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아무도 알려고 하지 않지만 자기를 알려고 하는 노력 이 노력을 통하여 '여행'은 시작된다 --오쇼 라즈니쉬-
안녕하세요? 도피성 낭독회 운영자 마음 탐정입니다.
진심을 담아 나마스떼~
드디어!!!
도피성 낭독회 시즌3이 시작되었습니다.
지난 12월 초에 시즌2 <데미안>을 마치고 첫 모임이었는데요 새로운 사람들이 많이 와주셔서 정말 반가웠어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시즌2를 끝내고 개인적으로 너무 바빠서 시즌3을 언제 할지는 기약이 없었습니다.
"1월에 만나요~"라고 작별인사를 했지만 그 1월이 2016년인지 2017년인지 2018년인지는 저도 잘 몰랐습니다.
그러나 회원들에게 날아오는 안부 카톡들과 단톡방에 올라오는 정겨운 서로의 인사말들이 제 양심을 자꾸 건드리더군요.
가장 심장을 찌르는 메시지는 <우리 언제 또 만나요?>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낭독회의 중심은 책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물론 책을 중심으로 우린 모이지만, 사람이 그리운 마음이 더 큽니다.
책은 집에서 혼자 읽을 수도 있지만 그것을 같이 나누는 사람은 집에 없습니다.
낭독회에서 늘 제가 강조하는 것이 있습니다.
호환 마마보다 무서운 게 '고립'이라고...
저 역시 오랫동안 스스로를 고립시켜 본 적이 있어서 그것이 얼마나 나쁜 것인지 잘 압니다.
내 안의 욕망의 나무는 무럭무럭 자라고 제 삶을 지탱하는 뿌리는 '이기심'과 '증오'였습니다.
역시 사람은 함께 있을 때 가장 아름다운 법인가 봅니다.
제가 낭독회를 다시 시작하는데 큰 힘이 돼 준 것은 '바다 마을 다이어리'란 영화였습니다.
이 영화에서 전 '천국'을 보았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그냥 있는 그대로 소중한 존재라는 것.
사람은 아름다운 관계 속에서 더 밝게 빛나고 진정한 자신의 가치를 깨닫는다는 것.
서로를 이해해주고 아껴주고 돕는... 그냥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눈물겹게 그리운 그런 공동체
그것이 제게 천국이었습니다.
참고로 저와 이 영화를 함께 본 지인 남성분은 영화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계속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느라 바빴는데요(저는 마음으로 울었습니다), 아직 안 보신 분은 꼭 보길 추천합니다.
서론이 너무 길었네요. 이제 후기를 시작하려 합니다. 참 지난 <데미안> 후기가 중간에서 멈춘 것에 대해 항의 문자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저도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연말이라 바빠서 계속 이어나가지 못했다고 핑계를 댈 수밖에 없네요. 꼭 저 말고도 모임에 참가한 분 누구나 후기를 달아주셨으면 합니다. 다음 낭독회 때는 공개적으로 부탁해야겠네요...
후기 형식을 문답 형식으로 가보려 합니다. 그것이 제가 끝까지 쓰는데 지치지 않을 것이고 보는 분도 지치지 않을 것입니다. 미리 말씀드리자면 좀 깁니다. (전 원래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 집에서 거울을 보며 가위, 바위,보도 하고 대화도 하는 편이라 혼자 묻고 답하는 것에는 매우 자신이 있습니다.)
Q. 이번 책을 '자기 돌봄'으로 선정한 이유를 듣고 싶어요.
도피성 낭독회의 책 선정은 제가 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전에 소속되었던 낭독회에서는 멤버들의 다수결로 새책을 뽑곤 했습니다. 저도 그 방법을 선호합니다. 하지만 아직 우리는 길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전국에 수많은 낭독회가 있는데 각 낭독회마다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과학도서 중심으로 읽는 낭독회도 있고, 소설 중심으로 읽는 낭독회도 있고, 철학도서 중심으로 읽는 낭독회도 있고 다양합니다. 도피성 낭독회의 중심은 <마음>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거쳐온 낭독회 대부분은 <지식>이 중심이었습니다. 난 이런 책을 읽었다. 결과에 초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책을 읽고 토론하는 시간도 매우 부족했습니다. 그냥 읽는 것 그 자체로 만족하는 것이었습니다. 전 개인적으로 많이 아쉬웠습니다. 내가 느끼는 것과 다른 사람이 느끼는 것을 비교하고 싶었고 다른 사람을 통해 혹은 우리의 대화중에 책 속에 숨어있는 진리를 깨닫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직접 낭독회를 열어야겠다는 마음을 굳게 먹고 원래 있던 낭독회에서 도피를 했습니다. 그래서 '도피성 낭독회'란 이름이 생긴 것입니다. (물론 낭독회가 열리는 카페 이름도 진짜로 '도피성'입니다.)
제가 도피하고 싶은 것은 한국 사회에 만연한 '결과 중심' '성과중심' '양의 중심'입니다. '양의 기질'이란 외형에 치중한 것을 말합니다. 서양의 역사는 '양의 역사'라 할 수 있습니다. 유물론적 세계관도 말입니다. 반면 동양은 양과 음을 둘 다 소중히 생각하고 양과 음의 소통이 건강하다고 여깁니다. 서양은 오랫동안 양과 음 사이에 계급이 존재했고 음을 양 밑에 두었습니다. 지금도 가장 바보같이 지속되는 '성별의 차이'역시 이에 해당합니다. 전 태어나서 한 번도 남자가 여자 위에 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 이유는 저희 집에 엄마, 누나, 여동생이 기가 세고 저와 아버지는 기가 약해서 늘 여자에게 지배당하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집 밖을 나오면 사회 전체 분위기는 반대였습니다. 여자뿐만 아니라 음적인 모든 것들이 멸시되고 있었습니다. 한국사회에서는 특히 육체(양)에는 굉장히 치중하면서 마음(음)은 매우 소홀히 생각합니다. 즉 눈에 보이는 겉모습에만 치우쳐있습니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부분은 점점 썩고 있는데 누구도 스스로를 돌보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이 사회가 잘못된 근대사를 통해 썩어있고 문제가 심각한 것은 이해하지만 모든 것을 '환경 탓'으로만 여기는 생각 역시 '양'에 치중한 생각입니다. 하나의 원을 자기라고 가정할 때 원 밖에의 문제만 보지 말고 원 안의 문제도 봐야 합니다. 전 그 원 안의 것에 대해 함께 나누며 체계를 잡아가는 것을 목적으로 <도피성 낭독회>를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첫 번째 책은 <배우를 배우다>를 선정했는데 이 책의 핵심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쓰고 있는 가면이 진정한 나 자신이 아닐 때 문제가 발생한다. 일단 그것을 자기 자신과 분리시키고 그것이 필요하다면 그것을 마음과 자연스럽게 연결시켜야 된다. 결국 우리는 최고의 연기자가 돼야 한다. 최고의 연기자는 거짓된 가면을 쓰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지혜로운 가면을 써야 한다. 였습니다. 스타트로 아주 쉬운 책을 선정한 것입니다. 이 책은 원 밖과 원 안의 사이, 즉경계에 대한 인식에 관한 책이었습니다.
두 번째 책을 <데미안>으로 선정한 이유는 지금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은 필히 헤르만 헤세를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해서였습니다. 개인적으로 <수레바퀴 밑에서><데미안><싯다르타>를 내면 성찰의 3부작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세 책을 연달아 읽고 싶었지만 그중 가장 대중적이면서도 대안에 대해서 확실히 방점을 찍는 <데미안>을 골랐습니다. 헤세는 실존에 대한 절실한 마음을 가진 작가입니다. 자신의 국가가 민족주의에 빠져 전쟁을 옹호할 때 그는 전쟁을 반대하고 자국에서 추방까지 당했었죠. <데미안>을 읽으면 한국이란 나라가 보입니다. 오랜 식민지, 독재, 전체주의, 파시즘의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은 주인의식, 주체, 자아를 모른 채 노예근성으로 살아갑니다. 즉 '나 없는 내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죠. 우리가 받은 공교육이 국민을 길들이기 아주 좋은 교육이란 사실을 모른 채 그 돌아가는 수레바퀴 면을 따르며 평생 허우적거립니다. 인간, 철학, 인문학 등이 요즘에 와서야 대두되지만 그것 역시 성찰보다 지식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헤세는 <데미안>을 통해 주변 환경에 휩쓸리지 말고 내면의 목소리를 들으라고 합니다. 우리가 그동안 인식했던 선과 악의 개념을 뒤집습니다. 나 혹은 내가 속해있던 집단의 이익에 위배되면 악이라 여겼던, 인류가 정의했던 악의 개념에서 도망치라고 합니다. 인간은 혼자 있을 때 도덕적일 수 있지만 집단이 되면 자연스럽게 이기주의로 빠진다고 합니다. 개개인이 가진 '양심'과 '선의지'는 이익을 중시하는 집단의 파도에 쉽게 휩쓸리고 맙니다. 지금도 여전히 보수냐 진보냐로 싸우고 있는 정치판에서 전 저의 중심을 찾으려고 노력합니다. 인간은 원래 이기적인 동물입니다. 내면의 깊은 성찰을 하지 않으면 절대 그 이기성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내면의 깊은 성찰은 단번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도를 닦아야 합니다. 시간도 오래 걸립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진정한 자기 자신을 발견합니다. 즉 원래의 자기 자신으로 돌아갑니다. 이 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독서'입니다. 자기계발서만 읽지 말고 문학작품도 읽어야 합니다. 헤세는 모든 사람들이 시적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시적 마음을 연대화하는 사회는 천국처럼 아름다운 공동체가 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즉 모든 사람이 시인이 되길 바랬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과 대면하고 자연을 관찰하고 타인을 관찰하고 타인과 소통해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나의 존재가 우주처럼 광대해진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내 육체에 한정되어 있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원 안도 우주이고 원 밖도 우주입니다. 그 끝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내가 죽어도 나의 아름다운 소망과 염원은 영원합니다.
세 번째 책은 <자기 돌봄>입니다. 제가 이 책을 선정했을 때 많은 반대가 있었습니다. 이런 류의 책은 그동안 많이 봤다거나 뜬구름 잡는 느낌이 든다거나... 여러 의견이 있었습니다. 저 역시 개인적으로 10년 넘게 명상과 기공을 수련하면서 많은 책을 읽었습니다. 하지만 저의 원 안과 원 밖을 절묘하게 이어주는 책은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답답한 갈등을 지속해왔습니다. 내 안은 한없이 평화롭지만 내 밖은 한없이 혼란스러울 때 도대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 외부와 상관없이 혼자 정진한다는 것은 우주의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내부와 외부가 흐를 때 건강하기 때문입니다. 저 외에도 많은 지인 명상가들도 똑같은 갈등을 하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은둔하다가 사회화가 안되어 고립된 삶을 사는 사람도 많습니다. 사회생활을 하지만 지나치게 이기적이어서 주변인을 이용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착하고 나쁘고를 떠나서 진심으로 평안하며 진심으로 건강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을 많이 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 와중에 우연히 이 책을 만났고 제 안의 오랜 갈등이 이제야 술술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이 책이 다른 책과 달리 특별한 점은 저자가 임상심리학자이면서 오랜 명상 수련 가여서 양적인 것과 음적인 것이 절묘하게 만납니다. 저자가 만났던 사람들의 사례와 그들의 변화과정도 자세히 나와있어 읽는 이로 하여금 '객관성'을 유지하게 만듭니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다른 자기계발서와 다르게 '실천'할 부분이 따로 없습니다. 일반적인 자기계발서들은 읽으면 뭔가 깨닫는 것 같지만 스스로 실천하지 않으면 삶이 변화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자기 돌봄>은 읽고 인지하는 순간! 이미 삶이 변화가 되어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인지가 매우 중요합니다. 똑같은 책을 읽어도 인지하는 자가 있고 인지 못하는 자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낭독회에 나와 함께 읽는 것을 적극 추천합니다. (잠깐만요!: 질문자)
Q. 친절한 설명 매우 감사합니다만 답변이 너무 기네요. 제가 끊지 않으면 한도 끝도 없을 것 같습니다. 죄송하지만 좀 더 짧게 답변 부탁드립니다. 시간이 많지 않거든요.
죄송합니다. 사실 제게는 시간이란 개념이 없습니다. 원래 시간은 존재하지 않죠. 만물은 어떠한 규칙 안에서 끊임없이 변할 뿐이죠. 시간은 인간이 만든 개념입니다. 물론 우주는 특정한 주기 안에 변합니다. 그 주기를 쪼개고 쪼개고 쪼갠 것이 시간이죠. 공동체 사회에서 규정된 시간은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 개인에게 있어서 시간에 대한 감각은 매우 주관적입니다. 질문자분은 매우 길다고 느끼셨겠지만 저에게는 한 '순간' 한 '호흡'으로만 느껴졌습니다.
Q. 아 네. 하지만 이 곳은 모든 사람이 보는 게시판입니다. 그러니까 공동체라는 거죠. 그래서 보는 사람들을 의식해주셨으면 합니다. 글을 읽다가 지겨워 나가는 분들도 많을 것입니다. 아 저도 말리는 것 같아 빨리 넘어가겠습니다. 두 번째 질문 낭독회 1주 차 때 무엇을 읽었고 어떻게 나누었나 답해주세요. 짧게...
1주 차 때 참석자 대부분이 여성이었습니다. 세어보니 전체의 70프로가 여성이더군요. 사람들은 도대체 왜? 이런? 하며 놀랐는데 전 이해했습니다. 명상은 음에 관한 것이기에 남자들이 많이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그래서 전 매우 아쉬웠습니다. 정말 이쁜 여성분들이 많아 전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지만 왜 남성들은 자기 내면을 돌보려 하지 않을까 걱정이 들었죠. 이 글을 읽고 많은 남성분들이 신청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지만 저의 행복이 깨질까 양가적 마음이 충돌합니다. 그래서 어떡하지? 하며 좋으면서도 싫은 싫으면서도 좋은 기분이...
그만!!! 낭독회 1주 차 때 무엇을 읽었고 어떻게 나누었나 답해주세요.
아 네. 1주 차 때 우리는 프롤로그만 읽었습니다. 프롤로그의 제목은 '나를 울게 내버려두지 마라'입니다.
내용을 요약하면 우린 살면서 스스로 '아직 부족하다 무언가 더 나아지도록 노력해야 한다'라는 강박증을 끊임없이 가지며 바쁘게 살아갑니다. 신기한 것은 그렇게 분주해도 나아진 것은 별로 없다는 것이죠. 조금이라도 느슨해지면 스스로 게을러졌다고 자책하고 자신을 채찍질하죠. 이런 삶은 결국 자신을 증오하는 삶으로 내면화됩니다. 항상 공허하고 우울하고 그것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극적인 쾌락을 좇게 되고 외부에 의존적인 삶을 살게 되죠. 문제는 개인에서 끝나는 게 아닙니다. 자존감이 낮고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타인을 절대 배려하거나 사랑할 수 없습니다. 전 매일 이상한 사람들을 만납니다. 지하철이나 버스나 엘리베이터를 탈 때 사람들이 내리지도 않았는데 타는 사람들과 부딪힙니다. 전 그럴 때마다 화를 내지 않고 그 사람의 눈동자를 봅니다. 그 사람의 눈에는 오직 자신의 욕망에 찬 확신이 가득합니다. 그래서 타인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런 사회는 사람들이 서로 소통하거나 교류하지 않고 오직 법에 의존합니다. 법에 의존하는 사람은 불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삶이 매우 율법적이 되는 것이죠. 그리스도 이전의 구약시대처럼 사랑이 없이 퍽퍽해지죠. 영웅의 출현만 바라죠. 결국 독재와 전체주의, 파시즘과 맞물립니다. 모든 사람들과 모든 집단은 이기적이 됩니다. 점점 눈에 살기가 가득 해지죠... 남을 짓밟고 성공하려 합니다. 그런 사회에서 힐링을 찾는다면 그것도 자신에게 집중된 힐링입니다. 돈은 돈대로 쳐들여 힐릉 프로그램을 접하지만 진정한 힐링은 되지 않습니다. 내면이 텅 비어있잖아요. 여전히 공허할 따름입니다. 그래서 우린 먼저 자신을 돌봐야 합니다. 자신을 사랑해야 합니다.
내 안에서 피어나는 불안감 고통 우울감을 똑바로 응시해야 합니다.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면 안 됩니다. 뭔가 잘못되었다고 인정해야 합니다. 불교는 모든 사람에게 불성이 있다라고 합니다. 불성이란 부처, 즉 완전한 존재라는 뜻이죠. 그러나 우리는 스스로 완전하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한없이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자기에게 조건부를 겁니다. 내가 이걸 가져야, 내가 이게 돼야 난 조금 더 완벽해진다고... 그렇지 않으면 스스로 무가치한 존재라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니 자기중심을 가지지 못하고 끊임없이 의존적이 됩니다. 나의 직업, 나의 애인, 나의 재력... 그런 것이 자신을 증명해준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제 주변에 사람들을 보면 독립적 성향은 강하나 지나치게 의존적인 성향이 강한 양가적 상태에 놓여있습니다. 독립적 성향이 강한 이유는 이 사회가 워낙 강팍하다보니 누구의 도움도 받기 힘들기 때문이고 동시에 의존적인 성향이 강한 이유는 자기중심이 없으니까 자신의 정체성을 자꾸 외부에서 끌어들입니다. 예로 어떤 여성은 끊임없이 남자친구가 바뀌는데 그녀와 상담해보니 그녀는 남자친구와 전혀 소통하지 않고 있습니다. 머릿속이 온통 자신의 '만족'에만 초점이 있어서 상대방의 마음이 어떠한지 관심이 없더군요. 그러다 보니 어긋나고 헤어지고... 또 공허해서 쉽게 새로운 남자를 만납니다. 전 그분에게 잠시라도 혼자 지내보라고 남자친구를 만나지 말고 제발 혼자 지내보라고 조언을 해주었는데... 그게 쉽지 않은 지 오래 못 가고 새로운 남자 친구를 사귀더군요. 이것이 바로 '악순환'입니다.
세상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합니다. 즉 그 말은 우린 어떤 방향으로든지 계속 가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마치 삼각형과 같습니다. 뾰족한 곳이 방향을 정하고 있어서 내가 멈추려 해도 멈출 수 없이 계속 그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하죠?
일단 멈춰야 합니다.
멈출 수 없다고 하셨잖아요.
아뇨.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그것이 어렵다는 것이죠. 하지만 의외로 매우 쉽습니다. 방법은 간단합니다. 인지하는 것입니다. 나의 튀어나온 꼭짓점. 즉 방향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그리고 스스로 원이 되어야 합니다. 물론 시간이 흐르고 내 삶도 계속 변하지만 적어도 가속도로 인해 자기도 모르게 어떤 방향으로 계속 가지 않는다는 것이죠. 예로 아까 언급했던 여인이 자신이 계속 남자를 만나는 이유가... 스스로 공허해서 자꾸 자기를 채우려 한다는 사실... 을 인지하고 깨닫고 한번 채우려고만 하지 않고 이번에는 비워볼까 생각한다면 반드시 멈출 수 있습니다. 즉 첫 번째는 자기인지 입니다. 현대인들에게 자기인지가 어려운 이유는 시선이 온통 자기 밖으로 향해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만족과 불만족을 모두 외부 탓으로만 돌리고 있죠. 정말 웃기지 않아요? 모든 사람들은 사랑받고 싶어 하는데 정작 사랑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상태라는 겁니다. 사회 전체가 악순환입니다.
멈추면 어떤 일이 발생하죠?
이 책의 원제는 MEDITATION & PSYCHOTERAPY입니다. 즉 명상과 정신치료를 말하는 것이죠. 한글 제목은 <자기 돌봄: 멈추고 살피고 보듬고 껴안다>입니다. 총 네 단계로 이루어지죠.
나를 괴롭게 하는 생각의 쳇바퀴를 멈추고 > 순간순간 깨어있으면서 내 마음을 관찰하고(깨어있기) > 진짜 나를 인식하고(통찰) > 마침내 나를 사랑하고 온 세상을 껴안기 (포용, 완전한 깨달음)
무슨 4단계 화장품 광고 같네요. 깨어있다는 것은 무엇인가요?
책의 내용에 따르면 깨어있기는 매 순간 나에게 일어나는 일과 그에 대해 내가 어떤 반응을 일으키는지 정확히 알게 되는 과정입니다. 한마디로 현재를 자각하는 것이죠.
누구나 현재를 자각하고 있지 않나요?
아닙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과거에 대한 후회나 그리움, 미래에 대한 소망... 두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살아갑니다. 현재에 머무를 마음의 여유가 사실 없습니다. 저희 어머님만 봐도 늘 " 아 그때 그 집을 샀어야 했는데... 얼마가 올랐는데..." " 아 그때 그 집을 사지 말았어야 했는데... 집값이 안 올라..."하며 후회하든가 "내가 뭘 사려하는데 전망이 매우 좋단다. 호호호" 하며 헛된 기대에 부풀어 있다던가 "올해 경제가 최악이라는데 어떻게 살아갈까 걱정이다."하며 근심한다든가... 현재에 계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가 "어머니 창 밖에 눈이 오는데 참 이쁘네요. 올 겨울엔 눈 구경하기 힘들었는데 잠깐 밖에서 산책할래요?" 하면 "길바닥이 얼어서 넘어질까 봐 걱정이구나. 그냥 난 잠이나 잘란다."하고 방으로 들어가십니다.
이렇듯 사람들은 대부분 현재에 머물지 않습니다. 즉 현재에 머물지 못하고 자꾸 과거로나 미래로 도망치는 삶을 살죠. 혹은 잠으로 도망칩니다. 그래서 우울증 환자들은 잠을 아주 많이 잡니다. 즉 좀처럼 깨어있지 않는 거죠. 정신이 깨어있다는 것은 내 마음이 지금 여기 이 순간에 있는 것입니다. 사실 과거나 미래는 관념일 뿐입니다. 오직 현재만이 존재합니다. 존재는 순간입니다. 지금 이 순간이 바로 나 자신입니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각성이 시작됩니다. 퍼스트 임팩트라 할 수 있죠. 이 첫 단추가 아주 중요합니다. 첫 단추만 열리면 남아있는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단추가 저절로 풀립니다.
신기한 것은 어떤 공동체에서 단 한 사람이라도 깨어있다면 주변 사람들이 영향을 받고 차츰차츰 깨어납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사회를 바꾸는 시작이 바로 나의 각성과 변화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희망이 있는 것이죠.
말로만 들어서는 매우 엄청나 보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깨어나기에는 세상이 너무 바쁘게 돌아가지 않나요? 아침에 일어나면 출근하기 바쁘고 퇴근하면 집에 오기 바쁘고 집에 오면 저녁 먹고 금세 자야 할 시간이잖아요.
제가 초반에 말씀드렸듯이 '시간'의 개념은 매우 주관적입니다. 누구에게는 10분이 매우 짧은 시간이 될 수도 있고 누구에게는 매우 길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깨어있지 않은 사람은 수동적인 삶을 살며 끌려다닙니다. 하지만 깨어있는 사람은 능동적인 삶을 살며 자신의 삶을 컨트롤할 수 있습니다. 만약 당신이 바쁘다고만 느낀다면 마음이 어수선할 것입니다. 호수처럼 고요하지 못하고 거센 물결이 일렁거리죠. 그런 사람들은 막상 시간이 나도 뭘 할지 몰라합니다. 아마 매우 당황하겠죠. 그래서 자기를 또 바쁘게 만들 무언가를 찾곤 합니다. 이런 상태가 악순환에 놓여있는 것이죠.
그 악순환을 깨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물론 멈추라고 말씀하시겠죠? 도대체 어떻게 멈춰야 합니까?
우선 그 어떤 판단도 버리세요. 우린 너무 판단의 강박증에 사로잡혀 삽니다. 끊임없이 자신을 판단하고 타인을 판단하고 진실과 한참 다르게 망상의 매트릭스에 갇혀 삽니다. 그래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를 못합니다. 타인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의심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의 감정도 잘 추스르지 못합니다. 먼저 자기 자신에게서 일어나는 변화를 아무런 판단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세요. 예로 갑자기 기분이 나빠지면 그 마음을 먼저 받아들입니다. 스스로에게 묻는 거죠. 왜 그래? 왜 갑자기 짜증이 나지? 그 마음의 중심을 얼르고 알아주는 것입니다. 기분이 좋아져야 된다는... 대안에 대한 강박을 버리십시오. 사람들은 대부분 마음을 돌보지 않고 도망치기 바쁩니다. 도망치지 않고 머물면서 살피십시오. 바쁜 것은 내 마음을 무시하고 죽이는 일입니다.
만약 당신의 아이가 갑자기 울 때 억지로 울음을 뚝 그치게 하려고 폭력을 행사하면 아이의 마음은 병이 들고 커서도 그것이 트라우마로 작용합니다. 당신의 마음을 아주 여린 꼬마이라고 생각하세요.
원래 낯섦과 불안, 불만, 부정, 허전함은 내 본래의 가슴, 편암함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일종의 '향수병'입니다. 향수병은 태어난 집과 고향을 그리는 마음입니다. 본래 순수하고 고요하고 평안한 존재로서의 '나'가 바로 나의 집이자 고향입니다. 그 집을 잃어버리거나 너무 멀어졌을 때 우리에게는 돌아가고자 하는 본능이 있습니다.
본능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실존적 본연입니다. 그 본능을 거스를 수는 없는 일입니다. 실제로 전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생각합니다. 난 왜 살아있을까? 난 왜 인간일까? 난 왜 남자일까? 난 왜 지금 여기에 있는 걸까? 난 왜 배가 고플까? 난 왜 먹어야 하는 걸까? 그렇게 차례대로 생각하다가 오줌이 마려워 화장실로 뛰어갑니다. 가끔 외로움에 사무칠 때는 제가 키우는 고양이(미선이/암컷/중성화 수술했음)를 부러워합니다. 또 생각합니다. 난 왜 외로운 걸까? 난 왜 여자가 좋은 걸까? 난 왜 남자인 걸까?
나도 중성화 수술을 해야 하는 걸까?
이런 생각이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그냥 본능을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시작입니다. 그다음이 지혜로운 방향으로 자연스러운 방향으로 흘러가게 길을 터주는 것입니다.
즉 자신의 중심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얘기로 들립니다. 맞나요?
네 맞습니다. 내 안의 중심... 그곳을 '0의 지점'이라고 합니다. 폭풍의 눈처럼 가장 고요한 지점입니다.
그것은 쉬운 게 아닌 듯하지만, 자신이 자꾸 원의 겉으로 맴돈다는 것을 인지만 한다면 원의 중심에 서는 것은 매우 쉽습니다.
예로 전 당구를 치면서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제가 처음 당구를 배울 때 오시나 시끼 같은 화려한 동작에 취해 공 정 가운데를 치는 연습을 하나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같이 당구 치는 친구와 당구 내기를 할 때면 매번 지는 것입니다. 10년이 지나도 똑같았습니다. 그것은 악순환입니다. 그래서 전 당구에 소질이 없나 보다 하고 다시는 큐대를 잡지 않았죠. 그런데 최근 그 친구와 오랜만에 만나 당구를 치게 되었습니다. 제가 그동안 많이 변했는지 제가 당구의 정 가운데를 칠 줄 모른다는 사실을 이제야 인지하게 됩니다. 그래서 시합을 일단 멈추고 친구에게 묻습니다. 그동안 자존심 때문에 한 번도 묻지 않았던 질문을 던집니다. "내가 무슨 문제가 있어 보이는가?" 친구는 제가 치는 것을 보고 말했습니다. "공의 정 가운데를 맞추지 못하는구나. 그것이 가장 기본인데..."
그것이 당구의 기본기라는 것을 인식하는 바로 그 순간 놀라운 일이 발생합니다. 전 당구공의 정 가운데를 보게 되었고 그곳을 맞추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정말 매우 쉽게 공의 가운데를 맞출 수 있었고 제가 넣은 기술이 다 먹혀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제서 그날 처음으로 친구에게 이기게 됩니다. 전 이날 집에 와서 펑펑 울었습니다. 이렇게 쉬운 것을 왜 난 몰랐을까?
그래서 전 '보통'을 매우 중요시합니다. 영어로는 Basic, Normal, Medium. 그것을 모른 채 절대 특별해질 수 없습니다. 왜냐면 보통이 '기준'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는 보통이 굉장히 안 좋은 뜻으로 인식됩니다. 모두가 특별해지려고 노력하죠. 전 보통사람만큼 아름다운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인간 본연의 모습. 자연스러운 모습. 보통의 삶은 참으로 따듯하고 행복합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밥을 할 때 밥솥에서 치치~증기가 뿜어져 나오고 프라이팬에서 천천히 익는 계란 프라이의 냄새,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된장국... 밥을 먹을 때 나는 달그락달그락 젓가락과 숟가락이 그릇과 접시에 부딪히는 소리. 냠냠 쩝쩝 소리를 내며 맛있게 먹는 소리. 사람이 밥을 먹을 때처럼 신성한 순간이 있을까요? 그것은 별거 아닌 보통의 삶입니다. 이런 순간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 오랜만에 외식을 해도 기쁜 법입니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매일 사 먹다 보면 마음이 공허해집니다.
모든 도를 닦는 과정도 그 기본기, 보통을 잘 해내야 실력이 늡니다. 삶도 도입니다. 우린 무엇이 될까 고민하기 전에 어떻게 살아야 할까 먼저 고민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린 어릴 적부터 특별한 삶을 강요받았습니다. 태어난지 고작 1년밖에 안되었는데도 돌잔치 때 미래를 부모에게 강요받습니다. (전 그날 청진기를 잡은 이후로 부모는 제가 의사가 되기를 바랐고, 고등학교 때까지 의사를 목표로 죽도록 공부만 했습니다. 결국 의대 입시에 실패하고 유년을 통째로 잃은 전 20대를 황폐하게 살게 되었습니다.) 사회에 만연한 이런 잘못된 인식이 우리를 망치기 시작합니다. 과정보다 결과를 설정해 놓고 그것에 맞춰서 현재를 재단하는 삶을 사는 자가 어떻게 마음의 중심에 설 수 있겠습니까? 일단 강박적 미래를 버리십시오. 진정 내 마음에서 뭔가 끓어올라 이상과 목표가 생기면 그제야 그곳을 향하며 살아가십시오. 그렇게 진심으로 자발적으로 상정한 목표가 꿈이고 그것이 아니면 모두 망상입니다.
오랫동안 카페를 운영하는 바리스타와 얘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요즘 젊은이들이 '카페나 차리련다.'라는 말을 하고 사업을 시작할 대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고 합니다. 그들 대부분이 창업한지 얼마 안 되어 망하고 포기하고 사업을 접고 또 다른 종목으로 사업을 시도하려 한다더군요. 그분 말로는 커피를 팔고 싶다면 먼저 '차맛'을 알아야 한다고 합니다. 커피가 아니라 차 말입니다. 차맛이 커피맛의 중심이라 할 수 있겠군요. 차맛에 대한 인지를 시작으로 커피가 뭐가 다른지 인지하고 정말 자신이 그 맛에 취했는지 정말 맛있는 커피를 다른 사람들에게 맛 보이고 싶은지... 그런 과정을 겪은 사람은 카페를 차려도 금세 포기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일시적인 적자에 괴로워하지 않고 멀리 보며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서서 도전하고 도전한다고 합니다. 금세 포기하는 모습들은 그들이 얼마나 커피에 관해 절실하지 않았는지를 스스로 증명하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자기중심이 있는 사람은 실패를 과정의 일부로 보고 절대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실패한 순간이 작은 물방울이 튀는 것이라면 나의 원대한 꿈은 바다와 같아서 크게 흔들릴 수 없다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자기중심에 있는 사람은 반드시 언젠가 성공한다는 얘기인가요?
전 성공에 초점을 두지 않습니다. 진정한 성공의 기준도 모르겠습니다.
단 행복에 초점을 두고 싶습니다. 성공하지 않으면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죽을 때까지 행복할 여유가 없습니다. 자신이 생각한 성공을 이루어도 또 다른 근심 걱정이 연달아 닥칠 것입니다.
내가 내 중심에 선다는 것은 사랑에 찬 현존이 되는 것이라고 책에 나와있습니다. 즉 나는 성소입니다.
그 성소에서 나는 나와 세상의 모든 것을 바로 보고 느끼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랑의 존재'로 거듭난다고 하네요.
자연이 모든 인간과 생명체 안에 심어둔 것이 '사랑'이라고 합니다.
사랑에 찬 현존이란 다시 말하면 우리 자신 본성으로 돌아오는 것이라고 합니다.
전 이 말에 적극 동의합니다.
모든 생명의 본능은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는 것에 있습니다.
우주 자연 전체가 하나의 생명이라면 자연은 우리가 조화롭게 살기를 바랄 것입니다.
조화롭게 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사랑'입니다.
전세대가 다음 세대를 사랑하지 않으면 새로운 세대는 싹을 틔우고 줄기가 자라기 전에 전 세대에게 먹혀버립니다.
즉 다음 세대는 전 세대의 사랑을 먹고 자랄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청년실업자가 많은 이유는 기득권을 가진 이전 세대의 희생이 없어서가 아닐까요?
그들은 자신들의 배를 채우기 위해 청년들을 이용하려고만 합니다.
결국 그 끝은 소멸이겠죠?
인류 전체가 그런 방향으로 간다면 얼마 안 있어 인류는 스스로 멸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자기중심을 찾고 자기를 돌보는 사람은 사랑을 할 수 있다는 말로 들리네요.
네 그렇습니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자가 어찌 타인을 사랑하겠습니까?
요즘 젊은이들은 '사랑'에 대해 잘못된 개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동경하고 추종하는 무언가를 '사랑'이라고 표현합니다.
심지어 '신'이란 자격을 부여하기도 합니다.
요즘엔 치느님 하며 치킨을 신성시하는 사람도 많이 있더군요.
이건 사랑이 아니라 숭배이고 숭배하는 자들은 노예근성에 사로잡혀 있는 것입니다.
한 번도 자기 자신이 주인이 된 적이 없어서 동경하는 것을 숭배하며 위로를 받는 것이죠.
예전에 <데미안> 낭독회를 하며 참석자들에게 "유년시절에 당신은 무엇에 의지하며 살았습니까?"라는 질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 놀랍게도 대다수가 자신의 유년을 버티게 해 준 것은 HOT, 젝스키스, 동방신기, SES, 핑클, 서태지 등등의 연예인이더군요.
그때야 전 왜 우리나라에서 아이돌 사업이 이렇게 잘되나 깨달았습니다.
아이돌에 열광하는 그 아이들은 의지할 곳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저 역시 영화, 음악 등의 대중문화에 의지하며 유년을 버텼습니다. 스타를 동경했고 아오이 유우와 결혼하는 것이 제 삶의 목표였습니다. 아오이 유우가 나온 영화, 드라마, CF를 다 모으고 그녀의 해맑은 웃음에 세상 살맛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오이 유우에 아무 관심이 없습니다. 쯔위로 갈아탔습니다... 는 뻥이고 제 자신의 중심을 찾는 과정에서 행복을 느끼고 저의 개인적 소망이 저의 이기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세상을 조금 더 밝게 만드는 것이라는 사실에 위안을 느낍니다.
1주 차 낭독회 때 회원 한분이 저에게 묻더군요.
"왜 이런 모임을 만들고 진행하시죠?"
전 외로워서라고 말했습니다. 진심으로 외로워서 만든 겁니다. 전 제가 제 자신만을 위해 살아가는 삶이 무척이나 고독하고 의미 없게 느껴집니다. 제가 꿈꾸는 삶은 모두가 서로 좋은 영향을 주며 함께 커가는 공동체에서 마음 편하게 사는 것입니다. 제가 어려울 때 누군가가 절 도울 수 있다는 희망... 누군가가 어려울 때 제가 도울 수 있다는 희망... 그것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그럼 지금의 낭독회에서 그 희망을 보시나요?
네 그렇습니다. 실제로 낭독회를 진행하면서 전 늘 감사한 마음을 가졌습니다. 집에서 혼자 책을 읽었을 때 보다 훨씬 많은 것을 깨닫고 합니다. 하나의 책에 대한 서로 다른 관점들. 그것이 소통으로 흐를 때 우린 점점 확장됩니다.
낭독회에 한 사람으로서 참여했는데 그날 열 사람이 모였다면... 정말 모두가 열 사람의 크기가 되어 집에 돌아갑니다.
그것이 바로 공동체의 힘이라고 봅니다.
소통을 통해 내 안에 막혀있던 것이 뻥 뚫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낭독회는 정말 소중한 인연을 만나는 곳입니다.
내가 너를 만나는 인연이기도 하고
내가 진정한 나를 만나는 인연이기도 합니다.
첫주 낭독회 때는 서로 나누다가 가슴이 북받쳐 눈물을 흘리던 회원도 있었습니다.
그분 안에서 뭔가 뻥 뚫린 느낌이 들더군요.
그것이 바로 '카타르시스'입니다.
'카타르시스'의 근원은 오랫동안 막혀있던 것이 뻥 뚫리는 것입니다.
최근 저희 집 변기가 오랫동안 막혀있어서 정말 애를 먹었는데 우연히 만난 지인이 변기 뚫는 법을 가르쳐줘서 드디어 변기를 뚫었는데 카타르시스가 장난 아니었습니다. 변기를 부여잡고 펑펑 울었지요.
낭독회에 오시면 그런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거라 장담합니다.
저도 정말 낭독회에 참여하고 싶어 지네요. 방법을 가르쳐주세요.
낭독회는 매주 금요일 연희동 카페 '도피성'에서 8시부터 10시까지 이어집니다.
조금 일찍 오시면 미리 오신 분과 담소를 나누시면 되니까 괜히 밖에서 방황하지 마시고 퇴근 후 바로 오심을 추천합니다.
참가비는 없고 1인 1 음료 주문해서 지하로 내려오시면 됩니다.
참고로 카페 지하를 금요일마다 제가 통째로 빌렸습니다.
(도피성 카페 http://blog.naver.com/eun_ji7?Redirect=Log&logNo=220534067686 )
위치는 네이버나 다음에 검색하면 다 나옵니다.
참가를 원하시는 분은 밑에 댓글 달아주시고 카톡 아이디 dominogame으로 문자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