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소하다

죽음도 일상이다

잃어버린 마음을 찾아드립니다 ㅣ 한공기

by 한공기
427155_315705241826240_873170111_n 복사본.jpg 마음탐정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인간의 마음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정작 그것을 모른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행복의 본질은 모두 자신의 마음속에 숨어있습니다. 전 그것을 찾아주고 싶어요.



작가 프로필 ㅣ 한공기

글쓰기 공동체 '파운틴' 운영자

보통사람의 사소한 일상이 콘텐츠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글쓰기 공동체를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송중기처럼 청순한 남자이고 싶어 한다. 우리는 이름도 비슷하다...




몇 년 전이었던가... 카운팅 하기도 버겁다.

사람은 기억을 의도적으로 지울 수가 있다고 들었다.

기억하기 싫은 기억을 스스로 딜레트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고로 지금 이 글을 쓰는 시간은 내게 고통의 시간이다.

하지만 이 시간을 통과하면 내가 더 성장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젖는다.


난 새벽 3시까지 호프집을 운영하고 마감한 후 텅 빈 가게에서 혼자 소주를 마셨다.

매일매일이 고난이다 보니 당시 내 베스트 프렌드는 말보로 레드와 참이슬이었다.

호프집이다 보니 술은 넘쳤고 안주 재료도 많았다.

그렇게 술에 골아 잠이 들고 다음 날 8시엔 장 보러 시장 가기 위해 꼭 일어나야 했다.

그렇게 살아간 지 2년이 지났을 즈음, 어느 날 아침 7시에 일어난 적이 있었다.

따르릉따르릉 핸드폰이 울렸고 난 비몽사몽으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형 오랜만이에요. 저 수철이예요."

"응... 잘 지냈어?"

"형 다름이 아니라 세훈이가 어제 세상을 떠났어요."

"응... 그래? 장례식장이 어디야?"

"00동 00 병원이요."

"응 이따 상황 봐서 갈게."

"네 형 이따 봐요."


난 전화를 끊고 잠이 들었다가 9시에 일어났다.

늦잠을 잤다는 자책감에 괴로워하며 정신없이 농수산물 시장에 가서 장을 보았다.

계산을 하고 차를 타고 가게로 돌아오는 동안 전날 밤 참 이상한 꿈을 꾸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혹시 하는 마음에 전화기를 보았더니 아침 7시의 통화기록이 있었다.

그 순간 심장이 철렁 주저앉았다.

수철이와의 통화기록은 내가 지금 혹시 악몽을 꾸고 있는 것일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어이가 없는 일이었다.

다시 전화해서 상황을 묻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수 없었다. 난 가게로 돌아가 전날 매출도 정리하고, 농협에 가 입금도 하고, 대금 지불할 곳에 지불도 해야 하고, 재료도 다듬어야 하고 정말 할 일이 많았다. 늘 그렇듯이...

그날도 그렇게 흘러갔다.

새벽 3시 가게를 마감하고 술을 마시다가 술기운에 난 수철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철아 미안하다. 내가 일이 바빠서 정신이 없었어. 자초지종을 자세히 설명해줘."

"세훈이가 집에서 목을 매달았어요."

"어떻게?"

"옷걸이에다가 줄넘기로요..."

"왜 그랬대?"

"요즈음 오디션도 자주 떨어지고 우울증이 심했어요."

"저런... 내가 내일은 꼭 갈게. 지금도 병원이니?"

"네..."


수철이는 세훈이의 가장 친한 친구였고, 세훈이는 나의 가장 친한 대학 후배였다.

연기전공인 그는 내 단편영화의 주인공이었고 졸업 후에도 자주 만나며 밝은 미래를 함께 꿈꿨다.

준비하던 영화에 꼭 배역을 만들어주겠다 약속하면서 시나리오 단계에서부터 세훈이의 배역을 미리 정해놓기도 했는데, 1년을 준비하던 영화가 엎어지고 난 의기소침해서 우울증에 걸려 집에만 처박혀 있을 때 세훈이는 날 찾아와 기운을 북돋아 줬다.


"형 인생 뭐 있어? 사나이로 태어났으면 끝장을 봐야지. 또 준비하면 되잖아. 힘내!"


그는 언제나 긍정 에너지가 넘치는 사나이었다. 헐리웃 배우 마크 월버그와 매우 닮은 야성미 넘치는 몸짱에 터프하면서 영리하고 때론 섬세한 훌륭한 연기자였다. 연극계에서는 이미 이름을 날렸지만 그의 꿈은 영화배우였고 여기저기 오디션을 많이 보았다. 단역으로는 많이 뽑혔지만 그의 꿈은 비중 있는 조연이었고 추후 주연도 하고 싶어 했다. 119 구조대가 나오는 영화 오디션에는 어디서 구했는지 소방복을 입고갈 정도로 열정이 대단한 친구였다. 그 영화를 찍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엎어졌거나 망했을 것이다. 그 이후 나는 어떤 연유로 호프집을 경영하게 되었고 세훈이는 한 번도 가게에 온 적은 없지만 가끔씩 전화해서 내게 언제까지 거기 처박혀 있을 것이냐고 따졌다.


"형 재능 있잖아! 그런데 왜 거기서 그러고 있는거야! 빨리 시나리오 써서 영화 찍어야죠!"

"미안하다. 먹고살기 힘들어 영화고 뭐고 없다. 투자자 찾기도 힘들고."

"형 그냥 형 돈으로 찍어. 나도 돈 대줄게."

"세훈아 미안해. 영화가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야..."


세훈이는 내 꿈을 다시 상기시켜주는 존재였다. 내 꿈을 잊을만하면 늘 세훈이가 전화해서 격려해주고 따끔한 일침도 놔주곤 했다. 날 기다리다가 지친 세훈이는 결국 자신의 사비를 들여 자신이 주인공인 단편영화를 찍었다. 자신이 직접 연출도 하고 배우도 했다. 1차 편집 후 내게 한 번 봐달라고 찾아왔고 난 그것을 보았다. 영화 속 세훈이는 온전히 자신의 진실된 모습으로 드러났고 난 무척이나 감동을 받았다. 영화 내용은 늘 면접에서 떨어지는 청년실업자 이야기었고 의기소침해하던 주인공은 영화의 말미에 동네 권투도장에서 권투를 하면서 삶의 희열을 느꼈다. 아마도 자신의 건강한 육체를 어필하기 위해 억지로 넣은 씬같지만 난 그 엔딩이 참 좋았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 길들여지다 보니 자신의 원시적 생명력과 야생성을 잃어버린 청년이 우연히 들른 권투도장에서 자신 안에 끓어오르는 활화산 같은 에너지를 발견하고 분출하는 내용으로 이해되었다.


세훈이는 왜 죽었을까?

장례식장에 가는 동안 난 그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았고 그의 죽음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낯선 장례식장 풍경...

배가 고팠지만 밥을 차려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모두가 목놓아 울고 있었고 난 그곳에서 육개장이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마침 수철이는 잠깐 일을 보러 가서 만나지 못했다.

난 그저 세훈이의 영정사진 앞에 꽃을 놓고 향을 피우는 의식을 치르고 병원을 나왔다.

내가 기억하는 것은 대추처럼, 쪼글쪼글하고 초라해 보이는 세훈이의 아버지 얼굴이다.

세훈이의 부모님이 시골에서 농사를 한다고 들었는데 아버지의 손을 잡아주지 못하고 나온 것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그날 이후 여전히

난 세훈이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는다.

단 한 번도 세훈이를 생각하며 운 적이 없다.

지금도 서울 하늘 아래 그 옥탑방에서 열심히 잘 살고 있을 것만 같은...

지금도 그만의 호탕한 웃음이 귓가에 맴돈다.

어느 날 불쑥 찾아와 잔소리할 것만 같다.


"형 왜 이렇게 얼굴이 삭았어? 좀 웃고 살아! 인생 뭐 있어?"


참, 세훈이가 항상 하는 말이 있었지.


인생 뭐 있어?


오늘 왠지 그 말이 너무 위로가 돼서 힘이 절로 난다.

세훈아 고맙다... 그 말을 한 번도 못한 것이 미안해 오늘 밤 꿈에서라도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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