 친구의 힘으로 드러내고는 어느새 우리 곁에 와있다. 매년 이 녀석이 올때다 반갑고 기쁘지만 슬며시 떠나버릴지도 모른다는 조마조마한 마음도 동시에 느낀다. 봄이 떠난 자리는 열정적인 태양의 강력한 힘을 가진 여름이 차지하게 될 것이라는 걸 알고 있다. 해가 갈수록 여름은 봄의 자리를 일찍 탐내는 것 같다. 추위 빼고는 참을만한 나로서는 여름도 그렇게 싫어하지는 않지만 아무래도 봄이 좀 더 편하고 정감 있게 느껴진다. 우유부단한 봄의 비위를 맞추는게 그래서 싫지가 않다. 올 해는 봄이 좀 더 오래 머물다 가길 바란다. 그 언젠가 봄이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혹은 내가 봄을 맞을 수 있을 날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불안함이 있어서 일까. 매년 해가가고 봄을 맞을수록 아련한 기분이 든다.

아니 그래. 올해도 와줘서 고맙다. 온김에 올해는 마음껏 기분좋게 있다가길 바란다. 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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