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소하다

나는 몇 개의 귤을 먹었을까?

<귤>에 관한 짧은 이야기

by 한공기
스크린샷 2016-02-03 오후 4.16.59.png 재생에너지 연구가


책상 앞에서가 아닌 사람들 속에서 좀 더 현실적이고 모두가 쉽게 접근 가능하고 실현 가능한 재생에너지 정책을 조사하고 연구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작가 프로필ㅣ 윤성권
평소에 꿈을 디테일하게 꾼다. 그것을 각색해서 쓰면 재밌겠다고 생각함





지난주에 인터넷으로 귤을 주문했다. 한 상자라서 오래 먹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아침저녁으로 부지런히 먹으니 한 상자가 금방 동이나 버렸다. 겨울철에 많이 접하는 귤은 영화나 TV를 보면서 먹으면 엄청난 중독성을 발휘하는 것 같다. 꽤 많이 있었던 것 같은 데 어느새 그걸 다 먹었다는 것을 보고 화들짝 놀라기도 한다. 심지어 귤은 다른 과일과 다르게 껍질 까는 게 무척 간편해서 흡입 속도가 빛처럼 빠르다.

특히 올해에는 12월이 되기 전에 한 상자의 귤을 먹었으니 이번 겨울에는 대략 2~3상자의 귤을 먹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상해 본다. 이번 겨울에만 2상자 이상의 귤을 먹어치울 예정인데,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과연 몇 개의 귤을 먹었을까? 내가 만약 약탈자라면, 과연 몇 개의 귤이 나에게 희생되었을까? 갑자기 궁금해졌다.

사실 나는 이런 부질없는 숫자를 가지고 종종 고민한다. 얼마 전에는 강남역 주변에 식당을 갔는데, 그곳은 인테리어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벽면에 높은 진열장을 세워놓고, 특유의 녹색 빛깔이 나는 소주병으로 그 진열장을 채워놓았다. 소주병이 엄청 많아서 다 세어볼 수는 없었지만, 그걸 보고 난 후 내가 지금까지 소주를 몇 병이나 마셨을까 궁금해졌다. 먼저 통계를 확인해보니 일반적인 성인이 1년에 약 6~70병의 소주를 마신다고 한다. 난 평균 이상이니깐 그보다 더 마셨을 것 같긴 하다.

음. 일단 계산을 해보겠다. 일주일에 한 번, 그리고 그 자리에서 대략 두 병의 소주를 마신다고 가정하면. 한 달이면 8병. 일 년이면 96병이 된다. 물론 일주일 넘게 술을 마시지 않을 때도 있다. 하지만, 일주일에 2~3번의 술자리가 있을 때도 있고, 그 자리에서 2병을 넘게 마신 적도 있으니 오차가 크지는 않을 것 같다. 여기서 대략 10년 정도 술을 마셨다면 내가 평생 마신 소주는 자그마치 960병이다. 아마도 강남역 그 식당의 모든 벽면은 내가 마신 소주병으로 채웠을 수도 있을 것이다.

다시 돌아가서 귤은 한 상자에 몇 개나 들어갈까? 대략 50개 정도 들어가려나? 그럼 이번 겨울에 거의 100개가 넘는 귤을 먹어치울 계획이다. 100이란 숫자가 넘어가니 갑자기 나란 존재가 무식하고 미련하게 느껴진다. 100이 결코 큰 숫자는 아니지만, 왠지 100은 정말 큰 숫자 같다. 갑자기 귤에게 미안해진다.

어쨌든 글을 마무리하기 위해서 지금까지 먹은 귤을 대충 계산해보려고 하는 데 어렵다. 변수가 생각보다 많다. 초등학생보다도 더 어렸을 때부터 귤을 먹었을 것이라서 내가 몇 년간 귤을 먹었는지 판단하기 어렵다. 또한2년간의 군 생활이나 귤을 접하기도 어려운 1년간의 몽골생활도 있어서 매년 먹어온 귤의 편차가 너무 크다. 계산이 복잡했지만, 결론적으로 적게는 몇백 개에서 많게는 천개가 넘는 귤을 먹었을 것 같다.

한 그루의 사과나무가 아닌 한 그루의 귤나무는 몇 개의 귤을 수확할 수 있을까? 어림잡아 수십 그루의 귤나무에서 1~2년 동안 열리는 귤이 나에게 몽땅 희생된 것 같다. 나중에 귤나무를 보면 감사의 마음이라도 전해야겠다. 아니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나는 한 그루의 귤나무를 심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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