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소하다

아픈 엄마를 관찰하다-1

망상적 관찰일기 ㅣ 최미애

by 한공기


스크린샷 2016-01-25 오후 2.18.58.png 직장인 명상가
명상을 하면서 '관찰'이 취미가 되었어요. 보고, 듣고, 맛보고, 냄새 맡고, 촉감을 느끼고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을 파악하는 관찰 작업을 수행하고, 그렇게 관찰하고 있는 자신을 순간 순간 깨달을 수 있도록 뭔가를 좀 써봐야 겠다는 결심을 했어요.


작가 프로필 ㅣ 최미애

IT 9년차 직장인.

불교와 명상에 관심이 많아 경전을 읽으며 '집중'과 '관찰' 수행을 하고있다.

자신의 특기를 이용해 세상에 관한 '관찰일기'를 쓰려한다.


일요일 오전 11시, 여느 주말 같으면 이제 그만 일어날까 말까 하는 시간이었지만 그 날은 그런 고민이 무색하게 전화벨이 울렸다. 누구인가 받아 보니, 아버지였다. 엄마의 상태가 많이 이상하니까 얼른 좀 와줬으면 한다고 하셨다.

작년 여름 정도부터 엄마는 관절이 아프셔서 큰 병원에서 권하는 검사를 받으며 집과 병원을 오가는 중이었다. 몸은 아픈데 병명이 명확하게 나오지 않아 큰 병원에서는 입원을 시켜 주지 않았다. 회사도 그만두고 동네 병원에 한동안 입원해서 진통제를 맞으셨는데, 오히려 속이 안 좋아지고 간수치가 올라가 열흘 전쯤 퇴원을 하셨었다. 퇴원한 이후에도 속이 너무 안 좋다고 하셨다. 전화를 받은 바로 전 날에도 집에 다녀왔었는데, 그때도 엄마는 제대로 된 것은 드시지 못해 미음과 우유만 조금씩 드셨었다. 퇴원을 한 후 매일 병원을 오가며 링거를 맞고 계시다고 했었다.

그 날 보았던 엄마의 상태는 동네 병원에 입원해 계실 때 보다도 확실히 안 좋아 보이긴 했지만, 설마 하룻밤 사이에 뭔가 심각한 문제가 생긴 걸까. 아버지께서는 엄마가 시간 감각도 없고 이상한 말을 한다고 하셨고, 전화로 듣는 그런 이야기가 잘 이해가 되지 않아 일단 빨리 집으로 가겠다고 했다.


급하게 준비를 하고도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가는 길이 가깝지는 않아, 집에 도착을 한 것은 오후 1시가 좀 안된 시간이었다. 누워 있던 엄마는 나를 보더니,

“왜 이렇게 일찍 왔어?”

하셨다. 나는 지금은 점심 무렵이라 이른 시간이 아니라고 대답했다. 아버지께서 엄마를 일으켜서 이제 딸 왔으니 병원에 가자고 하면서 웃옷을 입히기 시작했다. 저 쪽 팔을 끼는 동안 몸을 돌리고 있다가 다른 쪽 팔을 끼려고 내 쪽으로 다시 몸을 돌린 엄마가 다시 이야기했다.

“미애는 언제 왔어?”

아버지께서 전화로 하신 이야기가 그제야 이해가 갔다. 누가 뒤통수라도 후려친 듯,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만 같았다. 엄마는 웃옷을 다 입고도 자꾸 어딜 가냐고 물으셨다. 병원에 간다고, 오늘 병원 가는 날이라고 몇 번을 이야기해도 잘 이해가 안 되시는 것 같았다. 엄마는 비척 비척 방문 앞까지 나왔다가 화장실로 들어가셨다. 화장실 가냐고 아버지께서 묻자 엄마는 그렇다고 대답을 하셨다. 하지만 화장실에 들어간 엄마는 잠깐 바지춤을 만지는 듯하더니 볼일은 보지 않고 도로 나오셨다. 나는 엄마의 바지 단추를 다시 채워주었다. 엄마가 혼자 신발을 신지 못하자 엄마를 앉히고 아버지께서 신발을 신겨 주었다. 아버지 차에 가서 엄마를 뒷좌석에 태우고 나는 보조석에 앉았다. 아버지께서 운전을 하는 중에 엄마한테 물었다.

“우리 지금 어디에 가는 거야? 아까 우리 어디 간다고 했었어?”

“......”

엄마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20분쯤 지나 관절 통증 때문에 검사를 받으러 다녔던 큰 병원의 응급실에 도착했다. 의료 기록이 있으니 검사를 다시 다 받지는 않아도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응급실에 접수를 하고 잠깐 대기를 하는 중에 오빠와 새언니가 왔다. 엄마는 임신 중인 새언니를 보고 조금 웃었고, 왜 이렇게 다들 왔냐고 했다. 엄마가 많이 아프다고 해서 왔다고 오빠가 얘기를 했지만 엄마는 지금 아픈 건지 어쩐 건지 스스로도 잘 모르겠다는 듯이 멍한 표정이었다. 대기가 끝나고 안 쪽에서 들어오라고 했다. 간호사들 몇 명이 앉아 있었고 무슨 일 때문에 왔느냐고 물었다. 뭐부터 이야기해야 좋을지 몰라 우선 속이 안 좋다고 하신다며 말을 시작하자 간호사 한 명이 조금 답답한 듯이 말을 자르고 엄마한테 질문을 했다.

“어머니, 아침에 뭐 드셨어요? 약 같은 거 드세요?”

엄마는 대답을 못 하고 약간 멍한 얼굴로 간호사의 얼굴을 바라봤다.

“지금 좀 정신이 왔다 갔다 하는 거 같아요.”

약간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엄마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던 간호사에게 아버지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다. 간호사가 그러면 지금 응급실에 온 게 그 때문이냐고 묻더니 아까보다는 다소 긴장한 듯한 얼굴로 엄마한테 다른 질문을 했다.

“어머니, 오늘이 몇 년 몇 월이예요?”

“뭐, 무슨 말이지…”

엄마는 대답을 못하고 얼버무리더니 멋쩍은 듯이 웃었다. 다른 간호사가 지금 계절이 뭔지를 물었다. 엄마는 또 대답을 못 했다. 간호사가 양팔을 벌려 위아래로 흔들어 보이며 이렇게 해보시라고 했다. 엄마는 그 동작은 따라 할 수 있었다.

응급실 안 쪽에 병상을 받아 엄마를 눕히고 차례로 심전도 검사와 뇌 CT, X-레이 촬영을 했다. 엄마는 이따금 오들오들 떨었다. 추워하시는 것 같아 이불을 구해와 덮어 드려도 자꾸 몸을 떨었다. 춥냐고 물으면 아니라고 했다. 기운이 떨어져 있어서 그런가 싶어, 나는 계속 엄마손을 잡고 팔 같은 데를 문지르고 손발을 주물렀다. 엄마는 가끔씩 나한테 얼른 자라고 말을 했다. 실제로는 오후 2시 정도였지만 엄마는 지금이 밤, 그것도 깊은 밤이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았다. 혹시 시야가 어두운 것은 아닐까? 내 얼굴은 잘 보이는 걸까? 검사 결과를 기다리면서, 또 한편으로는 엄마를 주의 깊게 보면서 계속 나쁜 생각이 커져 가는 것을 느꼈다. 아버지 우려대로 뭔가 뇌졸중 같은 게 온 것일까? 하지만 가족들의 얼굴은 다 정확하게 인지를 하고 계시다. 단기 기억을 자꾸 잃어버리는 것 같고, 다른 사람의 말이 길어지면 잘 이해를 하지 못하는 것 같다. 하지만 몸이 떨리고 힘들어하셔서 그렇지 걷기도 하고 앉기도 한다. 신체가 부자유스럽다는 느낌은 없다. 그러면 뇌에 완전히 이상이 온 것은 아닐 수도 있겠다.


진단 결과를 기다리는 중에 의사 한 명이 왔다. 의사는 무릎 신경 반사 검사를 하려고 하는지 망치 같은 것을 가지고 있었다. 엄마를 병상에 걸터앉도록 한 다음에 의사는 몇 가지 질문을 했다. 아까와 비슷한 질문들 이었다. 지금이 몇 년이나, 몇 월이냐, 하는 질문들. 엄마가 잘 대답을 못하자 의사가 지금이 2007년이냐고 질문을 바꾸었다. 그랬더니 엄마가 그렇다고 대답을 했다. 계절을 묻는 질문도 지금이 여름이냐는 것으로 바꾸자 아니라고 하셨다. 하지만 끝내 겨울인 것은 맞추지 못했다. 의사는 자신의 옷을 매만지면서 자기같이 이런 흰 옷 입은 사람들이 있고, 침대도 있는데 여기가 어딘지 알겠느냐고도 물었다. 엄마는 아까보다는 분명하게 병원이라고 대답했다. 의사는 이번에는 몇 가지 몸동작을 해보도록 했다. 먼저 해보도록 한 것은 오른쪽 손으로 왼쪽 귓불을 잡는 것이었다. 오른쪽 손으로 왼쪽 귀,라고 의사가 몇 번이나 말해도 엄마는 계속 오른쪽 손으로 오른쪽 귀를 잡았다. 의사는 다른 것을 시켜 보았다. 팔을 쭉 폈다가 검지로 코 끝을 만지고, 다시 팔을 쭉 펴는 것이었다. 하지만 엄마는 계속해서 코를 만지작 거리기만 했다. 의사는 거기까지 보더니 무릎 반사 검사 같은 것은 하지 않고 내게 말했다.

“이런 현상이 몸에 나트륨 수치가 낮아도 나타날 수가 있거든요. 아직 완전히 검사 결과가 나온 것은 아닌데 아까 잠깐 보니까 그게 맞는 거 같고요. 기다리고 계시면 내과 쪽에 전문의 분께서 다시 봐주실 거예요.”

그러면서 왜 이렇게 식사를 하지 않았는지, 하루에 얼마나 드시고 계셨는지 물었다. 나는 잘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같이 살고 있지 않으니, 내가 확인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전 날 봤던 모습으로 추정컨데 속이 메스껍고 울렁거리고 음식 냄새가 역해서 하루에 미음 한 그릇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고, 대신에 동네 병원에 영양제나 포도당을 맞으러 다니셨다고 대답했다. 동네 병원에서 퇴원하실 무렵부터니까 한 2주가량을 이렇게 지내셨던 것 같다고. 의사는 드라마에서 그러는 것처럼 이런 상태가 될 때까지 보호자가 뭘 한 거냐고 힐난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링거라도 맞고 다녀서 다행이라는 듯 그냥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서서는 다른 환자에게 가버렸을 뿐이다.


곧 식염수 링거액을 가져온 간호사가 엄마 팔에 링거 바늘을 꽂고, 커튼을 치고는 엄마의 바지와 속옷을 벗기며 내게 도와 달라고 했다. 그리고 소변주머니와 소변줄을 엄마의 몸에 달았다. 바지도 환자복으로 갈아 입혔다. 엄마는 불편한지 다리를 쭉 펴지도 못하고 이리저리 뒤챘다. 그리고 자꾸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했다. 간호사에게 물어보니 소변줄을 달면 원래 그런 느낌이 든다고들 하고 어쩔 수 없다고만 이야기했다. 다른 조치 방법은 없는 모양이었다. 엄마는 내 쪽을 바라보며 옆으로 누워서 나를 호소하듯이 바라보았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아 보여 왜 그러냐고 물으면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했다. 엄마는 내가 계속 눕혀도 곧 부들부들 떨면서 일어나 앉아서 신발을 찾았다.

“엄마, 여기 소변줄 보이지? 이거 따라서 오줌이 알아서 나가는 거야. 화장실 가도 안 나와. 그러니까 그냥 여기에 있어. 응?”

“....”

“이거 달면 원래 그런 느낌이 계속 든대. 적응해야 되는 거래.”

“이걸 어떻게 적응하냐.”

그런 문답이 서른 번도 넘게 반복되었다. 답답했다. 하지만 이해시킬 수 있는 방법은 내게 없었고, 나는 가능한 짜증내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화장실 가면 안된다고 이야기했다. 그렇게 실랑이를 하는 사이에 4시쯤이 되어 내과 의사라는 분이 와서 검사 결과와 앞으로 어떻게 치료할지 말해 주었다.

“지금 환자분이 일반 사람에 비해서 전해질 수치가 거의 3분의 2 정도… 중환자실 들어가야 되는 수준으로 낮게 나오고 있거든요. 전해질, 그러니까 소금 이온 성분이 낮아진 건데 그게 갑자기 뚝 떨어진 거는 아니고 식사를 오래 안 하셨으니까 차츰차츰 낮아진 거 같아요. 그러면 뇌가 부어서 구역질도 나고 메스껍고 정신도 좀 왔다 갔다 하고 그렇게 되는 거거든요. 그래서 이 수치를 정상으로 맞추는 치료를 할 건데 갑자기 또 정상 수치로 훅 올리면 뇌에 부종이 생길 수가 있어서 한 3, 4일 정도 거쳐서 서서히 올려야 돼요. 입원장을 써드릴 건데 그걸로 일반 병실이나 아니면 중환자실 입원하셔서 한동안 치료를 해야 합니다.”

딱히 다행이랄 것도 없는 결과이지만 가족들이 우려했던 것처럼, 뇌에 이미 손 쓸 수 없을만한 이상이 생긴 것은 아니라서 일단은 안심할 수가 있었다. 다만 일요일 저녁 시간이라 병실이 없었고, 언제쯤 나올 수 있을 것 같다는 언질조차 받을 수 없었다.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 지엄 마는 계속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힘없이 졸라 대었다.


여섯 시쯤 새언니가 잠깐 들어와 있을 때는 긴 실랑이 끝에 엄마가 조금씩 졸기 시작했다. 임신 7개월 차의 새언니는 응급실의 보호자용 플라스틱 의자 - 등받이도 없는 포장마차 의자 - 에 앉아 엄마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엄마가 약간 코를 골기 시작해서 새언니에게 나가 계셔도 될 것 같다고 했다. 응급실이 어울리는 사람이 있겠냐마는, 특히나 임산부에게 응급실이라는 공간은 아무래도 서로 상극인 것 같아 보였다. 새언니는 곧 미안해하면서 응급실 밖으로 나가고 다시 내가 그 의자에 앉았다. 나는 허리를 곧게 편 채로 주무시는 엄마의 얼굴을 계속 주의 깊게 바라보았다. 하얗게 질린 얼굴, 손가락 한 마디만큼 새로 자랐지만 염색하지 못한 흰머리, 마르고 튼 입술… 엄마는 입을 약간 벌리고 무릎을 세운채 주무시고 계셨다. 어쩐지 그렇게 바라보고 있자니 엄마를 마치 사물처럼 관찰하고 있는 나 자신이 사람 같지 않아, 잠깐 서늘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이상이 발생하면 바로 알아챌 수 있도록 지켜봐야 한다.

시간은 지루하게 흘러갔다. 맞은편 병상에서는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할머니가 고함에 가까운 크기로 끙끙 앓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등골이 쭈뼛 서는 소리여서 그걸 계속 듣고 있으면 누구라도 병에 걸릴 것 같았다. 뒤편에는 배가 아픈 여자가 병상에 누워 진통제의 효과가 돌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보호자 중 한 명이 어린 아기를 안고 있어, 이따금 아기가 보채는 소리를 냈다. 옷을 갈아 입힐 때나 병상을 떠나는 사람이 생기면 간호사가 커튼을 치는 소리가 났다. 누군가가 신발을 약간 끌면서 지나간다… 그리고 엄마는 어느새 다시 눈을 뜨고 있었다. 엄마의 눈동자는 한동안 흔들흔들 자리를 잡지 못했다. 이윽고 나를 발견한 듯했다. 그리고 다시 입을 열었다.

“화장실 갈래. 왜 못 가게 해?”

7시쯤 아버지께서 집에서 물건들을 몇 가지 가지러 갔다가 돌아오시자 엄마는 이제 아버지께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졸랐다. 아버지는 암 때문에 반 년 이상을 입원해 있으면서 소변줄을 달고 있어봐서, 그게 어떤 기분인지 잘 아시는 듯했다. 아버지는 간호사에게 소변줄 잠깐만 떼고 화장실에 가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간호사가 딱히 소변줄은 뗄 필요가 없고 화장실은 다녀오고 싶으시면 다녀오시라고 했다. 그리고 움직이기 쉽도록 어느 정도 차 있던 소변 주머니를 비워 주었다. 가도 되는 거였나? 내가 의심하는 사이에 아버지는 바퀴가 달린 링거대를 가지고 와서 엄마가 맞고 있던 식염수 주머니를 옮겨 주었다. 나는 엄마에게 신발을 신겨 주고, 소변주머니가 아래로 가도록 링거대에 매달고 엄마를 부축하여 화장실에 갔다. 간호사가 환자분이 화장실을 갈 때 반드시 보호자가 같이 가라고 해서, 화장실 칸 안쪽까지 같이 들어 갔다. 엄마는 바지를 내리고 조심조심 변기에 앉았다. 잠시 후, 소변줄을 따라서 노란 액체가 주르륵 나와 소변주머니로 흘러들어 갔다. 엄마는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힘겹게 일어나 바지를 올렸다. 내가 변기 물을 내려 주며 시원하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대답했다. 화장실을 다녀오고 나자 엄마는 옆으로 웅크리고 누워서 다시 졸기 시작했다. 고단해 보였다. 중환자실에 가도 이상할 것이 없는 상태에 올해가 몇 년인지 기억은 하지 못해도, 엄마는 병상에 누워서 그냥 소변을 본다는 것을 상상도 못하는 모양이었다.

다음날 출근을 해야 하는 나와 오빠와 새언니는 아버지를 남겨두고 밤 9시 즈음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아버지는 엄마 옆에서 등받이 없는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오늘 밤을 지내야 할 것이다. 간호사는 전해질 수치 변화를 봐야 해서 4시간마다 엄마의 피를 뽑을 것이라고 했다. 아직도 맞은편 할머니의 아이고 어쩌고 하는 신음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그저 빨리 병실이 나기만을 바랐다. 우리가 간다고 하자 엄마는 새언니에게 다시 웃어 보였다. 금방 다시 올 테니 푹 쉬고 계시라며 손을 흔들자 엄마가 어쩐지 이상하다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보다가 기운이 다한 듯 고개를 돌렸다.


나는 집에 와서 허겁지겁 뭔지 기억이 나지도 않는 것을 먹고, 씻고, 자려고 누웠다. 엄마의 창백했던 얼굴과, 호소하듯 날 바라보던 눈빛이 자꾸만 내 얼굴에 들러붙는 느낌이 든다. 내가 병상에 누워 있는 나 자신의 얼굴을 보고 있는 듯이 끈적하고 불안한 기분이다. 내일은 엄마가 오늘보다 조금이라도 낫기를 바라면서, 그리고 자꾸만 가슴 위에 묵직하게 얹히는 죄책감을 밀쳐 내면서, 잠을 기다린다. 기다린다.

기다린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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