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챙김 ㅣ 이은혜
전 삶이 '변화의 연속'이라 생각해요. 내가 내 자신에 대해 얼마나 무지했는지를 깨닫게 된 경험이 있어 그 후 스스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발견하고 나아가 건강하고 자연스런 ‘나’가 되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요.
작가 프로필 ㅣ 이은혜
key word: 가족, 직장, 요가, 음악, 꽃, 만화, 빵, 산호수, 변화, 도서관증, 마음챙김, 정로환, 커피
햇살이 따사롭게 내리쬐던 6월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하늘이 유독 파랗고 구름도 많지 않은 맑은 날이었죠. 날씨도 부쩍 더워져 민소매 원피스에 얇은 7부 카디건을 입고 집을 나섰습니다. 지하철은 출근을 서두르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지만, 몇 개의 정거장을 지나 갈아탄 노선은 많이 붐비지 않아 서 있는 사람들 사이 비어있는 손잡이 하나를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도착까지 몇십 분을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는 여유로움이 밀려와 까만 창밖을 바라보고 있던 순간, 눈앞에서 파닥파닥 날아다니는 무언가를 발견했습니다! 마치 경보를 울리는 듯 좌우로 정신없이 날아다니는 미확인비행물체, 자세히 보니 그건 흰색에 가까운 옅은 노란색 나비였습니다.
인공조형물과 사람들이 가득한 이곳이 자신이 있을 곳이 아닌 것 아는 양 나비는 우왕좌왕하고 있었죠. 오른쪽으로 날아가다 다시 돌아오고 왼쪽으로 갔다가 다시 돌아오고 의자에 앉아 자는 남자의 어깨 위에 앉았다가 잠시 뒤 다시 날아다니기를 반복했습니다. 안쓰럽기도 했지만 어떻게 해줄 수 없어 체념하고 바라보다 주변 사람들을 둘러보았습니다. 흔치 않은 이 사건을 사람들도 나와 같이 흥미롭게 볼 것이라는 생각과 달리, 나비를 보고 있던 사람은 저 하나뿐이었습니다. 그들 역시 잠시 안쓰럽게 보다가 어떻게 해줄 수 없다고 생각하고 관심을 돌린 것이었겠죠. 나비는 다시 앉기 위해 남자의 머리 위로 다가갔습니다. 그런데 자고 있던 남자는 나비의 기척을 느끼고 눈도 뜨지 않은 채 손을 저어 나비를 쫓아냈습니다.
아마 그 순간이었을 겁니다. 뜬금없이 '나한테 오면 내가 밖으로 나가게 해줄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지 자신이 존재해야 할 곳에 있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에게 불편한 애물단지가 되어버린 나비의 처지를 동정했던 것인지, 이곳을 나가고 싶은 나비의 절박한 마음에 동화가 된 것인지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제 내려야 할 역이 얼마 남지 않아 안타까운 마음으로 나비를 바라보던 순간, 거짓말처럼 나비가 제게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선반 위에 잠시 내려앉았다 다시 날아올라 제가 입고 있던 카디건의 왼쪽 앞자락 위에 살포시 내려앉았습니다. 마음이 통했다는 기쁨과 신기함에 심장이 마구 두근거렸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문밖을 나가게 되면 나비가 움직임에 놀라 바로 날아가 버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밀려왔습니다. 내리기 바로 직전, 카디건 앞자락의 끝을 살짝 말아 나비를 동그랗게 감쌌습니다. 그러고는 허리에 엉거주춤 손을 올린 모양새로 천천히 계단을 올랐습니다. 다행히 나비는 파닥거리지 않고 미동 없이 그 자리에 붙어 있었습니다. 지상으로 올라가는 길이 여느 때와 다르게 아주 멀게 느껴졌습니다.
지상으로 나오니 하늘은 여전히 맑고 파랬습니다. 안도에 한숨을 돌리며 조심스럽게 카디건을 풀고, 나비가 괜찮은지 살펴보기 위해 앞자락을 살짝 들어 올렸습니다. 금방 날아갈 것이라는 생각과 달리 나비는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이해할 수 없는 듯 보이기도 했습니다. 지하철에서 만난 신기한 인연. 아마도 전생에 네가 나를 곤경에서 구해준 걸 내가 이렇게 보답하는 건 아닐까? 괜스레 그렇게 믿고 싶었습니다. 이제는 헤어져야 할 시간. ‘잘 가’라고 인사하고 살짝 흔들어주니 나비가 하늘을 향해 날아올랐습니다. 역시 나비는 지하보다는 지상이 어울린다고 생각하면서 그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