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흥현상곡 ㅣ 신정훈
저는 글을 막 씁니다. 브레인스토밍하듯 손가락 가는대로 놔두는 식입니다.
작가 프로필 ㅣ 신정훈
현상을 쿨하게 응시하고 그것에 담긴 의미를 즉흥적인 글쓰기 과정으로 풀어내려 한다.
다음 주에 직원 한 명이 일을 그만둔다. 시티의 한 카페에서 대체할 인물을 찾기 위한 면접을 봤다. 지난번 구인 글을 올렸을 땐 열 명 정도의 지원자가 있었는데, 급하게 공지한 탓인지 이번엔 단 두 명뿐이다. '비교하기 쉽겠네' 가벼운 마음으로 두 지원자와 만났다. 첫 번째 여성은 차가운 표정과 말투로 면접에 임했고, 크게 면접에 흥미가 있어 보이지 않았다. 완벽하게 일을 해낼 인재일 수도 있지만, 면접으로 그 사실을 알 길이 없었다. 판단의 척도는 20분가량의 대화가 전부였다. 간단히 일에 대해 설명하고 면접을 끝냈다. 앞에 있는 사람이 자신보다 어려 보여 자존심이 상한 건지, 원래 성격이 그런 건지, 딱딱하고 직설적인 말투에 묘한 적개심이 느껴졌다. 십분 가량 시간이 흐르고 쾌활해 보이는 두 번째 지원자가 왔다. 20대 초반의 어린 친구였는데, 몇 마디 나누어 보니 구김살 없는 성격임을 알 수 있었다. 게다가 맞장구를 어찌나 잘 치던지, 같은 내용을 반복해 설명하는데도 피로하지 않았다. 어릴 적 어머니의 등살에 밀려 소리를 배운 적이 있는데, 소리꾼인 스승님이 고수 역할을 해주셨다. 이번 대화에서 그녀의 맞장구는 스승님의 얼쑤! 그렇지! 같은 추임새였다. 질세라 나 또한 그녀의 고수가 되어 소리를 주고받았다. 그녀의 밝은 대답과 호감 가는 말투 덕분에 면접은 화기애애하게 끝났다.
어릴 땐 좀 더 강하고 쿨해 보이기 위해, 무표정으로 사람을 대하는 일이 많았다. 그래서 첫인상이 좋다는 얘기를 좀처럼 들어보질 못 했다. 표정과 더불어 말투 또한 문제가 있었다. 같은 말을 해도 좀 더 세고 자극적으로 하려 노력했다. 많은 친구들 앞에서 남을 비방할 때 묘한 희열을 느꼈다. 상대방을 조롱하며 친구들의 웃음을 유도했다. 국어 선생님은 매 수업 때마다 학생들을 세워 소설이나 시를 낭독하게 했는데, 개중에 낭독이 매끄럽지 못 한 친구들도 있었다. 이 때다 싶어 적막을 깨고 '우리 누구누구는 글을 기가 막히게 읽는구나. 아나운서 해도 되겠다.' 라며 학급 친구들이 다 들을 수 있게 비꼬는 말을 뱉었다. 아이들은 깔깔거렸고, 서 있는 친구의 얼굴은 빨갛게 타들어갔었다. 다른 수업 시간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학우들의 실패나 약점을 큰 소리로 떠들며 웃음거리로 만들었다. 반에서 힘 좀 쓰는 친구들은 이런 행동을 좋아했고, 누구도 선뜻 불만을 표하지 못 했다. 덕분에 나의 세 치 혀는 친구들에게 많은 상처를 남겼다.
군대를 가서야 내 말투가 잘못됐음을 깨달았다. 서열 사회의 마초적 특성 덕분에, 어떤 말을 하던 즉각적이고 거친 피드백을 받았다. 왠지 모르게 동기들과 비교해 혼자 겉도는 느낌을 받았다. 좀처럼 선임들과 가까워질 수 없었다. 살갑게 말을 걸어도 되돌아 오는 건 욕설뿐이었다. 안 되겠다 싶어 상황을 탈피할 방법을 궁리했다. 그런 노력 중 하나는 화술과 인간관계론 관련 서적의 구매로 이어졌다. 책장을 넘기며 어떤 부분이 잘못됐는 지 알 수 있었다. 내 말투는 묘하게 사람 속을 긁는 요소 있었다. 존댓말만 하면 다가 아니었다. '상경님 이것 좀 봐주십시오.' 가 아니라 '상경님 시간 괜찮으시다면, 이것 좀 봐주시겠습니까?' 여야 했다. 서서히 말의 힘을 인식하며 잘못된 습관을 고쳐나갔다. 언어 습관의 변화는 선임들과의 관계 개선에 특효약이 됐다.
완곡한 표현, 덜 자극적인 표현을 지향하며 말투를 고쳐가던 어느 날, 일본에서의 생활이 시작됐다. 한국과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곳이었다. 특히 사람들의 언행이 달랐다. 뭐가 그렇게 미안하고 고마운지, 하루에도 수 백, 수 천 번씩 '아리가토 고자이마스' '스미마셍' 두 문장이 귀를 울렸다. 병적으로 남에게 피해주기를 싫어했다. 일본에선 아이들이 말을 하기 시작하면 일본 부모들은 우선 사과, 감사 표현에 대해 교육한다. 상대에게 피해를 줬을 땐 미안합니다, 도움을 받았을 땐 감사합니다. 당연한 것이지만 많은 한국 사람들이 놓치고 있는 것이기도 했다. 일 년 동안 그들은 귀감이 됐다.
말을 음식으로 쳤을 때, 나의 화술은 나트륨과 자극적인 향신료가 들어간 불량식품이었다. 그에 반해 일본인들, 특히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이들의 말투는 절밥이었다. 완곡 표현 끝판왕의 모습은 배려하는 대화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어떻게 해야 상대방이 불편하지 않을지 평생에 걸쳐 연구한 사람들 같았다. 예를 들어 ''A메뉴는 지금 판매하지 않습니다.' 란 짧은 문장을 그들이 말한다면 아마 이럴 것이다. '불편을 끼쳐 대단히 죄송합니다만, 현재 A 메뉴는 판매되고 있지 않습니다. 혹시 괜찮으시다면 B 메뉴는 어떠신지요? 재료가 비슷해 A 메뉴를 좋아하신다면 괜찮은 선택이 될 수도 있습니다.' 효율성으로 볼 때 형편없겠지만, 듣는 사람 입장에서 더 좋은 인상을 받을 수밖에 없다.
며칠 전, 일을 마치고 함께 일하는 직원과 함께 한인이 운영하는 베이커리를 찾게 됐다. 빵을 크게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 가는 경우가 드문데, 직원이 그 가게에서 파는 커스터드 슈크림이 맛있다 노래를 불러 드물게 걸음을 옮겼다. 가게 문을 열고 지체 없이 슈크림을 집어 들었다. 직원이 빵을 고르는 사이, 포장을 뜯고 한 입 크게 베어 물었다. 빵은 맛있었다. 아주머니께 말을 건넸다. '듣던 대로 맛있네요. 솜씨가 아주 좋으세요.' 그러다 옆에 진열된 맘모스 빵을 발견했다. '맘모스 빵도 파시는구나. 먹음직스럽네요. 다음에 꼭 들려서 저것도 사 먹을게요.' 직원의 계산이 끝나고 가게를 나서려는 찰나, 빵집 아주머니는 우리를 붙잡았다. '이 맘모스빵 어제 만든 건데, 괜찮으면 하나 그냥 가져가세요.' 슈크림빵 하나를 산 주제에 그런 걸 받을 수 없다며 손사래를 쳤지만, 아주머니는 사람 좋은 미소로 괜찮다며 빵을 건넸다. 말하는 방법이 바뀌며 많은 덤이 생겼다.
일련의 경험들이 쌓여 이제는 저염식 대화가 습관이 됐다. 그러다 보니 맛이 강한 대화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가끔 누군가와 대화할 때 의도치 않게 예전 모습이 나올 때가 있다. 하지만 오전의 면접 통해 다시 한번 말의 힘을 실감한다. 건강한 인간관계를 위해선 역시 저자극 식단이 필요하다. 가는 말이 고우면 , 오는 말이 없어도 행복하다. 대가를 떠나 따뜻한 말 한마디는 우리를 풍요롭게 한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 갚는다는 말이 있다. 만든 사람에게 상을 줘야 한다. 어느새 밤이 왔다. 더 늦기 전에 두 번째 그녀에게 합격 사실을 알려야겠다.
사진: 일본 요리 드라마 '오센'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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