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소하다

목욕탕

ONE DAY ONE PAGE ㅣ한공기

by 한공기
427155_315705241826240_873170111_n 복사본.jpg 마음탐정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인간의 마음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정작 그것을 모른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행복의 본질은 모두 자신의 마음속에 숨어있습니다. 전 그것을 찾아주고 싶어요.



작가 프로필 ㅣ 한공기

글쓰기 공동체 '파운틴' 운영자

보통사람의 사소한 일상이 콘텐츠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글쓰기 공동체를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송중기처럼 청순한 남자이고 싶어 한다. 우리는 이름도 비슷하다.




구정이라는 이유로 오랜만에 찾아간 집. 시골 간 아버지만 빼고 온 가족이 모였다. 식탁의 공간이 모자랄 정도로 빽빽하게 차려진 밥상에 혼자 이걸 다 하신 어머니의 기백에 감탄했다. 어릴 적부터 느껴온 거지만 아버지가 선비라면 어머니는 장군이다. 그래서 우리 집 안의 모든 열매가 어머니의 깃발 아래서 완성되었다. 삼남매의 교육과 집, 누나와 여동생의 결혼 또 그들의 아이를 엄마가 다 키우셨지…물론 어머니는 나의 결혼문제에 대해 매우 관심이 많으셔서 밥 먹는 내내 “넌 도대체 언제장가 갈거니? 왜 여자를 안 만나니? 혹시 남자 좋아하니?” 잔소리 하셨고 난 또 장이 꼬여 배탈이 나고 말았다. 식사를 마치고 재빨리 세배를 하고 나의 집에 돌아왔다.


내가 부모님 집에 자주 가지 않는 이유는 1분도 마음 편히 있을 수 없어서이다. 어머니는 사사건건 나의 삶에 간섭하셔서 손등에 난 잔털까지도 쭈뼛쭈뼛 돋게 만는다. 반면 아버지는 무관심을 유지하시며 집에 갈 때 한번 집에서 나올 때 한번 내 얼굴을 봐주신다. (그런 면에서 아버지가 참 좋다.).


너무 고단한 정유년 첫날을 보내고 난 지쳐서 일찍 잠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점심까지 늦잠을 자다가 새해기념으로 목욕탕에 갔다. 집에서 나와 스무 걸음을 걸으면 아주 조그만한 목욕탕이 나온다. 이곳은 신기하게도 구두를 닦는 아저씨가 이발을 하기도 하고 때도 미신다. 동네 사람들이 주 고객이라 갈 때마다 자주보는 얼굴들이 있다. 온탕에 들어가 가부좌를 틀고참선을 하고있는데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일요일마다 함께 오는 어느 부자의 대화 소리. 생각해보니 아들을 본지 2년이 지났는데 굉장히 반가웠다. 2년전 둘의 대화내용은 곧 군대 갈 아들에게 하는 아빠의 조언이었다. 당시에 흐물흐물해 보이던아들의 몸이 오늘 보니 무척 탄탄해져 있었다. 오늘 대화는 아들 여자친구에 관한 내용이었다. 여친의 아버지가 퇴직하고 집에서 놀고있다는 사실에 남자의 아빠는 불편해하는 심기를 드러냈고 아들은 아직 결혼할 사이도 아닌데 아빠가 무슨 상관이냐며 짜증을 냈다. 부자의 대화 내용을 엿듣다가 문득 나의 아버지가 생각났다. 내가 우리 아버지와 함께 목욕탕을 간 게 언제였지?


세상에 내가 군대 이등병 시절 가족들이 면회 왔을 때이다. 당시 난 소시오패스 선임병을 만나서 매일 군화로 정강이를 까였는데 딱지가 굳기 전에도 또 맞곤해서 늘 피멍이 들어 있었다. 그 상처를 감추고 싶었는데 아버지와 같이 들어간 목욕탕 안에서 들키고야 말았다. 그곳은 포천에서 제일 큰 목욕탕이었는데 내가 자리를 옮길 때마다 (온탕에서 노천탕으로, 노천탕에서사우나로…) 아버지는 어느새 날 쫓아오셔서 조용히 내 옆에 자리를 지키셨다. 워낙 감정 표현을 안 하시는 분이라 그런 모습이 무척 놀랍고 낯설었다. 어릴 때 매주 일요일 아버지와 동네 목욕탕에 갔던 기억이 났다. 나를 씻기시고 때를 밀어 주시고 목욕이 끝나면 바나나 우유를 사주셨던 아버지. 모녀지간에게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확실히 부자지간에는 대중 목욕탕이매우 의미있는 공간이다. 서로의 벗은 모습을 보며 친해지며 툭 터놓고 모처럼 솔직한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아버지는 아들을 보며 ‘어느 새 내 아들이 이만큼 컸구나!’ 놀라기도 하고 아들은 아버지를 보며 ‘어느 새 우리 아버지가 많이 늙었구나!’ 놀라기도 한다.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부자지간이 함께 목욕탕 갈 일도 없어지고 행여나 가게 되도 예전처럼 서로의 등을 밀어주지 않게 되는데 난 왜 우리가 점점 서먹서먹해지는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다.


그런 게 너무 아쉬운데 무엇이 우릴 이렇게 만들었는지…그 무엇이 너무도 얄밉기만 하다. 그런데 그 무엇이 도대체 무엇인가? 궁금해졌다. 그러다가 나의 요가 선생님 팔에 새겨진 타투가 떠올랐다.


배려, 이해, 공감, 동감, 교감


“선생님 이게 뭐예요?”

“아 제가 사람문제로 너무 힘들어할 때 친구가 해주었던 조언이 마음에 남아 잊지않기 위해 남긴 거예요.”

“그 조언이 어떤 건데요?”

“사람과 사람이 소통하려면 제일 먼저 배려하고 그러다 보면 서로 이해하게 된다고 하네요. 이해하면 공감이 시작되고 그러다 결국 상대의 마음에 거의 가깝게 동감하게 되죠. 그렇게 우리는 교감할 수 있는 거라는 거…”


난 그 다섯 가지 단어가 머릿속에 문신을 한 것처럼 잊혀지지 않았다. 이 나라에 살면서 심지어 가족 간에도 없었던 그 과정…그래서 아마 우리 모두가 처절하게 고독한 게 아닌가 싶다. 모두가 각자 자신만의 옷을 입은 채 살아가고 있지만 그 옷을훌훌 벗고 탕에 들어가면 우린 모두 똑같은 사람이다.


오랫동안 사념에 빠져 온탕에 있다보니 냉탕이 가고싶어 졌다. 가부좌를 틀고 벌떡 일어나 온탕을 나오는데 옆의 부자는 아직까지도 여친의 아버지 문제로 티격태격 하고 있었다. 냉탕 안으로 첨벙 하고 들어갔지만 오늘은 왠지 수영을 안 하게 되었다. 생전 처음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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