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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와인

KEYWORD ONE PAGE <술> ㅣ 화이

by 한공기
화이 프로필.jpg 땅고댄서


어느 날 미드를 보다가 문득, 우리나라도 땅고를 매개로 한 드라마가 있으면 많은 이들에게 땅고라는 춤을 전할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에 드라마를 만들 수 있는 소설을 쓰고 싶어졌습니다.



작가 프로필 ㅣ 화이

아르헨티나 땅고 댄서이자 땅고 아카데미 '엘 불린' 대표

도서 '탱고레슨' 저자




나는 술을 못 마신다. 아니, 술이 취하지 않는다고 하는 게 맞을 듯하다. 취한다는 뜻이 술의 알코올 성분이 뇌를 자극해 기분이 좋아지고 나른한 느낌과 함께 세상이 갑자기 다 아름답고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치솟는 상태라고 한다면, 나는 절대 술에 취하지 않는다. 다만 알코올이 몸 안으로 들어가면 얼굴과 몸이 빨개지고 머리가 아프다. 몸 안에 알코올을 분해하는 성분이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나 같은 사람은 술을 마시면 안 된다는 것이다.


어릴 때, 대학교 신입생 때는 객기로 술을 마셨다. 한번은 교내 회지를 만든답시고 주변 레스토랑이나 주점 등에서 스폰서 명목으로 돈을 받고 회지 내에 광고를 실어주는 영업을 다닌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자주 가던 주점 사장님과 술을 마실 기회가 있었다. 사장님은 그 동네의 힘 좀 쓰는 건달인 듯 보이는 이른바 형님과 술자리를 하고 있었는데 내가 영업을 빌미로 끼어든 것이었다. 사장님과 형님과 형님의 동생들까지 합쳐 예닐곱의 남자와 여자는 나 달랑 혼자였다. 분위기상 빠져서 집에 갈 수도 없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 때 주점에서 소주를 마시고 다들 취한 가운데 자리를 옮겨 강남역 어느 바에서 양주를 두세 병을 비우고 나와서 편의점에서 맥주를 사서 길바닥에 앉아 마셨다. 하지만 나는 취하지 않았다. 아니, 취할 수 없었다. 내가 거기서 취했다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 것인가,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이후 나는 술은 정신력으로 먹는 것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이후 나의 정신력으로 마시는 술은 졸업 이후까지 계속 되었는데, 세 번에 걸쳐 술에 된통 당해 보았다. 첫 번째는 소주에, 두 번째는 막걸리의 뒤끝에, 세 번째는 바카디에 포카리 스웨트를 섞어 먹고 다음날 숙취로 기절하다시피 업혀왔던 기억을 마지막으로 술을 끊었다. 이후로는 분위기상 와인 한잔을 네 시간에 걸쳐 마신다던가, 샴페인 한잔으로 분위기를 낸다던가 하는 정도만 하고 있다.


한참 연극을 하던 때에는 술자리에서 선배가 주는 술을 마다하면 말 그대로 ‘찍히는’ 상황이 되어 그리 곤란한 게 아니었다. 술을 마실 줄 모르는 사람은 배우도 아니야! 라고 주장하는 그들에게 술을 거절하는 후배는 버르장머리 없는 미운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늘 테이블에 앉으면 소주잔에 물을 먼저 따라 놓는다. 다들 건배를 하면 같이 건배를 하고 소주잔에 담긴 물을 마신다. 대부분 내가 소주를 마시는 줄 안다. 잔이 비면 몰래 얼른 물을 채운다. 누군가는 “너 술 많이 마셨는데 괜찮아?” 하고 묻기도 한다. 그럼 나는 그저 씨익 웃곤 했다. 하지만 가끔 선배가 술을 직접 잔에 따라주면서 마시라고 앞에서 지켜볼 때도 있었다. 이럴 때면 언젠가 영화에서 봤던 장면을 이용해 상황을 모면하곤 했다. 먼저 유리잔이 아닌 물컵을 준비하면서 “제가 술을 잘 못해서요” 라고 양해를 구한다. 선배의 잔을 비우고 바로 물을 마시는 척 하면서 물컵에 술을 뱉는다. 물론 내 물컵은 다른 이가 마시지 못하게 챙겨놓아야 한다. 대부분 이렇게 술자리에서 분위기 깨지 않고 어울리곤 했었다.


사실, 술을 마시고 기분이 좋아지는 경험을 해 보지 못한 나는 사람들이 술을 마시는 게 부럽다. 축하해야 할 때 들떠서 데킬라 건배를 하는 이들을 보거나, 갈증이 날 때 차가운 맥주 한 캔을 시원하게 들이키는 모습을 보면 다들 즐기는 무언가가 내게는 결핍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내가 술을 마시는 날은 나를 벌주고 싶은 때, 내가 너무 싫어지고 세상이 나에게 등을 돌렸다고 느껴질 때다. 술을 마시면 괴로워지기 때문에 나는 나 자신에게 고통을 주기로 결심한 날 술을 폭음한다. 나는 가지고 있는 트라우마 때문에 내가 상처를 받은 이유를 내 자신에게 돌리는 버릇이 있다. 그래서 상처받은 나에게 오히려 벌로 술을 들이 붓는다.


그런데 얼마 전에 너무 속상했던 날, 누군가 선물해 준 와인을 따서 혼자 마신 적이 있다. 한 병을 다 마셨는데, 다른 때 같으면 속이 울렁거리고 머리가 아프고 토하고 난리가 났을 텐데 너무 멀쩡한 거다. 다음날 숙취도 없었다. 한 순간, 드디어 내가 체질이 변해서 술을 마셔도 아무런 반응이 없게 된 걸까 싶었다. 그런데, 병을 버리기 전에 혹시나 싶어 라벨을 확인해 보니 알코올 함유량 5%라고 써져 있었다. 알코올 5%인 와인이 있다니...!! 게다가 남자가 여자와 데이트할 때 환심을 사려고 사용한다는 모스까또 품종의 화이트 와인이라니...! 드디어 내 인생 와인을 찾은 기분이었다. 나도 이제 기분 내고 싶은 날, 얼굴 빨개지고 머리가 아플 염려 없이 와인으로 한 잔, 아니 일 병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남들처럼 ‘취한다’는 기분은 느끼지 못하지만, 술의 이름과 술자리의 분위기를 빌어 적당히 취한 척 할 수 있다는 것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물론 먹고 죽자는 식으로 몸도 못 가누고 정신이 외출할 정도로 마시는 것은 반대다. 하지만 마음껏 들뜬 기분을 즐겨도 된다는 암묵적 양해는 술자리가 가지는 가장 큰 유혹이 아닐까 싶다. 내 생일이었던 지난 크리스마스이브에, 백화점에서 큰맘 먹고 산 한우 스테이크를 굽고 내 인생와인을 한 병 사서 잔 가득 따랐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음식인 비프스테이크와 곁들인 와인 한잔, 비록 레드와인은 아니었을지언정, 그 어느 파티도 부럽지 않은 행복한 생일 저녁이었다. 술에 취한 척 들뜬 기분으로 외치면서 말이다.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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