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소하다

꿈꾸는 중독자

<중독>에 관한 이야기 ㅣ 안창은

by 한공기
스크린샷 2016-09-26 오후 5.20.22.png 그래픽 디자이너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 채 살아가는 것 같아요. 저 역시도 자아를 찾아 방황중입니다. 그러데 그 방황이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아요. 마치 퍼즐이 맞춰지듯 나의 조각이 하나 둘 모여지는 것같거든요


작가 프로필 ㅣ 안창은

그래픽디자인과 웹UI개발 경계에 서있는 감성인




중독, 나에겐 너무나 익숙하지만 낯선, 모순 같은 단어이다. 몇 가지 것들에 대한 중독으로 비록 사소하고도 좁은 세계였을지라도 온전히 내 전부였던 세계가 블랙홀과도 같았던 적이 있었다.


13살부터 19살까지는 게임에 미친 듯이 빠져있었다. 남들은 수능 공부하느라 밤을 새우는데, 나는 게임을 하느라 밤을 새웠고, 그런 밤을 보내고 난 다음 날이면 학교에서, 공부는커녕 모자란 잠을 보충하기에 바빴고 점심시간이 되어서야 친구가 흔들어 깨워 잠에서 깨는 날이 많았다.

재수를 하게 되었지만, 게임을 온전히 끊어내지 못했고, 공부하는 동안 오래 집중해서 열심히 한 날엔 나 스스로 나에게 게임을 할 시간으로 보상했다. 어찌 보면 게임을 할 구실을 만들고자 자기합리화를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습게도 학교에선 배우지도 않았던 과목이 즐겨하던 게임 덕분에 수능에서 상위 5% 안에 들게 되었다. 인생은 공평하다고 누군가가 그랬듯, 게임이 그 과목 점수를 상위 5%로 만들어 놓았지만, 다른 과목을 소홀히 했던 나는 대가를 마땅히 치러야 했다.


19살부터 20대 중반까지는 드라마와 영화에 빠져 살았다. 처음엔 일본드라마, 일본영화를 봤다. 일본드라마를 2년 정도 몰아서 보니 더는 볼 게 없었다. 그쯤 석호필이 주인공인 프리즌 브레이크를 시작으로 위기의 주부들, 히어로즈 등 각종 미국드라마가 우리나라에서 인기를 얻기 시작했고, 나 역시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그 대열에 합류했다. 몇 년을 일본드라마, 미국드라마를 몰아보다 보니 귀가 조금씩 트이는 게 느껴졌다. 네이티브 처럼 알아듣고 해석이 된다는 말이 아니라, 영어가 좀 더 내가 아는 단어들로 조합된 영어처럼 들렸다. 아예 외계어 같았던 언어가 영어로 들리는 느낌이랄까? 내가 미국 드라마에 빠져 보냈던 수많은 시간을, 나는 토익 LC 점수로 보상받게 되었다. 영어에 대한 손톱만큼의 흥미와 함께.


하지만 내가 경험했던 중독은 중독이라고 하기엔 무색할 정도로 오래 지속되지도, 전문적이지도 않았고, 글로 옮기려니 마치 습한 나무에 불씨를 옮기는 것처럼 생각이 잘 뻗어 나가지 못했다. 그러던 중 어린 왕자와 술꾼 이야기가 떠올랐다.

어린 왕자가 술꾼에게 술은 왜 마시냐고 물어보자 술꾼은 몹시 침울한 표정으로 창피한 걸 잊어버리려 마신다고 대답한다. 뭐가 창피하냐는 어린 왕자의 말에 술을 마시는 게 창피하다고 대답하는 술꾼을 보며, 어린 왕자는 어른들이 참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있어서 중독이란 어린 왕자에서 언급된 술꾼과도 같다. 중독은 곧 결핍, 모자람에서 비롯되고 창피함, 또는 죄책감 같은 것을 동반한다. 반복된 행동에서 깨달음을 얻어야 할 인간은 깨달음을 얻기엔 너무나 나약하다.

나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나는 중독자이다. 나는 무엇에 결핍되어 있는가? 만화, 영화, 드라마, 소설, 게임 등 다양한 매체에 허덕여온 나는, 이야기가 주는 꿈과도 같은 허상에 결핍된 것은 아닐까?

중독을 이겨내기에 나약한 나는 또 무언가에 위태로울 정도로 중독이 되겠지만, 또다시 이야기를 꿈꾸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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