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소하다

연애란

6월 공통주제 <연애> ㅣ 이정민

by 한공기
스크린샷 2016-02-03 오후 2.30.52.png 대구아가씨
전 건망증이 심해서 병적으로 기록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오전 10시반에서 11시까지 무엇을 했는지, 점심은 무엇을 먹었는지, 물은 몇 잔을 마셨는지...흘러간 시간 속에서 사라질지 모르는 감정들까지도 세세하게 기록하고 싶어요


작가 프로필 ㅣ 이정민
직장인. 성격이 무척이나 쾌활한데 힘든 내면을 보호하기 위한 과장일지도 모름.




"우와 좋다."
남자친구가 부모님께 빌려온 차를 타고 스키장을 가고 있었다. 날씨는 화창했고 겨울이지만 바람이 상쾌했다. 네비게이션의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서 도착한 곳은 오래된 건물이었지만 그 뒤로 보이는 눈비탈이 스키장에 처음 오는 사람들을 한껏 들뜨게 했다.

넘어지는 것만 잘하면 된다는 그의 말에 초보 스턴트맨처럼 감독의 지시에 따라 이 쪽으로 저 쪽으로 몇번 눈 바닥에 쓰러졌다. 곧 그의 오케이가 떨어지고 처음 리프트를 어정거리며 타서는 초보 코스에서 몇 번 내려왔다.

"저기 더 위로도 가볼까 ?"
저기라는 말에 그의 시선을 따라가다 멈춘 곳을 보며 말했다.
"저기는 중급자 코스 아니에요 ? 나는 오늘 처음 타는건데"
"원래 초보자가 탈때 초심자 코스가 더 위험한거야, 초보자들이 많으니까 부딪칠 수도 있고. 근데 중급자 코스에서는 니가 천천히 가고 있어도 다른 사람들이 잘 타니까 알아서 간다고."
"오호"

그의 통찰력에 탄복하며 리프트를 타고 올라갔다. 내려서 리프트가 올라왔던 길로 바로 내려가면 초보자코스인데, 내려서 고민을 하다가 스키를 신고 뒤뚱뒤뚱 걸어서 중급자코스 문턱까지 갔다. 문턱에서 또 고민을 하다가 나의 고민에 지친 남자친구가 말했다.
"에이그, 나 먼저 간다! 밑에서 보자"
"네"
엉겁결에 네 라고 해서 가기는 가야겠는데, 이 각도로 내려갈 수는 없는 것 같은데 또 망설이다가 출발해서 한 2미터 내려가다가 옆으로 섰다.

"도와드릴까요 ?"
지나가던 안전요원이 물었다.
"아, 네네.."
"아유, 어쩌다 이쪽으로 내려오셨어요"라며 안전요원은 한 명을 더 불러 나를 앞 뒤로 호송하며 스키발로 살금살금 출발지로 되돌아갔다. 내려간다고 대답 했는데, 올라가고 있어서 오빠는 잘 가고 있나 싶어 안전요원 모르게 뒤를 힐끔 봤더니, 남자친구는 경사에서 구르고 있었다. 올라가는 것을 선택하길 잘 했다고 생각하며 금방 내려왔던 길을 두 명의 도움을 받아 한참을 올라갔다. 안전요원은 친절하게도 출발지까지 나를 데려다 주고는 생긋 웃으며 앞으로는 조심하라고 일러주며 갔다.

초심자코스를 타고 내려와서 남자친구를 만났다.
"아까 나 봤냐"
"응 구르고 있던데"
둘이서 한참을 웃었다.
"응 근데 나 핸드폰 잃어버렸어"
"헐.."
그의 핸드폰은 산 지 얼마 안 된, 중고가격도 꽤 되어 잃어버리면 찾기 힘든 아이폰이었다. 그 말을 듣자마자 전화했지만 오전에 차 안에서 충전을 마친 핸드폰이 꺼져 있었다.

"클났다 클났어 스키장와서 핸드폰 잃어버렸네"
"응ㅋㅋㅋㅋㅋㅋ"
그는 오른손으로 눈가를 감싸고 웃었다.

핸드폰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계속 같이 다니다가 버스시간 때문에 스키장에서 나왔다. 터미널에서 같이 버스를 기다리다가 버스시간이 다 되어서 남자친구가 지갑에서 만원짜리 한 장을 꺼내며 말했다.
"집에 갈 때 택시타고 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횡단보도에서 남자친구의 '내가 너에게 등꼴을 빨리고 있다'는 말에 두 손을 모아 입 앞에 차례로 대어 빨대를 만들어 보이며 '이렇게?' 라며 되받아쳤던 나인데, 괜시리 화가 났다.
"내가 왜? 싫어. 버스타고 가도 되고, 택시타야겠으면 내 돈으로 택시타고 갈꺼야"
말하면서 왜 화가 났나 했더니, 스키장에 놀러 가는 것도 차를 빌리는 것도 다 자기 돈으로 해놓고, 거기다 핸드폰까지 잃어버렸으면서 나에게 택시비를 주는 그의 미련함에 화가 난 것인듯 했다.
"말 들어 ~ 평소에는 내가 너 집에 갈 때 통화할 수 있는데, 오늘은 내가 핸드폰을 잃어버려서 그러질 못하잖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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