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락방의 마술적 리얼리즘 ㅣ 최나영
종일 카페에 있으며 전 저만의 다락방을 상상해요. 다락방 속에는 제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세계에 존재했던 가장 소중한 것들이 정돈되어 있죠. 그 다락방에서 진정한 제 자신을 만나곤 하죠. 저는 저만큼 신비로운 존재를 이제껏 만나본 적이 없어요.
작가 프로필 ㅣ 최나영
기독 신학교 출신인 그녀는 서양 철학과 동양 철학에 관심이 많다. 매일 그녀의 성에 들르는 수많은 사람들과 마주하며 우주와 인간의 본질을 탐구한다.
벌거벗겨져 도무지 무엇으로도 가릴 것 없이 맨몸뚱이 그대로 드러난 겨울나무를 들여다본 적이 있는가? 눈이라도 오면 그나마 다행이다. 잠시나마 감추고 싶은 자신을 눈으로라도 덮고 편히 쉴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것마저도 눈이 오지 않은 이번 겨울엔 허락되지 않았다. 어디 그것 뿐이랴. 늦은 가을부터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에 더욱 아무렇지도 않은 몸짓을 더하여 칼과 톱을 무기 삼고 무심한 사다리를 턱 하니 나무 몸에 기댄 채 성큼성큼 나무 위로 올라와 나무의 팔이며 다리며 허리며 마구잡이로 잘라낸다. 월동준비라는 명목이라지만 겨울로 가는 길도 겨울을 걷는 길도 나무에겐 너무나 아프고 고달프다.
나무에게 겨울은 특별한 계절이다. 혹독한 추위와 배고픔, 사람들의 경시와 멸시의 눈빛을 견디며 나무는 그 긴 계절을 품는다. 겨울을 품은 나무에게서는 도무지 생명력이 느껴지지 않는다. 마른 가지처럼 뚝뚝 끊어지기도 하고 벌레조차 머물지 않는다. 그야말로 죽은 것 같다. 절망을 넘어선 절대 절망의 상태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나무에게 겨울이란 계절이 어떤 시간인지. 고통스러운 추위를 견디고 칼바람을 삼켜내며 나무 사이사이를 좀먹는 벌레들을 털어내고 앞으로 다가 올봄에 생명력을 뿜어내기 위하여 면역력을 증가시키는 시간이라는 것을. 자신의 가지조차 아까워하지 않은 채 고이 다듬어지는 계절이라는 것을 말이다. 나무에게 겨울이 충분하지 않다면 화창한 봄도 화려한 여름도 풍성한 가을도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겨울나무는 아름답다. 아름다움은 어쩌면 질료가 끌어안고 있는 형상이지 않던가. 죽음과 어울리는 겨울나무는 오히려 봄나무 여름 나무 가을나무의 생명을 끌어안고 있다. 그렇게 겨울나무는 가장 살아있다. 나무의 계절은 어쩌면 겨울로부터 시작하지 않을까. 그러고 보면 우리네 인생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가 세계에 태어나는 순간은 어쩌면 지극히 단절 그 자체이다. 영혼의 본향으로부터, 엄마의 자궁 속 안전함으로부터. 그것은 고통이고 절망이다. 우리는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렇게 낯선 세상에 덩그러니 던져진 것이다. 우리는 예외 없이 태어남과 동시에 치명적인 고독을 시작한다. 겨울나무와 같은 절대적 절망 상태에서 말이다. 나약하고 비천한 상태, 심지어 누구의 도움 없이는 먹지도 기지도 못하는 상태로 말이다. 그야말로 절대 무능한 상태이지 않나. 살아가면서도 상황은 그다지 나아지지 않는다. 우리는 끊임없이 절망과 단절의 죽음을 경험하면서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어떠한가. 우리의 절대적 절망 그 속 중심에 충분히 머물다 보면 어느새 우리 내면에 새싹이 돋고 때로는 향기로운 꽃이 피기도 한다. 도무지 생명력이 없어 보이던 우리 마음에 생명의 숨소리가 조금씩 들려온다. 메마른 땅에 어찌 싹이 돋을 수 있겠느냐마는 기어이 이 광야에서 꽃이 피고야 만다. 우리의 절망, 우리의 고독, 우리의 겨울은 그래서 아름답다. 우리의 싸늘하고 고독한 겨울엔 분명 생명이 조용히 숨어있다.
겨울나무는 아름답다. 겨울 인생도 아름답다. 오늘은 도피성의 시퍼런 바람자리 뒷마당 무자비하게 정돈된 겨울나무를 가만히 바라봐야겠다. 그와 눈을 마주치고 마음을 맞춰야겠다. 겨울나무에 기대어 나의 겨울 인생에게 입 맞추고 싶다. 너는 아름답다라고.
<파운틴 매거진>은 스토리텔링 콘텐츠회사 콘텐츠하다(http://contentshada.com/)에서 발행하는 웹진입니다. '보통 사람의 보통 이야기'를 추구하는 파운틴은 일반인 글쓰기 공동체로서 글쓰기에 관심있는 누구나 회원이 될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 http://blog.naver.com/chow02/220597388528
회원가입 문의 카카오톡 ID: dominoga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