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EE STYLE ㅣ 김연정
즐거운 감정은 빨래가 마르듯 금방 날아가 버리고, 우울한 감성, 생각들은 언제나 침전하여 남아있음을 느낍니다. 우울함, 불안함, 슬픔, 좌절감에 예민하고 행복에 예민하지 못한 제 자신이 조금 부정적인 사람이라고 느껴지지만, 아직까지는 수면 위 햇살보다는 우울한 바다 쪽이 더 좋은 것 같습니다. 어두운 것들이 가라앉아 있는 심해心海 속을 당분간 탐구하면서 글을 써 볼 예정입니다. 언젠가는, 나를 힘없게 만드는 것들에 대한 예민함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에게로 자리를 옮겨가길 기대합니다.
살다보면, 하루 종일 숨 가쁘게 일을 해도 시간이 부족할 때가 있다. 그런 시기에는 잠자는 시간조차 아깝기만 하다. 이럴 때 일로부터 조금이라도 자유로워질 수 있는 시간은 오로지 한 시간 반 남짓 되는 퇴근시간 뿐이다. 잠을 줄이거나 식사를 거를 수는 있어도 회사에서 집으로 가는데 걸리는 시간만큼은 내 뜻대로 줄일 수 없으니까, 나는 거기에 기대어 어쩔 수 없다는 듯 음악을 들으며 일과 관련된 것을 잠시나마 떨쳐낼 수 있다. 대신 밀려오는 이런저런 생각을 받아쳐내느라 조금 괴로워지지만.
사람에게는 하루에 할당된 감정의 양이 따로 있는 것일까. 이렇게 일에 시달리고 나서 창밖 너머로 퇴근길 풍경을 보며 음악을 곱씹다 보면, 하루 동안 느낄 새 없이 분산되어 있던 여러 생각과 감정들이 농축되어서 한 번에 밀려오는 것 같다. 분사되어 있던 감정의 알갱이들이 한데 모여 물방울이 되어서 나를 정확히 조준하여 떨어진다. 네가 거부한 오늘의 하루치 양이다 옛다 하고. 똑똑하고 잔인하다. 왜 사람의 미간을 정확히 조준하여 같은 주기로 물방울을 계속 떨어트리는 사형법도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물방울이 어느 순간 칼날처럼 느껴져 고통스럽다지.
그 응어리진 물방울을 맞다보면 내 머리위에는 나만 볼 수 있는 먹구름이 드리워진 것 같다.그리고 한 시간 반 동안 내리 떨어지는 그 빗속에서 나는 내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를 단번에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 확신은, <500일의 썸머>에서 결혼에 생각이 없던 썸머가 어떤 남자를 만나고 나서는, 어느 날 아침, 그 사람과의 결혼을 확신한 것과 비슷할 것이다. 내가 어떤지는 이전부터 느끼고는 있었지만, 좀 더 썸머처럼 확신에 찬 상태로 고백하고자 한다. 나는 어느 날 아침이 아닌, 밤의 도로에서 그냥 그 사실을 단번에 깨달아버렸다.
‘아, 나 지금 좀 많이 외로운 것 같다’라고.
그러나 여전히 뭐 때문인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말이다. 그래, 누구말대로 어떤 사람들은 누군가를 만나더라도 항상 외로울 수밖에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게 너고, 그게 또 나라고 했었다.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모든 날이 좋다고 했던가. 그렇다면 나의 모든 날은 외로운 것일지도 모르겠다.
뉴스를 통해 들려오는 안타까운 소식에 눈가가 촉촉해지고, ‘엄마’ 소리만 들어도 마음이 뭉클해진다. 빠른 속도로 희번덕대는 빨강, 노랑, 초록빛으로 빛을 발하는 도로의 밤은 어찌나 아름답게 느껴지던지. 오늘 이 음악의 선율은 왜 이렇게도 섬세한지. 저 지하철역의 불빛이 이정도로 아름다웠던가. 터널의 불빛은 또 어떻고. 빠르게 움직이는 차의 속도에 이리저리 휘둘리는 그림자들은 또 어떻고. 술을 마신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차갑기만 한 인공물들이 발하는 빛에 나는 함께 흔들리고 마는가. 마치 음악과 붐비는 사람들이 없어도 분위기가 충만한 클럽의 어둠 속에서 싸이킥 조명과 함께 홀로 춤을 추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클럽의 저 어두운 한켠에서 파는 대마대신 내게는 처량함, 외로움과 같은, 그런 마약들이 있는 것이다. 그걸 위해 돈을 지불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일을 많이 하고 돈을 많이 벌면 차곡차곡 농축된 엄청나게 약발 센 것들이 자동으로 나의 주머니에 쌓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약의 이름은 아마도 외로움이라지.
그렇다. 내 주머니는 두둑해졌고, 일주일 내내 나는 한 시간 반 동안, 그날 하루치의 양을 한 번에 태우고 다녔다.
크- 좋네.
스스로 처량한 분위기에 빠지는데 역시 난 재주가 있다. 쉬지 않고 일만 하다 보니 몸도 마음도 지쳐서 이런 거라고 쳐도, 도로의 밤의 불빛들이 아름다웠던 것만큼은 진심으로 절대적이었다. 나는 거기에 반해버렸고, 때문에 매일 동영상과 사진으로 그것들을 남겨두었다.
사진이나 영상으로 남겨진 것들은 간혹 놀라우리만큼 오랫동안 기억되고, 그때는 느끼지 못했던 어떤 감정을 일깨우기도 하며, 당시 느꼈던 것들을 계속해서 우려내어 진하게 만들기도 한다. 어떤 것이라도 일단 카메라에 포착되면, 아주 사소한 의미라도 부여받을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착각일 수 있으나 가장 쉬운 방법으로 나의 삶의 작은 부분들에 설탕 한 스푼만큼의 가치를 부여하는 방법이다. 설령 우연히 찍힌 사진일지라도 그것은 곧 인상적인 어떤 것으로 차츰 변하게 되어 기억에 뿌리를 내리게 될 것이다. 미약했으나 점점 풍부해지는 것이다. 거꾸로 말하면, 결국 현실에는 언제나 미래를 의식한 공백이, 허전함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메리칸 뷰티>에서 매일 캠코더로 무언가를 녹화하고 있던 소년 릭키 피츠를 기억하는가.
길거리에서 바람에 날리는 종이 백을 십오분 동안이나 관찰하면서, 그 봉지 속 너머의 삶을 느껴버리고 만 소년. 세상에 아름다움이 너무나 많은 나머지 스스로 감당할 수 없고, 그것들을 기억하기 위해 비디오에 집착한다던 그 소년.
나도 지금 이 밤의 거리를, 이 시간을, 그 너머의 삶을 이 순간만큼은 감당할 수 없다. 매일 같은 도로 위를 지나가면서, 같은 풍경을 바라보다가 마침내 그 풍경 속 너머의 삶을 느껴버린 것일까. 그리고 그것은 치명적으로 아름다웠다. 그래서 나는 그것들을 매일 동영상으로 남겨두게 된 것이라고 하자.
릭키 피츠의 시선이 내 시선으로 옮겨오면 세상에 아름다움이 너무 많다기보다는 외로움이 가득하다고 하겠지만. 적정선에서 외로움의 아름다움이라고 치자.
내가 지금 이 순간 느끼는 것을 온전히 알 수 없는 상태, 이렇게 매번 어긋난 채 스러져가는 몸뚱아리를 이끌고 생이 다할 때까지 무작정 앞으로만 나갈 수밖에 없다는 것은, 결국 나는 언제나 일상의 쳇바퀴를 벗어나고자 노력하지만, 거시적인 시점에서는 삶조차 온전하지 못한 하나의 거대한 쳇바퀴임을 느끼게 한다. 현재를 충실하게 느끼고 싶어 하지만 미래를 향해 내달려버리는 둔한 몸과 지나치게 빠른 시간의 수레.
흔히 죽음을 앞두고서야 내 삶이 어땠는지를 깨달을 수 있다지. 유한한 삶 속에서 죽기 전에라도 그럴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일지도 모른다. 진정한 나의 삶에 대한 스스로의 판결은 죽음 이후에서야 느릿느릿 걸어올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언제나 삶은 그런 식으로 현재에 어떤 공백을 마련해 놓고서는 미래에 그것을 채우도록 해왔다.
사람에게 죽음을 추억할 시간이란 것이 있을까. 그것을 겪어야만 나의 마침표가 완전히 찍어질 것 같은데, 그래야만 내가 어떤 삶을 살았노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추측컨대 많은 이들이 생각하는 대로 역시 삶은 결국 완전하지 않을 것이다. 죽을 때까지 늦게 깨닫는 것을 멈추지 않을 것이며, 흔들리는 영문을 모르는 마음을 한 채로 창밖 풍경을 바라보는 것을 언제까지고 반복할 것이다. 가끔 때로는 충만하고 허전할 것이다.
지난 이주 동안 셔틀버스 안에서, 혹은 아빠의 차 안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느꼈던 것들이 정확히 무엇이었는지 알 수 없다. ‘외롭다’는 사실 외에 어떤 개념으로 표현되지 못한 다양한 감정들이 눈부시게 빛나는 조명들과, 풍경과 함께 분명 흔들리고 있었다. ‘나의 사소한 일상의 한 부분이었습니다’라고 끝내버릴 수 있는 것이라면 잊었을 테지만, 나는 그것들을 카메라에 담았고 어떤 가치를 부여해버리고 말았다.
지금은 그저 표현할 수 있는 말이라곤 ‘아름다웠다’가 전부이지만, 분명 시간이 흐르고 나면 이것에도 다양한 수식어가 붙어 다채롭게 느껴지지 않을까. 어려운 일이지만, 운이 좋으면 죽기 전에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는 것들에 이 밤 풍경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기 때문에 아마도 나는 앞으로 계속 창밖 풍경을 보는 것을 계속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게 하지 못하는 순간이 올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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