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소하다

박스 속의 귤

<귤>에 관한 짧은 이야기 ㅣ 최나영

by 한공기
스크린샷 2016-01-22 오후 5.01.21.png 연희동 카페 도피성 주인
종일 카페에 있으며 전 저만의 다락방을 상상해요. 다락방 속에는 제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세계에 존재했던 가장 소중한 것들이 정돈되어 있죠. 그 다락방에서 진정한 제 자신을 만나곤 하죠. 저는 저만큼 신비로운 존재를 이제껏 만나본 적이 없어요.


작가 프로필 ㅣ 최나영

기독 신학교 출신인 그녀는 서양 철학과 동양 철학에 관심이 많다. 매일 그녀의 성에 들르는 수많은 사람들과 마주하며 우주와 인간의 본질을 탐구한다.




"딩동딩동, 딩동딩동"

여기 저기서 터지는 참았던 한숨 소리, 책 덮는 소리, 의자 밀리는 소리, 기지개와 함께 터지는 하품 소리를 사이로 탁탁탁, 교탁을 때리는 몽둥이 소리가 가로지른다.

"자자, 주목! 종 울렸다고 끝난 거 아니다. 아직 내 말 안 끝났어."

"아, 왜 저러냐, 또..."

"니들 중간고사 끝난지 얼마 안 된 것 같지? 곧 학기말고사다. 정신들 차려. 반장!"

"차렷, 경례!"

분명 빛이 소리보다 빠르다고 배웠다. 그런데 아니다. 하교의 아우성은 빛보다 빠르다. 빛보다 빠르게 퍼져나가는 우리들이 만들어 낸 소음과 먼지들이 오후 햇살 아래 흩날려 교실에서부터 복도로 퍼져 나간다. 소음이 전부 빠져나간 후에도 먼지는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교실을 맴돈다. 우리가 만들어 낸 먼지, 나는 오늘도 이 먼지들 사이에 있다. 우리가 먼지인지 먼지가 우리인지 알 도리는 없다. 나는 턱을 괴고 앉아 우리가 만들어 낸 먼지를 크게 들이마신다. 아직 창문 너머 운동장은 평온하다.

"집에 안 가?"

"먼저 가."

학교의 정의. 그것은 매우 간단하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도 모자라 같은 옷에 같은 책상, 같은 머리를 하고 앉아 같은 방향을 보고 있는 것. 그것이 학교이다. 학교의 존속을 위한 필수조건이 있다면 그것은 자립하지 않는 학생들이다. 학생들이 생각할 것은 없다. 선택할 것도 결정할 것도 없다. 학생의 본분이 무엇인지는 학교가 이미 결정해 놓았다. 나는 그냥 학생들이다.

이상한 일이다. 학교가 나에게 제공한 시간엔 학교가 무엇인지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누구인지도 궁금하지 않다. 그런데 학교가 나에게 주지 않은 시간이 오면 이를 테면 지금 같은 시간, 학교는 나에게 말을 걸곤 한다. 학교는 무엇이고, 나는 누구인지 궁금하지 않냐고 물어본다. 텅 빈 교실 텅 빈 시간에 내가 턱을 괴고 있는 이유이다. 그러는 사이 교실과 복도에 가득했던 아우성은 창문 밖 운동장에 넘치고 있다. 저 아우성이 다 넘쳐 흘러가고 나면 바둥대던 운동장 흙먼지들도 다시 평온을 찾을 것이다. 나도 그럴 것이다.

끼이이익, 녹슨 창문을 두 팔을 다해 밀어 열었다. 몽글몽글 피어오르던 흙먼지들이 다시 바닥을 향하고 있다. 내리쬐는 햇살 사이로 시린 바람이 틈을 찾는다. 꽤나 날카롭게 비집고 들어오는 바람은 잽싸게 내 뺨을 할퀴고 지나간다.

'아, 진짜 벌써 겨울 오나...'

엄마는 가을을 좋아했다. 구겨진 낙엽을 보는 엄마의 까만 눈동자는 유독 빛났었다. 가을이 뭐가 좋아? 가을은 재미 없잖아. 빨리 겨울이 와서 눈사람 만들고 싶어, 어린 나의 투정에 엄마는 확신 가득한 미소로 말했다. 가을을 조금만 더 지켜봐. 분명 우리 지아도 가을을 엄청 좋아하게 될 걸.

나는 가을이 언제 왔는지 또 언제 가는지 모른다. 매번 놓친다. 눈 깜짝할 사이에 와선, 또 그렇게 가 버린다. 나는 언제부턴가 사계 속에서 오감을 부릅뜨고 가을을 잡으려 기다린다. 그렇지만 이렇게 또 가을을 놓치고 말았다. 아무래도 어렸던 나에겐 최고의 계절이었던, 지금의 나에겐 한 해를 진단하는 무서운 학기말의 계절인 겨울이 나 몰래 가을을 살짝 밀어내고 내려앉은 것 같다.

'어우 추워... 나도 슬슬 일어날까. 엄마는 집에 왔으려나..'

코가 맵다. 겨울은 매번 내 코부터 부여잡아 비튼다. 보일러를 강으로 틀고선 침대 위 이불을 질질 끌고 내려와 방바닥에 돌돌 말아 눕는다. 이제 베란다 문은 닫아야겠네, 자꾸 눈치 없이 찬바람을 내뱉는 베란다를 향하던 내 눈은 연이어 차가운 타일 바닥 위 귤박스에 가 달라붙는다. 어제 저녁 엄마가 사온 귤이다. 엄마는 겨울 내내 지겹도록 먹을 귤을 겨울도 아닌데 왜 사와? 난 단감 먹고 싶은데, 했던 어제의 나는 이불을 돌돌 만 채로 귤을 향해 시리고 무거운 발을 옮기고 있는 오늘의 나에게 밀려 뒷걸음친다. 베란다로 나간 나는 귤박스 앞에 쭈그리고 앉는다. 그리 크지 않은 박스에 꽤나 많은 귤들이 옹기종이 모여 있다. 이 귤들은 다 한 나무에서 맺은 열매들이려나? 아니면 다 다른 나무에서 따 왔을까? 그러고 보니 귤나무가 어떻게 생겼더라? 가만히 앉아 귤들을 마주하고 있자니 새삼 귤들에 대해 궁금한 게 많아진다. 허투루 봤을 땐 똑같아 보였던 박스 속 귤들을 자세히 보니 껍질 색도 모양도 촉감도 냄새도 조금씩 다 다르다. 조심히 하나의 귤을 들어 만지작 거리던 나는 귤이 다 똑같은 귤이지 뭐, 했었던 시간들이 떠올라 자꾸 미안한 마음이 솟는다. 이 귤은 얼마 전 자신의 모체인 나무에 달려있었을 것이다. 어느 날 사람들이 와선 귤들을 따 박스에 넣었을 것이고 그 때 내 손의 이 귤도 한 박스에 들어갔을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 농부 아저씨들의 수고에 대해 배웠었다. 그런데 오늘은 왠지 귤에게 다른 마음이 든다. 다른 씨앗, 다른 나무에서 커 온 이 귤들을 하나의 박스에 아무렇게나 넣었다고 해서 그게 그거인 귤들이 되는 건 아닌데. 난 다시 학교에 가 앉는다. 같은 옷, 같은 책,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나와 내 친구들이 내 마음에 들어와 앉는다. 귤이 나를 막연히 바라본다. 나와 귤의 만난 시선이 허공에서 뒤엉킨다.

"지아야!"

엄미가 왔나 보다. 엄마도 하릴 없이 찬 냄새부터 집 안에 들여놓는다. 남의 집 현관엘 주저 없이 성틈 들어온 찬 기운은 풀릴 줄 몰라 엉켜있던 나와 귤의 시선을 당차게 가른다. 어, 귤 잘 찾았네? 배고프지. 귤 먹으면서 좀만 기다려 엄마가 금방 카레 해 줄게, 아, 지아야, 베란다 가서 박스 속에 감자 두 개만 가져다 줄래? 귤박스 옆에 보면 있을 거야, 착하지 우리 딸. 내 손에 꼭 쥐어진 귤 하나를 보던 엄마가 겉옷만 대충 벗고 앞치마를 두르며 숨가쁘게 말한다. 아 엄마 감자도 박스 속에 있어? 나는 한 손에 귤을 꼭 쥔 채로 엄마를 향해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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