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소하다

귤을 더 맛있게 먹는 법

<귤>에 관한 짧은 이야기 ㅣ 이상은

by 한공기
스크린샷 2016-04-04 오후 1.38.04.jpg 사업가
갑자기 얻는 깨달음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그 깨달음을 유지시키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느낍니다.

작가 프로필 ㅣ 이상은

Keyword: 연극, 여행, 춤, 다이어리, 팟캐스트






활동하는 아마추어 연극극단 연습실에 갔는데, 귤 한 상자가 선물로 들어와 있었다. 요즘 신입워크샵 공연준비 중이어서 선배들이 힘내라고 사다놓은 것이다. 계속 귤을 먹어대는 내 모습을 보고 누군가 ‘넌 먹으러 온 거야? 스텝일 하러 온 거야?’라고 핀잔을 주었다. 그 사람에게 귤을 몇 개 가져다주고 또 하나 까서 맛있게 먹었다. 귤이 더 새콤달콤하게 느껴졌다. 컵라면, 과자, 빵도 들어오긴 하지만 평소 안 먹는 것들이어서, 귤에만 손이 간다.


2012년 신입워크샵을 할 때에는 그냥 귤을 먹을 수 있어 좋았다. 차츰 극단에서 귤은 선배들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매개체가 되었다. ‘개인사정으로 그만두었어도 극단에 대한 애정이 여전하고 자기가 받은 사랑을 다시 보여주는 거구나. 언젠가 나도 그렇게 되겠지’하는 생각에 마음이 뭉클해진다. 귤 먹는 속도가 자연스레 느려지면서, 그 맛을 음미하게 된다. 상자에 귤이 가득 차있으면, 누군가 응원을 와줬다는 것이고, 바닥이 보이면 배우와 스텝들이 먹고 공연을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굳이 먹지 않아도 극단이 잘 돌아가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진다.


금요일 밤 야학에서 강의를 마치고 집에 갈려는 데, 교무실에 귤이 서른 개가 있었다. 자원봉사 교사들에 대한 감사표시로 학생 어머니가 간식으로 가져다주신 것이다. 미처 발견하지 못해 한 개도 못 먹은 게 억울해, 집에 가져가서 먹기로 했다. 내가 아무리 귤귀신이라 하더라도, 다 가져간다는 것은 양심에 걸렸다. 동료선생님들 3명에게 ‘주말에 올 사람도 없는데, 그대로 놔두면 상태 안 좋아져요’라며 억지로 7개씩 가방에 담아주었다. 세 명 모두 신입교사라서 6년차인 나처럼 대담하지 못했다. 단체로 받은 것을 개인이 가져가는 것은 용기가 약간 필요한 일인데, 내가 챙겨주니 좋아했다. 집에서 귤을 먹으며 흐뭇해하는 동료 교사들을 생각하니 더 맛있게 느껴졌다.


어렸을 때 나는 유난히 귤을 좋아해 많이 먹어 손톱에 귤 부스럼이 노랗게 끼곤 했다. 귤 상자를 새로 열면, 내 것을 최대한 확보해 재빨리 책상의 큰 서랍에 넣어두었다. 손님들과 남동생의 양이 줄어들었다는 게 흐뭇했다. 그 때 귤은 참 달콤했다. 어렸을 때 귤은 항상 맛있었는데, 이제 다른 사람과 함께 먹을 때 더 맛있다는 것을 느낀다. 내성적인 성격이기 때문에 혼자 하는 것을 좋아하지만,타인과 함께 하는 즐거움에 대해 생각을 요즘 많이 하기 때문이다.

이제 귤은 나와 세상을 연결하는 아이콘이 되었다. 야학과 극단에 있었던 일에서 그 상징성을 느끼면서 다른 일들도 연달아 생각난다. 고향 가는 기차에서 옆자리의 할머니가 귤을 주면서 대화의 물고를 텄을 때가 떠오른다. 누군가 귤을 갈라 절반을 나에게 주었을 때 허기와 갈증을 동시에 해결해서 좋았는데, 지금은 소소한 정이 느껴진다. 엄마가 도시락 가방에 귤 몇 개를 넣어두어서 친구들과 나누어먹던 학창시절이 그립다.

극단에 결혼한 선배가 딸을 데려왔다. 5살 꼬마에게 귤을 까주어서 손에 쥐어줬는데 ‘이모도 하나만’이라며 굳이 아이에게 달라고 했다. 그 애가 내 입에 넣어준 몇 조각이 최근 몇 년간 먹은 것 중 가장 맛있는 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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