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소하다

팟캐스트 중독

<중독>에 관한 이야기 ㅣ 이상은

by 한공기
스크린샷 2016-04-04 오후 1.38.04.jpg 사업가
갑자기 얻는 깨달음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그 깨달음을 유지시키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느낍니다.

작가 프로필 ㅣ 이상은

Keyword: 연극, 여행, 춤, 다이어리, 팟캐스트




보통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스마트폰의 팟캐스트 켠다. 다른 사람들이 리모콘으로 TV를 트는 것처럼 말이다. 집안일, 식사, 버스탈 때에도 틀어놓는 팟캐스트는 몇 년 전부터 나에게 가장 영향력 있는 매체가 되었다. 스스로 중독되었다고 생각하면서도 절제가 잘 안 된다.


첫 각성은 2012년 대선결과 덕분이었다. 나꼼수,이이제이 등 진보성향의 팟캐스트를 들으면서 지지하는 야권의 승리를 확신했다. 막상 여권후보가 당선되니까 충격이 컸다. ‘편향된 정보만 받아들여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했고, 내가 틀릴 수 있다’는 것을 강하게 느끼게 된 사건이였다. 이런 깨달음에도 불구하고, 중독은 더 심해졌다. ‘힘이 없으면 지는 거구나. 일단 내가 힘이 있는 존재가 돼야겠다’는 결심까지도, 팟캐스트를 통해 실현시키려고 한다.


실제 팟캐스트는 나 자신을 발전시키는데, 많이 도움이 되었다. 내 관심사가 오롯이 ‘나’에서 한국사회와 세상으로 확장시켜 주었다. 진행자들의 의견을 들으면서 내 생각의 폭도 넓어진다고 생각한다. 우연히 발견한 팟캐스트 ‘적분이 콩나물 사는데 무슨 도움이 돼?’ 덕분에 요즘 수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요즘 실생활과 수학을 연결시킨 책을 읽으며 세상을 보는 창을 하나 더 얻은 것 같아 흐뭇해지며, 팟캐스트 듣기가 더 좋아졌다.


요즘 화제가 되는 사건을 팟캐스트를 통해 파악한다. 신문읽기도 귀찮고 기존 매체에서 제대로 된 정보도 안 제공 안되는 데다가, 내 식견도 턱없이 부족한 것 같아서 또다시 팟캐스트에 의존하고 있다. 출연자들의 통찰에 감탄하면서, ‘깊이 있는 생각을 자꾸 듣다보면, 나도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될 수 있어’하는 생각을 한다. 대선 때처럼 정보를 편향되게 받아들이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 못 벗어나는 것일까?


뭔가 습득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이다. 글자를 읽어서 정보를 얻는 것보다 듣는 것은 에너지가 확실히 적게 소모된다. 따로 시간을 내서 듣는 게 아니라 다른 일을 하면서 하니까, 시간도 효율적으로 쓰고 있다고 생각한다. 멀티태스킹(multi-tasking)이 집중력을 흐트러트린다는 최신 연구결과에도, 들은 팟캐스트 개수와 동시에 내가 처리한 일들이 더 크게 느껴진다. 돌아다니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팟캐스트는 가만히 있어도 정보와 타인의 시각을 제공해주는 꽤 매력적인 수단이다. 이런 장점들 덕분에 중독에 빠진 나를 합리화하면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이다.


팟캐스트가 내면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게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3년 전에 연극동호회에서 공연준비를 하는데, 한 달 동안 팟캐스트를 거의 안 들었다. 스트레스가 심해 외부의 자극을 받아들이기 싫고, 적막 속에서 내 자신에 집중하였다. 느끼는 게 많았던 그 경험덕분에 고요한 일상생활을 즐기려고 해도, 어느 순간 또 팟캐스트 어플을 실행시킨다.


내 나름대로 원칙을 정했다.

1. 동일한 시사이슈를 다룬 에피소드가 여러 개 올라올 경우, 한 개만 골라듣는다. 시간을 절 약하고 비슷한 의견을 자주 들으며 편향된 시각을 갖게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2. 영화, 책에 대한 내용을 다룬 것은 듣지 않는다. 내가 컨텐츠를 받아들일 때 출현자의 견 해가 크게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3. 책으로 보아서 이해하기 쉬운 내용이라면 굳이 팟캐스트를 통해 정보를 습득하지 않는다.


이 규칙들이 현실에서 반드시 지켜지는 것은 아니다. 얼마 전에 영화토론 모임에서 ‘매트릭스’ 발제를 하게 되었는데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때마침 ‘지대넓얕’에서 분석을 해주고 이해하는데 관련 영화 ‘애니 매트릭스’를 추천해줘 큰 도움이 되었다. 무심결에 그냥 듣다가 원칙들을 생각하며 중단시킬 때도 많다.


다행히 글을 쓰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 팟캐스트에서 들은 것은 내 머리에 너무 쉽게 입력이 되고, 출력(output)이 안 된다는 것이다. 다른 정보들은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주체적인 사고 작용이 일어난다. 맡은 과목을 공부해서 야학교사로서 수업을 하고, 책을 읽으면 인상 깊은 부분을 적어놓거나 짧게 후기를 쓴다. 생계를 위해 자료를 가공해서 블로그에 글을 올린다. 이런 과정을 통해 완전히 내 것이 되고, 구체적인 성과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팟캐스트를 들을 때는 순간적으로 좋은 정보라고 판단을 하거나 ‘아, 그렇구나’라며 감탄을 하지만, 곧 이어서 들려오는 정보에 의해 앞의 것들이 지워진다. 더 빨리, 많이 듣고 싶어서, 심지어 재생속도를 1.5~2배 속으로 듣는다. 효율적이여서 좋으면서도 내가 정보를 머리에 쑤셔 넣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팟캐스트를 듣는 것은 마치 TV에서 요리 프로그램을 보는 것과 비슷하다. 고수가 알려준 비법대로 하면 더 맛있는 음식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직접 재료를 다듬고 불을 사용하고 간을 맞추어보면서 진짜 내가 맛있는 음식을 만들 수 있는데 말이다. 요리 프로그램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멋진 요리를 할 수 있어’라고 생각만 하는 것처럼, 팟캐스트에서 얻는 정보와 통찰을 들을 때만 좋은 느낌이다. 이제 좀 더 곱씹어보고, 좋았던 것을 기록해야겠다.


과거에 게임, 인터넷, 스마트폰 중독에 걸렸었는데 완전히 또는 어느 정도 벗어났다. 프로그램을 삭제하거나 사용시간이 어느 정도 넘으면 차단되게 하는 등 극단적인 방법을 썼더니, 자연히 벗어나게 되었다. 그런데 팟캐스트가 주는 장점들 덕분에 강제적 방법들을 차마 실천에 옮기지 못하고 있다. 나에게 유일한 방법은 가끔씩이라도 그 중독의 폐해를 인식하고 절제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또 다시 중독에 빠지더라도 그 때 또 각성하고 절제하려고 노력하면 된다. 다행히 ‘중독-각성’에서 이르는 시간이 점차 짧아졌다는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너무 빨리 틀지 말아야겠다. 평상시에 고요함을 좀 더 즐겨야겠다’고 생각하며, 팟캐스트 채널 몇 개를 큰 마음먹고 지웠다. 팟캐스트 중독에 대한 글을 쓰며 생각을 많이 해서인지 이번 각성과 절제는 더 크고 오래 갈 것이다. 이렇게 중독의 정도가 점차 약해지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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