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에 관한 이야기 ㅣ 윤성권
책상 앞에서가 아닌 사람들 속에서 좀 더 현실적이고 모두가 쉽게 접근 가능하고 실현 가능한 재생에너지 정책을 조사하고 연구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작가 프로필ㅣ 윤성권
평소에 꿈을 디테일하게 꾼다. 그것을 각색해서 쓰면 재밌겠다고 생각함.
책 빌리는 것이 중독이라니 참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다.이러한 중독은 아주 좋은 것이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중독이 아니라 강박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중독과 다름없다. 이것으로 인하여 신체적, 정신적 건강이 해칠 뻔했으니 말이다.
이게 다 어렸을 때 독서를 멀리한 데서 비롯되었다. 그 시절에 나는 지독히도 책을 읽지 않았다. 어머니는 책상에 앉는 습관이 자리 잡을 무렵에 태권도를 배웠기 때문에 그 습관이 들지 않았을 거로 생각한다. 그러면서 주판이나 피아노 등을 배웠더라면 자리에 앉아있는 습관이 들어서 책을 좀 보았을 터라고 이야기하곤 하셨다.
어머니의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다행히 고등학교 시절 열심히 독서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TV 프로그램의 영향(느낌표 책을 읽읍시다)도 조금은 있었다. 더 궁극적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문득 내가 훌륭한 사람이 되었을 때 학창시절에 책을 많이 읽었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뭐라고 답해야 할까 생각해보았다. 누구처럼 거짓말을 할 수 없으니 미리미리 책을 읽기로 했다.
처음 도서관에 갔을 때 등대지기란 책을 발견한 것은 나에게 큰 행운이었다. 등대지기를 다 읽으면서 눈물이 날 정도로 큰 감명을 받았다. 그 이후 작가에 대해서 더욱 잘 알고 싶어서 조창인 작가의 책을 몽땅 빌렸다. 그때부터 책을 양(mount)으로 승부하는 증상이 시작되었다.
이후 조정래 작가의 한강을 접했다. 그 책은 정말 몰입도가 높고 인상적인 책이었다. 비록 도서관에서 빌린 것이지만 전권을 소유하며 읽고 싶었다. 도서관 대여 한도를 한강으로 꽉 채우고(당시 대여 한도가 3권으로 기억함), 나머지는 다른 사람이 그 책을 빌려 가지 못하도록 숨겨두는 몹쓸 짓도 자행했다.
대학에 가서도 정말 책을 많이 빌렸다. 이때부터 거의 중독에 가까웠다. 유년시절에 독서를 많이 하지 않았다는 강박관념을 탈피하고자 혹은 그것을 만회하고자 책을 무조건 많이 봐야겠다는 일념으로 가득 찼다. 한 권의 양(良)서보다도 양(量)서를 빌리는 것이 더 안정감을 주었다. 나의 대여 한도로 부족할 때는 친구의 학생증을 이용해 책을 빌리기도 하였다.
대학생활에 연애도 하고, 게임도 하고, 술도 마셔야 하는 데 그 많은 책을 다 읽으려니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수업시간에도 책을 읽고, 시험기간에도 책을 읽었다. 술에 만취해도 책을 읽었다. 나중에는 잠자는 시간도 줄였다. 지식은 충만해졌을지 몰라도(아니면 그렇게 느꼈을지 몰라도) 신체 컨디션이 많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 또한, 책을 정말 많이 보는 데 성적도 떨어지는 형국이었다.
군대를 제대하고(누구나 그렇겠지만, 독서를 거의 못함), 복학해서 친구의 학생증으로 책을 빌리다가 사서에게 발각되는 바람에 1년간 대출이 중지되었다. 엄청난 시련이었지만,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그 계기로 오랫동안 나를 죄어오던 강박 혹은 중독과 천천히 결별할 수 있었다.
지금은 대학 도서관 같은 큰 도서관에 갈 수 없으니 도서대여 중독이 나타나지 않지만, 가끔 서점에 가면 그 충동이 나타나고는 한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한계가 있으니 정말 읽고 싶은 책 1~2권 구매로 만족한다. 그럴 때면 나에게 리어카를 주고 10분 안에 원하는 책을 모두 담으라 하는 미션이 주어졌으면 하고 소망해본다.
그 당시에 짧고 굵게 독서를 경험한 덕분인지 몰라도 아주 요란한 꿈을 많이 꾸었다. 꿈꾼 내용을 글로 남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지금과 같이 글쓰기 연습을 하고 있다. 다들 알겠지만, 글쓰기와 글 읽기는 하늘과 땅 차이다. 그때의 열정이라면 조금 더 치열하게 글쓰기를 할 수 있지 않겠냐는 생각도 해보았다. 한편으로 금방 지쳤을까나.
요즈음 너무 바빠서 책을 읽지 못했다. 이렇게 살면 안 될 것 같아서 구립도서관에 갔다. 소설과 인문학 도서 1~2권 정도 빌려야지 하는 처음 마음은 진작에 사라지고, 과거 중독증세가 발현되어 대출한도를 꽉 채워버렸다(대여 한도 7권). 가방을 책으로 가득 채우고, 집으로 오면서 이 책들을 과연 다 읽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마음이 편안해졌다. 부디 이제는 압박이 아니라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책을 읽고 후련하고 시원하게 책을 반납하기를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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