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통주제 <편지쓰기> ㅣ 해원
작가 프로필 ㅣ 해원
현재 요가원에서 일하면서 요가를 배우고 있고, 주말에는 종종 커피숍에서 일하고 있어요.
요가로 신체를 단련하고, 글쓰기를 통해 정신을 단련해서 초인이 되고자 합니다. (...)
필살기는 음... '머뭇거림...'입니다. -_-
이름 없는 한 중고책방에 들렀다. 쌓여있는 책 가운데 한 그림책에 눈이 갔다. 제목은 <완두콩>. 처음 보는 책이었다. 그러나 그림은 매우 익숙한 것이었다. 순간 가슴을 찌르는 그리움이 강하게 밀려왔다.
그가 나에게 고백을 할 때 만든 영상에 들어간 그 삽화.
그의 미니홈피에, 우리가 함께 쓴 일기장에 종종 그가 올리던 그 삽화.
그가 내게 메일을 보낼 때면 첨부하곤 했던 그 삽화.
그는 자신이 가진 감성을 그 만화로 표현했었다. 완두콩, 의인화된 콩 소년의 독백으로 이루어진 옛날 웹툰이었다. ‘내 사랑을 꺼내어, 당신에게 드립니다.’, ‘당신을 빼고 나면, 나에겐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런 종류의 대사가 그림과 함께 이어졌다. 진부하다고 느껴서 당시에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도 그런 것을 퍼나르는 그를 사랑했다. 세련된 맛은 없었지만, 진정성과 따뜻함이 느껴졌다. 그는 일생에 거쳐 감정을 절제해 온 사람이었다.
그에게 감성적 언어란, 정말 가뭄에 콩 나듯 볼 수 있는 것이었다. 그것도 이승환이나 토이의 노래, 이 만화 같은 소박한 대중예술을 빌어서만, 자신의 감성을 슬며시 꺼내어 보일 수 있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엔 곧바로 쑥스러워하며, 일상의 바퀴 안으로 돌아가곤 했다.
헌책방에서 우연히 만난 그 책이, 먼지 쌓인 다락방 보물상자처럼 내 몸 어딘가 묻혀있던 그를 재현해냈다. 그 책은 마치 그가 그 시절 나에게 보내온 모든 감정이 응축된 덩어리같았다. 아련함, 그리움, 이름모를 느낌들이 강하게 밀려 왔다.
완두콩, 그건 네 별명이었지. 네 이름을 빨리 부르면 ‘두-’하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에서 ‘콩’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또 너의 감정을 대신했던 그 만화의 캐릭터 이름이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널 그렇게 불렀다. 콩아.
<완두콩>을 만지작거렸다. 살까, 말까. 이제 와서 이 책을 사는 것은 미련일지 모른다. 이 책을 사는 것은 당신을 기억함의 방증일 뿐. 그 땐 상상도 못했다. 그 당시 촌스러워했던 옛 연인의 감성을, 시간도 장소도 멀리 지나온 오늘에서야 그리워하게 될 줄은.
그 아이는 나의 우울과 불안을 일상의 담요로 덮어주는 남자였다. 그는 완벽했다. 키도, 얼굴도, 성격도, 집안도, 외모도, 취향도, 모든 생활습관과 삶의 방향성까지도. 잘났다는 뜻이 아니다. 그는 자신을 무난한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그저,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았다. 모든 것이 표준적이었다. 우린 겉보기에 비슷하고 잘 어울렸다. 그 아이와 함께 있으면 평범한 행복으로 내 인생이 채워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꿈을 꾸었다.
안정함과 한결같음. 그의 속성이 빛처럼 다가와 나를 감싸주었다. 늘 불안해하는 나를 안심시켜 주었다. 그런 존재였다. 그는 나의 닻이었다. 나의 안전망이었고, 나의 테두리였다. 내가 순종해온 세계의 집합이었다. 그래서 가장 안락하였고, 동시에 가장 벗어나고 싶은 것이었다.
그와 함께 함으로써 평범한 행복을 누렸다. 사랑받는 여자의 환희를 알았다. 불꽃같은 사랑을 넘어, 누군가가 나를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고마움과, 포근함과, 안온감으로, 불안에 떨며 잠들지 못하고 보내야 했던 밤을 잊고 잠들 수 있었다.
그와의 미래는 큰 범주에서 늘 동질하였다. 그는 보수적이었다. 그의 선택은 늘 예측 가능한 것이었다. 든든하였고, 신뢰할 수 있었다. 이상한 점이 하나도 없었다. 그는 적당한 선에서 의사표현을 하고 내 말을 들어주고 조언을 해주었다. 다른 연인과 마찬가지로 사소한 오해를 하고 내심 섭섭해하며 의견을 다투었다. 보통의 남자와 마찬가지로 그는 특정 범위 이상 열린 이해의 폭을 갖지 못하는 모습도 보여주었다. 때로 자기 의견을 강하게 표출하고 화를 내었다. 그렇다고 볼썽사나운 불같은 성격은 아니었다. 감정을 자제하고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것이 그의 기조였다. 나이에 맞는 좌절을 하고, 현실에 투덜거리지만 납득이 가능한 선에서 다시 이 사회를 뒷받침하는 시민적 단단함으로, 꾸준히 노력하여 적당히 성취하였다. 신뢰, 의리, 예의. 그의 가치관은 견고했다. 언제나, 신뢰할 수 있었다. 그도 나를 신뢰했다. 우리는 신을 섬기지 않았지만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실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이치를 따져서 가능한 한 선량하고 양심적인 선택을 했다. 그와 함께라면 여러 변수를 헤쳐 나가며 미래를 설계하는 고난도 견딜 수 있을 것 같았고, 동시에 크게 주류적 범주에 벗어나지 않을 것 같은 안정감을 주었다. 그랬다. 그런 미래 또한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그런 것들이, 모두 정해져 있는 것들이 견딜 수가 없었다. 숨 막히게 표준화된 삶.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고작 예식장을 어디로 잡을지, 하객들의 식사 메뉴는 무엇으로 할지 고르는 정도 밖에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한 번도 제대로 살아본 적 없는 것 같은 말 못할 느낌이 갑자기 치밀어 올라 내 목을 갑갑하게 조르는 것이었다. 먹고 사는 것에, 적당히 짝을 이루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집을 사고 늙어감에. 나의 볼멘소리에 그는 삶이 특별한 것이 아니며, 모두, 원래, 그런 것이라 답했다. 그의 목표는 남들처럼 평범하게 사는 것이라 말했다. 그저 남들처럼. 남들만큼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건데. 원래 그런거야. 우린 그냥 할 수 있는 만큼 열심히 사는 거야. 그는 특별한 척하는 것을 몹시 싫어했다.
그것이 내 인생의 결말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 없었다. 그는 평범한 삶의 굴레에, 안전한 경계 내에 만족했다. 나도 한 때 내가 그것을 원한다고 생각했었다. 태초의 불안과 흔들림이 지독해서 치를 떨었으므로. 하지만 그 평범한 행복이라고 불리는 것에서 온전히 찾지 못한 무엇인가가 있어, 끝내 나와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나는 평범한 행복을 동경하였으나, 끝내는 미지를 선택하는 고집 센 여자였다. 여자로서 행복했지만 인간으로서는 행복하지 않았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나는 순하고 기 센 여자였다. 넌 착한 거 같은데 말 절대 안 들어.
나는 말했다. 당신을 사랑하지만 당신은 나와 완전히 밀착하지 못하는 느낌이 들곤 해. 나의 고질적 우울과 공허를 완전히 꽉 채워줄 수 있는 사람이, 그런 영혼의 동반자가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
그가 답변했다. 처음 만나면 누군가 특별히 보이겠지. 달라보이겠지. 이 사람은 뭔가 통하는 게 있는 것 같다고. 그러나 몇 년간 함께 지내봐. 남자는 모두 다 똑같아, 나만큼 괜찮은 사람 없어. 내가 최고의 남자는 아냐. 하지만 자신있게 말할 수 있어. 나만큼 너를 생각하는 사람은 없어. 그냥 나한테 와.
그렇게 말하는 그를 껴안고픈 충동이 일었다. 그의 아늘거리는 눈빛을 나는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 그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대꾸할 만한 말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호기심이 더 컸다. 내가 겪지 못한 세계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고 싶은 의지가 더 강했다. 우리는, 헤어졌다.
그리고 시간이 지났다. 헤어지고 한참 뒤에서야, 동네 골목 어귀의 한 헌책방에서 가던 길을 멈추고, 쏟아지는 늦여름의 뜨거운 태양 아래, 녹음과 울려퍼지는 매미 소리 사이에서, 문득 그가 얼마나 나를 진심으로 사랑했는지 알았다. 이 불안정한 시대에 그가 나에게 안정감을 주려고 얼마나 자신을 바쳐 필사적으로 노력했는지 알았다. 남들과 비슷한 모양으로 안전한 테두리를 치는 것이, 사실은 현실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고 싶은 것을 지키려는 치열한 자신의 싸움이었음을 알았다. 그가 나에게 주었던 모든 것들을 당시에는 당연하게 생각했으나 사실은 남에게 쉽게 내어줄 수 없는 귀한 것이었음을 알았다. 그리고 그가 그동안 나를 얼마나 변화시켰는지, 나에게 얼마나 새로운 시대를 열어주었는지도. 나에게서 사랑에 대한 인간적인 희망과 따뜻함이 배어 나온다면, 그 시절 그에게 계산없는 사랑을 충분히 받은 까닭이다.
고마워.
당신을 만날 때는 글을 쓰지 못했지. 하지만 당신에 대해서 언젠가는 글을 쓸 것 같은 예감이 있었어. 당신을 만나기 시작한 순간부터, 가끔 뭐가 자꾸 튀어나오려고 할 때면, 그것을 쓰려고 끄적여 보았어. 하지만 어떤 글도 완성하지 못했지. 우리의 마지막 순간에, 난 당신이 나를 세상의 기준과 관습으로 자꾸 옭아매는 구속자라고 여겼어. 오랜 시간이 흐르고 돌아와 깨달았어. 당신이야말로 내게 달려와서 힘차게 문을 두드렸던 사람이라는 것을. 지금 자유의 문을 두드릴 수 있는 내 용기의 상당 부분이 당신에게 빚지고 있음을. 당신은 처음으로 내 구원의 가능성을 보여준 사람이라는 것을.
그래, 내 자아가 기억하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늘 천지가 개벽하는 순간을, 나를 절대적으로 구원해줄 누군가를 줄곧 기다려왔어. 이 세상에 그런 사람은 없다고, 아무도 없다고, 꽁꽁 자신을 싸매고 있으면서도, 혹시나, 하는 어린 아이같은 희망을 놓지 못했지. 문을 걸어 잠그고서 쭈구려 울고 있는 나에게, 강철로 된 문을 용감하게 부수고 쳐들어와 날 꺼내어 천국으로 데려가 줄 멋있고 강인한 백마의 기사가, 언젠가 나타날 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 말야. 그리고 당신이 그런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어. 그래서 당신이 백퍼센트의 충만감을 주는 기사는 아니라고 판단했을 때, 난 슬퍼하고 주저하면서도 당신을 떠났어.
그 때 왜 백퍼센트, 충만하지 못했는지, 잡히지 않는 이유를 찾아 헤매었어. 진짜 일퍼센트의 틈새도 없이 꼭 맞는 영혼의 짝이 어딘가 따로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는 헛된 것이었어. 울고 있는 나를 누군가가 와서 먼저 껴안아주는 것은 너무나 달콤하고 반가운 일이야. 하지만 그 달콤함에 취해서 책임을 미루고, 백퍼센트의 기쁨만을 달라고 남에게 바라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었어. 우린 시간 속에 살고 그 달콤함이 영원히 지속될 순 없는거야. 타인에게서 받은 사랑은 단지 윤활유 같은 거야. 궁극적으로는 내가 문을 열고 밖에 나가, 사람들을 먼저 끌어안는 것이야말로 비로소 나를 구원하는 길이라는 걸 이제는 조금은 체득한 것 같아. 내가 살아갈 근거를, 사랑을, 견딤과 헌신을, 타인에게 구해서는 끝내 구원받을 수 없어. 결국엔 스스로가 자신의 구원자가 되어야만 해.
당신의 품을 떠나서 나는 혹독한 싸움을 치르고 있어. 당신과 있었던 곳이 에덴동산이었다면 지금 나는 낙원에서 추방당한 인간처럼 곤궁한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아. 하지만 응원해줘. 왠지 험난한 이 황야가 지금의 나에게 맞는 것 같아. 힘겹지만 옳은 길을 걸어가고 있다는 확신이 들어. 싸움의 끝에서 얼마나 강해질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 다만 여기까지 올 수 있음에 나는 종종 당신에게서 감사함을 느껴.
한 때 나에게 와 사랑을 주었던 사람으로.
한 때 내 곁에서 나를 인도해 주었던 사람으로.
고마워, 완두콩.
해원님의 다른 글이 읽고싶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