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소하다

빛 바랜 봄

4월 공통주제 <봄> ㅣ 카르멘

by 한공기
스크린샷 2016-02-05 오후 5.06.42.png 주류제조가


취미로 술을 만들어요. 알콜이 주는 위로와 행복에 대해서 함께 공유하고 싶어요.


작가 프로필 ㅣ 카르멘

학부 때는 일본어를 전공하고 대학원은 일본지역 전공을 했지만 서울에 삽니다. 잘 닦여진 아스팔트 같은 순탄한 인생을 살았지만, 같이 걷던 사람들도 이정표도 사라진 길 위에 홀로 서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어디로 가는지, 왜 가는지, 이 길이 맞는지 고민이 됩니다. 아마도 지금은 잠시 멈춰 서서 나를 돌아봐야 하는 시간 같아요.





봄이란 놈은 바지런해서 슬그머니 다가와 아직도 웅크린 나를 재촉한다.

긴긴 겨우내 따뜻한 방안에서 뒹굴뒹굴 혼자를 즐기고 있노라면, 어느새 곁에 와서 제멋대로 희망이며 꿈이며 새 삶에 대한 열망을 주섬주섬 풀어만 놓고,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그래서인지 나에게 봄이 지나간 자리는 항상 아쉽고 그립다.


여고시절 나는 남산 중턱에 있는 학교를 다녔다. 우리학교는 교문에서부터 교실입구까지 가파른 경사였기 때문에 매일 아침 말 그대로 산을 타야했다. 등교는 게으르고 둔한 나에게는 꽤나 벅찬 일이어서 교실에 도착하면 기진맥진해 책상에 엎드려 있다가 그대로 다시 꿀잠을 잤다. 몇 교시를 내리 자다가 학생주임쯤 되는 엄격한 선생님의 수업이 되면 옆 짝꿍이 겨우 깨어주어 비몽사몽 수업을 듣다가, 점심시간이 되어서야 정신을 차리고 급식을 먹고는 했다.


아침 7시 15분에 시작되는 0교시부터 수업이 시작되어서 저녁 10시까지에 야간 자율학습이 끝나면, 나와 나의 친구들은 아침에 올랐던 그 산길을 터벅터벅 걸어 내려왔다. 지각하지 않으려고 허겁지겁 뛰느라 난리법석인 아침 등굣길 모습과는 달리 하굣길은 한결 차분했다. 고등학교 시절은 하루 종일 좁은 책걸상에 쭈그려 앉아서 기계처럼 문제집을 푸는 나날의 나날이었다. 고된 하루를 끝내고 겨우 기지개를 펴면서 크게 숨을 들이 쉬면 폐 속으로 맑고 시원한 남산의 밤공기가 조금이나마 피곤을 풀어주었다.


오로지 대입수능시험을 위한 매일이었지만, 그래도 봄이 되면 약간의 여유를 즐길 수 있었다. 우리학교는 봄이 되면 일 년에 한 번 전 학년이 다 같이 꽃놀이 행사를 했는데, 꽃놀이는 남산 중턱에 학교가 있는 바람에 매일 등산으로 진을 빼야했던 우리학교 학생들에게만 주어진 작은 보상이었다. 행사라고 해봤자 거창할 것 없이 오후시간을 비워서 서너시간 남산 길을 걷는 것이었지만, 친구들과 준비해간 김밥과 과자를 입에 넣고 웃고 떠들며 느긋하게 봄을 즐길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시간이었다. 그나마도 반드시 중간고사라는 불행을 견디어내어야 주어지는 달콤한 자유였지만 말이다.


아쉽게도 중간고사는 항상 사월 중순 즈음 끝이 났다. 그 즈음은 목련과 개나리는 이미 지고 벚꽃비가 흐드러지게 내린 후로, 떨어진 꽃잎들이 잘 닦아 놓은 산책길을 따라 이리저리 나부꼈다. 벚나무가지에는 아직 떨어지지 않은 연분홍 꽃잎이 안간힘을 쓰며 붙어있고, 이미 떨어져버린 꽃잎 자리에는 초록의 새순이 벚꽃 대신 하나둘 돋아있었다. 수험에 지쳐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초봄은 훌쩍 지나가버린 뒤였지만, 우리는 아직 머물고 있는 늦봄이라도 만끽하며 즐거워했다.만성 운동 부족의 여고생들이 단체로 파란색 체육복을 입고 나란히 줄을 맞춰 남산 산책로를 걸으며, 대학에 가면 하고 싶은 것들에 대해서 왁자지껄 떠들었다. 대학만 가면 봄에 예쁜 옷을 입고 너희들이 아닌 근사한 남자친구와 벚꽃 만발한 남산 길을 걷겠노라고.


대학에 진학했지만, 남산 산책로는 다시 걷지 않았다. 대학에도 중간고사는 있었고, 남자친구는 없었다. 여고시절에는 대학만 가면 지각해서 경사길을 헐레벌떡 뛰어올라갈 일도, 촌스러운 파란 체육복을 입고 떼지어 남산 길을 휘저을 일도, 만성피로와 운동부족에 시달릴 일도 더 이상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더 많은 자유를 누리고, 마음껏 봄을 누릴 것이라 생각했다.


서른둘의 봄은 여고시절의 봄처럼 반짝이지 않는다. 나는 여전히 지각하지 않기 위해 허둥지둥 아침을 보내고 있다. 촌스런 체육복은 치워버렸지만, 대신 세탁기 돌리기 귀찮아서 입었던 옷을 빨래통에서 다시 주어 입는다. 운동부족과 만성피로로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언제부턴가 봄이 와도 만사가 귀찮다. 고등학교를 졸업 후 열두번의 봄을 지나오면서 자유와 꿈과 하고 싶은 것들에 대한 열망이 점점 무뎌져서 인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더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앞선 패배감이 미세먼지처럼 나의 봄을 가리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여고시절의 반짝였던 봄이 아쉽고 그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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