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소하다

세상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돈오 다이어리 ㅣ 이상은

by 한공기
스크린샷 2016-04-04 오후 1.38.04.jpg 사업가
갑자기 얻는 깨달음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그 깨달음을 유지시키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느낍니다.

작가 프로필 ㅣ 이상은

Keyword: 연극, 여행, 춤, 다이어리, 팟캐스트


공원 벤치에서 눈을 감고 쉬고 있는데, 발걸음이 들렸다. 내 쪽으로 다가왔다 저 멀리 사라지는데, 그 소리의 주인이 누군지 갑자기 궁금했다. 눈으로 보았으면 내가 그 사람에게 관심을 기울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하니 신기했다. 눈을 감고 주변에서 나는 소리에 대한 내 반응을 녹음해서 다시 들어보았다.


"어떤 모임에서 소풍을 온 거 같다. 누군가 뭘 사 왔는지, 다 같이 좋아해. 멀리서 아이가 우는데, 엄마가 달래고 있어. 두 여자가 사진을 찍으면서 좋아하고 있다. 바람에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가 들린다. 오늘따라 바람이 센 것 같다. 저 멀리서 자전거가 다가오고 있다. 뒤에서 덜커덩 소리가 나는 게 뭔가 달려있다. 공원 내에 배달 가는 걸까?"


눈을 감고 나는 친구와 서로에게 세상을 들려주는 놀이도 했다. 눈이 안 보이니까 친구의 말에 더 집 중하게 되고, 내가 세상을 들려줄 때는 눈에 담은 것을 더 잘 비춰주고 싶었다. 소리에만 집중하면서 무심코 넘어가는 것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된 소중한 경험이 되었다.


3년 전에 연극 동호회에서 배우를 할 때였다. 밤에 연습이 끝나고 집에 돌아와 오페라 CD를 틀었다. 가장 좋아하는 아리아였는데 소리를 듣자마자 짜증이 났다. 평소에는 소프라노의 고음에서 쾌감을 느끼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하곤 했는데 참 신기한 일이었다. 그때 나는 외부에서 자극을 받지 않고 그냥 쉬고 싶었던 것이다. 내 내면을 정리하기에 바빠 좋아하는 음악마저 소음일 뿐이었다.

어린 시절도 생각난다. 부모님의 남녀 형제들과 조카는 내가 6살 이전까지 같이 살다가 독립했다. 친척들이 날 예뻐해 주는 것이 좋았지만, 점차 싫어졌다. 잘 나가는 자신들을 뽐내는 말들에 나는 자연스레 우리 집과 비교하며 마음에 상처를 받았다. 찾아오는 손님이 항상 많았다. 예쁘게 인사를 드리고 내 방으로 바로 들어가 버렸다. 밖에서 나오는 소리 때문에 짜증이 나면서도 받은 배춧잎을 만지작거리면서 꾹꾹 참았다. 고집이 세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려면, 다른 사람의 말에 둔감해져야 했다. 점차 나는 밖에서 오는 소리에 집중하지 않거나 부정적으로 반응하고, 보는 것을 중시하는 사람이 되었다. 강의를 듣는 것보다 책을 보며 혼자 생각하는 시각적 공부방법을 갖게 되었다. 음악도 거의 듣지 않았다.


어른이 되어서 다른 사람의 말을 귀 기울이고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음악이 내 인생을 더 즐겁게 하는 것도 느낀다. 세상의 평지풍파에 휩싸이는 것이 싫어서 무던해지려고 하다 보니 귀를 닫고 살았었던 과거도 반성한다.

보통 사람들은 자신이 보는 것을 믿으려는 것보다, 자신이 믿는 것을 보는 성향이 크다고 한다. 그러다 보면 실제를 왜곡해서 받아들이고, 판단하며 타인에게 전달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 소리가 내는 진실이 묻히기도 한다. 마음을 열고, 세상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좀 더 세심하게 반응해서 있는 그대로 들으려고 노력해야겠다.

공원에서 아이들이 대여한 장난감 자동차를 운전하며 지나간다. 자동차가 좀 버거운지 땀을 뻘뻘 흘린다. 마음대로 이리저리 핸들을 돌리며, 자신의 운전 솜씨를 뽐내기도 한다. 시멘트 바닥과 마찰해 드르륵드르륵 소리가 난다. 분명 짜증 나는 소리인데, 즐겁게 느껴진다. 나중에 들으면 어떨까 싶어서 녹음해서 들어보았더니 바로 꺼버렸다. ‘역시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세상의 소리는 다르게 느껴지는 것이구나’라는 것을 느낀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도 세상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겠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공원에서 한 신기한 경험들처럼 앞으로 열린 마음으로 듣게될 세상의 소리가 궁금해진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일상은 공사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