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돌봄

1. 좋거나 나쁜 것은 없다. 단지 생각이 있을 뿐이다.

by 한공기



진심을 담아 나마스떼~ 안녕하세요 도피성 낭독회 운영자 마음탐정입니다.

매주 금요일 연희동 카페 도피성에서 열리는 '도피성 낭독회'에서는 현재 임상심리학자 명상가 타라브랙의 '자기돌봄'을 읽고 있습니다. 이 책에 대해 궁금하신 분은 이 전에 올린 '자기돌봄-프롤로그'를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두 번째 낭독회 때 우리가 읽고 나누었던 내용을 정리하려 합니다.


일단 1장 제목이 어렵습니다.

좋거나 나쁜 것은 없다. 단지 생각이 있을 뿐이다.


이 제목을 완전히 이해하신 분은 이 내용을 읽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당신은 이미 득도하셨으니까요. 그게 아니라면 저와 함께 낭독 산책을 떠나 보죠. 숲 속의 오솔길을 생각하면서 같이 걸어요. 피톤치드가 뿜어져 나오는 숲에 우린 도착했습니다. 조그만 흙길이 보이시나요? 우린 이 길을 통과할 것입니다. 이 길의 끝에 도착했을 때 당신은 지금의 당신이 아닌, 새로운 당신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못 믿으시겠다고요? 그럼 일단 따라오시죠.


불교에서는 인생을 고통이라고 했습니다. 불교는 몰라도 어디서 들어봤던 얘기라고요? 영화 <달콤한 인생>에서 황정민이 이병헌 배에 칼침을 놓으며 했던 말이라고요? 네 맞습니다. 사실 전 그 영화를 보면서도 불교철학을 공부하면서도 이 말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삶이 왜 고통일까? 난 가끔 행복하기만 한데...

불교에서 정의하는 고통의 개념은 일종의 혼란을 말합니다. 평안하고 안정된 상태가 아닌 들쑥날쑥 시시때때로 변하는 감정의 노예. 불교용어로 '끄달리다'라는 말이 있는데 그것은 나의 중심을 잃고 끌려다닌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아침에 눈을 뜨고 저녁에 눈을 감을 때까지 우린 숱한 상황에 끌려다닙니다. 수많은 외부세계가 간섭을 하고 그것에 휘청휘청 거리죠.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듯 하루에도 수십 번씩 나의 기분이 올라갔다가 내려갔다가 반복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영혼을 지배하는 것은 '불안'입니다.

불교에서는 고통의 근원이 '불안'에 있고 그 이유는 우리가 분리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무엇으로부터 분리되어 있냐고요? 그것은 우리가 태어나기 이전에 머물렀던 완전한 평온 상태, 우주의 원형이라 할 수 있죠. 우린 엄마 뱃속에 있을 때까지 그곳에 머물렀습니다. 그러나 세상으로 튀어나오는 순간, 빛을 보는 순간 그곳에서 분리되었습니다. 바로 그 순간부터 불안이 시작되는 것이죠.

이 상태의 감정을 전문용어로 '분리불안'이라 합니다. 모든 존재는 '분리불안'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이는 엄마에게 집착하게 되고 엄마와의 긴밀한 교제로 그 불안을 극복합니다. 이 나이 때 부모와 충분히 소통하지 않은 사람은 커가면서도 엄청난 '분리불안'에 휩싸입니다. 애정결핍에다가 타인에게 지나치게 의존적이 되어 버립니다. 제대로 성장하기보다 자꾸 노스탤지아를 꿈꾸며 회기 하려고 합니다. 물론 모든 사람은 회기 본능이 있어서 자기가 자란 고향이나 가장 평온한 엄마 품으로 돌아가고 싶어하죠. 분리불안은 죽을 때까지 지속합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유토피아'의 개념은 여기 없는 신세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래 있던 곳을 의미합니다. 우린 원래대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서양에서는 그곳을 '이데아의 세계','에덴','천국' 이라고도 하죠. 신 혹은 우주의 원형과 다시 하나가 되고싶은 열망은 동양이나 서양이나 일맥상통하는 것 같습니다.


그럼 우린 죽을 때까지 평생 고통스럽게 살아가야 할까요? 아닙니다. 바로 지금 '분리불안을 극복하는 법'이 있습니다.


전 <발도르프 교육>을 공부한 적이 있습니다. 특별히 발도르프 선생이 되겠다는 생각에 시작한 것이 아니라 나중에 아이를 낳아서 기를 때를 대비해서 배운 것입니다. 경험상 대한민국 공교육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발도르프 교육>을 공부하며 제 자신이 더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유아시절부터 현재까지 내 삶에 어떤 과정이 있었는지 되짚어보고 그것으로 인한 결과(현재)를 인식하면서 내 문제의 근원을 파악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어린아이는 감각이 발달되어 있지 않지만 이미 영적인 존재입니다. 그래서 영으로 모든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분리불안이 내재되어 있기에 엄마와 떨어지면 웁니다. 그래서 엄마의 뱃속으로 다시 들어갈 수 없는 아이는 엄마와 긴밀한 스킨쉽을 통해 마음의 안정을 찾습니다. 아이에게 가장 먼저 발달되는 기관은 촉각입니다. 어른이 되어도 촉각은 아주 중요하게 우리 영혼에 영향을 미칩니다. 저는 취미로 탱고를 추는데 현란한 동작이나 음악을 잘 타기보다 안고있는 느낌이 편안하고 따스한 것이 탱고의 기본입니다. 이 동작을 '아브라소'이라 하는데 '안아주다'란 뜻입니다. 처음 탱고를 배울 때 제 아브라소는 매우 딱딱했습니다. 부끄럽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하고 아무리 노력해도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그 원인을 분석해보니 어릴 적에 저의 엄마는 많은 스킨쉽을 해주지 않았습니다. 아버지 역시 자식들과 눈을 마주 보고 못하시는 무뚝뚝한 분이었습니다. 어릴 적부터 소통에 어색했기 때문에 타인과의 교감이 닭살이 돋을 정도로 이상하게 느껴졌던 것입니다. <발도르프 교육>에 의하면 건강한 아이는 부모와의 소통으로 분리불안에서 조금씩 벗어나며 자기중심을 찾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부모에게 종속되거나 의존하지 않고, 타인과 소통하며 원만한 대인관계를 이루며 성장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첫 단추인 부모와의 소통에 문제가 생기면 성장한 후에도 타인들과의 관계에 문제가 생긴다고 합니다. 인간에 대한 사랑보다 공부와 돈과 성공을 중시하는... 과정보다 결과와 목표를 중시하는... 대한민국에서 자란 사람들은 대다수가 소통에 미숙합니다. 소통을 잘 하는 것이 단지 말을 잘 하는 것은 아닙니다. 능수능란하게 말을 잘한 들 상대방과 교감하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없습니다. 눈빛이 총명하고 말을 잘하는데 남의 얘기를 안 듣는 사람들을 많이 봅니다. 그들의 눈을 보면 금세 알 수 있습니다. 나와 교감하는 것이 아니라 목적의식이 강한 사람이구나...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미리 프로그램된 말을 내게 쏟아 붓습니다. 일종의 배설이라 할 수 있죠. 한국 사람들은 지독히도 타인에 대한 감수성이 부족합니다. 그러다 보니 관계나 공동체에 미숙하고 타자를 공존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닌 이용의 대상으로 인식합니다. 맞아요. 우리는 공존에 대한 개념을 배운 적이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주 당연하게 아무도 날 돕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나 역시 아무도 도울 수 없다고 확신합니다. 이 험한 세상 혼자 살아남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샤르트르가 정의한 실존의 개념처럼 우린 우리 자신을 이 세상에 내던져진 존재로 인식합니다. 그래서 정글에 떨어진 사람처럼 생존을 위해 온갖 전략을 구사하며 살아남으려고 애를 씁니다. 최근에 <레버넌트>라는 영화를 보았는데 디카프리오가 엄청 고생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잠을 잘 때도 편안하게 잘 수 없습니다. 모진 추위에 얼어 죽을 수도 있고 다른 부족에게 죽임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늘 불안한 상태로 긴장을 놓치지 않고 있습니다. 평화로운 도시에서 살고 있는 우리가 여전히 영화 속 디카프리오처럼 불안하게 사는 이유는 뭘까요? 개인주의화된 사회때문입니다.

모두가 정글에 떨어진 야수 같습니다. 타인에게 본능적인 경계심을 갖습니다. 원래 불안한 사람은 방어기제로 '부정 의식'이 강하게 작동합니다. 삶이 힘들수록 불안해지고 불안해질수록 부정적이 되는 법입니다. 문제는 그 의식이 자신의 내면까지 다스립니다. 나를 부정하면서 자신의 존재를 무가치하게 여깁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조건을 겁니다. 네가 이렇게 되면...네가 이것을 가지면...넌 가치가 있는 사람이다. 실제로 제 주변의 한 친구는 1억을 모으기 전까지 결혼하지 않겠다 선언하기도 하고 또 어떤 친구는 취업하기 전까지는 독서하지 않겠다고 선언합니다. 분리불안 감정이 큰 사람은 부정의식이 강하고 부정의식이 강한 사람은 자존감이 굉장히 낮습니다. 그래서 지나치게 의존적이며 외부적인 것으로 자신의 존재가치의 의미를 부여합니다. 자신의 재산, 애인, 회사 등 자신의 본질이 아닌 것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착각합니다. 그래서 페이스북 타임라인이 온갖 자랑질로 도배됩니다. 정리하자면 우리는 자신에 대해 스스로 알 기회를 갖지 못한 채 잘못된 사회 시스템 속에서 악순환의 수레바퀴로 돌아가게 됩니다.


자 이제 갈림길이 나왔습니다. 왼쪽과 오른쪽이 있네요.


왼쪽 길- 난 부모님과의 원만한 관계 속에서 성장했고 사회와도 원만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스스로 내 삶에 중심에 있어 자존감도 높고 매 순간 만족하며 행복한 삶을 산다. 오늘 죽어도 여한이 없다. 고로 분리불안을 극복했다.


오른쪽 길 - 난 내 삶의 중심에 있지않고 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불안에 사로잡혀 현재를 잘 즐기지 못한다. 외부적인 것에 영향을 잘 받고 외부적인 것에 의존적이다. 평정심을 유지하지 못해서 기분이 들쑥날쑥한다. 여전히 분리불안에 갇혀있고 부정적인 생각을 많이 한다.


왼쪽 길을 택하신 분은 곧장 나가 이 숲을 빠져나가시면 되고요, 오른쪽 길을 택하신 분은 저를 계속 따라오시기 바랍니다.


오른쪽 길에 들어섰습니다. 팻말이 하나 보이네요.


행복이란 무엇일까요?


각자 이 질문에 답을 해보세요. 당신에게 행복이란 무엇입니까? 어떨 때 제일 행복합니까?

우측 길을 택한 대다수 사람들이 인식하는 행복은 돈, 성공 같은 물질적인 것 계급적인 것입니다. 참 저는 '맛있는 음식을 먹고 좋은 관광지에 여행을 하고 이쁘고 몸매 좋은 여자와 연애를 하는 것'인데 이건 어디에 해당될까요? 그것은 쾌락적 행복입니다. 즉 우린 물질적, 계급적, 쾌락적 행복을 추구합니다.


우리가 이런 기준의 행복을 추구하게 되는 과정에는 두 가지 측면이 간섭합니다.

첫째 '사회적인 기준'입니다. 나의 기본적 가치관이 성립되기 이전에 사회적 요구를 받아들입니다. 내가 받아들였다기보다 이 사회가 내게 강요했다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한 표현일 것 같습니다.

둘째 '쾌락 추구적 삶'입니다. 원래 두려움이 증폭될수록 심리적으로 일시적인 쾌락을 추구하게 됩니다. 그것은 행복해지고 싶은 존재의 본능인데요. 행복의 근원을 모르니 지금 당장 내가 기분이 좋아질 수 있는 것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린 쉽게 그것에 중독됩니다.


위 두 가지 측면에 간섭되어 향상성을 유지하는 상태를 악순환의 수레바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바퀴는 스스로 문제를 인식하기 전까지 절대 멈추지 않습니다. 즉 죽을 때까지 고통의 상태에 빠져있는 것이죠. 물질을 얻어도 지위를 얻어도 쾌락에 빠져도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없으니 공허한 삶을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죽을 것입니다. 즉 진짜로 무가치한 삶을 사는 것이죠.

전 이 공허한 쳇바퀴를 느낀 적이 있습니다. 그때 I'm Nothing이라는 문장이 떠오르더군요. 그래서 그 바퀴가 멈추기만을 기다렸습니다. 내 삶이 끝나기만을 바랬죠. 전 스스로를 탓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태어나고 살아온 이 사회를 탓했습니다. 그 악순환의 굴레가 문제라 생각했습니다. 전 엄청난 강박을 가지고 살아왔습니다. 성공해야 한다.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 그래야 내가 가치 있는 사람이 된다. 그 강박의 근원을 따져봤더니 부모님은 저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지 않고 '넌 OO 해야 한다'라고 강요하며 조건부 사랑을 내걸었습니다. 당시 어린아이였던 저의 영혼은 불안해지고 마비가 되었습니다. 스스로 무가치하게 느껴지기에 자존감도 낮았습니다. 그래서 자꾸 뭔가를 쫓게 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그렇게 자란 것입니다. 부모님이 원하는 의사가 되지 못했지만 제 분야에서는 국내에서 제일 경쟁률이 센 대학에 들어갔고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습니다. 이제 자부심을 가져도 될까? 생각했지만 사회는 그리 만만하지 않았습니다. 눈앞에 펼쳐있는 계단은 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계단을 터벅터벅 10년간 오르다 보니 죽을 때까지도 이 계단 끝에 절대 도달하지 못할 것이라는 명백한 진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엄청난 두려움이 폭풍처럼 밀려왔습니다. 차라리 몰랐더라면 희망고문에 기대어 어떻게든 살아갈 것입니다. 그 망상이 제 삶의 원동력일 테니까요. 하지만 진실을 알아버린 이상 더 이상 계단을 오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산송장처럼 살아갈 바엔 차라리 죽어버리는 것이 나을 것 같다는 위험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의 고민을 친구들에게 나눴더니 '욕심을 낮춰라~', ' 인생 원래 그냥 대충 살다 죽는 거다~', '꿈을 꾸지 말고 현실을 받아들여라.' 그런 조언을 해주더군요. 그래서 전 친구들에게 물었습니다.


그런 너는 행복하니?


그 질문에 Yes라고 대답하는 친구는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전 오랫동안 방황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몸이 아주 많이 안 좋아졌습니다. 누워있지 않으면 허리가 너무 아파서 각종 치료를 받았습니다. 물리치료, 접골, 필라테스, 추나 등등등... 그래도 좀처럼 호전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운명처럼 기공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지리산 청학동에서 사시는 사부님은 한 달에 한번 기치료를 위해 서울에 오시는데 마침 치료받는 분이 아버지의 지인이어서 소개를 받게 되었습니다. 사부님은 일주일 정도 서울에 머물며 저를 기치료해주셨습니다. 그리고 혼자 할 수 있는 기공체조도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났을 때, 스카이콩콩을 타듯 점프를 해도 허리가 전혀 아프지 않았습니다. 전 놀라서 감격을 금치 못했고 사부님께 제자로 받아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사부님은 제게 물었습니다.

넌 모든 것을 멈출 자신이 있느냐?

전 혹시 회사를 그만둬야 합니까? 여쭤봤더니 사부님은 허허허 웃으시며 자신이 서울에 자주 오니 굳이 회사를 그만 둘 필요는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냥 주말에 회사 쉴 때 청학동으로 한번 오라고 하셨습니다. 전 바로 회사에 일주일간 휴가를 신청하고 스승님을 따라 청학동에 갔습니다. 사부님은 비닐하우스에 살고 계셨습니다. 당시 겨울이어서 나무장작을 때서 불을 지폈습니다. 하루 일과는 아침 6시에 기상, 명상 > 아침식사(쌀밥, 김치, 김, 마른 멸치) > 시주 (동네를 돌아다니며 기치료를 해주시고 음식을 얻으심)> 기공수련 > 점심식사(시주한 것들, 감자, 고구마 등등)> 기공수련 > 독서 및 공부 > 저녁식사 (라면 한 개 둘이 나눠먹음)> 해지면 바로 취침.

그렇게 일주일을 보낸 마지막 날 사부님이 제게 물으셨습니다.

이제 좀 마음이 편해졌느냐?

신기하게도 정말 그렇게 마음이 평온했던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네'라고 대답했습니다. 또 물으셨습니다.

이제 좀 몸이 편해졌느냐?

신기하게도 정말 몸이 아주 건강해진 느낌이 들었습니다. 온몸에 기운이 쌩쌩 돌고 추위를 잘 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네'라고 대답했습니다. 사부님은 작은 나뭇가지를 주워서 하얀 눈 바닥에 뭔가를 그리셨습니다.


너의 마음은 이곳에 오기 전까지 이런 모양이었다. 삼각형이 뾰족한 이유는 한쪽으로 방향이 쏠려있기 때문이야. 마음은 기운이기도 하다. 한번 쏠린 기운은 멈추기 전까지 계속 흘러간다.


전 삼각형의 꼭짓점을 가리키며 물었습니다. "저곳에 무엇이 있기에 전 저쪽으로 계속 흘러갔을까요?" 스승님은 나뭇가지로 제 머리를 딱! 하고 때리셨습니다.


어찌 그걸 내게 묻느냐? 너의 마음이니 네가 잘 알지 않느냐?


그때 저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전 아무 말없이 뜨거운 눈물을 흘렸습니다. 스승님은 제게 물었습니다.


이곳에 뭐가 있느냐?


"저의 욕심입니다."


이곳에 뭐가 있느냐?


" 아무것도 없습니다. "


스승님은 미소를 지으시며 제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삼각형 위에다가 또 다른 그림을 그리셨습니다.


이것은 네 운명의 수레바퀴이다. 넌 지금까지 바퀴 표면에 끌려다니고 있었다. 바퀴가 멈추지 않기 때문이다. 바퀴가 멈추지 않은 이유는 바로 네 마음 때문이었다. 네 마음의 방향이 끝도 없이 달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넌 마음이 멈췄다. 스스로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그럼 이제 네 마음은 어디에 있느냐?


전 원의 정 가운데를 콕 찍었습니다. 그러자 스승님은 제 어깨를 툭 치시며 허허허 웃었습니다.


이제 넌 네 운명의 주인이 되었구나! 이제부터 넌 네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며 살아가라.


서울로 올라오는 버스 안에서 창밖으로 보이는 새가 마치 제 자신처럼 느껴졌습니다. 진정한 자유를 찾은 느낌, 내 삶의 주인이 된 느낌.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기분이었습니다. 그 후로 전 제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오랫동안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외부의 간섭을 차단하고 끊임없이 제 자신을 관찰했습니다. 그리고 확신이 찼을 때 두려움 없이 모든 생각을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도피성 낭독회>도 그런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 책에서도 수레바퀴의 예가 나옵니다. 수레바퀴 겉에서 맴도는 사람은 욕심도 많고 이기적이고 자신의 망상에 사로잡혀 계속 허공을 맴돕니다. 자신이 자신의 삶에 주인이 아니다 보니 자존감도 낮고 누군가에게 사랑받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합니다. 행여나 누군가에게 거절당하면 어쩌나? 하며 두려움도 큽니다. 눈치도 많이보고 상처도 많이 받습니다. 자신이 특별한 존재임을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 강박에 빠져 삽니다. 그렇게 보통의 삶에서 멀어집니다. 자연스럽고 평범한 삶은 뭔가 불충분하고 무가치하게 느껴집니다. 그러다 보니 공허하고 연약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갑옷을 입게 됩니다. 즉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위대함을 모르다보니 전략적 가면을 쓰게 됩니다.

생각해보면 저의 부모님도 굉장히 두꺼운 갑옷을 입으신 분이었습니다. 어린 제게도 갑옷을 씌어주시며 "세상은 만만하지 않으니 지독하게 싸워나가야 한다."하고 말하셨습니다. 갑옷을 쓰면 답답합니다. 외부의 공기도 잘 들어오지 않고 제 안의 본질도 잘 느껴지지 않습니다. 아마 갑옷을 입고 있는 사람은 그 기분을 잘 알 것입니다. 답답하고 숨 막히고 불편하고 어색한 상태


- 갑옷을 쓴 사람의 공통적 특징-


어딘가 불안해 보인다. (표정이 편안하지 않다.)

습관적으로 자신을 부풀려 자랑한다.

낯선 공동체에 있을 때 친한 사람이 없으면 조바심을 낸다.(가만있으면 우스워 보일까 봐 스마트폰을 보며 바쁜척한다.)

타인과 교감을 잘 못한다.

소유욕이 강하다. (잃는 것을 두려워한다.)

성격이 급하다.

맥락을 잘 파악하지 못한다.

생각이 온통 자신에게 집중되어 있어 관찰을 잘 못한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판단이 앞선다.

혼자 있을 때 뭘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한다.

신경이 예민해 잠을 잘 못 잔다.

귀가 얇다.

뭔가에 자꾸 끄달린다.

뭔가에 중독되어 있다.

가슴이 답답하다.

혈액순환이 잘 안된다.

자신의 만족에 집착한다.


책에서는 갑옷을 '불상을 두른 진흙'에 비유합니다.

실제 티벳인가에 오랫동안 진흙이 덮여있던 커다란 불상이 있었습니다. 승려들은 매년 불상에 진흙을 덧칠하는 의식을 치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진흙이 갈라져 안에 있는 불상 본연의 색이 새어나왔는데 그것이 금빛이었습니다. 놀란 승려들은 이제 진흙을 다 거두어냈습니다. 알고 보니 그 불상은 원래 금색이었습이다. 아주 오래전 누군가가 불상을 지키기 위해 진흙으로 덧칠을 해두었던 것을 모르고 불상을 보호한다고 수년 동안 계속 진흙을 덧칠한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쓴 갑옷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본연의 아름다움을 가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빨리 갑옷을 벗어야 합니다. 갑옷을 벗기 위해서는 우선 지금 나는 잘못 살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의 본연이 아름답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멈춰야 합니다.

그제야 가속도가 붙은 수레바퀴가 천천히 멈춥니다.

주의점은 수레바퀴가 멈추는 동안 절대 불안해해서는 안됩니다. 불안을 느끼다 보면 또다시 속도가 붙어 바퀴가 돌아갑니다. 그냥 모든 것을 다 버리는 마음으로 잔잔해지기를 기다립니다. 그럼 저절로 불상을 뒤덮은 마른 진흙이 점차 후드득 떨어져 나가듯이 본연의 자신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바퀴가 멈추고 나는 수레바퀴의 중심으로 스르르 이동하게 됩니다.

그 순간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이제 뭐하지?


당신이 당장 해야 할 것은 진정한 자신을 느끼는 것뿐입니다.

책에는 인간은 누구나 근원적인 불자라 합니다. 선한 인간. 여기서 선하다는 것은 Good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Belong(속해있다)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이미 신에, 우주에, 근원적 생명에 속해있습니다. 근원은 살아 숨쉬기에 지금 내가 가만히 있어도 가만있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평정심을 가지고 가만있다보면 나는 근원 속에 이미 있다는 것을 느끼며 분리불안이 없어집니다. 나와 외부에 단단히 버티고 있던 벽이 서서히 무너집니다. 그동안 주변인을 적대시했던 마음이 바뀌기 시작합니다. 모두가 내 편입니다.


자 이제 오솔길의 끝에 도착했습니다.

마음이 좀 편안해지셨습니까?


약수터가 보이네요. 우리 시원한 물을 한 바가지씩 마시며 갈증을 풀어봅시다.

엇! 약수터 앞에 있는 바위에 어떤 글씨가 새겨져 있네요!



좋거나 나쁜 것은 없다. 단지 생각이 있을 뿐이다.



무슨 뜻이냐고요? 조급해 마시고 약수물을 마시는 동안 설명해드리겠습니다. 나뭇잎을 띄어 천천히 마시세요.


무엇이 좋고 무엇이 나쁜 것일까요? 그 판단의 기준은 어디서 온 것일까요?

세상은 원래 그냥 그대로 있습니다. '좋다'와 '나쁘다'는 나의 생각일 뿐입니다.

그래서 좋은 것도 나쁜 것도 다 같은 것입니다.

그 바가지 속에 반즈음 남은 물을 보고 "좋다! 반이나 남았네~" 말할 수도 있고 "나쁘다! 반밖에 안 남았구나!"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내 생각은 절대 진리가 아닙니다. 이 약수물처럼 그냥 흘러가는 것입니다. 흘러가는 것은 그냥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세요. 그것을 잡는 것은 헛된 것입니다.

오직 참 진리는 바가지속에 남은 물뿐입니다.


다음 낭독회에서는 책에서 추천하는 '호흡명상'을 다 같이 해보려 합니다.

낭독회에 관심이 있으신 분은 매주 금요일 연희동 카페 도피성으로 8시 전까지 오시면 됩니다.

회비는 없습니다. 그냥 음료수 하나 시키시면 됩니다.

참가신청은 카카오톡 아이디 dominogame으로 문자 주시면 됩니다.

그럼 또 다음 주에 새로운 길을 산책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