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EE STYLE ㅣ 곽정빈
가장 큰 영향을 받았고 또 좋아하는 책이 헤르만헤쎄의 데미안입니다. 그래서인지 평소 인간 본연의 양면성을 사랑하고 이해하려 노력한다는 말을 곧 잘하곤 합니다.
작가프로필 ㅣ 곽정빈
저는 3년간 하던 일을 그만두고 지난 1년간 세계여행을 다녔습니다. 하지만 두 눈을 황홀하게 채우는 수많은 풍경들보다도 여태껏 가져보지 못했던 무지막지한 혼자만의 시간을 대면해야 했던 것이 가장 큰 경험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시간들을 글을 쓰면서 채워 왔습니다. 글을 쓸 때 비로소나 나 스스로가 나 다워지는 느낌을 가질 수 있었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희미해져만 갔던 나의 자아가 글을 쓰면서 뚜렷해졌습니다.
그리고 이제 다시 시작된 제 인생의 2막에서 지속적이고 전문적으로 글을 써나가고자 합니다.
그래봤자 티끌이겠지만 연말 상여도 들어왔겠다 통장에 조금씩 여윳돈이 붙기 시작하니 적금을 들어야할 때라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2~3년 이상의 장기적금은 부담이 됐다. 내가 다니는 이 회사가 과연 2년 이후에도 여전할까? 아니 2년이 아니라 고작 1년 이후의 내 삶을, 그 때의 내 소재를 스스로 확신할 수 있나?
불안은 사람의 행동을 제약한다.
1년 짜리 단기 예금이나 적금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사실 그동안 가끔씩 주거래 은행인 신한은행 앱을 열어봤었다. 하지만 어떤 단기상품을 조회해봐도 연이율은 1~2%에 남짓했고, 그때마다 대충 손가락 셈을 해보고는 '티끌모아 봐야 티끌인데' '이 돈 있으나 없으나 티도 안나니까' '이 돈 있어봐야 가난하니까' 라는 우스갯소리를 되뇌이면서 차일피일 미루어왔다.
그러던 중에 인터넷 기사에서 '아주저축은행 삼삼오오 함께만든 적금'이라는 상품을 발견했다. 동시가입자가 5명 이상이면 고정금리 3%에 우대조건을 만족하면 추가 금리 1.5%를 더해주는 파격적인 상품이었다. 4명을 어떻게 더 모으지라고 잠시 생각했는데 기사 말미에 공동가입자를 모으는 네이버 카페가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카페에 가입을 했다. 회사 근처 문래지점에 4월 5일 공동가입자를 모으는 글이 올라와있었고 이미 5명 이상의 가입희망자가 댓글로 의사를 표명했다. 망설이지 않고 댓글을 달았다.
'공동구매 신청합니다'
아무리 찾아봐도 더 이율이 높은 상품은 찾을 수 없었다. 물론 이율이 높은만큼 매월 불입금이 세지는 않았다. 최대 50만원인데, 그 것도 30만원일 때 4.5%의 이율이 50만원에서는 3.9%로 내려 앉았다. 어차피 상관없었다. 그 이상 넣을 돈도 없으니까. 내게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문래까지는 지하철역으로는 네 정거장 거리였지만 1호선을 갈아타야만 했고 회사에서 역까지 그리고 문래역에서 저축은행까지의 거리도 꽤나 있는 편이었다. 그렇다고 얼마없는 연차를 낼 수는 없고 점심시간을 이용하기로 했다. 점심을 거르고 팀장에게 양해를 구한 채로 30분 정도 일찍 회사를 나섰다.
평일 낮 시간에 기약없는 1호선을 기다리는 것보다 조금 돌아가더라도 마을버스를 타고 2호선 대림역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비는 추적추적 내렸고 갑자기 떨어진 온도에 으슬으슬 한기가 느껴졌다. 양해를 구했다고는 하나 신경이 쓰였고 점심시간 내로는 들어가야하겠다는 마음으로 계속해서 폰을 열어 시간을 확인하며 걸었다. 하지만 현실은 언제나 분주한 마음을 귀신같이 알아채는 법이었고 눈 앞에서 마을버스를 놓쳤다. 비는 계속해서 내렸다.
플래폼에 들어서자마자 열려있는 열차 문으로 달려들고, 잠시 딴 생각을 하다가 문래역을 지나칠 뻔 하는등 우여곡절 끝에 여차저차해서 저축은행에 가닿았다. 다행히도 우려와는 다르게 그 시간에는 방문객이 많지 않았고 대기표를 뽑으니 바로 다음이 내 차례였다. 순서는 바로 돌아왔다.
"삼삼오오 함께만든 적금 가입하려고 왔는데요..."
"네. 카페 닉네임이 어떻게 되시죠??"
당연히 카페개설의 주체는 일반 사람들이라고 예상했던 것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뭐 아무렴 어떤가. 리스트에서 내 카페 닉네임을 확인하고 가입절차를 진행했다.
우선 궁금한 것부터 하나씩 물어가기 시작했다. 확인하고자한 사항은 '1년간 거래가 없는 자에 한해서 국민은행 카드를 개설하고 3개월간 30만원 사용이 확인되면 우대금리 1.5%가 붙는다'는 조건이었다. 개설하는 카드는 무슨 종류의 카드인지, 1개월에 30만원씩 3개월인건지 3개월에 총 30만원인건지, 3개월 동안 사용확인이 되면 나머지 9개월에 한해서만 우대금리가 적용되는 것인지, 연회비가 있지는 않은지 등에 대해서 꼬치꼬치 물어가기 시작했다.
익숙한 질문인건지 상담원은 상냥하고 친절하게 질문에 답해주었다. 개설하는 카드는 신용카드이며 연회비 5,000원이 발생하지만 3개월 사용확인 후 해지를 하면 소급적용되어 환불받는다. 3개월 동안 총액 30만원을 사용하는 것이 맞고, 3개월의 사용 확인이 되면 연말에 원리합이 계산되기 때문에 12개월에 대해서 우대금리가 적용된다.
궁금한 내용은 다 확인했고 불입금을 결정할 때였다. 최대금리 4.5%를 적용받는 불입금은 30만원이었다. 50만원까지 불입할 수 있지만 이 경우에 금리는 3.9%였다. 물론 3.9%도 시중에서 찾아볼 수 없는 높은 금리였지만 왠지 0.6%를 손해보는 느낌이 결정을 망설이게 했다.
결론적으로 30만원만 불입하기로 했다. 월 20만원의 여윳돈은 또 다른 기회비용을 위해 당장은 들고 있기로 했다. 소액이지만 펀드를 해보거나 혹 언제 또 다른 좋은 상품이 나올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국민은행 카드 개설절차와 적금 상품 가입절차 그리고 그 외 인터넷뱅킹 가입 등의 절차로 10장 가까이 되는 서류를 받았다. 형광펜으로 그어준 공란에 기계적으로 내용을 기입하고 날림 서명을 했다. 책상을 손가락으로 초조하게 두드리며 흘러가는 시간에 조바심을 표현했다. 하지만 은행원은 담담하고 차분하게 일을 처리했다.
30여 분간의 가입절차가 끝이나고 자리를 일어났을 때는 점심시간이 거의 다 지나가있었고, 부리나케 회사로 돌아왔을 때는 점심시간이 이미 20분이 지나가 있었다. 조용히 들어와서 머쓱하게 자리에 앉아 업무를 보기 시작했다. 약간 눈치는 보였지만 아무도 신경쓰지는 않았고 미뤄왔던 숙제를 다 해치운 듯한 시원한 해소감을 만끽했다. 나름 꼼꼼히 알아본 상품을 결국엔 가입했고 시간까지 알차게 사용한 듯하니 뿌듯했다.
집에 돌아와서 1년 후 내가 얻게될 수익금이 얼마나 될지 계산해보기로 했다. 중학교 때 배웠을 원리합계 공식이 쉬이 떠오르지 않았다. 책상에 노트와 연필을 꺼내 끄적이면서 계산을 하기 시작했다. 인터넷 검색을 하고, 말도 안 되는 결과가 나와 다시 검색에 검색을 거듭하면서 계산기를 수없이 두드렸다.
3,687,750원
12개월의 원금이 삼백육십만원이니 이자는 팔만 칠천 칠백 오십원이었다.
그래. 고작 1년 짜리 단기적금이 이율이 높아봤자 이자가 얼마나 됐겠는가. 그리고 적금은 날이 갈수록 떨어질 내 돈의 가치를 방어하는 개념일 뿐이라는 것도. 좋게 말해 그 것은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돈을 모으는 행위라는 것도. 모두 다 안다. 심지어 그렇다고 재테크를 포기하자는 것도 아니다.
그래. 쪼잔함까지도 이해하기로 한다. 돈이 없으면 생을 지속할 수 없는 사회에서 돈 때문에 쪼잔해질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도 또 그 것을 쿨하게 인정하기는 싫다는 쪼잔함까지도 모두 다 이해한다. 쪼잔한 걸 쪼잔하다는데 뭘 어쩌겠는가.
하지만 8만원. 고작 이 8만원 때문에 점심을 굶어가며 비바람과 싸워가며 혹여나 점심시간을 넘길 새라 초조해했다는 것과, 앞으로 3개월간 익숙치 않은 카드를 의식적으로 사용해야만 하며 또 3개월 후에 카드를 해지해야 한다는 강박을 3개월 동안 안은 채로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 허탈하고 아주 조금 짜증이 날 뿐이다.
이 글은 그 짜증에 대한 푸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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