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DAY ONE PAGE ㅣ 김연정
즐거운 감정은 빨래가 마르듯 금방 날아가 버리고, 우울한 감성, 생각들은 언제나 침전하여 남아있음을 느낍니다. 우울함, 불안함, 슬픔, 좌절감에 예민하고 행복에 예민하지 못한 제 자신이 조금 부정적인 사람이라고 느껴지지만, 아직까지는 수면 위 햇살보다는 우울한 바다 쪽이 더 좋은 것 같습니다. 어두운 것들이 가라앉아 있는 심해心海 속을 당분간 탐구하면서 글을 써 볼 예정입니다. 언젠가는, 나를 힘없게 만드는 것들에 대한 예민함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에게로 자리를 옮겨가길 기대합니다.
연말은 평화로웠다. 불편한 사람들과 만날 일도 없었고, 올해 알게 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으며 여전히 곁에 있어주는 친구들과도 괜찮은 시간을 보냈으니까. 외할머니의 치매와 그에 동반된 눈에 띄는 노화에 엄마는 힘들어했지만 적응하는 듯 보였다. 엄마는 이모들을 자주 만나기 시작했고 주말에는 몇 가지 활동을 시작했다. 아빠는 여전히 거실에서 TV를 차지하고 있다. 아빠는 내가 유치원생일 때부터 ‘판관 포청천’의 시청자였던 것 같은데 2017년에도 그럴 생각인가 보다. 이쯤이면 중국어는 하셔야 할 텐데 말이다. 이제 그만 일에서 은퇴하고 인생을 즐기셨으면 좋겠지만, 아빠는 아직 그럴 생각은 없으신가 보다. 아마도 아빠의 작은 공장에는 내가 알 수 없는 당신만의 안락함이 있는 거라고 추측만 해볼 뿐이다. 동생은 취업을 해서 직장인이 되었다. 더 이상 내게 돈이 부족하다며 이것저것 구걸하지 않는다. 참으로 잘 된 일이다. 그리고 작년 이맘 때 즘부터, 아니 이제는 재작년이지, 아무튼 1년 전부터 사귀기 시작했던 여자 친구와는 내 예상과 달리 잘 지내고 있는 것 같다. 저 무뚝뚝하고 무심한 유전인자가 다행히도 밖에서는 스윗해지나보다. 어쩔 수 없이 들리곤 했던 통화의 목소리를 떠올려보면 그렇다. 동생은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리고 나는 - 나도 이 위의 문장들 속에서 무난히 흘러갈 수 있으면 좋으련만. 누군가의 텍스트 위에서 안정적인 한 문장으로 살아있을 나를 잠시 상상해본다. - 별 일은 없다. 많은 이들이 즐거웠던 일은 잊고 삶의 지루한 파편만을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다. 우울해보여도 까보면 막상 별일은 없는 것이다. 그저 해가 바뀌는 때를 빌미로 삼아 잔잔한 호수위에 떠있는 마음으로 덧없는 시간의 우울함을 음미하고 있을 뿐이다. 우아하게 포장하려 했지만 결국 한 살 더 먹어서 슬프다는 얘기다. 내일이 오는 걸 대체 누가 막을 수 있으랴. 아마도 새해 첫 날부터 늦잠을 잔 것은 매일 강제로 밤을 물리고 찾아오는 아침, 칼같이 하루를 도려내는 냉철한 시간에 대한 반항심 때문일 것이다.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미래로 타임 슬립 해보겠다는 이상한 고집, 늦잠스킬! 하지만 멋없게도 평일에 이런 반항심은 잠재워 두는 게 좋을 것이다. 일을 하는 우리에게 잠을 자는 시간은 자유지만 기상시간은 항상 정해져 있으니까.
나는 늦은 오후까지 누워있었고, 그런 내게 뭐라 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불속에서 게으르게도 나름의 스트레칭을 하며 책을 이리저리 펴봤던 것 같다. 어떤 오후 시간을 보냈는지는 지금에 와서는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마 때 되면 밥을 먹고 싸고 잤을 것이다. 무엇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계속 꿀꿀해 했던 것은 기억한다. 그리고 그날 밤이었다. 청승을 떨며 노래를 듣고, 자주 보는 칼럼니스트의 글을 탐독하며 이불속에서 궁상을 떨고 있었다. 가볍게 보이려 포장하려 했지만 자기 전 이불속에서 궁상을 떠는 나의 모습은 때론 심각하다. 다들 한번쯤 사무치게 외로워서 가슴이 시려본 적 있을 것이다. 그런 감정은 주로 뭔가가 바뀔 때 심해진다. 계절이 바뀌거나, 하루가 다른 하루로 넘어갈 때라든가. 그날도 그런 날이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사랑을 하거나 받는 건 힘든 일이구나. 그런 기적은 어떤 일을 겪은 것에 대한 보상으로 일어나질 않는구나. 사랑은 시련을 견딘 것에 대한 위로로 다가오지 않는다는 생각에 이어지는 억울함은 이미 과거의 것이었다. 대신 요동치는 원초적인 마음을 내리누르는 절제, 방어기제, 무심함. 그런 것들 때문에 허전하고 외로웠다. 애정 어린 마음으로 손을 잡는 것, 포옹을 하는 것, 볼과 볼을 맞대는 것. 가볍고도 심각하지 않은 사랑의 몸짓들. 평범하고 친근한 인사 같은 것들이 점점 내게서 멀어져 무겁고 심각해지는 것들로 느껴지는 바람에 두려웠던 것 같다. 그때 캄캄한 어둠사이로 끼익 소리와 함께 빛이 새어 들어왔다. 엄마였다. 아주 가끔, 엄마는 자기 전 수다가 필요할 때 나를 찾는다. 아빠는 일상적 수다를 떨 수 없는 유형, 동생은 그 정도는 아니지만 남자들 중 누가 여자들의 수다를 만족시킬 수 있으랴. 엄마는 누워있는 내 옆에 앉는 대신 나란히 누웠다. 그리고 이전에는 한 번도 하지 않던 것을 하기 시작했다. 내 얼굴을 양팔로 감싸 안더니 내 볼에 엄마의 볼을 맞댄 것이다. 나체의 존레논이 오노요코의 얼굴을 감싸 안는 사진처럼. 차이가 있다면 엄마는 나체가 아니라는 것과 다리를 내 몸 위로 올리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볼에 하는 키스대신 볼을 맞대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팔로 얼굴을 감싸 안는 포즈를 빼고는 전부 다르다는 이야기인데, 나는 엄마가 나에게 그렇게 하는 순간 반사적으로 그 사진이 떠올랐다. 엄마는 그렇게 볼을 맞댄 채 새해 복 많이 받으라고 했다. 그리고 행복하자고 했다. 그렇게 두 마디 하고는 나가버렸다.
2017년이 된지도 20일이 흘렀다. 요즘은 이전처럼 늦잠을 자지 않는다. 나는 잔잔한 호수의 한복판에서 노를 저어 물가로 기어 나왔다. 어젯밤에는 많은 눈이 내렸고, 오늘 아침 걸었던 거리의 잎사귀 위에는 눈이 소복하게 쌓여 있었다. 짙은 청록의 두꺼운 잎사귀와 하얀 눈이 볼을 맞대고 있었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겨울 아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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