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소하다

나의식

잃어버린 마음을 찾아드립니다ㅣ 한공기

by 한공기
427155_315705241826240_873170111_n 복사본.jpg 마음탐정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인간의 마음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정작 그것을 모른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행복의 본질은 모두 자신의 마음속에 숨어있습니다. 전 그것을 찾아주고 싶어요.



작가 프로필 ㅣ 한공기

글쓰기 공동체 '파운틴' 운영자

보통사람의 사소한 일상이 콘텐츠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글쓰기 공동체를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청순한 남자이고 싶어 한다.




자의식'하면 부정적인 개념이 내포되어 있다. 자의식이 강하다. 는 말은 온통 자기 자신에게 정신이 몰입되어 주변을 미처 신경 쓰지 못하고 고립되어 있음을 말한다. 자의식이 강한 사람들은 소통에 미숙하다.


현대사회가 무한 경쟁사회가 되어 가면서 대부분 사람들이 자의식이 강해졌다. 실제로 요즘 젊은 세대들은 '노답 세대'이다. 많은 커뮤니티를 운영하면서 청년들과 만나며 그들이 정말 불쌍하다는 인식을 지울 수 없다. 그들의 머릿속엔 온통 일과 돈, 성공으로 가득 차 있고 타인이 그 자리에 들어갈 틈이 없다. 그들의 인간관계는 '이익'과 '판단'으로 재단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당장 눈앞에 이익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되는 사람은 가차 없이 아웃 오브 안중이 되는데 어처구니없는 것은 그들에게 참여 의식이 전혀 없다는 사실이다. 자기와 상관없이 이미 잘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만 얹으려는 심보가 역력하고 자신의 성공을 보장하는 공동체에서는 노예 역할을 할 준비가 되어있지만 인문학 공동체 같은 커뮤니티에서는 참여도 저조하고, 통보 없이 불참했을 때 안부를 물었을 때 답이 없다. 그래서 '노답 세대'이다. 그들에게 타인은 소통의 존재가 아니라 소유의 대상이다. 즉 소유할 가치가 없으면 가차 없이 내 던진다. 내가 이 심각성을 매일 피부로 느끼는 이유는 10년 이상 청년들이 속한 공동체에 운영 및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입시학원 강사, 독서 낭독회, 동호회 등등을 겪어오며 10년간 꾹 참았던 생각을 이제야 내뱉는 것이란 말이다. 혹자는 당신 주변에만 그런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냐든지, 일반화의 오류 아니냐라고도 하겠지만 난 반대로 그들에게 물어보고 싶은 건... 당신이 정말 애정을 가지고 청년들에게 관심을 가져봤냐는 것이다. 사실 비단 청년만의 문제가 아니다. 일상에서 내게 폭력을 행사하는 대부분은 기성세대이다. 대중교통에서 회사에서 길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무례한 기성세대를 만난다. 어떤 하루를 예시로 들자면 정말 하루 만에 벌어진 일인데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늙은 노인 할머니를 보고 자리를 비켜주었는데 갑자기 어떤 아저씨가 강한 힘으로 나를 밀치며 그 자리에 파고들어 앉았다. 내가 소심하게 할머니 앉으라고 비킨 것인데요... 말하니까 그 아저씨는 못 들은 척하고 딴청을 피웠고 결국 내 옆자리에 앉아있던 한 젊은 여성이 자리를 비켜주었다. 지하철에서 내려 버스를 갈아탔다. 다음 정류장이 회사 앞이라 일어서서 내릴 준비를 하는데 뒤에 있는 아주머니가 내게 '내려요'라고 해서 '저도 내립니다.' 분명히 얘기했는데 버스가 서자 아주머니는 나를 밀치고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 과정에서 내가 끼고 있던 이어폰이 뽑혀 나오며 바닥에 떨어졌고 아주머니는 그것을 밟고 가서 못쓰게 고장이 났다. 그리고 그날 저녁 유니클로에서 옷을 사려고 줄을 섰는데 너무나 태연히 어느 젊은 여성이 새치기를 했다. 난 그녀에게 뭔가 말을 하려 했지만 이내 포기했다. 이제 지쳐버렸다. 한국사회에 만연한 이기주의에 대해 난 더 이상 할 말도 없어져 버렸다. 매일 길에서 담배를 피우며 걸어가는 아저씨들을 만나며 참 이 나라는 이기주의가 공기처럼 전체를 아우르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청년들의 이기심을 비판하면서도 그들을 미워하지 않는 이유는 그들에게 잘못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저 보고 배운 것뿐이다. 너만 성공하면 돼, 친구는 대학 가고나 사귀어라 아니 이제는 취직하고나 사귀어라... 는 부모님의 말씀을 너무나도 잘 들은 세대이기에 그들은 그저 효도한 것뿐이다. 실제로 내가 듣는 서예 클래스는 나 빼고 모두 이대생인데 너무 배고파 빵을 사갔다가 혼자 먹기 미안해 조금씩 잘라 접시에 나눠서 학생들에게 나눠주었을 때 "고맙습니다."라고 말을 하는 아이는 단 한 명도 없다. 그냥 "어..."하는 이상한 감탄사(그들은 그저 이 상황에 당황한 것이다. 왜 이 사람이 내게 베푸는가? 그런 의중의 당혹감이 배어있다.) 그래도 난 그다음에도 계속 빵을 나눠준다. 그 아이들에게 필요한 시간은 자신의 능력과도 상관없이 '사랑받을 시간'이기 때문이다.


난 우리가 '자의식'보다 '나의식'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고 말하려 한다. '나의식'이란 누구나 가지고 있는 자신의 실존에 대한 인식이다. 누구나 우린 똑같은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몸과 마음을 가지고 본능적인 욕구를 공유한다. 그래서 타인을 볼 때도 그 육체 너머에 내가 들어있다고 인식해야 한다. 그래서 내가 싫은 일을 누구에게도 강요해서는 안된다. 모두가 똑같은 '나'이다...라는 인식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타인과의 소통이 불가하다. 내가 서운할 일을 타인에게 해서는 안된다. 모든 게 교육을 못 받아서이지... 대한민국의 근간은 '노예 정신'과 '천박함'이니까. 플라톤은 인간의 삶을 3단계로 분류했는데 하복부 중심적인 삶, 가슴 중심 적인 삶, 머리 중심적인 삶이다. 하복부 중심적인 삶은 자신의 위장과 성기에 집중되어 있는 동물적이고 본능적인 삶을 말한다. 머리 중심적인 삶은 이성 중심적인 삶을 말한다. 그리고 가슴은 하복부에서 머리로 가기 위한 의지라는 것이다. 즉 가장 이상적인 인간은 가슴 중심에 머물러야 한다. 어차피 우리는 육체라는 한계를 가지고 태어나기에 본능을 거스를 수 없다. 그래서 이성을 향해 나아감에 있어 뜨거운 가슴의 의지가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이 나라는 애초에 인문학 교육을 하지 않으니까 기성세대나 신세대나 대부분 하복부 중심에 머물러 있다. TV나 인터넷을 열면 모든 콘텐츠들이 대단히 하복부 적이다. 먹방이나 수많은 말초적이고 쾌락적이고 음란한 콘텐츠들이 바로 하복부적 콘텐츠들이란 말이다. 물론 당장은 돈이 되겠지만 그것들이 이 사회의 악순환을 조장하는 것이다. 매일 쏟아지는 정치인, 기업인, 공무원, 법조인, 연예인, 교수 등등 영향력 있는 사람들의 비리 기사들을 보면 머리가 어지러워진다. 도대체 뭘 본받아 살아야 할지... 도대체 누굴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 진실이 없는 이 나라는 사람도 문화도 하복부적으로 돌고 돈다. 어쩌면 내가 탱고를 하는 이유는 그 춤이 지극히 '가슴 중심'이기 때문이다. 그 춤의 본질은 '타인과 소통하려는 의지'이고 그래서 모든 에너지가 가슴에 집중되어 있다. 그렇다고 모든 탱고인이 가슴 중심적인 삶을 살지 않는다.


그래서 나도 누구도 미워하지 않는다. '나의식'을 가지고 있는 우린 누구나 똑같이 부족하고 연약하다. 미워하기보다 측은하게 생각하고 이해하는 것 그리고 나부터 잘 하는 것. 그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병신년에 난 새로운 종교를 만들고 싶어졌다. 병신교. 병신교의 모토는 '나는 병신 너도 병신 우리 모두 병신.'이다. 그래서 누구도 판단하지 않고 미워하지 않는 것이다. 내가 초대 교주가 되었고 교인은 아직 없다.


13165866_1134956216567801_2746628881146671260_n.jpg?type=w740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어떤 인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