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ㅣ 윤성권
책상 앞에서가 아닌 사람들 속에서 좀 더 현실적이고 모두가 쉽게 접근 가능하고 실현 가능한 재생에너지 정책을 조사하고 연구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작가 프로필ㅣ 윤성권
평소에 꿈을 디테일하게 꾼다. 그것을 각색해서 쓰면 재밌겠다고 생각함.
문화나 사회가 발달하면서 과거에 사용되었다가 지금은 사용되지 않는 말이 있다. 대부분 쓸모가 없어져서 사라진 말이지만 사람들의 암묵적인 동의 때문에 의도적으로 사용되지 않는 말도 있다. 바로 금기어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 사망했을 때 ‘돌아가셨다’, ‘별세하셨다’ 등의 완곡한 표현을 사용하고, 죽었다는 말을 최대한 피하고 있다. 또한, 신체 장애에 대한 표현인 벙어리(언어장애인), 귀머거리(청각장애인) 등 역시 사용을 피하고 있다.
반대로 과거에 금기어였지만 지금은 허용되는 예도 있다. 특히 우리 같은 분단국가는 그러한 사례를 많이 찾아볼 수 있다. 빨갱이는 공산주의자를 속되게 이르는 말이지만, 원래는 농어목 망둥어과 바닷물고기(comb goby)를 뜻한다. 분단 이전에는 물고기의 한 종류를 나타내는 말이 공산주의와 민주주의의 대립 속에서 의미가 변색하였다. 이런 식으로 사회가 변하면서 이전에는 자유로이 사용되던 용어가 금기어가 된 사례는 다른 나라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일본은 거지를 방송에서 사용하는 것을 금지한다. 오랜 경제 불황으로 인해서 국민에게 불안 심리를 조장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방송에서 거지, 거지 하면 국민이 나도 거지가 될까 불안해할 수 있다는 게 관련 당국의 주장이다.
미국은 인종에 관한 금기어가 많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nigger가 있다. nigger는 검다는 뜻이지만, 흑인 노예를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인종차별의 금기어가 되었다. 흑인들 사이에서는 nigger가 사용되고 있지만, 다른 인종이나 공식 석상에서는 사용을 금하고 있다. 또한, Jew는 유대교인, 유대종족을 뜻하는 표현인데 실제는 끈질기게 흥정하는, 지나치게 욕심을 내는, 속임수를 쓰는 의미로 사용되어 유대인들이 매우 싫어한다.
아이슬란드는 최고(Best)라는 말을 법적으로 사용하지 못하게 되어있다. 예를 들면 커피의 맛이 정말 좋다고 말할 수 있어도, 최고라고 말하면 안 된다. 2008년 경제위기 당시 세계 최고를 자랑하던 금융과 은행 시스템이 한순간 붕괴되는 것을 보며 무분별한 경쟁의 폐해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의지의 표현이다.
핀란드는 자살이라는 말을 방송과 언론에서 금지하고 있다. 핀란드는 1990년에 OECD 국가 중에서 자살률이 가장 높았다(1990년 기준 10만 명당 30.3명, 2012년 자살률 1위인 한국 10만 명당 약 28명보다 높음). 당시 국가 차원에서 실시한 자살방지프로젝트 분석자료에 따르면 자살한 사람 3명 중의 2명이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한다. 자살은 전염성이 매우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살자가 1명 발생하면 그 주위에 영향을 받는 사람이 최소 6명 이상이라는 미국자살연구협회의 연구도 있다. 핀란드는 자살전염을 막기 위해 ‘자살’이라는 말을 방송과 언론에서 금지했다.
철학자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고 말했다. 존재는 언어로 표현될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것은 반대로 존재를 언어로 표현하지 못하게 하면 즉 금기어로 정하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작용하게 만들 수 있다.
깜둥이, 자살 등 부정적인 말을 존재하지 않게 한다면 더 큰 사회문제를 방지하는 데 보탬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도 빨간 바닷물고기(빨갱이)를 가지고 쓸데없는 논쟁은 그만하고, 테러, 성폭행과 같은 모방범죄를 유발할 가능성이 크거나 심각한 사회문제가 될 수 있는 행위를 일컫는 말을 금기어로 정한다면 사회문제를 감소시키는 데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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