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뚜.뚜.뚜... PC 통신 ㅣ 재키
1997년 pc통신이 한창 흥하던 시절 저는 대학 1학년이었습니다. 그때 저의 방제는 <음악/영화/책 이야기하실 분 오세요~~(1/10)>였습니다. 채팅방에 찾아온 사람들과 진지하고 순수한 대화를 많이 나눴고 그때 알게 된 사람과 지금까지 연락하고 지내기도 합니다.
작가 프로필 ㅣ 재키
대학 졸업 후 영화감독이 되려고 충무로 영화판에 뛰어들어 가진 고생을 다했다.
영화판을 떠난 후 수많은 직종에서 일했다. 나의 직장 유랑 경험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
나는 여러 번의 이직 경험이 있다. 정확히 말하면 이업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같은 업에서 옮긴 것이 아니라 매번 업 자체를 바꿨으니까. 자의였든 어쩔 수 없는 이유였든 어쩌다 보니 여러 가지 직업을 가졌었고 앞으로 <직장생활을 하는 방랑자의 이중생활>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지난 직업의 이력에 대해 먼저 이야기해보기로 했다.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어쩌다 보니' 좀 독특한 이력이라고 할 수 있는데 각각의 업에 종사하면서 경험했던 일들과 느낀 점들만 그럴싸하게 정리해도 이야기 거리가 꽤 많을 것 같다. 어쩌면 자기소개의 연장선이 될 수도 있겠는데 앞서 이야기했듯 각각의 업에서 겪었던 일들에 대해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꽤 있기 때문에 평범한 듯 평범하지만은 않은 내 짧은 인생을 되짚어 보려고 한다.
나는 울산에서 태어나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살았다. 그때만 해도 울산에는 고등학교 입시가 있었고 새파란 중학교 시절부터 입시라는 쓸데없는 스트레스를 받으며 나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이리저리 끌려 다니는, 지금 생각해도 불쌍한 인생을 살았다. 이미 그때부터 학교에서 가르치는 세상과 현실이 참 많이 다르다는 것을 눈치 채기 시작했다. 이 나라의 교육은 말하자면 똑같은 사이즈의 기성복을 대량으로 만들어 놓고 몸의 크기가 각기 다른 모든 학생에게 껴 맞춰 입으라는 식이었다. 나는 그 기성복을 정말로 입고 싶지가 않았다. 선생님은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 가면 이쁜 여자를 만나서 잘 살 수 있을 거라고 하셨지만 진짜 믿으라고 한 소린지... 아무튼 대학은 너무 먼 이야기였고 어른이 된다는 것은 더 먼 일이었다. 당시만 해도 선생님들이 학생들에게 매질을 하는 게 일상이었다. 나는 그렇게 맞아가며 학교에서 배운걸 과연 세상에 나가서 써먹을 수 있는 게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왜 굳이 이런 걸 배워야 하나 하는 생각을 억지로 삼키며 버텨야 했다. 중2 때까지만 해도 학교에서 우등상을 받거나 교회에서 학생회장을 할 만큼 모범적인 학생이었고 신실한 신앙인이었으나 중2병이라는 용어도 쓰지 않던 그때부터 삐딱선을 타기 시작했었다. 나는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에서 싱클레어가 그랬던 것처럼 한 친구를 만났고 책이라는 선악과를 따먹고 말았던 것이다. 그 친구로 말하자면 때때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읽으며 사색에 빠져 있었고 우뇌를 활성화시킨다며 신비로운 만다라 -신성한 단에 부처와 보살을 배치한 그림으로 우주의 진리를 표한한 것이다.-를 한참 동안 쳐다보곤 했고 나에게 '생명'을 어떻게 정의 내릴 수 있는지 질문을 던졌던 친구다. 그 당시의 나로서는 감당하기 힘들 만큼 조숙하고 똑똑한 친구였는데 왜 그 친구가 나와 친하게 지냈었는지는 아직도 잘 모른다. 싱클레어처럼 나에게 어떤 표식이 있었던 걸까...? 아무튼 나는 그 친구를 통해 도서관에서 책을 빌릴 수 있다는 것을 알았고 그 책 속에는 교과서에는 없는 것들이 잔뜩 들어 있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에 관한 책을 통해 인간의 정신이 'SEX((성)'에 영향을 받고 그 사람의 성격이나 행동 심지어 말실수를 하는 것 그리고 유아기 때 성을 어떻게 겪었느냐 하는 게 그 사람의 인격형성에 얼마나 크게 영향을 끼치는지 알고 충격을 먹었었다. 그리고 한때 지구를 둘로 쪼개는 힘을 발휘했던 사회주의 이론(마르크시즘)의 저자 칼 마르크스의 전기를 읽으며 정작 자신은 평생 빚에 허덕이며 간신히 먹고살았더라는 것도 알게 됐었다. 교과서에 나오는 '별'이라는 아름다운 단편소설을 쓴 알퐁스 도데의 자전적 소설 '꼬마 철학자'를 읽으며 그가 얼마나 우울한 유년기를 보냈었는지 알고 왠지 위로를 받기도 했다. 그렇게 도서관에서 열심히 책을 빌려 읽는가 하면 그 친구와 끝도 없고 답도 없는 토론을 하거나 말도 안 되는 질문들을 주고받았고 언젠가부터 수업시간에 학교 선생들이 하는 이야기에 꼬투리를 잡거나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면서 세상을 향한 삐딱한 시선에 날을 세워나가기 시작했다. 학교 수업은 대충 때우고 지나갔고 교회는 빠지기 시작했고 집에는 늦게 들어가기 시작했다. 어쩌면 내 방랑의 시작은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그렇게 방랑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점점 비사회적인 인간이 되어갔고 잘 나가던 교회를 결국 끊고 학교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도 거의 없어졌다. 원래 운동을 좋아해서 점심시간에 늘 나가서 뛰어놀고 방과 후에도 친구들과 운동장에 남아서 땀내 나도록 축구나 농구를 하다가 귀가했었는데 이젠 왠지 또래 친구들과 노는 건 시시했다. 뭐랄까... 좀 더 중요한 일을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결국 책과 그 친구와의 끝없는 선문답과 몽상과 사색 빠져 들면서 나는 점점 겉돌며 혼자만의 세계에 갇혀 지냈다. 외톨이가 되어갔지만 머릿속은 그 어느 때보다 복잡했고 바빴다. 그러다가 어떤 분야에 깊이 빠져들기라도 했다면 흔한 성공 스토리의 주인공처럼 - '컴퓨터만 죽어라 팠더니 부자가 되어 있었어요'(빌 게이츠 or 스티브 잡스), '공상과학에 미쳐서 빠져들었다가 영화로 만들어보고 싶어서 만들었더니 대박 났어요'(스티븐 스필버그) 등등 - 지금쯤 다른 인생을 살고 있었을까. 하지만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고 너무나 순진하다 못해 어리석은 아이였고 그저 혼자 방황하며 방랑했을 뿐이었던 것 같다. 고지식하고 순진한 어린 청년이었던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소극적 반항으로 학교 수업을 거부하거나 혼자만의 세계에 파고드는 것이 전부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학교를 관뒀으면 어땠을까 싶다. 그랬으면 덜 힘들었을 것 같고 덜 방황했을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한동안은 그저 버텼다. 언젠가는 일탈할 것을 꿈꾸며...
고등학교를 가고 나서부터 나의 삶은 암흑기로 접어들었다. 학교 분위기는 입시지옥에서 살아남는 자만이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식이었다. 폭력적이고 억압된 학교 분위기에서 혼자만의 세계를 만들가고 싶어 하던 나 같은 학생이 스스로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은 정말이지 너무 힘든 상황이었다. 그 어디에서도 속내를 이야기할 데가 없었다. 중학교 때의 그 친구는 다른 학교로 간 후 거의 만나지 못했고 친구들과는 대화가 안됐고 교회는 나가지 않았고 부모님은 답답할 뿐이었다.
학교생활은 끔찍했다. 아침마다 교문에서 터미네이터처럼 생긴 학생주임 선생은 학생들의 두발과 복장을 감시하며 로봇처럼 서 있었다. 두발은 5센티, 신발은 무조건 하얀색, 가방 색깔은 무조건 단색 한 겨울에도 눈에 띄는 잠바는 무조건 압수대상이었다. 교복에 넥타이와 학교 배지를 빼먹어도 터미네이터 선생의 몽둥이와 발길질을 당해야 했다. 아침 자습시간엔 늘 복도에서 기합 받는 학생들의 소리와 빠따 소리가 학교를 울렸다. 야간 강제 자습 시간에는 선생들이 커다란 각목을 질질 끌고 다니며 호러 영화에 나오는 좀비처럼 복도를 왔다 갔다 했다. 학교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지 못했다. 언제나 멍하니 공상에 빠져 있거나 혼자 소설을 읽거나 사색에 잠겨 있는 나에게 친구들이 붙여준 별명은 '근엄'이었다. 거의 말도 안 했고 근엄한 표정으로 책을 읽거나 혼자 생각에 빠져 있으니 그런 별명이 붙었던 것 같다. 학교 분위기가 살벌하다 보니 학생들 간에 대화도 사실 거의 없었다. 나는 그런 학교 분위기 속에서 버텨야 했다.
어느 날 나는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미친 듯 교과서를 모두 찢어 방에 내팽겨 쳤던 적이 있다. 입시교육과 강압적인 학교 분위기에서 스스로를 억누르며 버티다가 결국 폭발해 버렸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억눌렸던 감정이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되어 감당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던 것 같다. 부모님은 놀랐지만 이유를 몰라 당황해하셨고 나조차 그런 나의 반응에 놀라 어찌할 바를 몰라했었다. 어쨌든 학교생활은 계속되었고 나는 책과 몽상 속으로 도망쳤다.
헤르만 헤세의 책에 빠져 그의 책을 모조리 읽어냈고 도서관에 비치된 한국 근대 역사 사진집을 보며 사진 속의 시간으로 빠져들었고 리더스 다이제스트 잡학사전을 보며 세상의 온갖 잡다한 것들에 빠져들기도 했었다. 마치 세상의 비밀이라도 캐내겠다는 듯 도서관의 온갖 책들을 뒤지며 혼자만의 비밀스러운 시간을 소중히 채워갔다. 그렇게 버티다 버티다 드디어 꿈꾸던 일탈을 실행하기로 결심했다. 가출을 계획한 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나에게 그것은 '탈출'이었다. 알을 깨고 나가기로 결심한 것이다.
D-Day를 정한 후 일단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돌아올 생각이 없었다. 완전히 이곳을 탈출하고 모험 가득한 세상 속으로 뛰어들 생각이었다. 소극적인 반항으로 버티기만 하던 내가 드디어 적극적으로 내 삶을 개척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가출 계획은 은밀하게 진행되었다. 미리 동선을 짜고 타임 테이블을 만들고 예산을 짜면서도 그 누구에게도 계획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집에서나 학교에서 전혀 알아채지 못하게 철저히 보안을 지켰다. 드디어 D-Day로 정한 날이 찾아왔다. 그날 나는 미리 머릿속으로 치밀하게 준비해 놓은 계획을 비장한 심정으로 실행에 옮기고 있었다. 우선 가장 중요한 일은 가지고 갈 책을 챙기는 일이었다. 다시는 돌아올 생각이 없었다. 온전히 나의 손길이 묻은 내 책들은 내게 무척 소중한 것이었다. 이곳을 떠나면 내 책을 언제 다시 찾을 수 있을지 알 수 없었고 그래서 가져갈 책을 고르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었던 것이다. 내 책장에 꽂힌 책을 전부 가져갈 수는 없었으니까.
미리 챙겨놓은 큰 가방 하나에 꼭 가져가야겠다고 생각한 책을 하나씩 넣으며 잠시 고민을 해야 했다. '이걸 꼭 챙겨야 할까. 평소에 손도 안 댄 책인데. 아냐. 챙기자. 그래도 이건 두고두고 읽어야 할 책이야. 게다가 소중한 나만의 책이잖아.' 그렇게 가방에 책을 가득 채우고 한동안 입을 옷 몇 벌과 간단한 소지품을 챙긴 후 모두가 잠들어 있는 집을 몰래 빠져나왔다. 문밖 계단에 세워둔 자전거에 큰 가방을 싣고 무거워진 자전거를 밀어 고속버스터미널로 향했다. 새벽 공기가 차갑게 나를 밀쳐내는 것 같이 느껴졌지만 이제 와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얼마나 참았는데... 더 이상...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이대로 길바닥에 주저앉게 되더라도 다시는 돌아가지 않으리라고 또 한번 다짐하고 이를 악물었다. 가슴속엔 눈물이 가득 고여 있는데 이상하게 기분은 담담했다. 다시는 이 길을 걷지 못할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하니 늘 다니던 길이 새롭게 느껴졌다. 자전거에 실어놓은 책의 무게 때문에 몇 번이나 휘청거리며 넘어질 뻔했다. 새벽길에 사람들이 거의 다니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이른 새벽 시간에 자전거에 자기 덩치만한 가방을 싣고 낑낑대며 넘어질 듯 자전거를 타지도 않고 밀고 가고 있는 것을 사람들이 보면 이상하게 생각할 게 뻔한데 고속버스터미널 앞에 자전거를 세우기까지 마주친 사람은 쓸쓸해 보이는 새벽길을 대비로 쓸고 있는 청소부 아저씨뿐이었다. 자전거를 구석 틈에다 세워놓고 이제는 양손으로 가방을 들고 매표소로 향하는데 뱃속에서 신호가 왔다. 급히 나오느라 볼일을 해결하지 못했던 것이다. 화장실을 가려면 가방을 두고 가야 하나 가지고 가야 하나 잠시 고민하다가 결국 다시 가방을 들었다. 터미널 안에 사람은 거의 없었지만 절대 내 소중한 책이 들어 있는 가방을 혹시 모를 위험한 상태로 둘 수가 없었다. 좁은 재래식 화장실 칸 앞에 가방을 잘 내려놓고 바지를 내렸다. 녹색 가방이 눈앞에 놓여있다. 새로 시작할 내 인생은 이 가방 안에 들어 있는 셈이었다. 이 가방을 살 때가 생각났다. 디자인이 심플하고 튼튼해 보여서 마음에 들었던 기억이 난다. 원래 양쪽 어깨에 매는 백팩이 학교를 오가는 데는 편했지만 책을 많이 넣어 다닐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한쪽 어깨로 매는 큰 가방을 사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시장에 갔다가 가방 집에 걸려 있는 이 가방을 발견하고 눈도장을 찍어놨고 엄마를 졸라 결국 그 가방을 사게 된 것이었다. 새 가방에 신이 나서 교과서와 참고서를 잔뜩 챙겨 다녔는데 가지고 다니는 책의 대부분은 매일같이 한 번도 들춰보지 못하고 가방 속만 들락날락하기 일쑤였다. 그래도 늘 가방은 무겁게 채워진 채였고 지금 눈앞에 있는 그 가방에 시선을 쏟으며 아래로는 다른걸 쏟아냈다. 시계를 보니 버스 출발 시간이 가까워 왔다. 서둘러 가방을 챙기고 손을 씻는데 물이 튀어 소매가 다 젖어버렸다. 무거운 가방을 불안하게 매고 양손을 씻기가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화장실에서 나오니 그사이 사람들이 제법 어수선하게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역시 화장실에 가방을 가지고 간 것은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표소에서 전주행 버스표를 샀다. 평일 이른 시간에 전주로 가는 사람이 많지는 않은지 버스는 한산했다. 가방을 옆자리에 잘 챙겨놓고 창가 자리에 앉으니 한숨이 후- 나왔다. '내가 진짜로 이 일을 저지른 거야. 나는 진짜로 떠나는 거야. 알을 깨고 나가는 거라고.' 조금 전까지는 착잡하던 가슴이 갑자기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버스가 서서히 출발하기 시작하자 쿵쾅거리는 가슴은 가슴대로 난린데 기분은 이상한 안도감과 말로 표현하기 힘든 묘한 느낌과 불안감 등으로 심란하기 짝이 없었다. 옆자리에 있는 가방을 꼭 움켜쥐며 창밖을 바라봤다. '나는 떠난다. 잘 있어라...' 나도 몰래 작별인사를 하며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들었다.
-to be continued-