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소하다

러시아 횡단기(1)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ㅣ 곽정빈

by 한공기
KakaoTalk_20160508_223016445.jpg 싱클레어


가장 큰 영향을 받았고 또 좋아하는 책이 헤르만헤쎄의 데미안입니다. 그래서인지 평소 인간 본연의 양면성을 사랑하고 이해하려 노력한다는 말을 곧 잘하곤 합니다.


작가프로필 ㅣ 곽정빈

저는 3년간 하던 일을 그만두고 지난 1년간 세계여행을 다녔습니다. 하지만 두 눈을 황홀하게 채우는 수많은 풍경들보다도 여태껏 가져보지 못했던 무지막지한 혼자만의 시간을 대면해야 했던 것이 가장 큰 경험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시간들을 글을 쓰면서 채워 왔습니다. 글을 쓸 때 비로소나 나 스스로가 나 다워지는 느낌을 가질 수 있었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희미해져만 갔던 나의 자아가 글을 쓰면서 뚜렷해졌습니다.

그리고 이제 다시 시작된 제 인생의 2막에서 지속적이고 전문적으로 글을 써나가고자 합니다.






브라질을 마지막으로 남미에서의 여정을 마치고 나는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갈 계획을 세웠다.

지난 1년 여간의 여행을 돌아보며 복기할 시간이 필요했다.

무턱대고 이대로 한국으로 돌아가면 정신없이 현실에 휘말릴 것만 같았다.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하는 세상에서 가장 긴 노선의 기차를 탄다는 것.

차창 밖으로 하염없이 흩날릴 눈발과 온통 하얗게 물든 세상을 보며 내 지난 여행을 돌아 본다는 것.

하지만 그 시간동안 내 몸은 점차로 한국에 가까워 질 것이라는 것.

그리고 마침 작년부터 러시아에 1달간 무비자 여행이 가능해졌다는 사실.

상황과 시기와 조건, 그 모든 것들이 나를 모스크바로 이끄는 듯 했다.

이보다 완벽한 마지막 퍼즐이 있을 수는 없었다.


"시베리아 횡단열차? 그거 나도 같이 타고 가자"


그래서 철이형이 내게 말을 건넸을 때 나는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순간 객실 안에서 조용히 생각하며 글을 쓰고 있는 내게 계속 말을 걸어오는 철이형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마치 혼자 먹으려고 숨겨두었던 조각케잌을 송두리째 빼앗긴 느낌이었다.

오래동안 생각하고 준비해 온 내 마지막 여정에 단 한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이런 식으로 동행한다는 것은 명명백백 무임승차였다.


"형. 8박 9일 동안 씻지도 못한대. 형 겨울 옷도 없잖아. 허리도 안 좋은데 괜찮겠어?"


형은 그저 괜찮다고 했다

자신도 여행을 나오기 전에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관련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타보고 싶다 늘 생각했었는데 내 말을 듣고 나니 같이 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같이 가도 괜찮지?"


"네. 당연하죠. 같이 가요. 같이 가면 저야 땡큐죠"


나는 또 그렇게 말하고 말았다. 늘 그래왔던 식으로.

내 의견을 분명히 전달한다고 상대가 섭섭해 할 상황도 아닐 뿐더러 그럴 권리도 없다는 것을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거절의 순간 둘 사이의 공간을 채울 그 찰나의 정적을 좀처럼 견딜 수가 없을 거라 생각했다.

예상되는 불편이나 분쟁을 지레 짐작하고 미리 회피하는 것. 난 항상 타인간의 관계에서 생길 어색함을 애써 피해왔다.

나만 잠시 불편하면 될 일을, 만일 혹시라도 상대가 언짢아져서 화가 될 일을 만들지 않는게 맞다고 생각했다.


후에 머리가 커지고 스스로에 대해 이제는 잘 안다고 생각할 나이 즈음이 되어서야 알았다.

그 것은 상대를 배려하는 행동이 아니라, 나 자신이 조금이라도 다치기 싫다는 이기적이고 철어린 생각이었다.

넘어지지 않고 깨지질 않으니 성장이 있을리도 만무했다.

물론 언젠가 동아리 후배 하나는 그건 결코 자책할 일이 아니라고, 그 얼마나 여리지만 상대를 향한 착한 마음이냐고,

그런 자신을 이해하고 인정해보라고 얘기해준 적이 있었다.


하지만 내가 정말 화가 났던 건

9일 간의 시간을 마냥 홀로 보내는 것이 오히려 생각의 정리에 방해될 것이라던가,

철이형이 아니래도 내게 말을 걸어올 여행객은 어차피 있을 것이라던가,

그럴거면 차라리 동행과 있는 환경이 나을 것이라는 등의

그새 또 그런 구차한 변명을 하며 합리화하고 있는 나 자신 때문이었다.


스스로의 감정과 행동에 솔직해지고자 노력했던 이 여행의 마지막에서 나는 결국 스스로에게 솔직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결국엔 다시 대화를 되돌릴 용기마저도 없었다.


그래서 철이형의 임시여권이 러시아에서 입국 허가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얘길 들었을 땐 내심 간절히 그러기를 바랬고

예정과 다르게 철이형의 여행이 장기화되어 여자친구와 사이가 좋지 않았을 때는 필요 이상으로 둘의 관계를 걱정했다.



어쨌든 그렇게 처음 예상과는 다르게 나의 시베리아 횡단기가 시작 되었다.


3CAC92ED-A5C9-46F5-95D3-94B68BC377A6.JPG


철이형과 나.

솔직한 고백을 했다고는 하나, 철이형과의 관계를 그리고 우리의 동행을 매도하고 싶지는 않다.

끝끝내 형한테 진심을 말하지 못한 것은 어쩌면 그만큼 이미 서로에게 서로가 많이 의지하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철이형과는 볼리비아 라파즈에서 처음 만났다.

그리고 다시 볼리비아 수크레에서 부터 시작해서 볼리비아 - 칠레 - 아르헨티나 - 브라질에 이르는 3개월 간의 남미 여행동안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동행한 형이다.

영어와 약간의 스페인어가 되는 나. 하지만 특유의 억척스러움과 유들유들함으로 비언어적(?)인 모든 의사소통을 하는 형.

직감적이고 결단력이 있는 형과 다소 계획적이고 이성적인 나.

하지만 절대 각자의 의사를 상대에게 강요하지 않는 서로에 대한 배려가 없었다면 3개월 간의 동행은 불가능 했을 것이다.

지금도 한국에 들어온지 4달이 되어가는 동안 1달에 한 번 꼴로 만나면서 지난 추억을 안주 삼아 술잔을 기울이고 있다.


난 이 포스팅을 하기 전에 내가 가졌던 속마음을 형에게 털어놓았고, 형 역시 내게 말하지 않았던 속마음을 털어놓으면서 우리는 정말 닮았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모스크바에 도착한 직후. 숙소 근처 역에 내려서 숙소로 가는길.

마냥 러시아라는 곳에 도착했다는 사실만으로 그저 우리는 기분이 업이 되어있었다.

형이랑 나는 연신 "러시아 쪼아~ 러시아 쪼아~"를 외쳐댔다.


하지만 러시아 여행은 정말 감히 여행의 끝판왕이라 불리울 법했다.

심지어 인포메이션에 가더라도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단 한명도 없었고 길거리 간판의 활자들은 당최 단 한 글자도 읽을 수도 발음할 수도 없었다.


철이형도 역시 5개월 간 지속된 장기여행으로 많이 지친 상태였고, 러시아에 온 목적은 여행이 아닌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그 전부였기에

형이랑 나는 모스크바에서 1박 - 시베리아 횡단열차 8박 - 블라디보스톡 1박 이라는 초단기 러시아 횡단 일정을 잡았다.

그래서 실제로 숙소만을 제외한 모든 정보에 무지한 채로 러시아로 들어갔고, 그 결과 막대한 언어장벽에 부딪치게 되었다.


러시아 현지인과 우리의 의사소통은 거의 원시인들의 그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이미 상대는 영어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한글로 질문을 했고 그들은 러시아어로 대답을 했다.

아니. 사실은 말이라기보다 손가락과 감탄사와 탄식(?)이 대부분이었다.


러시아 사람들의 동양인에 대한 이유없는 인종차별 또한 넘어야 할 험난한 벽이었다.

실제로 모스크바에 있다보면 얼굴을 붉히며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는 사람들을 자주 마주칠 수 있다.

우리는 그냥 존재 자체만으로 폐를 끼치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항상 인지해야 한다.

그 이유에 대해서 혼자만의 생각을 잠시 해봤는데,

아무래도 미소 양강체제를 이룰만큼 대국이었던 과거의 영광과 현실과의 괴리 사이에서 발생한 막연한 울분 비슷한 어떤 것이 아닐까?

답은 알 수가 없다.


여튼 그럴 때마다 형과 내가 입에 달고 다니는 거의 유일한 러시아어가 있었다.

"스빠 시빠" 러시아어로 감사합니다라는 뜻이다.

아주 찰지게 발음해주면 된다.

"이런~ 쓰으빠 씨이이바~"


모스크바에서의 1박은 오롯이 횡단열차를 타는 동안 해결할 식량을 준비하기 위함이었다.

횡단열차 내에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지만, 사전에 조사해본 결과 매번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해결하기에는 금전적인 부담이 너무 컸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야생에서 수없는 와일드 라이프를 몸소 겪어온 베테랑들 아닌가?


IMG_0182.JPG


우리의 식량이다(ㅋ)

보드카에서 러시아 한 잔은 해줘야지? 애주가인 형과 내가 술 없이 8일을 버틸수 있을리가 없다.

밑에 깔린 것은 도시락 라면이다. 횡단열차 내에서는 24시간 온수를 제공하기 때문에 우리는 가장 저렴하면서 가성비가 높은 컵라면을 선택했다.

라면 표지를 잘 둘러보면 한국 팔도에서 제작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러시아 전역에서 하루에 100만개가 팔리는 인기제품이라고 한다.

가격도 정말 착해서 개당 300원 수준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루 2끼 분으로 준비했고, 남는 한 끼는 중간중간 정차하는 간이역에서 해결해보기로 결정을 했다.



모스크바 붉은 광장으로 가는 길.


물론 모스크바에 온 주목적이 횡단열차 준비를 위한 것이었다고는 하나, 모스크바 관광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모스크바에 도착한 때가 정오 즈음이었고, 열차의 출발시각은 다음날 자정이었으니, 우리에게는 만 하루 이상의 시간이 남아있었다.


IMG_0163.JPG



IMG_0104.JPG


우리나라의 갤러리아 백화점이라고 하면 될까? 일명 '굼'백화점으로 명품 전문 백화점이다.

밖은 날씨가 추운데다 쇼핑도 할 겸 많은 시간을 안에서 보냈지만 궁핍한 우리 주머니에서 무엇을 살만한 여력은 없었다.

철이형은 야상을 하나 사고 싶어했고 그 위에 자신이 다녀온 국가들의 국기 패치를 둘러 붙이고 싶다고 했다.

해서 숙소 주인에게 물어 모스크바 시내 3개의 군장점을 돌아다녔지만 매번 형의 마음에 드는 것은 없었고

뚱한 표정으로 '날 위한 선물은 하나도 없어'를 연신 연발해대던 형은 결국 자신을 위한 군용 나이프 하나만를 샀고 (누굴 찌를려고..)

나는 내 마음에 쏙 드는 항공점퍼를 단돈 6만원에 겟할 수 있었다.


IMG_0124.JPG


항공점퍼 사서 신났음.


IMG_0125.JPG


야상 못사서 약간 우울함.


배경은 볼쇼이 발레단이 공연을 한다는 볼쇼이 극장 앞. 패션왕 포즈.

후에 알게 됐지만 가장 저렴한 좌석이 4000원 정도 한다고 하니, 하루 정도의 더 여유가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커졌다.


IMG_0295.JPG


IMG_0224.JPG

여병추 둘이요.

1455600069.64.jpg


배경은 붉은 광장에 있는 성바실리 성당.

게임 테트리스의 배경이 되는 바로 그 성당이다.

동화같은 이미지의 8개의 서로 다른 돔형식의 지붕이 인상적이다.


IMG_0166.JPG


그렇게 원래의 우리의 여행 타입과는 다소 거리가 멀었지만, 빠르게 모스크바의 랜드마크를 돌아다니며

장면 장면을 눈 속에 담았고 우리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러 출발했다.


그 곳에서 우리는 잊지 못할 여러 인연을 만나게 되었고, 러시아 사람들에 대한 편견을 깨게 되었다.

그 이야기는 다음 번에 포스팅 하기로 한다.






곽정빈님의 다른 글이 읽고싶다면?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죽음도 일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