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소하다

꿈을 심어준 선생님께

공통주제 <편지쓰기>

by 한공기
익재.JPG 웹 기획자


어떤 주제로 씨름하며 글을 써야 좋을까 많이 고민했습니다. 처음엔 번뜩이고, 획기적이며, 날카로운 통찰을 담은 아주아주 훌륭한 기획을 뽑아봐야겠다 생각했지만...그런 기획을 뽑을 능력이 없어 그냥 꾸준히 글을 쓰겠습니다.


작가프로필 ㅣ 임익재

기자가 되고 싶어 신방과에 진학했고 학내 신문사에서 학생기자로 활동하며 간단한 보도기사 쓰기부터 배웠습니다.언제부턴가 글쓰기 자체에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스마트폰과 같은 뉴미디어의 등장으로 매체 환경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면서, 현재 온라인 기반 언론들이 기존의 보도 패러다임을 못 벗어나고 있다는 비판의식을 갖게 되었고 이것이 글 자체에 대한 회의로 이어졌습니다. 온라인에서는 카드뉴스 등 다양한 형태의 뉴스콘텐츠를 내놓기 시작했고 신문사들도 인포그래픽스같은 이미지 중심의 뉴스 콘텐츠를 지면에 채우기 시작했습니다. 때문에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미래의 언론인에게 글쓰기는 프로그래밍으로 대체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갖고 있기도 합니다.






지영학 선생님께


안녕하세요 선생님. 선생님. 선생님 불러보는 것도 참 오랜만이라 어색함이 느껴지네요. 졸업하고 소식 한번 없던 녀석이 편지라니, 조금 놀라실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고등학교를 졸업한지도 벌써 10년이 지나버렸네요. 언제 이렇게 시간이 흘렀을까요?


할 말이 참 많았던 것 같은데 막상 쓰려니 떠오르는 게 많진 않네요. 음… 저는 지금 퇴근하고 제 방에서 편지를 쓰고 있어요. 오늘 6시 칼퇴근을 했더니 시간적으로, 그리고 심적으로도 여유가 있네요. 주변 얘기를 들어보면 칼퇴근 한번 해보고싶다고 아우성치는 사람이 많지만, 제가 있는 직장에서는 일주일에 2~3일 정도는 칼퇴근이 가능해요. 야근을 넘어 철야가 일상인 웹기획자 치고는 괜찮은 편이죠. 뭐 그렇다고 썩 좋은 직장은 못 되는 곳이에요. 박봉에 나름의 업무스트레스도 좀 있는 그런 일이거든요. 오늘도 트래킹코드를 잘못 입력하는 바람에 사이트 유입 파악이 안 되는 사고를 쳤어요. 다행히 큰 문제가 생기진 않았지만 이런 일이 있고 나면 작은 업무 하나하나가 신경쓰이고, 그러다 보면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하죠. 그래도 저를 버티게 해주는 건 제 나름의 꿈과 이상이 있기 때문이에요. 제 꿈, 기억하실지 모르겠네요. 당시 제 꿈은 기자였어요. 학교에서 장래희망을 조사할 때 망설임 없이 적어 냈었죠. 흔히 그 나이 때 언론인을 꿈꾸는 그런 기자가 되고싶었어요. 사회 구석구석을 누비며 우리 현실의 어두운 면을 폭로하는 그런 기자말이에요. 그리고 그 꿈을 심어준 사람이 바로 선생님이셨죠. 이건 모르시겠죠? 지금 와서 그 때의 꿈과 이상을 되돌아보면 조금 유치하다고 느끼지만, 그런 꿈을 갖는다는 건 행복을 위한 필수조건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선생님만큼은 꼭 한번 찾아 뵙고 싶었어요.


사실 선생님을 처음 뵀을 때부터 이분은 내 평생의 은사님이 될지 모르겠다는 예감이 있었어요. 사실 선생님을 만나기도 전에 저는 이미 선생님에 대한 판단을 끝냈었죠. 딱 두 가지 키워드로요. 전교조, 그리고 사회과목. 그도 그럴 것이 당시의 저는 조정래의 대하소설을 읽으며 우리 근현대사의 암울한 현실에 분통을 터뜨리는 그런… 뭐랄까 준 운동권 청소년(?)이었으니까요. 선생님은 정치적 입장을 명확히 드러내는 분이 아니었지만 저는 알 수 있었어요. 당시 제 눈에 비친 선생님은 제가 가진 세상에 대한 의분과 문제의식을 공유할 수 있는 흔치 않은 사람이었죠. 제가 청소년 두발자유 시위에 적극 가담했던 거 아시죠? 질풍노도의 시기, 의분 표출의 하나였죠. 잠깐이지만 집회 스태프로 지원해 활동하기도 했었고요. 이 사실이 우연히 학급에까지 알려지면서 선생님께선 이에 대해 수업 중에 언급하기도 하셨죠. “우리 사회에 불만이 있으면 익재처럼 적극적으로 표현할 수도 있다.” 다소 교과서적인 언급이었지만 저는 선생님께서 저를 기특하게 여기실 거라 생각했어요. 처음엔 막연한 짐작이었는데 얼마 안 가서 확신이 되죠. 선생님께서 시사토론 모임을 만들자고 제안하시면서요.


우리 사회에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고는 했지만 막연한 감정적 불만이 앞서던 저에게 토론은 참 많은 것들을 일깨워줬어요. 막연한 반감과 분노 위에서는 올바른 의견을 갖기 어렵다는 당연한 사실을 알게됐으니까요. 테러리스트들 따위야 인권이고 뭐고 마음껏 고문해도 상관없다는 주장을, 참 용감하게도 떠벌리던 저였는데. 떠오르는 생각들을 논리적으로 다듬고 정리하려고 노력하는 제가 돼있더라고요.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생각의 빈틈을 알고 채워나가는 일에 재미를 느끼다보니토론 후에도 주제와 관련된 자료를 인터넷에서 찾아보곤 했어요. 진학과 진로에 대한 방향성도 이 때 형성이 됐죠. 기사나 뉴스를 많이 접하다보니 자연스럽게 기자란 직업에 매력을 느꼈거든요. 대학 지원할 때는 전혀 고민하지 않고 언론계열 학과 선택했죠. 당시엔 잘 몰랐는데, 어느 순간 제 삶의 많은 부분들이 그 시절의 영향아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어요.


갑자기 선생님께서 대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실 지가 궁금해지네요. 얼마 전 회사에서 사원 대리급, 그러니까 젊은 축에 드는 회사 상사들과 술을 마신 적이 있었어요. 술이 좀 들어가니까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데, 중요 이슈 중 하나가 학자금 대출이었어요. 저를 포함한 다수가 학자금 대출 갚는데 급여의 상당부분을 지출하고 있었고 각자의 신세한탄이 이어졌죠. 이렇게 빚만 가득 안겨준 대학진학이 옳은 선택이었냐를 진지하게 고민하던 대리님도 있었어요. 사실 이건 저도 한때 진지하게 고민하던 문제였어요. 대학에 적지 않은 돈을 쏟아부었는데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가? 그 때로 돌아간다면 또 다시 대학 진학을 결정할 것인가? 이렇게 자문하며 오랜 기간 생각에 잠기곤 했었죠. 그래도 대학은 저에게 충분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말할 수 있어요. 대학 강의를 통해 배운 것들도 많았지만 대학진학이 없었다면 경험하지 못할 많은 일들, 만날 수 없었던 사람들을 만나 생각할 수 없던 것들을 생각하게 됐으니까요.


학내 언론사에서 활동하던 시절 알게 된 하나선배가 생각나네요. 같은 학교는 선배는 아니었고 여러 대학의 학보사 기자들이 모이는 자리에서 알게 된 선배였어요. 저와 친분이 두터웠던 것도 아니어서 하나라는 이름 외에는 나이도, 심지어 성도 기억나지 않는 사람이지만 저에게 큰 깨달음을 줬던 선배이기에 늘 감사한 마음을 갖고있어요.


당시의 저를 되돌아보면 기자가 되겠다는 확고한 의지로 똘똘 뭉친 열혈 대학생이었죠. 어떤 언론사의 기자가 될 것인지, 어떻게 훌륭한 기자가 될 것인지 따위에 몰두하던 저였으니까요. 그런 저에게 하나선배는 깜짝 놀랄만한 얘기를 해줬어요. “어떤 언론사에 가고싶냐고? 글쎄, 기존 언론사들은 별론데… 난 언론사를 직접 만들어보고싶어. 혹시 너도 관심있으면 얘기해.” 당시 제가 받았던 충격이 상상이 되세요? 이 선배에 비하면 저는 그냥 햇병아리라는 생각을 했어요. 초라한 햇병아리. 왜 저는 그리도 햇병아리같았고 그 선배는 거인같았을까요? 한참을, 그러니까 몇 년을 두고 고민하고서야 나름의 결론을 내렸는데, 결국 중요한 차이는 추구하는 가치가 있냐 없냐였던 것 같아요. 저는 기자라는 타이틀에 매력을 느꼈고 기자로서의 활동만을 생각했고, 그러니 다음에 이어지는 생각은 어디 언론사의 어떤 기자가 될 것인가였죠. 그런데 하나선배는 자신의 활동을 통해 세상에 구현하고자 했던 가치를 생각했었나봐요. 기존 언론사 기자로서는 추구하는 가치를 구현할 수 없으니 언론사를 직접 만들겠다는 데까지 생각이 도달한 거였겠죠. 그 때부터 내가 기자로서 실현할 수 있는 가치란 무엇일까를 고민했어요. 언론이 무엇이고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 가가 중요한 고민거리가 됐죠. 당장 떠오르는 개념만 정리해보니 공론장, 합리적 논의를 통한 사회적 의사결정 이런 키워드들이 떠올랐어요. 그리고 제가 되려던 기자의 모습은 이런 것들과는 거리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 인생계획을 다시 세워야겠구나 마음먹었죠.


새로운 인생목표 얘기를 하기전에 대학에서 배운 지식 자랑이 필요하겠네요. 언론사(史)를 공부하면서 알게 된 재미있는 얘긴데, 초창기 방송뉴스의 모습은 아나운서가 신문을 읽어주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대요. 거기서 조금 더 발전한 수준이 사건에 관한 이미지 하나 띄워놓고 간단한 설명을 덧붙이는 수준이었다네요. 그런데 지금의 방송뉴스는 신문과는 다른 독자적인 보도 포맷을 갖고있죠. 저는 이 부분을 공부하면서 당시의 인터넷 언론의 모습이 오버랩돼서 떠올랐어요. 뉴미디어니 뭐니 하면서 떠들썩 하지만 사실 신문기사나 방송뉴스를 그대로 인터넷에 옮겨놓은 수준을 못 벗어나는 경우가 대다수라고 느꼈죠. 인터넷은 뉴미디어를 자처하면서도 매체 특성에 맞는 새로운 포맷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으니 내가 그걸 한번 만들어봐야겠다, 그걸 통해 우리사회에 제대로 된 공론장을 구현해봐야겠다 마음먹었죠.


그래서 인터넷 매체에 맞는 새로운 포맷이란 게 뭐냐?라고 묻는다면, 아직까지 저도 답을 내리진 못했어요. 답을 찾는 과정에 있지만 작은 힌트를 얻게 된 사건은 있었죠. 진중권 교수와 일간베스트 유저의 공개토론을 했던 일 아세요? 당시 곰TV에서 생중계를 했는데 서버가 다운될 정도로 흥행을 했었죠. 새로운 언론매체를 고민하던 제게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해준 사건이었어요. 온라인 논객의 정점에 있다고 여겨지는 진중권과 이름 없는 일베 유저의 공개토론이라는 구도. 하지만 그 유저도 일베 내에서는 명망가였다고 하죠. 토론의 결과는 일베 유저의 참패였지만 승리했다면 골리앗을 이긴 다윗이 되고 온라인 논객의 다크호스로 부상했겠죠? 그런 역동적인 토론과정이 너무나 좋았어요. 토론의 결과 통해 당시 정문헌 의원이 제기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토 포기 행위에 대한 논란은 어느정도 정리가 됐다는 점 또한 제게는 상당히 고무적이었죠. 공론장에서 합리적 논의를 통한 여론의 형성은 하버마스가 처음 제시했던 공론장의 중요 역할이었으니까요.


제 관심분야에 대해서만 잔뜩 떠든 것 같네요. 선생님에 대해서는 묻지도 않고요. 선생님에 대해 궁금한 게 많은데. 아직도 강화도에서 사시는지, 그래서 서대문까지 출퇴근 하시는지, 아프다던 사모님 건강은 어떤지, 자제분들은 잘 자라고 있는지, 학교생활은 어떠신지,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행복하신지 궁금해요. 행복이란 거 참 중요한데, 선생님께서 제게 행복하냐고 되묻는다면 저는 그렇다고 대답하지는 못하겠네요.


예전 어느 책에서 봤던 문구가 떠오르네요. 행복은 목표의 실현이 아니라 실현 과정에서 찾아야 한다고. 우리 삶은 목표의 실현이 아닌 실현 과정으로 채워져 있기 때문에 삶은 행복으로 채우려면 과정에서 행복할 줄 알아야 한대요.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과정, 그러니까 일상에서 어떻게 행복을 찾을까 고민하고 있어요. 이 고민에 나름의 답을 찾는다면 제 삶은 행복을 채워지겠죠. 답을 찾을 때쯤 선생님과 술 한잔 하면서 얘기를 나누고 싶어요. 이 편지가 전달된다면 그럴 수 있겠죠. 정말 그렇게 되길 바라며, 이만 마칠게요.


익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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