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에 관한 짧은 이야기 ㅣ 안창은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 채 살아가는 것 같아요. 저 역시도 자아를 찾아 방황중입니다. 그러데 그 방황이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아요. 마치 퍼즐이 맞춰지듯 나의 조각이 하나 둘 모여지는 것같거든요
작가 프로필 ㅣ 안창은
그래픽디자인과 웹UI개발 경계에 서있는 감성인
내가 아주 어릴 적부터 우리 부모님은 맞벌이를 하셨다.
요즘 맞벌이 부부에게 가장 어려운 고민 중 하나인 '과연 아이의 육아 문제를 친척과 어린이집 중 어느 곳에 맡길 것인가?' 에 대한 고민 역시 그 당시 맞벌이 부부들에게도 똑같이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였나 보다. 우리 부모님 역시 그 난제에 부딪혔고, 결국 나는 동네 교회에서 운영하는 선교원에 들어가 한글 공부를 했던 흐릿한 기억이 떠오른다.
나에겐 4살 터울의 언니가 있는데, 당시에 나는 언니가 학원을 끝마치고 데리러 오는 시간인 6시가 빨리 되기를 바랐던 마음이었는지, 미끄럼틀 위에서 벽시계만 쳐다보던 어린 나의 모습이 떠오른다.
엄마 말에 의하면 나는 아기였을 때부터 사람을 너무나 좋아했고 처음 본 사람일지라도 우는 법 없이 잘 따랐다고 한다. 그래서 외로움을 잘 탔던 건지, 초등학교 고학년에 들어서면서부터는 하교하고 오면 항상 아무도 반겨주지 않는 빈 집이 왠지 모르게 싫었고 그 집에 나 혼자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이 싫었다. 딱 한두 시간만 집에서 혼자 보내면 학원 갈 시간이 되는데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그 한두 시간을 보내기가 싫었던 것 같다.
물론 부모님도 집에 혼자 있을 딸이 걱정되고 안쓰러웠는지, 우리 집엔 주로 과일과 주전부리가 항상 가득 차 있었다.
집에서 누군가가 먹어주길 기다리는 주전부리들을 그 당시 12살이 알고 있는 가장 감칠맛 나는 단어들을 사용해 같은 반이었던 친구들을 꾀어내기 시작했다. 그 주전부리 중 내가 가장 좋아했던 것은 귤이었는데 뭐니뭐니해도 달콤하고 새콤한 것이 딱 입맛에 맞았고 다른 과일은 칼이 익숙지 않아 껍질 깎기가 힘들었다. 또 무엇보다 친구들을 꾀어낼 때 귤 하나씩 손에 쥐여주면 친구들도 기꺼이 나의 가벼운 발걸음을 따라 우리 집에 방문하곤 했다.
학원가기 전까지 한두 시간, 혼자 보내면 길고도 길었을 그 시간이 그때만큼은 찰나의 순간처럼 느껴질 만큼 귤과 함께, 친구들과 함께 금방 스쳐 지나갔다. 한 개씩 나눠주기에도, 하나를 까서 나눠 먹기에도 좋은 귤과 함께 우리는 그 찰나의 공기를 함께 들이 마셨을 것이다. 귤을 꼭 닮은 난색의 그 따뜻했던 공기 말이다.
초등학교 졸업 후엔 그래도 조금 컸다고 부모님의 마음을 손톱만큼이나마 이해하게 된 것인지, 아니면 그냥 한없이 놀고 싶은 고삐 풀린 망아지의 모습을 닮아가는 건지 초등학교 때만큼 빈 집이 싫지 않았고, 혼자 있을 때면 혼자 재미있게 시간을 보낼 몇가지 방법들을 찾았다.
지금도 어렸을 때의 그 기억을 떠올리며 그 후로도 종종 귤이 유난히 생각나는 계절이 오면 가방에 몇 개씩 넣어 같이 공부하던 친구들에게 한 개씩 주곤 한다.
나에게 있어 귤은 귤이 아니다. 소통, 나눔의 미학, 혼자 집에 있을 어린 딸이 걱정되는 부모의 마음,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온 아이를 반갑게 맞아주는 따뜻한 공기이다. 그래, 따뜻함 일 것이다.
혀를 굴려 맛을 본다. 가지런한 이로 알갱이를 살짝 씹어본다. 톡, 오늘도 어김없이 입안 가득 달콤 시큼한 귤의 따뜻한 맛이 혀에 스며 물들어간다.
아, 따뜻한 겨울의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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