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나누는 대화 ㅣ 임나무
매일 500 페이지를 읽습니다. 제가 글을 쓴다면 '카프카'처럼 쓰고 싶어요. 카프카를 읽으면 약간 푸르스름한 흑백영화를 보는 기분이 듭니다.
작가 프로필 ㅣ 임나무
취미가 독서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엄청난 독서광.
자신이 읽은 책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보려 한다.
안녕하세요, 오래전부터 말씀은 숱하게 들었는데 직접 뵙는 건 처음이네요.
그런데 제가 상상한 모습과는 많이 다르세요.
네? 아… 사실은 굉장히 무뚝뚝하고 심각한 분인 줄 알았거든요.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대단한 분이라고 하길래 뭔가 일반인 하고는 다를 거라고 지레 겁먹고 있었나 봐요.
솔직히 약간 거부감 같은 것도 없진 않았어요.
선생님… 선생님이라고 불러도 되나요? 다들 그렇게 부르는 것 같던데…
감사합니다. 선생님은 모르 시겠지만 시험문제로 무지 많이 나오셨으니까요.
그리고 선생님이 하셨다는 유명한말이 별로 맘에 안 들기도 했구요.
우연히 며칠 전부터 선생님이 다른분들과 만나서 얘기하시는 걸 따라다니다보니
그동안 선생님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겉모습만 반전인 게 아니라 성격도 완전 역대급 대반전이세요.
욕처럼 들린다고요? 에이, 설마요. 진심 칭찬이에요.
제 친구한테 ‘정말 사랑스러운 분’이라고 했는 걸요.
구체적으로요? 원래 남들한테 비춰지는 이미지에 별 신경 안 쓰시잖아요.
그래도 논의를 진행하기 위하여서라고요?
하하, 저한테 지금 문답법 하시는 건가요?
음… 우선 제일 놀랐던 건, 젊은 사람들에게 굉장히 부드러운 분이라는 거예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진짜 비장하고 음산한 분인 줄 알았거든요.
제가 선생님 찾아뵈었던 첫날 파이드로스군이랑 이야기하시는 거 보고 깜짝 놀랐어요.*(1)
그 친구의 주장을 결국 다 뒤집으셨으면서단 한 번도 질책하거나 공격하신 적이 없었어요.
오히려 어서 의견을 들려달라거나, 같이 검토해보자고 하시면서 칭찬하고 격려하고 농담하시던 걸요.
처음에도 파이드로스군이 가자는 대로거의 끌려가다시피 하셨던 거잖아요.
땡볕에 길가에 몇 시간이나 앉아서얘기하자는 대로 다 받아주시고.
꼬장꼬장한 노인네, 앗! 죄송해요… 이런 이런… 그렇게 크게 웃으실 줄이야…
그런데 교과서에서는 진짜 그렇게 보였단 말이에요... 이렇게 유들유들한 분인 줄 몰랐다고요.
그 날도 파이드로스 군이랑 이렇게 웃으면서 얘기하셨었쟎아요, 정말 나이에 상관없이 대등하게.
회사건 학교건, 어딜 가나 나이 많으면 ‘닥치고 내 말 들어’라고 강요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메논 씨랑 얘기하실 땐 가르침을 달라고 하시고, 그림 그리면서 시연해주시고… 진짜 멋있었어요, 선생님.*(2)
두 번째로는, 지금 얘기한 것과는 반대일 수 있는데 좀 무섭기도 했어요.
특히 고르기아스 씨랑 얘기하실 때는 싸움 나는 줄 알았어요.*(3)
고르기아스 씨랑 편 먹은 분들이 더 많았잖아요, 폴로스 씨나 칼리클레스 씨처럼요.
제가 보니까 선생님 제자 플라톤씨는 아예 한 마디도 안 하고 선생님 말씀 받아 적느라 바쁘더구만요.
칼리클레스 씨는 토론이 끝나고 나서도 눈빛이 이글이글 했다구요.
토론할 때도 계속 깐족깐족… ‘정 원한다면 뭐 그렇다 치시오’ 이런 식이어서 듣는 저도 화가 나던데
선생님은 눈 하나 깜짝 안 하시고, 화도 한 번 안 내시고, 끝까지 열정적으로 얘기하셨었죠.
그 날, 정말 감동적이었어요.
오만방자한 상대방을 비웃거나 욕하지 않고 선생님의 페이스대로 진지하게 주장하신 모습도 그랬고,
불의를 행하는 것보다 당하는 것이 훨씬 행복한 것이라는 말씀도 그랬어요.
선생님이 왜 선생님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죽음을 선택하셨었는지, 처음으로 이해할 수 있었어요.
저에게 정말 중요한 문제이거든요, 자신이 믿는 것과 행동이 일치하는 것 말이에요.
지금 생각해보니, 선생님은 젊은이들하고 말씀하실 때는 부드럽고 온화한데,
소피스트들에게는 강하게 밀어붙이시는군요.
심지어 프로타고라스 씨에게는 ‘길게 말하지 말고 내 질문에 짧게 대답하라’고까지 하셨었잖아요.*(4)
그때 거기 모인 사람들 다 심각한데 저만 못 참고 쿡! 하고 웃어버렸어요.
아… 들으셨어요? 그래서 쳐다보셨구나.
신기했던 것도 많았어요.
지난번에 '귀게스의 반지' 이야기 해주셨었쟎아요?*(5)
반지를 돌리면 반지를 낀 사람이 보이지 않게 된다는 이야기요.
제가 좋아하는 '반지의 제왕'이라는 영화가 선생님이 해주신 그 이야기를 모티브로 만들어졌다는 걸 처음 알게 됐거든요.
그리고 우리가 마지막 역작이라는 의미로 많이 사용하는 '백조의 노래' 비유를 처음 쓰신 분도 선생님이시더군요.*(6)
이래저래, 후대 사람들이 선생님께진 빚이 참 많은 것 같아요.
또 다른 건 없냐고요?
아 참, 선생님의 비장의 무기, 문답법 말인데요.
저는 선생님께서 저에게 문답법을 휘두르시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어느 누구라도 한 번 걸려들면 꼼짝없이 당할 것 같거든요.
선생님은 인정하지 않으시겠지만, 전 그 질문이 ‘산파술’이 아니라 취조 심문처럼 느껴지기도 했어요.
아까 아데이만토스 씨도 똑같은 얘기를 하길래 저도 무심결에 고개 끄덕끄덕 했는데…*(7)
선생님, 이번에는 제가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요.
요 며칠 선생님 얘기를 직접 들어보니까,‘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씀이 제가 원래 알고 있던 뜻이 아니던데요.
원래 어떻게 알고 있었냐고요?
이런 어떡하지… 본격적으로 문답법 시전하셨는데… 아, 아녜요, 혼잣말이었어요.
어... 어... 아무리 법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일단은 지키는 게 국민의 도리다, 뭐 이 정도?
지금 저희는 선생님이 사형선고를 받고 돌아가시기 직전에 한 말이라고 알고 있거든요.
그건 사실이 아닌 것이 확실하던데요.
악법이 아니라 선생님의 철학적 소신을 지키기 위해 그 길을 선택하신 거잖아요.*(8)
좀 더 생각해보고 다시 답을 말하라고요?
지금 저 제대로 낚인 거 맞죠? 그냥 손에 답 쥐어주시면 안 돼요?
저 수능 이전 세대란 말이에요. 논술 취약해요.
아니 잠깐만요, 근데 그 말을 하긴 하셨어요?
어, 어디 가세요?
내일 다시 오라고요?
아 맞네, 도서관 문 닫을 시간이네.
아, 아, 안녕히 주무세요!
내일 아침에 다시 뵈어요!
473페이지에서요, 꼭이요!
<추천책>
소크라테스. 많이 ‘들어’는 봤어도, 정작 ‘읽어본’ 사람은 드물다.
교과서에 자주 등장하면 어쩐지 흥미도, 매력도 잃게 되지 않는가.
그런데 얼마 전 도서관에서 기대 없이 집어 든 플라톤의 책을 통해
난생 처음으로 소크라테스를 ‘알게’되었다.
(플라톤의 작품들은 모조리 다 'Feat.소크라테스’다.)
그리고 그의 따뜻하고 재치있는 인간미에 매료되고 말았다.
새로 보물을 발견한 사람처럼,
요즘 누구에게나 소크라테스 이야기를 하고, 책을 추천하고 있다.
어떤 책을 읽을지 망설여진다면, 우선 [파이돈]을 읽어보길 권한다.
상대적으로 잘 알려져있는 그의 사형 당일 기록이다.
영혼불멸에 대한 지적 토론과 함께,
죽음 앞에서 더 진솔하게 드러나는 그의 인간미를 느낄 수 있다.
너무 어려운 대목은 쉬어가도 좋다.
중요한 건 입덕이니까.
<언급한 내용과 관련된 책들>
(1)플라톤 저, 천병희 역, [파이드로스]
(2)플라톤 저, 천병희 역, [메논]([파이드로스]와 한 권으로 묶여 있음)
(3)플라톤 저, 천병희 역, [고르기아스]
(4)플라톤 저, 천병희 역, [프로타고라스]([고르가이스]와 한 권으로 묶여 있음)
(5), (7)플라톤 저, 천병희역, [국가]
(6), (8)플라톤 저, 전헌상역, [파이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