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소하다

tangerine knit

<귤>에 관한 짧은 이야기 ㅣ 김연정

by 한공기
스크린샷 2016-05-11 오후 1.52.32.png 디자이너


즐거운 감정은 빨래가 마르듯 금방 날아가 버리고, 우울한 감성, 생각들은 언제나 침전하여 남아있음을 느낍니다. 우울함, 불안함, 슬픔, 좌절감에 예민하고 행복에 예민하지 못한 제 자신이 조금 부정적인 사람이라고 느껴지지만, 아직까지는 수면 위 햇살보다는 우울한 바다 쪽이 더 좋은 것 같습니다. 어두운 것들이 가라앉아 있는 심해心海 속을 당분간 탐구하면서 글을 써 볼 예정입니다. 언젠가는, 나를 힘없게 만드는 것들에 대한 예민함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에게로 자리를 옮겨가길 기대합니다.





재킷을 몇 번 걸친 것 같더니만 벌써 패딩이 절실한 계절이 오고야 말았다. 올해는 작년보다 가을이 짧아진 듯 느껴졌고 여름은 더욱 여름, 여름, 여름스러웠다. 아마도 올 겨울도 여름만큼이나 더 겨울, 겨울, 겨울스럽지 않을까.

오랫동안 묵혀둔 옷들을 꺼냈다. 니트에는 보풀이 꽤 많이도 일어나 있었다. 다들 계절이 바뀔 때마다 하는 생각을 나도 한다.

‘작년에는 뭘 입고 다녔지..?’

아무래도 니트 몇 벌을 더 사둬야겠다.



옷은 직접 보고 사는 것이 실패할 확률이 적기도 하고, 계산 후 산 물건을 바로 손에 넣을 수 있는데서 오는 만족감도 큰 편이라 쇼핑할만한 장소들을 떠올려보고 있었다. 그런데 나가려고 작정하니 일이 바빠지는 바람에 도저히 나갈 수가 없다. 결국 빨리 새 옷을 입고 싶은 마음에 틈이 날 때마다 인터넷으로 쇼핑몰을 둘러보았다.

가끔 들리는 쇼핑몰들의 옷들은 다 비슷하다. 니트의 디자인이 얼마나 색다를 것이 있겠냐마는.

아무래도 타 계절의 것보다 장식성이 덜하고 소재에 따라서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디자인의 차이는 재단선의 위치에 따라 결정되는 것처럼 보이는데, 어깨선이 어깨에 미칠 듯 못 미칠 듯 하면 딱 붙는 핏의 디자인이 대부분이고, 어깨를 훌쩍 넘어가버리면 넉넉한 오버핏이다.



어깨선에 민감한 나는 옷을 고르기가 여간 쉽지 않다. 신장과 골격이 평균치보다 큰 탓에 오버핏의 두꺼운 옷을 잘못 입으면 부해 보이기 쉽고, 달라붙는 스타일의 옷들은 대부분 잘 맞지 않는다. 어깨에 맞춰 사이즈를 고르면 몸통이 크고, 몸통에 맞춰 사이즈를 선택하면 어깨가 낀다. 비교적 사이즈가 다양하게 나오는 해외브랜드의 옷을 입자니 지갑사정이 따라주질 않는다. 이처럼 어깨 재단선은 내게 골칫거리인데 ‘홀가먼트’라는 타이틀이 눈에 띈다. 알고 보니 옷의 부분들을 제작해서 이어 만들지 않고 한번에 통으로 제작하는 방식이란다. 재단선이 애매하게 떨어지느니 차라리 이게 나을까 싶다.



각지지 않고 둥글고 좁은 어깨를 가진 사람이 실 짜임이 두꺼운 밝은 톤의 니트를 입은 것을 보면 참 부럽다.

둥글게 떨어지는 어깨라인, 내가 가지지 못한 것.

귀엽고 동글동글한 느낌들.



가끔 상상을 한다.

내가 좋아하는 나의 모습, 또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습들을.

내가 좋아하는 분위기를 가진 사람이 내가 동경해마지않는 옷과 컬러로 치장했을 때의 모습을. 질이 좋아 보이는 니트 사이로 향수의 잔향이 은은하게 베어 나오는 것을. 소매사이로 알이 큰 클래식한 시계가 드러나는 모습을.

겨울 사람들의 모습에 대한 페르소나를 열거하자면 끝이 없다. 정작 나는 ‘돈을 쓰지 못하는 병’에 걸려 상상을 하는 것으로 만족하지만 말이다.

아무튼 겨울은 그런 것들을 상상하기에 좋다.



살만한 옷이 없어 둘러보는 것을 그만두고, 어슬렁거리며 식탁 위의 귤을 하나 집어 들었다. 손 안에 딱 들어오는 작은 사이즈다.



참 넌 동글동글하고 귀엽구나.

귤껍질을 벗기는 데도 난이도가 다른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던데, 나는 그냥 평범한 방식으로 껍질을 깐다. 보자기를 풀 듯 껍질을 사방으로 벌려놓고 나면, 말캉말캉한 알맹이들이 참 먹기 좋게도 커팅이 되어있다. 셀 수 없이 많은 상큼한 알알들이 한데 모였고, 그것이 얇은 비닐로 정성스럽게 포장되었다. 그런 다음 잘 떼먹기 좋으라고 의도한 것인지는 몰라도 흰색의 찍찍이들이 덕지덕지 붙어있다. 이렇게 실용적일 수 없다. 그 작은 꾸러미들이 원으로 옹기종기 모여 있으면, 그것을 푹신한 주황색 덮개가 하나로 모은다.

홀가먼트식이다.



귤을 한 알 먹는다.

내게서 귤을 먹은 사람의 향이 난다.

밝은 색 폭신한 옷 사이로 향을 뿜어대는 너.

아무래도 겨울의 페르소나에 귤을 추가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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