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DAY ONE PAGE ㅣ 최나영
종일 카페에 있으며 전 저만의 다락방을 상상해요. 다락방 속에는 제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세계에 존재했던 가장 소중한 것들이 정돈되어 있죠. 그 다락방에서 진정한 제 자신을 만나곤 하죠. 저는 저만큼 신비로운 존재를 이제껏 만나본 적이 없어요.
작가 프로필 ㅣ 최나영
기독 신학교 출신인 그녀는 서양 철학과 동양 철학에 관심이 많다. 매일 그녀의 성에 들르는 수많은 사람들과 마주하며 우주와 인간의 본질을 탐구한다.
기사를 보았다. 외롭기 위하여 교수직을 내려 놓고 일본으로 도망친 50대 한 남자의 이야기였다. 외롭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는 사람들 사이에서 외로움을 찾아 여행을 떠나다니. 그러고 보니 외로움이 주는 아름다움이 분명히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외롭다는 것을 자세히 느끼고 생각하며 살지는 않지만, 나는 필경 외롭다. 있은지 오래도록 없는 이로 취급받아 온 외로움은 또 내 안에서 얼마나 외로웠을지. 문득 내 안의 골방에서 쭈그리고 앉은 외로움이 보였다.
골방, 큰방의 뒤쪽에 딸린 작은방.
예부터 골방은 혼자 숨기 좋은 방이었다. 엄마가 부탁한 심부름을 다 마치지 않고선 골방에 몰래 숨어 오빠 책을 훔쳐보는 소녀, 동생 몰래 홍시를 숨겨 골방으로 들어가 서둘러 먹어 치우는 소년. 어쨌든 숨어 있기 좋았던 방이었던 것만은 확실하다. 그래서인지 교회 어른들이 어려운 일이 있을 때면 골방 가서 은밀히 기도해라, 하시던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러고 보니 골방을 혼자서 깊이 기도할 수 있는 공간으로 여긴 것이 이때부터였나 보다. 아무튼 나는 교회 어른들이 말하는 골방을 찾아 다녔었다. 때로는 혼자 산에 오르기도 했고, 때로는 아무도 없는 방을 찾아다니기도 했다. 그땐 어쩌면 골방을 외부의 실제적 한 공간으로만 여겼었나 보다. 그런데 이제는 알게 되었다. 골방은 내 안의 큰방 그 옆의 소외된 작은방이라는 것을.
소외, 어떤 무리에서 기피하여 따돌리거나 멀리하는 것.
우리는 소외가 필연인 세상에서 살아 왔고, 소외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애초에 인간의 탄생이 그러하다. 있던 세계로부터의 분리가 우리의 출생이다. 모태로부터의 분리가 우리 존재의 시작이 아니던가. 세계와 다름 없는 어머니 품에서 떨어져 놓아질 때마다 수시로 우리는 극한 정서적 분리를 경험해야 했다. 분리를 시작으로 하여 아직 내가 누구이고, 어디에서 출발해 왜 이곳에 있어야 하는지 깨닫지 못한 중에 우리는 타인을 만나고 정리되지 않은 다름을 인식한다. 미처 내가 다 발견되기 전에 타인을 발견한다는 것은 어느 면에서 매우 혹독하지 않을 수 없다. 나를 잘 이해하고 알고 난 후에 타인과 세계를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충분한 나로서 타인을 마주할 수 있는 자는 매우 복되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까지 우리는 타인과 나, 공동체와 나 사이에서 엉망진창이 된다. 내가 누군지, 내 앞의 너는 또 뭔지, 이 세계를 어떻게 봐야하는 것인지 엉키고 또 엉킨다. 나는 이런 사람이고 너는 그런 사람이구나 싶다가도, 어느 새 또다시 낯선 나와 너 사이에서 우리는 내기하듯 소외를 낳는다. 너를 밀어내고 나를 잠궈둔다. 세계는 나에게 높은 성벽을 치고 내 자리는 성안엔 커녕 성벽 모퉁이에도 없다. 자의와 타의가 뒤범벅 된 소외 안에서 우리는 살아 간다. 소외가 익숙한 우리에게 골방은 전혀 필요하지 않아 보인다. 원래도 늘 외로운 혼자인데 무슨 방까지 굳이 따로 만들어 혼자있는단 말인가. 의아할 뿐이다.
그런데 어쩌면 진짜 소외는 내 안에서 가장 잔인하게 일어나는 것은 아닐까. 보이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보이지 않는 내 안의 세상을 소외시키고 만 것은 아닐까. 큰방은 그나마 상황이 낫다. 그 옆의 작은방은 문고리 한 번 잡아본 적이 없다. 그러니 그 안에 혼자 숨은 외로움을 만나본 적이 있을 리 만무하다. 외로움은 인간의 가장 근본된 존재감이다. 외로움의 목소리를 들은 적이 없다면 어쩌면 내 목소리를 들은 적이 없는 것일지 모른다. 진정 나를 찾고자 한다면 우리는 내 안의 큰방 옆 소외된 작은방의 문고리를 잡아야 한다. 골방 안의 혼자인지 오래된 나를 만나야 한다. 어쩌면 오늘 우연히 본 기사 속 50대 한 남자는 잃어버린 자신을 찾아 떠난 것일지 모른다. 보이지 않는 내면 세계 그 구석 골방 안에 숨어있는 자기 자신 그 자체인 외로움을 만나러 간 것이다.
골방 문을 잡아 돌려 열었을 때 비로소 나는 나를 만난다. 보이는 세계에서 만들어진 나를 벗고 보이지 않는 세계에 사는 그대로의 내 알몸을 본다. 지금껏 나만을 기다려 온 나를 본다. 그 눈동자를 본다. 그 눈동자에 비친 나를 본다. 거친 바람을 맞으며 돌고 돌다 너무 늦은 내가 거기 있다. 그 눈동자에 있다. 평생을 따라 붙던 수많은 눈동자는 이제 나를 찾지 못한다. 더는 다른 눈이 없는 나의 골방엔 오직 한 눈동자만이 있다. 나를 보는 내 눈만이 거기에 있다. 거기서 나와 나는 만난다. 나는 차오르는 외로움에 나를 오롯이 담근다. 외로움은 내게 힘을 입어 골방을 가득 메운다. 터질 듯한 골방 그곳에서 고독은 기꺼이 출산된다. 평생에 가장 복된 탄생이다.
우리는 외로워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리워해야 한다. 나에게 내가 없어서 외로워야 하고 사무치게 그리운 것이 내가 되어야 한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서로이기 이전에 나 자신이다.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나다. 우리는 나를 찾고자 울어야 한다. 내가 나를 만날 수 있다면 우리는 하늘을 만날 수 있다. 내가 나를 만질 수 있다면 우리는 하늘 위 구름을 만질 수 있다. 내가 나를 들을 수 있다면 우리는 들판에 나부끼는 풀잎을 들을 수 있다. 내가 나를 볼 수 있다면 우리는 구석진 모퉁이에 앉은 작은 자의 쓰린 눈을 볼 수 있게 된다.
나의 골방에 들어가 그곳에 누워 나를 기다려 보련다. 고요히 그곳에 누워 보련다. 창도 없는 나의 작은 골방에 어쩐지 따사로운 엷은 햇살이 드리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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