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소하다

하루키가 되다

ONE DAY ONE PAGE ㅣ 윤성권

by 한공기
스크린샷 2016-02-03 오후 4.16.59.png 재생에너지 연구가


책상 앞에서가 아닌 사람들 속에서 좀 더 현실적이고 모두가 쉽게 접근 가능하고 실현 가능한 재생에너지 정책을 조사하고 연구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작가 프로필ㅣ 윤성권
평소에 꿈을 디테일하게 꾼다. 그것을 각색해서 쓰면 재밌겠다고 생각함


지난여름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읽고, 나도 하루키를 닮아보고자, 정확히 말하면 그와 비슷한 패턴으로 살아가 보려고 노력했다. 하루키의 일과를 간단히 설명하면 저녁 10시 무렵에 자고, 4~5시쯤 일어나서 대략 10시까지 글을 쓴다. 그리고 여러 취미활동을 하고, 저녁 10시가 되면 잔다. 그래서 나도 일찍 자고, 새벽에 일어나서 맑은 정신일 때 업무(보고서 작성 혹은 번역 등)를 수행한다. 대신 야근을 하지 않고, 정시퇴근을 한다. 중요한 일은 모두 새벽으로 미룬다. 이러한 패턴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일찍 자야 한다. 밤이 되면 잠자리에 들기 위해서 나에게 잠을 잘 것이라고 최면을 걸었다. 처음 며칠은 일찍 잠자리에 들기가 무척 어려웠지만, 며칠 있으니 10시가 되면 졸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적응이 되려다가도 잊을 만하면 짠하고 생기는 술 약속 때문에 패턴이 무너지기 일쑤였다. 그래도 거의 한 달이 넘게 지속하면서 노력했다. 자연스레 술도 거의 마시지 않았다. 마시더라도 한 두잔 정도만 마시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건강도 챙기고 업무도 챙기는 일거양득의 효과도 거두었다. 또한, 술을 거의 마시지 않았기 때문에 돈도 많이 절약했다. 그러나 길었던 여름이 끝나면서 어느새 나도 모르게 하루키와 멀어져 갔다. 이것은 분명 힘들 게 다이어트를 했는데 어느새 나도 모르게 본래 몸무게로 돌아간 것과 같았다. 새로운 패턴에 적응할 때는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다시 원래의 패턴으로 돌아오는 데는 며칠이면 충분한 것 같았다. 일찍 자고 새벽에 일어나서 일한다는 것이 마치 오래된 과거의 일이 되어 버렸다. 순식간에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버렸다. 11월의 마지막 날에 모처럼 일찍 귀가 후, 집에서 곰곰이 생각했다. 그래 내일이 12월의 첫날이기도 하니 내일부터 다시 하루키로 돌아가 보자 생각했다. 밤 10시 20분에 잠자리에 누웠다. 잠이 오려나? 심호흡을 좀 할까? 하체부터 힘을 서서히 빼서 몸이 바닥으로 빨려들어 가는 것처럼 생각해볼까? 그러다 잠이 들었다. 알람은 7시에 맞추었지만, 4시에 눈이 떠졌다. 보통 때였으면 아직 3시간이나 더 잘 수 있다는 것에 기분이 좋아졌겠지만, 오늘부터 다시 하루키가 되기로 했으니 번쩍 일어났다. 화장실에 갔다가 물을 마시고, 스탠드를 켰다. 모처럼 소중한 시간이 주어지니 왠지 일하기가 싫었다. 일 따위로 이 시간을 보낸다는 게 아깝게 느껴졌다. 그래서 책을 보고, 신문을 보았다. 아침밥도 먹었다. 파운틴에 글을 써볼까도 했는데 글쓰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일찍 영어학원에 가서 공부하고 출근을 하면 좋을 것 같았다. 학원에 일찍 가면 조금 기다려야 하므로 집에서 조금 시간을 보내다가 나왔다. 버스를 타려고 걸어가는 데 갑자기 배가 너무 아팠다. 아침에 일어나서 화장실도 다녀왔는데 배가 이렇게 아픈 건 분명 설사증세이다. 이건 참을 수 없다. 대형사고가 날지도 모른다. 아픈 배를 부여잡으며 버스를 떠나 보내고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으로 뛰다시피 걸었다. 겨우 화장실에 당도했는데, (이런 제길) 화장실이 만석이다. 더구나 내 앞에 기다리는 사람도 있다. 다행히 오래 기다리지 않고 내 차례가 되었다. 큰일을 치르고 나와서 손을 씻고 시계를 보니. (이런 젠장) 평소 출근 시간과 똑같은 시간이 되어버렸다. 난 오늘 아침에 대체 뭘 한 거지? 큰일을 치른 기억 밖에 없다. 하루키가 되는 건 내일부터 해야겠다. 11시쯤 잠자리에 들었다. 이번에도 알람이 울리기 전에 일어났는데 이불 밖으로 나가는 게 너무 춥다. 스마트폰을 켜고 대통령 탄핵 관련 뉴스를 읽다가, 카톡 메시지를 보다가 따스함이 밀려와 어느새 잠이 들었다. 푹 잔 것 같다. 눈 떠보니 8시다. 늦었다. 왜 알람이 울리지 않았지? 알람 탓을 할 여유가 없다. 후다닥 출근준비를 하며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 겨울에 하루키가 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인 것 같다. 하루키가 되는 건 여름부터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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